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53·54) 창난젓, 간장게장

영양하면 이 음식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창난젓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명란’과 ‘창난’이란 명칭에 대해 살펴보자.

명란은 ‘명태의 알’로, 줄여서 명란(明卵)이라 일컫는다.

이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창난이다.


창난은 명태의 내장을 지칭하는 순수한 우리말로 ‘창란’은 잘못된 표기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쳐대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지 창난에 대해 심층적으로 접근해보자.

먼저 창난젓에 대해서다.

창난젓이 명태의 창자로만 만들어진다면 창난이 아니라 ‘명태의 창자’를 줄여 ‘명창’이 되거나 혹은 창자를 의미하는 한자인 장(腸)자를 덧붙여 ‘명장(明腸)’이라 표기해야 옳다. 

굳이 ‘난’이라는 글자를 덧붙일 이유가 없다.

즉 난을 덧붙인 이유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난을 덧붙였을까.


창난젓이 명태의 창자로만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창난젓은 명태의 창자뿐 아니라 알집까지 곁들여 만들어진다.

따라서 창자의 ‘창’과 알집을 의미하는 ‘난소(卵巢)’에서 앞 글자인 ‘란(卵)’이 결합돼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럴 경우 창난이 아니라 ‘창란’으로 표기해야 옳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도 의문이 발생한다.

조금이라도 조어적 지식을 겸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창자와 난소란 두 단어를 결합시킬 때 창자를 의미하는 장(腸)과 난소의 앞 글자인 란(卵)을 취해 장란(腸卵)으로 명칭을 정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는 그 명칭이 ‘장란’이었는데 중간에 그 누군가가 장란에 대해 장난을 쳐서 ‘창난’이라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 풀어나가겠다. 

창난젓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기록이 있어 인용해본다. 1937년 10월27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다.

「젓갈 중에도 왕이 되는 창난젓의 영양

창난젓은 원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오늘날 가장 진보된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영양식품이라 할 수 있는 훌륭한 식품이다. (중략) 

창난젓에는 고기와는 다른 영양성분이 상당히 포함돼있다.


예를 들면 지구상에 80여종의 원소가 있는데 사람 몸에는 37종가량이 필요하다.

이 37종 원소를 생선이 가지고 있는데 살보다 내장 속에 숨어있다. (하략)」

1937년이면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이다.

당시 <동아일보>가 전한 것처럼 창난젓에 이러한 영양분이 함유돼있을까.

현대 의학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을 인용해본다. 

「창난은 단백질, 탄수화물, 칼슘, 인, 철 등이 고루 함유돼 있으며 필수아미노산인 트레오닌과 라이신이 다량 함유돼있다. 또 소화를 돕고 성장을 촉진시키는 비타민B₁, 비타민B₂, 비타민E 등이 다량 함유돼있다. 발효식품으로, 장에 좋은 성분과 칼슘성분이 월등하게 많이 함유돼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창난젓이 언제부터 식용됐는지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한 이익의 <성호사설> 중 ‘생재(生財)’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타난다. 

「동해는 어족의 소굴이 돼, 이곳만큼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 없다. 항상 파도가 일어 조운(漕運)이 불가능하므로, 어민들은 작은 배를 만들어서, 고기 잡고 기타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이로 삼아, 생선·건어·창난젓 등을 마소로 실어낸다.」

위의 창난젓이 원문에는 ‘醢’로 표기돼있다. 醢(해)는 물론 젓갈을 의미하는데 문제는 ‘’이다.

알을 의미하는 란(卵)과 흡사한데 이 한자는 정체불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익은 여러 곳에서 동 글자를 사용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움에서 그 해답을 찾음이 옳다.

아울러 창난젓의 본격적인 식용 시기는 명란젓과 동일하게 조선 후반부터라고 규정하자.

젓갈 중에서도 왕이 되는 창난젓의 영양
“게의 집게다리를 먹으면 신선이 된다”

간장게장

먼저 한시 한 수를 감상해보자. 서거정의 작품이다.
 
雪滿江皐凍未消(설만강고동미소) 
눈 가득한 언덕에 얼음 아직 녹지 않았으니
此時黃蟹價增高(차시황해가증고) 
이 시기에 노란 게는 값이 더욱 높은데
贈來手劈持杯看(증래수벽지배간) 
선물로 주어 손으로 쪼개어 술잔 들고 보니
風味全勝畢卓螯(풍미전승필탁오) 
필탁의 집게 다리보다 풍미 훨씬 낫네

서거정이 게를 안주 삼아 술 마실 때 그 흥취가 기가 막혔던 모양이다.

