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국민 예능맨’ 유재석의 30년 풀스토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5.11 09:35:11
  • 호수 13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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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메뚜기’ 자세 낮추고 훨훨 날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정상의 자리로 올라가는 것보다 그 자리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정상을 위협하는 2인자들이 치고 올라오려는 노력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예계 정상을 10년 이상 군림하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국민 MC 유재석이다. 유느님, 방송 기계 등 독보적인 별명을 갖고있는 유재석이 어느 덧 데뷔 30년을 맞았다. 

장인이라고 하면 한 분야 최소 30년 이상 몸담은 사람을 말한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보다 경험을 통해 갖는 노하우는 이기기 힘들기 마련이다. 예능계에서 한 시대를 주름잡고 있는 유재석의 활약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유재석 시대에 살고 있다. 

방송국 대신
호프집 알바

유재석이 정상의 자리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더욱 더 높게 평가받는 부분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함께 미담만 나온다는 점이다. 카메라 앞에서나 뒤에서나 항상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베어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친절하고 모든 것에 감사함을 표하는 유재석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 배경에는 긴 무명시절이 존재했는데 처음부터 탄탄대로의 길을 걷진 못했다.


1991년, 20세 때 KBS <대학가요제>로 데뷔한 유재석은 10년가량 무명 개그맨의 삶을 보냈다. 직업만 ‘개그맨’이었을 뿐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황금 기수로 불리는 KBS 개그맨 7기는 데뷔 초부터 화려했다. 유재석을 제외하고 말이다. 

과거 KBS <무한도전> 팬미팅에서 “무명시절이 길어 스스로 너무 답답했다”며 “제가 예전부터 참 많이 기도했다. 자기 전에, 방송이 너무 안 되고, 하는 일마다 자꾸 어긋나고 그랬을 때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단 한 번만 개그맨으로서 기회를 주시면 소원이 나중에 이뤄졌을때 지금 마음과 달라지고, 초심을 잃고, 만약에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얻은 것이라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 누구보다 큰 아픔을 주셔도 단 한마디도 왜 이렇게 가혹하게 하시나요’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기도했다.

당시 유재석도 절박한 시절이 존재했던 것이다.

유재석은 어렸을 때부터 재미있는 아이였다. 반에서는 오락부장을 도맡아 했고 고등학생 때 친구와 함께 방송에 출연해 홍콩 스타 장국영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월등히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개그맨’의 꿈을 키웠다.

이후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학과에 입학했고 바로 ‘KBS 대학개그제’에 출연했다.  

당시 유재석은 대상 수상자는 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장려상을 받아 크게 실망했다. 당시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또 다른 손으로 귀를 파기도 했다. 이 같은 행동은 장려상 수상에 대한 불만이 은연 중에 나타난 것이었고 그대로 TV에 방영됐다.


그로 인해 선배들이 유재석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으며 ‘건방진 이미지’로 남아 챙겨주지도 않았다. 

대학개그제 장려상 수상에 불만
대사 못 외워 리포터 자리 박탈

유재석은 본인이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비중이 적은 역할을 맡아 출연했지만 대사가 거의 없었고 어렵게 얻은 리포터 자리도 대사를 외우지 못해 그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점점 더 소심해졌으며 개그맨의 길을 포기하겠다는 생각마저 하게 됐다.

일이 없었던 유재석은 6개월간 방송국에 출근하지 않고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벌었다. 이때 박수홍, 김용만, 지석진, 김수용 등 4명이 찾아와 유재석에게 공개녹화 마지막 코너를 같이 하자며 제안했다.

유재석을 포함해 남희석, 김용만, 박수홍, 최승경 등 5명이 함께 ‘스텝 바이 스텝’ 노래에 맞춰 무대서 춤을 선보였다. 과거 <무한도전>을 통해 다시 화제가 됐던 해당 영상을 보면 유재석은 경직된 표정으로 열심히 춤을 추는데 지금의 유재석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매우 어설펐다. 

이후 유재석이 할 수 있었던 건 동물이나 곤충의 탈을 쓰고 나와 지나가는 역할이었다. 훗날 유재석은 탈을 쓰는 게 정말 싫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메뚜기 탈을 쓰고 방송에 나갔는데 그에게 ‘메뚜기’는 첫 캐릭터였다.

이 때도 방송 관계자들은 그를 좋지 않게 평가했다. 시간이 흐른 뒤 유재석은 한 예능을 통해 “PD로부터 ‘C급’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훗날 유재석은 “속으로 ‘D급’이라고 생각했는데 높게 평가해줘서 속으로 웃었다”고 자신을 희화화시키기도 했다. 

