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뛰는 '묻지마 칼부림' 실태

혼자 죽으려니 억울해서 '푹'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올해 8월은 암울했다. 정확한 범행동기도 없는 '묻지마 범죄'가 하루를 멀다하고 전국 방방곡곡에 기승을 부렸기 때문. 묻지마 범죄의 용의자는 대부분 길 가는 혹은 주택가에 난입해 불특정 다수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거나 가차 없이 폭행을 가한다. 치안이 불안정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은 다음 피해자가 자신이 될까 살 떨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22일 여의도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15분 동안 칼부림이 난동한 사건이 일어났다. 용의자는 전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후 월 20만원의 고시원에서 살면서 생활고에 시달렸던 김모씨. 김씨는 전 직장동료들이 자신을 왕따 시킨다는 생각에 이를 견디다 못해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살하려던 중 자신만 죽는 것이 억울해 그들을 살해할 계획으로 과도 5개를 구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퇴근시간에 맞춰 김씨는 여의도 한복판에서 전 직장동료 두 명을 칼로 찌른 후 시민들이 그를 저지하려고 다가가자 지나가던 행인 2명에게도 칼부림을 가했다. 이에 총 4명이 흉기에 찔려 부상을 입고 그 중 한 여성은 중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가난과 왕따로

묻지마 범죄는 8월18일 의정부역 칼부림 난동사건으로 시작을 알렸다. 유모(39)씨는 이날 오후 6시30분쯤 "왜 내 팔에 침을 뱉냐"고 말한 고등학생과 시비가 붙어 우발적으로 공업용 커터칼을 휘둘렀고 1호선 전동차 내에 있던 유씨와는 연고가 전혀 없는 승객 8명을 향해 무분별하게 흉기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렸다.

이에 유씨와 시비 붙은 고등학생을 포함한 승객 8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유씨는 의정부역 칼부림 이후 현장에서 120m 쯤 달아나던 중 뒤쫓아 간 공익근무요원, 시민 등과 대치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살인미수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피의자 유씨는 "전동차 안 바닥에 침을 뱉는데 고등학생이 시비를 걸어왔고 도망가려는데 계속 ?아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범행을 저질렀다"고 해명했지만 칼을 왜 소지하고 있었는지는 의문이 가는 부분이다.

의정부역 사건 다음 날인 19일에는 인천 부평에서 두 남성이 지나가던 여성 행인 3명을 무차별로 폭행한 일이 발생했다. 용의자 A(25)씨와 B(25)씨는 부평시장 인근 골목을 지나다 마주 오는 여성 행인 3명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는 이유로 폭행을 가했다. 그들은 여성 3명을 주먹과 발로 수십 차례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성 중 1명은 코뼈가 부러지고 앞니가 빠지는 중상을 입었다.

폭행을 당한 여성 윤모씨는 "길을 걷다가 술취한 남성 2명을 피해 지나갔으며 부딪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씨는 또 "이들이 갑자기 뒤쫓아 와 '야 거기서 봐'라고 말하며 함께 걷던 친구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런데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민중의 지팡이라 불리는 경찰이 시민의 SOS를 묵살하고 홀연히 떠나버렸던 것. 두 남성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하던 중 여성 3명 중 1명이 가까스로 현장을 빠져나와 인근에 있던 순찰차에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관은 "먼저 접수된 절도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출동 중이다. 2분 뒤에 올 순찰차를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채 현장을 지나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이 소식을 접한 수많은 네티즌들은 경찰의 늦장대책과 폭행사건 현장을 방관했다는 점에 분개했고 "시민의 도움을 묵살한 경찰을 해고하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일주일새 도심 한복판서 7번 칼부림 난동 
극심한 생활고·외로움 견디다 못해 범행

21일 오전은 더 끔찍했다.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일대에서 술에 취한 강모(39)씨가 술집주인 유씨를 포함한 4명에게 칼을 휘둘러 살인 및 중경상을 입혔다. 강씨는 파장동의 한 술집에 들어가 업주 유씨를 흉기로 위협한 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유씨의 목부위를 찔러 중상을 입혔다. 이후 술집 문을 두드리고 들어서는 손님 임씨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복부 부위에 상해를 입힌 뒤 도주했다.


강씨의 범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범행을 저지르고 정자동으로 달아난 강씨는 술집에서 500m가량 떨어진 단독주택에 들어가 일가족에 흉기를 휘둘러 고모(65)씨가 살해됐고, 부인 이모씨와 아들은 경상을 입었다. 강씨는 몸을 숨기려 단독주택을 찾았고 마침 문이 열려있던 고씨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후 거실에 있던 고씨가 소리치자 복부와 가슴부위를 10여 차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또 다른 황당한 살인동기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과 11범인 강씨는 S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바가지를 씌운 후 화가 났고 마침 과거에 자신을 홀대한다는 느낌을 준 H주점이 눈에 보이자 들어가 범행을 벌인 것이다. 강씨의 어처구니없는 동기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같은 날 울산에서도 묻지마 범행은 계속됐다. 21일 밤 이모(27)씨는 자신이 사는 동네의 단골 슈퍼마켓에 평소처럼 들어갔고 갑자기 여주인(53)에게 다가가 흉기로 배를 한차례 찔러 살인미수로 경찰에 구속됐다. 여주인은 전치 2주의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수사 중 이씨가 매고 있던 가방에는 그동안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한 듯 식칼 1개, 커터칼 7개, 망치, 드라이버, 마스크 등이 들어 있어 계획적 범행인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같이 죽으려고 했다" "느낌대로 갔다" "끌리는 대로 했다"며 횡설수설했다.

이씨는 10여 년 전 부모의 이혼을 겪었고 방 2칸의 단독주택에 혼자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의 방에는 TV 1대만 놓아져 있었고 그 흔한 컴퓨터마저 없었다. 휴대전화는 있었지만 이미 통화기능이 안 되는 먹통이었다. 친구도 없었다. 중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으로 뾰족한 직업도 없었다. 그는 이혼한 부모가 한번에 20만원씩 주는 용돈으로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도 없이 홀로 집안에 틀어박혀 살아온 완벽한 은둔형 인간인 셈이었다.

그렇다면 왜 최근 우리나라에 묻지마 범죄가 연일 지속되는 것일까. 한 심리학과 교수는 "가해자의 처지가 똑같다.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이라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장기전으로 치닫으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실직자 등 경제적 낙오자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낙오자로 찍힌 사람들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결국 '은둔형 외톨이'로 전락해 버리고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쉽다"고 말했다.

히키코모리의 최후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들의 묻지마 범죄를 보고 듣고 나면 비슷한 범죄를 쉽게 저지를 수 있는 게 사람 심리"라면서 "다른 사람과 쉽게 소통하지 못하고 혼자 삭힌 억울함, 분노, 불안 등이 묻지마식 범죄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모방범죄로 엇나갈 가능성이 많은 묻지마 범죄.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묻지마 범죄에 대한 사전예방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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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