‘필탁의 집게다리’를 거론했다.

필탁(畢卓)은 중국 진(晉)나라 때 주호(酒豪, 술을 잘 마시고 주량이 대단한 사람)로 술과 게의 궁합에 관한 글로 유명하다.

그가 남긴 글이다. 

得酒滿數百斛船 四時甘味置兩頭 右手持酒杯 左手持蟹螯 拍浮酒船中 便足了一生矣
수백 곡의 술을 배에 가득 싣고, 사철의 맛 좋은 음식들을 배 양쪽 머리에 쌓아 두고, 오른손으로는 술잔을 들고, 왼손으로는 게의 집게 다리를 들고서 술 실은 배에 둥둥 떠서 노닌다면 일생을 마치기에 넉넉할 것이다.

그런데 필탁과 서거정만이 아니다.

중국의 소식(蘇軾, 소동파)도 그의 작품 속에 ‘반 딱지 노란 게장은 술에 넣어 먹기 알맞고, 두 집게다리 흰 살은 절로 밥을 더 먹게 하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 중국 역사 최고의 시인이며 두주불사였던 이백(李白, 이태백) 역시 그의 작품에서 蟹螯卽金液(해오즉금액)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술을 마시는 데 있어 ‘게의 집게발은 금액이다’라는 것이다. 

금액(황금액)은 고대에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들이 만든 단액(丹液, 먹으면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약)의 일종이다.

이것을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게의 집게다리가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이응희 역시 게를 작품으로 남겼다.

감상해보자.

蟹(해)

郭索登筐筥(곽색등광거)
게가 광주리 안에 오르니
多看狀貌奇(다간상모기)
보이는 여러 모습 신기하네
橫行張八脚(횡행장팔각)
옆으로 걸으며 팔자 다리 펼치고
雄悍巨雙肢(웅한거쌍지)
커다란 두 집게다리 날래고 사납네
香滑鉤金醬(향활구금장)
누런 게장 향긋하고 매끄러워
甘柔嚼雪肌(감유작설기)
달고 부드러운 흰 다리 씹네
朱門大牢客(주문대뢰객)
주문에서 대뢰 먹는 사람들
玆味鮮能知(자미선능지)
이 맛 아는 사람 드물리라

곽색(郭索) : 게의 별칭으로 , ‘발이 많다’는 뜻으로 붙여진 별칭이다.

주문(朱門) : 붉은 칠을 한 문이란 뜻으로, 권귀(權貴)나 부호(富豪)의 집을 가리킨다.

대뢰(大牢) : 나라에서 제사를 지낼 때 소·양·돼지를 한 마리씩 쓰는 것으로, 가장 큰 제사다.