이후 메뚜기 탈을 쓴 리포터를 비롯해 <서세원쇼>의 대표 코너인 토크박스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쌓았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행운이 굴러 들어왔다. 당시 인기 최고스타였던 고 최진실이 PD들에게 “메뚜기 탈을 쓴 사람이 재미있다. 한 번 써보라”고 말했던 것이다. 

유재석의 <동거동락>에서 MC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 시작은 패널을 겸했다. 그는 해당 프로그램 최초의 탈락자이기도 했다.

프로그램 초창기를 보면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깐족거리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항의까지 받았을 만큼 얄미운 캐릭터였다. 당시 서바이벌에서 탈락한 후 민망한 표정으로 남은 멤버들의 배웅을 받으며 하차했던 그가, 바로 다음 회차 오프닝에서 완전한 MC 역할로 돌아왔다며 능청 떨던 장면은 유재석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놀면뭐하니>
새로운 도전 

본업인 개그나 리포터 활동에서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그였지만, 특유의 맛깔스러운 입담과 진행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동거동락>을 만난 것은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이후 유재석은 MC로서 입지를 점점 넓혀갔다.

강호동과 이휘재, 김한석과 함께한 <공포의 쿵쿵따>, 김용만과 함께 <느낌표> 등 맡은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예능계에서 승승장구했다. 이후에도 <위험한 초대> <천하제일 외인구단> <진실게임> 등에서 깐족거리는 MC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이때만 해도 유재석은 촐싹거리는 MC였다.

이후 김제동과 함께 <해피투게더>, 강호동과 함께 <X맨을 찾아라>에서는 게스트를 초대하면서부터 자상하고 편안한 이미지로 변했다. 이때부터 유재석에게 국민MC란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주로 인지도가 알려지지 않은 연예인을 초대해 캐릭터를 심어주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유재석 마음속에는 꼭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처참한 시청률로 오래가지 못했던 <천하제일 외인구단>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모자란 사람들이 모여 대한민국 지존에게 도전한다’였다. 유재석은 본인처럼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땀 흘리며 도전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뛰어다니는 유재석의 표정을 보면, 그에게 세트장은 놀이터였다.


결국 2005년 유재석은 운명의 프로그램을 만나게 된다. 예능계의 한 획은 그은 <무한도전(당시 무모한도전>이다. <천하제일 외인구단>의 콘셉트와 비슷한 이 프로그램은 유재석은 정형돈, 노홍철, 표영호, 이정 등이 출연해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는 등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을 그렸다. 

이후에도 목욕탕 물 나르기, 전철과 100m 달리기 등 해괴망측한 대결을 벌였다. 처참한 시청률로 인해 종영 위기까지 몰렸으나 PD는 물론, 간판까지 바꾸면서 <무한도전>은 금세 자리를 잡더니 MBC와 유재석을 대표하는 예능프로그램으로 우뚝 섰다.

2005년 KBS에서 <해피투게더 프렌즈> 이후 2006, 2007, 2009, 2010년에 <무한도전>과 <공감토크쇼 놀러와>로 MBC를 평정했고, 2008년~2009년에는 <일요일이 좋다 패밀리가 떴다>, 2011년~2012년에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으로 SBS 연예대상까지 거머쥐면서 방송 3사 연예대상을 모두 수상했다.

게다가 2013년에는 예능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도 수상했다. 유재석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2년 연속’으로 대상 트로피를 가져간 ‘전인미답의 개그맨’이 됐다.

날개 달아준
<무한도전>

유재석의 꾸준함은 프로그램의 생명력과 함께한다. 드라마와 달리 예능은 시청률로 인해 오래 갈 수도, 짧게 끝날 수도 있는데 유재석이 맡았다 하면 짧게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는 MBC <놀러와> <무한도전>, SBS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KBS <해피투게더> 등과 함께했다. 한 예능 PD는 “유재석을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다. 유재석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궤변처럼 들리는 이 말은 유재석 출연으로도 시청률이 보장된다는 의미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유재석의 위상이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대표작이던 <무한도전>의 종영과 <런닝맨>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유재석 위기론이 나왔다. 마침 쿡방, 관찰예능이 전성기를 맞이할 쯤이었다.

당시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자신의 페르소나인 유재석을 가만두지 않았다. 유재석이 김태호 PD에게 전화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인 “놀면 뭐하니?”라는 말을 착안해 프로그램을 론칭한다.

<무한도전> 초창기처럼 <놀면 뭐하니>는 ‘릴레이 카메라’라는 생소한 콘셉트가 시청자에게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유재석이 매번 새로운 것에 도전하자 시청자들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다른 멤버 없이 유재석 혼자 <무한도전>이나 다름 없었다.

