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잠룡들의 예능 나들이 손익계산서

웃기는 정치인 무조건 좋을까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대한민국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20대 대통령을 가리기 위한 각 당의 경선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모든 후보가 정책을 바탕으로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공격하거나 상대 후보의 공격에 방어한다. 때론 인상을 붉히는 일도 발생한다.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건 이성보다 정서다 보니 공방을 하는 중에도 이미지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플랫폼은 예능 출연이다. 차기 유력 대권후보들이 예능 나들이에 나서고 있다. 

총과 칼을 들고 국민을 통치하던 군부 독재 시절만 하더라도, 국가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정치인이 TV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과 웃음을 나누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방송사에 보도 지침을 내리는 주인에겐 아마 격에 맞지 않는 행위라고 판단했을 공산이 크다. 

선거철 
통과의례

전두환 전 대통령의 6·29 선언 뒤 직선제가 실현되고, 민주 정권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정치인은 없었다. 최초의 연결고리는 1996년 MBC <이경규가 간다>였다. 

새벽 3시가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당시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를 만나기로 한 <이경규가 간다>의 이경규는 출근하는 DJ 맞아 갑작스럽게 인터뷰를 진행한다.

흔쾌히 ‘합시다’라고 수락한 뒤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72세의 DJ는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서태지를 언급하고, 고 이희호 여사와 공원을 산책하는 등 특유의 소탈한 모습과 탈권위를 보이면서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시 시청률은 40%가 넘을 정도로 화제성이 강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7년 고 노무현 대통령은 MBC <느낌표>에 권양숙 여사와 함께 출연해 대중과 직접 소통했다. 권 여사와 첫 만남부터 데이트를 이어가게 된 이야기,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사연과 이를 통해 연설하러 다니면서 큰 효과를 받았다는 추억 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아무리 예능이라 하더라도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보니, MC들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청와대 주요 인사들이 방청객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도 생경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신비주의에 둘러싸인 정치인의 사적인 영역이 드러나면서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화제가 됐을 뿐 아니라 정권의 지지율에도 적잖은 효과가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인이 예능에 출연하는 건 국가적 이벤트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국정을 처리하느라 바쁜 정치인들이 예능에서 소탈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개개인에게 효과적인지 의문이었을 뿐 아니라, 방송사 역시 이 같은 기획에 미진했다.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아니고서는 정치인이 굳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러한 인식을 바꾼 대표적인 인물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의사부터 공대 교수까지 거친 특이한 이력이 있던 안 대표가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 예능과 정치의 연결고리가 끈끈해졌다.

당시 연예인 신변잡기식 방송에서 벗어나 사회 저명인사의 출연을 통해 프로그램의 변화를 꾀하던 <무릎팍도사>의 눈에 안 대표가 눈에 띈 것.

제작진은 2008년부터 안 대표에게 섭외를 제안했다. 당시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안 대표는 강연과 인터뷰가 물밀 듯이 쏟아졌고, 카이스트 석좌교수로서 강의를 우선순위로 둬 “제안은 감사하지만, 적절치 않은 상황”이라며 출연을 고사했다.


<이경규가 간다>부터 <집사부일체>까지
정치와 예능 사이에 얽힌 연결고리는?

집요한 <무릎팍도사> 제작진은 1년이 지난 후에도 꾸준히 출연을 요청했다. 당시 회사 임원들조차 출연을 막았다는 후문이다.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안 대표(당시 박사)가 나가면 희화화될 수 있다는 게 논리였다.

반대로 카이스트 학생들은 출연을 반겼고, 안 대표는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했다. 그렇게 역사적인 방송이 만들어진 것. 

