도 넘은 금융권 모럴헤저드 실태 고발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9.12 14: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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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돈으로 '빚잔치'…"내 돈 어디에 맡기나?"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돈을 믿고 맡길 데가 없다. 집에 쌓아두자니 '도둑'이 무섭고 통장에 넣자니 '은행'이 무섭다. 은행들이 고객돈으로 개인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횡령·배임·불법대출을 넘어 고액배당·정보유출까지 탐욕은 끝이 없다. 징계자는 작년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했는데 감시망은 여전히 허술하기만 하다.

 

경기 일산경찰서는 지난달 29일 고객이 예치한 돈을 빼돌린 혐의로 우리은행 최모 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우리은행 등에 따르면 최씨는 2010년 6월부터 2011년 6월까지 1년간 13회에 걸쳐 고객돈 31억원을 횡령하다 은행 내부감사에 적발됐다.

최씨는 고객이 정기예금에 가입하고 2억5000만원을 맡겼을 때 1000만원만 입금하고 2억5000만원이 입금된 것처럼 통장에 가짜 잔액을 붙이는 수법을 사용했다. 정상거래 내용을 임의로 출력해 통장에 오려 붙이는 수법으로 고객들을 속였지만 은행 간부라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았다.

31억 가져갔는데
은행 1년간 몰라

최씨는 30억원이 넘는 돈을 주식 선물옵션에 투자했다 모두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우리은행이 이러한 사실을 한동안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6월에서야 감사를 통해 적발해 경찰에 고발했다.


이에 앞서 우리은행은 지점장급 전·현직 은행원 3명이 지난 2005년 6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채권보전절차 없이 1350억여원의 PF대출을 해 주는 조건으로 수억원의 뭉칫돈과 함께 골프 등의 접대를 받은 것이 밝혀져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 일로 우리은행은 서울 회현동 본점이 경찰 특수수사과에 압수수색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고 최근에는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에 복합 유통센터를 조성하는 파이시티 사업과 관련해 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 2010년 우리은행이 파이시티의 사업권을 뺏기 위해 청와대에 비리 첩보를 제보하고 의도적으로 파산신청을 냈다는 주장인데 은행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신한은행에서는 직원 18명이 고객이 낸 수수료 수억원을 가로채 전원 면직처리 당한 일도 발생했다.

지난 3일 금감원 등에 따르면 신한은행 서울 서교동 지점 한 직원은 지난해 기업고객들이 납부한 신용평가수수료 등 각종 1회성 수수료 2억여원을 수차례 걸쳐 빼돌리다 올해 초 고객의 민원제기로 덜미가 잡혔다.

이를 계기로 신한은행이 전체 지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였고 이 결과 직원 18명이 적발됐다. 조사결과 이들은 수수료 영수증을 허위로 발급해준 뒤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적게는 4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돈을 횡령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8일에는 2010년 9월 '신한사태'를 앞두고 신한은행 직원들이 재일교포 주주의 계좌를 무단으로 열람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금감원은 "신한은행 사태를 앞두고 양용웅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장과 그 가족의 계좌를 신한은행 측이 무단 열람했다는 민원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이어 "계좌 열람 권한이 있는 직원들이 본 것인지 아니면 무단으로 열람한 것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오는 10월 신한은행 종합검사 때 이 부분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횡령·정보유출·서류조작까지 '비리백화점'
비리 징계자 지난해 2배…근본 대책 절실

양 회장은 신한지주 사외이사를 역임했으며 신한지주 주식 100만주 이상을 가진 재일교포 주주모임 회원이다. 양 회장은 2010년 신상훈 전 사장의 사퇴를 반대한 바 있다. 때문에 양 회장 계좌 무단 열람이 신 전 사장 진영의 약점을 잡기 위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파문이 예상된다.

