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대서예가 죽전 송홍범 

붓이 휘날렸다, 탄성이 터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가로 5m, 세로 50m의 대형 천에 서예가 송홍범의 붓이 휘날렸다. 일필휘지의 붓놀림에 주위를 둘러싼 그의 ‘팬’들이 탄성을 질렀다. 스스로 ‘지방 촌놈’이라 칭하면서도 서예의 대중화, 서예의 세계화를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그였다. <일요시사>가 민족의 대명절 설을 맞아 송홍범 작가의 새해 덕담을 전하려 한다.
 

서예가 죽전 송홍범 작가는 2019년 2월4일 목포 남악롯데아울렛에서 ‘설맞이 서예 버스킹’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서 송 작가는 대붓으로 복주머니를 그린 후 그 안에 오복을 상징하는 오방색 네모를 넣었다. 시민들이 직접 붓글씨를 써보는 시간도 가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시민들은 저마다의 필체로 하얀 여백에 글씨를 남겼다.  

기존 서예 넘어

그로부터 2년 뒤, 어김없이 민족대명절 설이 돌아왔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사회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명절 분위기가 사라졌다. 송 작가도 지난 2일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토로했다.

그는 “코로나19로 모든 게 멈췄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됐으니 꼭 1년째다. 작품에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 강의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 작가의 붓은 멈추지 않았다. 매일 아침 서실에 나가 저녁까지 붓을 잡는다.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는 제자들과의 수업도 있다. 보통 주말에는 쉬지만 ‘열성팬’들이 서실에 나오면 송 작가도 함께 나가 공부한다.


송 작가는 “배운 것이 이것뿐이고, 아는 것도 이것뿐이기 때문(에 글씨를 쓴다)”이라며 “지금은 더욱더 칼을 가는 시기”라고 전했다.

40여년 서예 외길 인생을 살며 전남·목포지역을 대표하는 중진이 된 송 작가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명정 휘호를 쓴 서예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명정은 장사를 지낼 때 죽은 사람의 신분을 밝히기 위해 품계·관직·성씨 등을 기재해 상여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하관이 끝난 뒤에는 관 위에 씌워서 묻는 기를 말한다. 

대통령의 명정 휘호를 쓰는 것은 서예가로서 큰 명예와 영광으로 알려져 있다. 송 작가의 고향은 전남 신안면 하의도로 김 전 대통령과 동향이다. 고등학교 선후배 지간이기도 하다.

1977년 선생님 권유로 서예 시작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 명정 휘호

그는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명정은 수도권이나 청와대 근처에 계신 서예가들, 국필로 불리는 분들이 주로 쓰셨다”며 “저처럼 젊고 변방에 있는 촌놈이 쓴 경우는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서예가의 길을 가는 데는 두 은사의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송 작가의 국어 노트를 보고 “어른 글씨 같다”고 말해줬던 선생님과, 그에게 “정식으로 서예를 해보면 좋겠다”고 권유한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다. 

송 작가는 “1977년 11월29일 서예를 시작했다”고 정확한 날짜를 언급했으며 “절대 잊지 않는 날”이라고도 했다. 그 다음해인 1978년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죽전’이라는 호를 만들었다. 송 작가의 스승이 “대나무처럼 곧고 바르게 살라”는 의미에서 붙여준 것이다. 그는 “보통 선생님들이 제자들한테 바라는 바를 호에 담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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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작가를 가리키는 수식어로는 ‘현대적인 조형서예로 잘 알려진’이라는 말도 있다. 조형서예는 이른바 ‘보는 서예’를 뜻한다. 기존의 전통 서예가 중국의 법첩, 국내 서가들의 법서를 그대로 재현하는 이른바 ‘읽는 서예’라면 조형서예는 시각적인 부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송 작가는 “조형서예가 요즘 대세인 것 같다. 신세대의 눈높이에 맞는 내용을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면서 일필휘지로 써내려간다. 거기서 어우러지는 붓놀림과 파격적인 선의 아름다움, 여백의 미를 우선시하는 게 조형서예가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 친구들은 한자를 아주 고리타분한 구시대 유물로 생각한다. 이들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며 “(예스러운 것들도)물론 필요하지만 너무 예스러운 것들만 표현하면 아무래도 팬이 줄어들지 않을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서예를 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송 작가는 자신의 서예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팬’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면서 서예를 좋아하지만 붓잡기를 저어하는 사람들, 서예에 아예 관심 없는 사람들을 또 다른 팬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서예의 대중화, 세계화를 위해 색다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아시다시피 지금 서예의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 전국에 10여개 남짓했던 대학의 서예과도 대부분 문을 닫거나 유사한 과로 바뀌고 있다”며 “나를 포함해 서예가들이 지금까지 벽을 쳐온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서예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은 상태라는 의미였다.

