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성매매 메카’ 미아리텍사스촌 가봤더니…

정부 엄포에도 홍등은 꺼지지 않았다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스산한 기운이 맴도는 미아리텍사스촌. 30년 넘게 존재한 이곳이 영원히 사라질 전망이다. 2008년 미아리텍사스촌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당국은 모든 성매매업소를 없애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철퇴 직전인 미아리텍사스촌을 찾았다.

태풍 ‘볼라벤’이 불어 닥치기 직전인 지난달 27일 미아리텍사스촌의 오후는 한산했다. 반쯤 내려온 두꺼운 발과 상단에 위치한 ‘미성년자 출입금지’ 팻말이 입구를 막아섰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보안시설 이었다. 때마침 텍사스촌과 연결돼있는 주차장을 통해 나오는 한 남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는 남성에게 접근하려 다가갔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쫓기듯 눈치를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주차장과 연결된 통로에서 호객행위를 거드는 듯한 나이 든 업주는 “성매매특별법인가 뭐시긴가가 만들어진 이후 줄곧 손님이 줄고 있다”고 한탄했다. 업주는 성매매업소 철퇴에 관련된 질문에는 말을 아꼈고 기자가 불편한 듯 자리를 뜨려 애썼다.  

촘촘하게 늘어선 발을 가르고 안으로 들어가자 업주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자는 여성이고 여성이 이곳에 볼일(?)이 있어 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 다들 의심의 눈초리로 기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급기야 한 여주인이 다가와 “여기 무슨 일로 왔나”라며 쏘아붙였다.

기자는 신분을 노출한 뒤 “철퇴위기를 맞은 텍사스촌의 상황과 길 가에 나앉을 업주들과 성노동자들의 심경을 듣고자 왔다”는 답변과 함께 그녀에게 짧은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여주인은 “난 아무것도 모른다. 해장국집 끼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집창촌 관리하는 사무실이 따로 있으니 그 곳으로 가서 얘기해보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잠잠한 텍사스촌
철퇴 전야제(?)

8시가 조금 넘은 저녁시간이라서 그런지 홍등가는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다. 몇몇 집만 붉은 조명이 켜져 있었고 언뜻 보이는 성노동 여성들도 그 시간이 되서야 하나둘씩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세 집을 걸쳐 물어물어 찾아간 사무실에는 세 명의 남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외간 여성이 찾아오자 그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뜸 “무슨 일로 오셨냐”며 물어왔다. 보도에 관련해 사실대로 말한 후 간단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들 역시 거절했다. 아니 적대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들 중 언론에 가장 경계심을 보였던 남성은 “혹시 카메라 켜져 있나? 당장 꺼라” “뭐 적지 마라” 등의 명령조로 일축하며 기자를 경계했다.

그는 “당신이 오기에 앞서 OO신문사에서도 왔었는데 촬영 안 한다고 하더니 다 찍고 있었더라. 나중에 나한테 들키고 나서 도망가는 것을 우리 동생들 불러다가 가까스로 잡은 후 영상을 지웠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전에 겁부터 주려했다.

촬영과 녹취가 없다는 전제하에 남성과의 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철퇴위기를 맞은 미아리텍사스촌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인 것 같았다. 드문드문 보였던 업소들은 많은 이들이 이곳을 떠나고 남은 자들만 운영하고 있는 곳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생계유지를 위해 근근이 생활하는 생계유지형 노동자들이었고 가족부양을 위해 이 세계에 몸을 담게 된 사람들도 꽤 많다고 전해졌다.

기자가 그에게 철퇴이야기를 꺼내자 매우 흥분하며 욕설이 반쯤 섞여 대답했다. 이어 게시판에 걸어놓은 타 언론사의 기사를 가리키며 불만을 표했다.

지속적인 철퇴압박
업주들은 외면

“무슨 제목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하냐고. 우리도 여기 철거될 것 뻔히 아는데 그 얘기 제작년부터 지역당국에서 계속 나온 말이다. 아직도 아무 것도 철거된 것이 없지 않으냐. 난 그 사람들 믿지 않는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이슈가 되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는다.”

그는 철퇴압박에 대해 딱 잘라 말하고선 기자를 보내려 했다. 이렇게 발을 돌릴 수는 없었다. 당국에서 말한 것과는 다른 업주들이 직접 피부로 느끼는 심경과 상황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기자는 설득에 설득을 이어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텍사스촌을 방문하는 손님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현재는 85%나 감소돼 하루에 많으면 15명 안팎의 고객만 텍사스촌을 찾는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영업하던 많은 업주들과 아가씨들이 불법변태업소로 전향했다. 지역당국이 집창촌만 없애려고 드니 더 은밀하고 변태적인 업소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여기 발 담근 사람들은 다른 길을 찾기 어렵다. 돈벌이가 확실히 다르니까…. 집창촌보다 다양한 경로와 수단으로 퍼지고 있는 불법변태업소를 더 철저히 단속해야하는 게 맞지 않으냐”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이곳에 남아서 영업하는 업주와 점포들은 4분의1이상으로 줄었다. 실제로 현장을 둘러봤을 때 어두컴컴한 점포들 사이 간간히 붉은 조명이 켜져 있었다. 물론 아주 늦은 시간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점포를 방문하는 손님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고 업주들만 밖에 나와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2015년까지 주상복합주거단지 계획 수립
갈 곳 없는 포주·성노동자들 불만 쇄도