트로트를 부르는 ‘유산슬’, 라면을 끓이는 ‘라섹’, 드럼치는 ‘유고스타’ 외에도 치킨을 만드는 ‘닭터유’, 비와 이효리와 함께 댄스 노래 부르는 ‘유두래곤’ 등이 있다. 부캐(두 번째 캐릭터) 활용법을 누구보다 잘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유산슬이 부른 ‘사랑의재개발’ ‘합정역 5번출구’와 유두래곤이 린다G(이효리 부캐)와 비룡(비 부캐)의 ‘다시 여기 바닷가’는 음원차트를 점령했다. <놀면 뭐하니>서 닭터유가 치킨을 만들 때 치킨집에 전화 주문을 하면 주문이 밀려 늦게 오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처럼 TV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이면서도 유재석의 파급력에는 영향이 없었다.

유일한 12년 연속 연예대상 
초심 지키는 따뜻한 개그맨

연예계에서 개그맨은 배우, 가수 등과 비교해 우스꽝스러운 이미지 때문인지 위상이 높진 않다. 하지만 유재석은 달랐다. 이따금씩 배우가 유재석이 진행하는 예능에 나와 팬심을 드러내거나 ‘유라인(유재석의 예능 인맥)’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유재석은 개그맨들 중에도 드물게 ‘연예인의 연예인’으로 통한다. 

유재석은 무명시절부터 ‘초심을 지키겠다’고 기도했다. 힘들 때 자신을 선택해준 제작진과 주위 동료들을 잊지 않은 그는 미담 제조기로 통한다. MBC <라디오스타>나 JTBC <아는형님>에서 출연한 게스트가 유재석에 대한 미담을 풀어놓으면 금세 MC들은 지루해했다.

그만큼 유재석의 미담은 흔한 에피소드기 때문이다. 

유재석과는 정반대 캐릭터인 장동민도 과거 예능에서 유재석 미담을 밝힌 바 있다. 유재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장동민은 머뭇거리다가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힘들 때 장동민은 일면식도 없는 유재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동민은 첫 마디로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국민MC니까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 속이 답답해서 말할 사람이 없어서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재석은 “동민아, 잘 찾아왔다”며 흔쾌히 전화를 받았고 한 번도 장동민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다 들어준 뒤 “네 상황이 아니라 이해한다고는 못하겠다. 내가 어떻게 너를 감히 이해하겠니”라고 담담히 말했다. 

장동민은 “그날 이후 방송에 임하는 자세를 완전 다르게 하고 열심히 해서 오늘까지 잘될 수 있었다. 정말 내 인생을 바꿔준 사람”이라며 “이 이야기는 방송에서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사적이라도 얘기 안 한다. 괜히 라인 타려는 것도 같고... 그렇게 생각하실 분도 아니지만 그렇게 느낄까봐 싫었다. 방송 인터뷰할 때 일부러 안 좋다고 얘기했다. 나랑 안 맞는다고”라고 하며 속내를 드러냈다.

이어 “사람들이 왜 ‘유느님’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만약에 나중에 유재석이라는 사람이 정말 방송을 그만두고 싶다면 그때 밝히려고 했던 이야기”라며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후배 챙기는
미담 제조기

유재석은 일면식도 없는 후배가 일방적으로 찾아와도 따뜻하게 받아주고, 힘든 것을 토로해도 이야기가 끝날 때 까지 들어주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유재석이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초심, 겸손, 자기관리 등의 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따뜻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성실의 아이콘’ 박수홍도 데뷔 30주년 

박수홍도 SNS를 통해 데뷔 30주년 소감을 남겼다. 박수홍은 지난 6일, 다홍이의 SNS를 통해 30주년 소감을 전했다. 

박수홍은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이 데뷔 30주년이었네요. 많은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라며 “존경하는 국진이형님, 용만이형, 수용이형, 그리고 연락해서 걱정해주고 힘주는 재석이, 승경이, 우리 모든 7기 동기들 30주년 축하하고 그동안 고생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응원해주시는 다홍이러버 수다홍이들도 모두 고맙습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박수홍은 자신이 운영하는 반려묘 다홍이 SNS에 “전 소속사와의 관계에서 금전적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라며 해당 소속사가 박수홍의 친형과 형수 명의로 운영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렇게 30년의 세월을 보낸 어느 날, 제 노력으로 일궈온 많은 것들이 제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됐다”며 “이에 큰 충격을 받고 바로 잡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지만, 현재까지 오랫동안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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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