방송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특이한 이력의 안 대표가 살아온 길과 진정성 있는 이야기에 찬사가 이어졌다.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다. 당시 정치권에 혐오를 느끼던 국민은 새로운 인물론을 부각하며 안 대표를 정치권으로 호출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안 대표의 지지율은 50%가 넘었다. 정치권에 발을 담그지도 않은 신인에게 이러한 지지를 보내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당시 변호사이자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였던 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단일화한 이후 그를 향한 국민의 지지는 더욱 강해졌다. 가히 예능이 배출한 정치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하락세를 거듭했고, 최근 서울시장 선거 경선 과정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 패배하는 등 지금에야 그에 대한 지지가 예년만큼은 아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의 존재감은 정치권에 중요하게 작동한다.

안 대표의 삶이 예능 프로그램 출연 이후 완전히 달라진 것을 미뤄봤을 때 예능이 정치인에게 어떤 효과를 주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비슷한 시기 팟캐스트의 시초인 <나는 꼼수다>의 역할도 정치와 예능이 끈끈해지는 데 일조한 프로그램이다. 당시 진보진영의 정치인들은 <나는 꼼수다>에 나와 정책적 기조를 설명하는 것은 물론 권력에 대한 가치관, 개인사를 털어놓고, 때로는 첨예한 논란에 적극 해명하기도 했다. 

“계파가 누가 있냐” “리더십 부재에 대한 평가에 어떻게 생각하느냐” “꼭 당신이 이 직책을 맡아야 하느냐” 등 후보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거침없이 던졌다. 당황하면서도 유려하게 넘어가는 장면에서 팬덤이 생기기도 했다. 진보진영 인사들이 대중에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예능이
낳았다

진보진영에서 강세를 보인 팟캐스트 대안 언론의 서포트를 받은 사람들은 국회에 진입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정치가 시작됐다.


아울러 JTBC <썰전>도 정치가 대중의 일상에 스며들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MC 김구라를 중심으로 진보와 보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토론 과정은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박진감이 있었다. 서로 의견이 나뉘어 싸우다가도 국가의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화합하는 장면은 정치의 묘미를 전달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정치와 예능이 결합된 방송 프로그램으로 대표적인 예다. 

2012년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다. 당시 보수 진영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중학교 시절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사진을 공개했고, 문 대통령은 특전사 시절 사진을 공유하며, 격파 시범을 선보이기도 했다. 

각각 친근하고 소탈하거나,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했다. 예능이 정치인의 이미지 제고에 활용됐다. 

이후에는 국내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치인이나 혹은 유력 후보의 예능 진출은 통과의례가 됐다. 지방선거나 총선 등 국내 굵직한 선거에서 예능에서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방송사나 정치인으로서 이득이 되는 것이 많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국민의힘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4월 재보궐선거를 3개월 앞두고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했다. 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SBS <동상이몽2>에 출연해 남편 이재명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관찰 예능으로 토크쇼와는 달리 집안에서의 사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정치인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에서 대중은 해당 인물의 매력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중의 반응이 크자 미디어 비평 전문가들은 대중을 호도한다며 비판했다.

대중의 눈
못 속인다

예능에서 짜여진 모습을 실제로 믿는 대중이 많다면서 위험성이 높다는 게 요지였다.

최근에는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예전만큼 높은 파급력을 갖지는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지율이 급반등 된다거나, 정치적 논란이 완벽하게 해소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이미 대중이 정치인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분리하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에, 안철수 대표나 DJ와 같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기존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데만 효과를 본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밥 영상과 같은 효과를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 국민 대다수가 정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치인의 공과 사를 구분해내는 능력이 생겼다”며 “현재 예능 출연은 각 후보의 인기를 검증하는 차원이다. 엄청난 효과를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한창 경선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이재명·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SBS <집사부일체>에 출연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후보는 밥을 직접 해주는 형님 리더십을 부각시켰고, 각종 논란에서도 호탕하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비교적 순한 이미지인 <집사부일체> 패널의 공격에 웃음으로 대응했다. 