코로나19로 활동 못한 지 1년
매일 서실 나가 제자들과 연습

이어 “서예 팬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다가가야 한다. 또 꼭 중국 것만 고집할 게 아니고 한글 서예도 좋다”며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폼 잡고 있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시민이 많이 모인 장소로 찾아가 판을 깔고 잔치를 벌여야 한다. 대중 속으로, 시민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작가는 ‘서예 버스킹’을 통해 대중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예를 들어 1시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30~40분은 시민들이 직접 체험하는 데 활용한다. 그가 직접 적은 글귀를 작은 족자에 담아 추첨을 통해 선물로 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송 작가가 대형 천에 그날의 시사성 있는 글을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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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로 5m, 세로 50m의 대형 천을 바닥에 깔 때부터 시선이 집중된다. 천 위에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써내려 가면 대부분 좋아들 한다. 서예를 하진 않지만 호기심에 모여든 시민들도 직접 붓을 잡을 때만큼은 자신이 서예가라고 생각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쓴다”고 했다. 

송 작가는, 붓글씨의 매력은 직접 써볼 때 느낄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는 “한 획, 한 선을 온갖 정성을 다해서 조립하고 짜 맞춰가면서 인생 삶을 배울 수 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절제하고 또 어려움이 있을 때 인내하고 이런 것들을 한 획씩 그어가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필휘지의 역동적이고 다이내믹한 선에서 미술의 아름다움과 조형의 미를 느낄 수 있다. 옛날 고전에서 사자성어 등의 좋은 글이 있으면 제자들과 함께 써보고 오늘의 삶을 반추해 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게 바로 서예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대중 속으로


송 작가는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지만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으면 한다”며 “온전한 삶은 완벽한 삶과는 다르다. 완벽한 삶은 사랑이 없는 사실과 같고, 온전한 삶은 사랑이 들어간 진실과 같다. 진실된 삶을 위해서는 늘 훈련이 필요한데, 그중 가장 좋은 게 바로 붓글씨”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도 긍정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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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삼킨 장동혁 속내