감사원이 지난 7월23일 발표한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공개문에서는 신한은행이 개인신용대출 금리를 매길 때 대출자의 학력 수준에 비례해 차등을 뒀다고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신한은행은 고졸 이하 대출자에 13점을, 석·박사 학위자에는 54점을 줬다. 4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 신용평점은 곧바로 대출승인 여부와 대출금리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당시 신한은행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민은행은 아파트 중도금 대출 서류를 직원이 고객 동의를 받지 않고 조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물의를 빚고 있다. 여기에 본점 영업감사부가 금감원의 근거리 감독하에 중도금 집단대출 서류를 검사하는 중 약 4000~5000여건의 조작사실이 적발되면서 "직원 실수"라고 해명한 국민은행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출 만기를 은행직원이 멋대로 바꾼 사례가 가장 많았고 고객 대신 서명을 하거나 대출금액을 고친 일도 있었다.

지난 7월에는 고객돈을 마음대로 인출해 쓴 전직 국민은행 고객관리팀장 이모씨에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이씨는 2007년 8월 중순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중랑구 국민은행 모 지점의 VIP고객관리팀 사무실에서 27회에 걸쳐 고객 5명의 예금 약 10억4000만원을 인출해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쓴 혐의로 기소됐다.

올해 1월까지 고객예금을 관리하며 펀드와 보험 등 각종 금융 상품의 관리와 판매 업무를 맡아왔던 이씨는 펀드 실적을 높이기 위해 투자자를 모집했으나 큰 손실이 발생해 고객 예금에 손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투자한 주식에서도 손실이 발생하자 생활비와 개인 주식 투자를 위해 고객돈을 인출하기도 했다.

국민은행에서는 지난 2월 경기도 포천의 한 지점에서도 지점장이 자신이 관리하던 고객돈 28억5000만원을 인출해 달아난 사건도 있었다.

하나은행은 지난 5월 금감원으로부터 기관경고와 과태료 2750만원 처분을 받았다. 또한 임직원 28명을 징계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상품권 횡령, PF 대출 부당 취급, 이사회 결의의무 위반 등 온갖 비리가 적발됐기 때문이다.

당시 금감원에 따르면 하나은행 직원 김모씨 등은 2008년 6월부터 3년간 기업들이 국민관광상품권을 수천만원씩 사들인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고 상품권을 빼돌려 현금화했다. 횡령 규모가 174억4000만원에 달했지만 하나은행 측은 사고를 인지하지도 못했다.

우리·신한·국민·하나
그들만의 '돈잔치'


하나은행은 2268억원 규모의 PF 대출을 취급하면서 여신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1506억28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대주주 특수관계인들에게 총 7100억원의 신용공여 안건을 이사회에서 처리하면서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는데도 안건을 의결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파생상품 회계 부당처리 ▲금융거래 실명확인 의무 위반 ▲예금잔액증명서 부당발급 ▲고객신용정보 부당 조회 ▲대출금 용도 외 유용 및 사후관리 불철저 ▲담보 및 보증 설정업무 불철저 ▲그룹 내 임직원 겸직업무 불철저 ▲은행장 승인 없이 외부 영리업무 영위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모럴헤저드는 제2금융권에서도 심하게 나타났다. 특히 신협·농협·수협 등 상호금융회사 행태가 '위험수위'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일 금감원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우산신협은 직원 가족 등 특수관계인에게 11억원을 빌려주고 대출 상환이 연체되자 7000만원의 대출을 일으켜 이자를 메웠다. 또 이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대출 이자를 내부 전산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더욱이 우산신협은 5차례나 징계를 받은 직원 3명을 9차례나 승진시키고 3차례 자체 표창과 특별 승급 혜택도 부여했다.

불법대출이 적발되자 징계를 피하기 위해 공사를 미끼로 건설업자에게 4000만원을 빌려주고 다시 받아 갚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역시 광주시에 소재한 퇴촌신협에서 여직원 김모씨가 10년에 걸쳐 고객 예금 66억여원을 횡령한 사건도 발생했다.

신협·농협·수협
'비리백화점'

김씨는 조합원 명의의 청구서를 위조해 임의 해지 후 예금을 출금하거나 조합원이 요청한 입금액보다 적은 금액만 입금시킨 다음 입금되지 않은 나머지 돈을 횡령하는 수법 등을 사용했다.