관리사무소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여종사자로 보이는 한 여성이 “콘돔을 사러왔다”며 사무실을 들렀다. 허연 얼굴에 앳돼 보이는 인상이었다. 관계자는 그녀에게 “점포 업주에게 직접 전달 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대화를 이어나갔다.

“성매매의 메카였던 장안동의 안마업소, 청량리·용산의 집창촌이 정부에 의해 강력철퇴를 당한 후 당시 그곳에 있던 종사자들과 업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이후 그들은 교묘히 단속을 피해 변종성매매업소를 차려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집창촌을 철퇴하면 성매매업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겠지만 더 음란하고 퇴폐적인 무허가 변태업소들만 증가하게 만든 셈이다”

집창촌이 하나둘씩 철퇴를 맞자 개발될 것이라고 했던 집창촌 자리는 도태된 지역으로 남겨졌고 설 곳이 없어진 업주와 여성종사자들은 원정성매매에 손을 뻗게 됐다. 업주들은 일본·호주·미국 등에 여성종사자들을 알선해 성매매가 수월하도록 만들었고 중간수당을 챙겼다. 해외 원정성매매에 가담한 국내 여성들이 10만 명이상으로 확산되자 해당 국가로부터 강제출국을 당하는 사례도 이어졌다. IT강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씁쓸한 이면이었다.

한때는 성노동자들을 위한 자활센터도 정부의 지원 아래 활발히 운영됐다. 갈 곳 없는 그들을 위해 새로운 길을 열어주려 직업전문교육과 직장 알선에 앞장섰던 정부였지만 현재는 어느 곳에서도 이 같은 운영을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성노동자들은 재기를 두려워하게 됐고 기존에 몸담던 업종과 비슷한 곳만 찾는다고 전해졌다.

대화를 듣고 있던 또 다른 업주는 “요즘 강간살인과 같은 강력성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도 당연한 것이다. 남성들이 욕구를 따로 풀 데가 없으니까 성범죄도 따라서 증가하는 것이 아닌가. 일본과 유럽 같은 선진국도 일부 집창촌은 허가하고 있다. 왜 우리나라만 유난을 떠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성범죄 증가의 주요 원인이 집창촌 철퇴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아예 없다고 보기엔 힘들다”며 거들었다.

돈 있고 빽 있는
부자들만의 축제

미아리에 텍사스촌을 없애고 뉴타운이 들어선다는 이야기는 약 3∼4년 전부터 흘러나왔다. 성매매업소가 대거 강제철퇴를 당하면 지역 땅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주민들은 쾌재를 외쳤다. 그러나 뉴타운 계획은 무기한으로 연기됐고 집창촌 업주들과 종사자들은 살 떨리는 하루하루를 보애야 했다. 불만이 쌓여가는 것은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미아리가 뉴타운 지역으로 지목됐을 당시와 지금의 분위기는 현저히 달랐다. 기약 없는 뉴타운 설계에 진저리가 난 것이다. 또한 뉴타운이 지역 토박이들을 위한 게 아닌 일부 부유층들을 위해 계획된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업주는 “현재 텍사스촌 건너편에 있는 하OO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원래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라고 전하며 “아직 입주도 채 되지 않은 집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서민들인데 주상복합주거단지가 들어선다고 해서 거기에 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집값도 만만치 않은 걸로 들었다. 그리고 땅값이 과연 오를까도 의문이다. 결국 부자들을 위한 지역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집창촌 철퇴로 불법변태업소 되레 늘어나
뉴타운에 부자는 ‘웃고’…서민은 ‘울고’

해당구청 관계자는 텍사스촌 철퇴와 재개발에 관련해 “지금은 구체적인 도시계획을 수립중이고 2014년까지는 미아리텍사스촌 최종철거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과거 성매매밀집지역이라는 오명을 씻고 선진국형 주상복합주거단지와 한옥마을을 계획 중에 있다. 하루아침에 길가에 나앉게 될 업주들에게는 일부 보상도 할 계획이다”라고 언급했다.

일부 보상체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집창촌만 엄격한 성매매특별법에 직격탄을 맞아 억울하다는 텍사스촌 업주들. 그들은 “우리가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철퇴를 하려면 우리에게도 생계를 유지할 방도를 알려줘야 하는 것이 맞지 않으냐”면서 “현재 실행하고 있는 성매매특별법을 개정해 집창촌 뿐만 아니라 불법변태업소들도 철저히 단속하든가 우리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의견을 조율하는 게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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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