신천지 삼킨 장동혁 속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새해 벽두부터 당명 변경·단식투쟁을 정치 문법으로 제시했다. 삼김 시대 정치 문법을 동원하는 장 대표에겐 ‘상상력 부재’란 지적을 할 수도 있다. 김종인·마키아벨리·아우구스투스가 장 대표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 12일 당명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2020년 9월 당명을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꾼 후 약 5년5개월여 만이다. 이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공천 헌금·통일교 특검 수용 촉구’를 명분으로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8일 동안 단식을 했다. ‘택갈이’ 당명 개정 외국과 달리 한국 정당사에선 유난히 당명 개정이 잦았다. 당명을 바꾸는 주된 원인은 선거 패배 수습과 당내 쇄신이다. 당의 체질은 바꾸지 않은 채 명칭만 바꾸기 때문에 당명 개정은 ‘택갈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고 지난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유한국당에서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고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꾼 후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과 제8회 지방선거에서 이기긴 했지만,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유권자들의 호응과 국민의힘 나름의 자체 개선에 대한 주목이 더 큰 역할을 했다. 장 대표가 단식투쟁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것에 대해서도 여러 의문이 있다.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대응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신임 홍익표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제1 야당 대표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심각하게 인식하길 바란다”며 “홍 수석을 단식농성장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강명구 의원도 같은 날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인간적 도리로 장 대표를 걱정·위로·격려하는 게 맞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홍 수석이라도 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보도 한번 찾아오지 않았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며 “우리 정치 역사에 없었던 일인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직접 와서 야당 대표 얘기를 듣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통상의 정치 문법에 따르면, 대통령실·여당은 야당 대표의 극한 투쟁을 자제시키기 위해 먼저 움직인다. 하지만 장 대표의 단식투쟁에 대해선 단식 투쟁자와 그 주변에서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당명 변경·단식 투쟁은 20세기 대한민국 정치, 특히 삼김 시대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엔 당명 변경이 1인자 교체·정계 개편 등 강력한 정치적 파문을 거친 후 이를 상징적으로 정리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단식투쟁은 군사독재 시절 야당 지도자의 최후 항거 수단이었다. 세월이 흘러 수단이 남용되면서 그 수단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가 축소됐다. 이젠 야당 대표가 단식을 하든 말든 대통령실·여당이 무시하는 시대다. 장 대표가 삼김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 문법인 당명 변경·단식투쟁을 선택한 것을 놓고, 일각에선 “장 대표의 정치 문법이 너무 정직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아울러 단식 중단 결정에 대해서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당명 변경·단식투쟁…장의 ‘정직한 정치’ 법관 출신·위기 없는 안락함…절박함 없어 통일교·신천지의 정교유착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장 대표의 단식 하루 전인 지난 21일 신천지 전직 강사로부터 “지난 2021년 6~7월경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지역 지파장으로부터 국민의힘 가입 지시를 받아 신도들을 가입시켰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 국민의힘에 가입해야 한다는 기류가 팽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민주당은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을 다루는 특검법에 신천지 관련 의혹도 포함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 대표의 단식투쟁 출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만들어줬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회를 전격 방문해 장 대표의 단식을 만류했고, 장 대표는 이를 수용해 단식을 중단한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장 대표는 “좀 더 길고 큰 싸움을 위해서”라는 단식 중단 명분을 제시했다. 아울러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지난 13일 장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해 제명을 결정했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고성국씨와 밀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7월에, 고씨도 지난 6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세력과의 밀착을 토대로 국민의힘 안에 ‘장동혁계’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장 대표는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법관 출신이다. 여의도엔 수많은 법관 출신 정치인이 있었다. 법관은 법전·판례란 과거의 흔적을 토대로 현재를 심판한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현재를 토대로 과거를 참고하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법관도 새로운 판례를 개척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땐 미래를 의식하지만, 판단의 중심은 현재에 맞춰져 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는 지난 2002년 대선 출마 당시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로부터 “북한이 서해 5도에서 무력 도발하면, 즉시 육법전서를 가져오라고 할 사람”이란 비난을 들었다.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각종 선거 기법을 활용해 많은 고비를 넘는 선거를 치른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 전 대표가 패배했던 이유가 함축됐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판사 출신 정치인에게 한정된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개혁신당 이준석 대표·한 전 대표 등 정적들에게 검사 재직 시절 관성으로 범죄자를 바라보듯 대응하다가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한 전 대표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지난 2024년 총선을 지휘하면서 이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한 ‘이조심판론’을 과도하게 내세우다가 패배했다. 현재의 문제점을 토대로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정치·선거 영역에서 과도하게 직업적 관성을 내세우다가 정치적으로 패배한 사례들이다. 장 대표는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 출마해 정계에 입문한 이후 큰 정치적 위기를 겪지 않았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후 겪은 좌절은 제21대 총선 패배와 대전시장 경선 패배가 있다. 물론 이 같은 사례는 다른 정치인도 흔히 겪는 일이기 때문에 두드러지는 좌절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얻은 것 잃은 것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이어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아직 2년이 지나지 않았다.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초선 의원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을 만큼의 의정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는 현재 제1야당 대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난 1983년 단식은 신군부 군사정권과 맞설 정상적 정치 수단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자신의 단식을 만류하던 민주정의당 권익현 당시 사무총장이 외국행을 제안하자,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이 고생하는데 내가 어떻게 외국에 나가느냐. 