언변에 능하지 않은 윤 후보는 현안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과거 검사가 되는 과정과 검찰 시절의 모습, 평소 생활 등 인간 윤석열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게스트에 따라 장소와 내용 모든 것이 바뀌는 <집사부일체>의 윤석열 편은 관찰 예능이 더러 섞인 SBS <돌싱포맨>과 비슷한 형태의 포맷이었다. 

반대로 이재명 후보는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집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집사부일체> 패널과 만난 이 후보는 각종 논란에 해명하는 시간으로 할애했다. 현 후보 중 가장 의혹 거리가 많은 그는 <집사부일체>를 해명의 기회로 만들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약점 보완에 매력 어필도 쉬워”
“결정 못한 지지자 얻을 기회도”

직설적인 화법을 갖고 있고, 언변에 화려한 그가 어떤 형태로 예능을 활용하려 했는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재명 후보의 <집사부일체>는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나 tvN <유퀴즈 온더 블록>과 같은 토크쇼 형태였다. 

이낙연 후보는 유일하게 아내 김숙희씨와 함께 나왔다. <집사부일체> 패널과 식사를 하면서 평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유머감각 면에서 단점이 있는 이 후보에게 편안함을 주면서 재미의 영역을 아내를 통해 만들어낸 것.

정덕현 평론가는 “<집사부일체>의 포맷을 보면서 각 후보가 어떤 면을 부각시키려 하고 숨기려 하는지 각각의 장단점을 읽을 기회가 됐다”며 “윤 후보는 리더십을 드러내고,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려 했고, 이 후보는 의혹을 정면돌파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낙연 후보는 인간적인 면모의 보완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일종의 팬 서비스 형태로 변화했다. 선거철 표를 달라고 국민을 만나고 다니는 것의 또 다른 형태”라며 “예능 출연이 화제성 면에서 약간의 효과는 있겠지만, 대세를 바꿀 정도로 큰 역할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와 예능 간에는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물린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약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방송을 통해 보완할 수 있으며, 전문 방송인의 립 서비스를 받으면 대중에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연예인이 비슷한 성질을 가진 직업군이라는 점으로 봤을 때, 정치인에게 있어 예능 출연은 실보다 득이 크다.

이로 인해 경쟁후보가 나오는 방송에 자신이 나오지 못하면 심하게 반발하는 경우도 생긴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나쁠 것은 없다. ‘뜨거운 감자’인 유력 정치인이 방송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성을 가질 뿐 아니라 시청률도 크게 오른다. 방송 후에는 수많은 시사프로그램에 방송 장면을 바탕으로 리뷰하는 방송도 급격히 늘어나, 프로그램 홍보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새로운 시청자를 흡수하는 새로운 기회다. 

팬 서비스
립 서비스

한 방송 관계자는 “비록 예년만큼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정치와 예능은 서로 윈윈 전략을 짜나가고 있다. 굵직한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이어질 전망”이라며 “다만 정치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대중을 호도하는 식의 역기능은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집사부’ 못 간 홍준표 왜?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이 물밀 듯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홍준표 국민의 힘 대선 후보도 예능에 출연해 일상을 드러냈다. 

앞서 정치권에서는 지상파 방송인 SBS <집사부일체>에 보수 진영의 윤석열 후보, 진보 진영의 이재명‧이낙연 후보만 출연하는 것에 대해 홍준표 후보가 서운해할 것으로 점쳤다.

그런 상황에 홍 후보는 TV조선 <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이하 <와카남>)으로 반전을 꾀했다.

여성들로부터 좋지 못한 지지율을 얻는 그는 <와카남>에서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풀고 설거지를 하는 등 가정적인 이미지를 드러냈다. 그는 “여성분들이 오해를 좀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지속적으로 약점으로 거론된 여성 표심을 잡기 위한 방송 출연이었다고 평가했다. <와카남> 시청률은 1부 5.6%, 2부 4.6%로 기존 방송보다 소폭 상승했다.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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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