농협도 간부와 조합장들이 잇따라 각종 비리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지난 2일 경남 마산중부경찰서는 투자사업과 관련해 특정 업체에 혜택을 주고 공금을 가로챈 혐의 등으로 마산시농협 간부 윤모, 강모, 차모씨 등 3명을 농업협동조합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에는 대출청탁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경남 도내 모 지역 농협 조합장 박모씨가 경찰에 형사입건됐고 지난 1월에는 전국 지역 단위농협에서 수백억원의 대출비리가 포착되기도 했다.

수협은 더하다. '비리백화점'이라 불릴 정도다. 경북 포항수협에서는 수협 대의원과 이사 선거 과정에서 20여명의 수협 임원과 조합원들이 돈 봉투를 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전남 목포수협에서도 지난해 9월 목포수협 조합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 지지를 부탁하며 조합원들에게 수십만~수백만원을 건넨 혐의로 5명의 조합원이 불구속 기소됐다.

제주수협에서는 수협 저장냉동고에서 2000여만원 상당의 갈치와 30여만원 상당의 어업용 면세유 400ℓ가 도난당했는데도 제주수협이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나도록 관련 내용을 수협중앙회에 보고하지 않아 제주해양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다.

부산수협은 수십만원을 수수하고 오징어 경매대행 수수료를 100여 회에 걸쳐 총 1억원 가량 초과 지급하다 지난 3월 적발됐다.

보험권에서는 설계사가 고객의 보험료를 가로채는 일이 여러 차례 적발됐다. 올해에만 메트라이프생명, 교보생명, 알리안츠생명, 미래에셋생명, 삼성생명, ING생명, 대한생명의 설계사 12명이 보험료 수백만~수억원을 유용했다.

제2금융권도 금융사고 빈발, 탐욕 위험수위
'비리척결' 칼 빼든 금감원, 실효성은 의문

삼성화재, 현대해상, 한화손보, 동부화재, 메리츠화재, 악사손보 등 손해보험사는 자동차사고 피해자의 보험금 수백만~수억원을 주지 않았다가 적발됐다.

저축은행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동양저축은행 직원은 고객 330명의 예금을 멋대로 해지해 146억원을 횡령했고 참저축은행은 대출해준 업체에서 주식 배당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받았다.

신민저축은행은 대주주가 사실상 지배하는 회사에 불법대출을 했고 W저축은행과 HK저축은행은 주거래 회사의 대출이자를 부당하게 깎아줬다.

금융권에서 올해 8월 말까지 비리로 인해 징계를 받은 임직원은 무려 447명으로 임원 95명, 직원 352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징계를 받은 임직원 468명과 비슷한 수치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 222명과 비교해선 2배가 넘는다.

피해액 규모도 2006년 874억원에서 2010년 2736억원으로 급증했다. 2009년 48건이던 은행권 비리는 2010년 57건으로 19% 증가했고 연간 피해액은 291억원에서 1692억원으로 무려 222% 늘었다. 2006년부터 5년간 총 피해액을 보면 은행권이 257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비은행권 1920억원, 증권사 896억원, 보험사 264억원 순이었다.

이처럼 금융권의 모럴헤저드가 갈수록 심해지자 금융당국이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금감원은 가산금리 문제와 차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다음 달 중 개선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금감원은 보험의 약관대출 가산금리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만들도록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은행의 경영실태평가 제도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기도 했다. 경영실태평가 6개 항목 가운데 수익성 항목의 배점 비중을 15%에서 10%로 줄였고 경영관리적정성 항목에 '사회적 책임 이행실태'와 '성과보상체계 적정성'을 새로 만들었다.

'사후약방문'
실효성 의문

부유층 회원에게 지나친 혜택을 제공하는 초우량고객(VVIP) 서비스도 모럴헤저드의 소지가 있어 이를 억제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금감원은 VVIP신용카드 신규발급을 사실상 제한하고 기존 VVIP카드의 수익성도 재검토할 방침이다.

저축은행에는 아예 법을 고쳐 대응키로 했다. 금융위는 대주주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저축은행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겪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대형 비리들이 잇따라 터지고서 나온 처방전이어서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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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