나를 외국으로 보내고 싶으면, 시체로 만들어 보내면 된다”고 응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가택연금 중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사건 때문에 수감생활을 하다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떠나 있었다. 김종필 전 총리는 권력형 부정 축재자로 몰려 정계에서 축출당한 후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실·여당이 장 대표의 단식을 무시하는 이유는 이 같은 큰 그림과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사람의 상상력은 절박한 위기에서 나온다. 판사 출신으로서 갖는 관성과 위기를 겪은 적 없는 정치 행보가 상상력 부재로 이어져 당명 변경·단식투쟁 등 삼김 시대 정치 문법을 대여 투쟁 방법으로 제시하는 현 상황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2022년 1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를 일컬어 “내가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노릇을 할 테니, 윤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선대위가 알려준대로 연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후보는 선대위에서 해주는대로 연기만 잘할 것 같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늘 얘기한다”며 “대선후보는 자신의 의견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면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종 실언 논란 때문에 하락하고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의 당시 발언은 “군주는 모든 미덕을 갖출 필요는 없지만, 갖춘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국가원수는 국가의 상징이다. 국가원수가 되려는 자의 발언·행보엔 큰 정치적 의미가 부여된다. 뉴스에 나오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강하고 믿음직해야 하지만, 실제로 강하고 믿음직할 필요는 없다. 국민의 눈에 강하고 믿음직하게 보이는 것이 권력의 본질이다. 아울러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이 같은 전략·도구를 ‘가상’이라고 표현했다. 윤 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투박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에게 여우의 교활한 연기를 통한 가상 구축을 주문한 것이었다. 정치도 일종의 상품이라서 포장지가 필요하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여우의 교활한 연기’는 대중에게 교묘하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정치적 포장지를 의미한다. 마키아벨리는 “사람은 대체로 손으로 만져보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에 의해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를 ‘연기’라는 두 글자로 축약한 것이다. 큰 그림과 의지 부재 마키아벨리가 말한 대중 기만·속임수의 극치를 보여준 사람은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였다. 아우구스투스는 40년 동안 황제로서 로마를 통치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하지 않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한 후 종신독재 관직에 취임하면서 로마군의 최고사령관을 겸직했다. 이후 로마에선 카이사르 동상에 왕관이 씌워지거나, 일부 카이사르 지지자가 카이사르를 향해 “왕”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에게 왕관을 씌우자, 카이사르가 이를 벗고 안토니우스에게 돌려주는 이벤트도 있었다. 공화정 사수를 주장하는 보수파는 이를 보고 크게 불안해했다. 결국 마르쿠스 브루투스 등 보수파 일부는 원로원 회의에 참석한 카이사르를 향해 무기를 들고 덤볐고, 카이사르는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카이사르의 조카손자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양자 자격으로 정계에 입문해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을 거쳐 로마의 통치자가 됐다. 그는 대중을 속여 양아버지의 전철 답습을 피하면서 로마를 통치해야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창조한 속임수는 원수정이었다. 그는 내전 승리 직후 “권력을 원로원과 로마 시민에게 반납한다”면서 자신의 통치 체제를 “회복된 공화정”이라고 명명했다. 이어 ▲제1시민·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란 존칭이 갖는 권위 ▲최고사령관 직위 ▲근위대 지휘권 ▲호민관 특권 등을 이용해 로마를 통치했다. 제1시민은 공화정 말기 로마 원로원에서 최고 원로를 명예롭게 예우하기 위해 사용된 호칭이었다. 카르타고 전쟁에서 한니발 바르카스를 물리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도 부여됐던 호칭이었다. 최고사령관 직위를 의미하는 ‘임페라토르’는 승전한 장군에게 병사들이 경의를 표하던 호칭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를 군권 1인자란 의미로 활용해 군권을 독점했다. 이탈리아 반도 내에 주둔하는 군대는 근위대가 유일했기 때문에 근위대 지휘권은 매우 중요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근위대 지휘권을 통해 근위대장 임명권을 행사하면서 근위대를 통제했다. 김종인 ‘연기’ 발언 속 마키아벨리 철학 통찰해야 정치적으로는 호민권 특권을 요긴하게 활용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귀족 가문 출신이라서 평민 출신이 독점하는 관직 호민관에 오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호민관의 권한만 가져왔다. 그가 가져간 호민관 특권은 ▲신체 불가침권 ▲입법권 ▲원로원 결의 거부권 등을 의미한다. 제1시민이란 존경을 받는 군권 1인자가 호민관 특권을 가져가면 원로원보다 우월한 지위가 확고해진다. 아우구스투스는 ‘황제 아닌 황제’로 40년 넘게 로마를 통치했다. 이런 교묘한 정치 행위는 우리 정치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이념·행적이 전혀 다른 김종필 전 총리와 DJP 연대를 구축한 후 대통령에 당선돼 의원내각제식 연립정권을 구축했다. 비교적 진보 성향을 드러내는 소수 야당 후보로서, 거대 여당에서 분리돼 독자노선을 걷는 강경 보수 야당과 연대해 선거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 후 연립정권을 구축한 독특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선 세대포위론이란 정치공학 이론이 등장했다. “2030세대 여성·4050세대 다수가 지지하는 민주당을 이기기 위해선 민주당에 적대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대 이상 노년 세대가 연합해 포위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론이었다. 이는 새로운 국민의힘 지지층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고, 젊은 보수 정치인이 다수 등장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안겨줬다. 하지만 민주당과 지지자들로부터 “세대·남녀 갈라치기를 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아울러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표의 갈등 끝에 새로 수혈된 2030세대 신진 정치인과 지지층 상당수는 이 대표를 따라 개혁신당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는 “인간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손실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현실 정치에 구현된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선 “이 대통령보다 중도층 지지를 더 많이 얻었다”는 평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층은 정치 변화의 의지가 담긴 신선한 정치 문법 제시를 선호한다. 정치 문법은 결국 정치인이 대중 앞에서 선보이는 연기에 달렸다.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 견제를 원했던 로마 최고의 논객·정치인 키케로를 상대로 예의 바른 청년 행세를 하면서 속여 그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한 연설을 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정치 기반이 안정된 후엔 “키케로를 숙청해야 한다”는 안토니우스의 요구를 묵인했다. 아우구스투스는 당시 20세였다. 카이사르 사후 양자로서 정계에 등장한 후 불과 2년 만에 구사한 속임수였다. 아우구스투스 59년 교훈은? 안토니우스를 몰아낸 이후엔 40년 동안 원수정을 통해 로마인을 교묘하게 속였다. 아우구스투스는 만 77세로 사망하면서 “내가 인생이란 연극에서 내 배역을 충분히 잘 연기했다면, 기쁜 목소리와 박수로 날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명 변경·단식 투쟁이란 삼김 시대 방식 정치 문법을 구사하는 장 대표는 그의 배우 인생 59년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