여기서는 매우 성대한 음식을 뜻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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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 전 총리는 이미 내란죄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래서 살길을 열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다. 과연 그 절실함은 ‘방탄’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설은 지난해 9월부터 거론됐다. 한 전 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등 야당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 당시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건재했다. 따라서 모두가 차기 대선이 오는 2027년에 진행될 것이라고 여기던 시점이었다. 윤 어게인 대타 역할?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서 파면돼 정계서 사라졌다. 차기 대선은 오는 6월3일로 앞당겨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란 절대 강적을 이길 방법을 놓고,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에선 다양한 논의가 일어났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그 다양한 논의 중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롯돼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서 퍼졌던 ‘윤 어게인’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한 전 총리는 지난달 8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주요 보직 임명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이 처장이 내란 공모 혐의 피의자란 사실도 큰 문제였다. 한 전 총리와 이 처장은 이미 지난해 12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2월엔 소환 조사까지 받았다. 이 처장을 지명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였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추후 진행될지도 모르는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 방어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심도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란 거대한 사건의 공범 의혹을 받는 사람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의심이었다. 이는 곧 “윤 어게인의 구체적 구현일 수도 있다”는 흐름으로 연결됐다. 윤 어게인의 본질은 윤 전 대통령의 복귀 추진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을 지냈고, 파면됐다. 헌법·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다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친윤(친 윤석열)계 진영 일각서도 이를 고려해 “윤 전 대통령의 정신과 노선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본질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 대신 출마하는 것”이란 해석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한 전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윤 전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할 수도 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년 중임제인 헌법 규정 때문에 지난 2008년엔 3선을 위한 출마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통합 러시아 대표가 대신 출마해 당선됐고, 푸틴 대통령은 총리로서 실권을 휘둘렀다. 메드베데프 대표는 푸틴 대통령의 첫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내는 등 정치 경력이 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 메드베데프 대표조차 대통령 재임 당시 바지사장·허수아비로 통했다. 따라서 한 전 총리가 설령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한 전 총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정치 기반은 국민의힘 내 친윤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실적 구도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처럼 총리로서 국정을 주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까지 나온 것이다. 푸틴·메드베데프처럼… ‘윤 총리’ 임명 관측도 이 같은 조롱 섞인 관측에 굴하지 않고,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만 75세의 나이에 강한 정치적 집념을 보이는 이유로는 ‘내란 혐의 피의자’라는 현실적인 상황이 언급된다. 김 전 장관은 수사기관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엄법 규정대로 한 전 총리를 거쳐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한 전 총리도 비상계엄 실행에 참여한 것이 된다. 물론 한 전 총리는 이를 일관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 소집 협조·참여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 건의 회피의 다수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내란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제는 ‘내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사람도 없다. 이렇게 되면, 한 전 총리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사기관에 줄곧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 재판을 거쳐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 전 총리로선 생존을 위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 후보의 집권을 막거나, 자신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대선에 출마해 이 후보의 경쟁자를 자처함으로써, 향후 진행될 가능성이 큰 수사에 대해 “대선 경쟁자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민의힘에도 큰 여파를 남겼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수시로 대표·비상대책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집요하게 당 장악에 집착했다. 지난 2022년 7월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가 공개됐고, 윤 전 대통령은 여기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일컬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지칭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반발하는 것을 ‘내부 총질’로 인식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당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다. 대통령이 당 장악에 집착하면, 내부서 차기 주자를 키우기 어렵다. 국민의힘의 인물난은 전직 대통령들의 지나친 당 장악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면서 외부인을 대선후보로 옹립하는 기조가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국민의힘이 한 전 총리에게 강한 시선을 두는 이유 중 하나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반면교사를 거론할 수 있다. 권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중진들은 겉으로는 윤 전 대통령에게 전혀 반기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감정이 있다. 사실은 당권 경쟁?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2022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하거나 면제한다”는 취지의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했다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일각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어 부위원장직서 해임됐고, 당 대표 출마마저 저지당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이 주도하던 혁신위원회와의 갈등 끝에 사퇴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대표직 유지를 조건으로 총선 불출마를 요구했지만, 김 의원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 대한 격노를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던 날 윤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자 “뭐하는 거야, 이게 지금”이라고 말하는 등 순간적으로 반발 심리를 드러냈다. 이렇듯 국민의힘 주요 중진과 경선 출마자 중 상당수는 윤 전 대통령과 상당한 갈등 끝에 손해를 본 기억이 있다. 이들이 윤 전 대통령 같은 강성이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원할 가능성은 적다. 이번 대선서 범 국민의힘 계열 대선후보들은 이 후보와의 승부서 이길 가능성이 적으므로, 경선은 사실상 당권 경쟁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대권후보들도 당권에 강한 아쉬움이 있다. 당 대표에 취임했다가 당내 주류들과의 갈등 끝에 힘없이 물러났던 경험이 있고, 당으로부터 등을 떠밀려 출마했던 선거서 패배해 치욕을 겪은 적이 있다. 이들이 다시 당권주자로 등장하는 것을 중진들이 원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따라서 당 대표를 다시 세운다고 하더라도, 의원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갈 사람을 선호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평생 관료로 살았고, 국민의힘·민주당 정권서 모두 총리를 지냈던 한 전 총리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카드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위헌이 아니라고 인정했다지만, 한 전 총리는 “여당 대표와 정기적으로 회동하면서 책임총리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과도 정부체제를 발표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들은 적도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한 전 총리가 이래도 따르고, 저래도 따를 것”이라고 인식했을 여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에게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수사 피해 대선 출마? 자당 대선후보와 외부 대선후보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자당 대선후보에 대한 적대감으로부터 비롯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의 단일화도 노 전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당시 새천년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 협의회(이하 후단협)를 구성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한 후 진행됐던 것이었다. 이 갈등은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으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직계 의원들과 함께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협조해 노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이 같은 연유로 당시의 후단협은 지금도 안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외부 정치 원로에게 단일화 지원을 요청했단 것은 당내 대권주자들과의 불신·갈등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다. 한 전 총리는 현재 내란중요임무종사자란 의심을 받고 있다. 형법 제87조 제2호에 따르면, 내란중요임무종사자는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혐의가 적용돼 수사를 받고 있어서 국민의힘의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지원을 매개로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은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이란 구호로 함께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점이 있다고 해서 아무 목소리도 못낼 것이란 기대는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한 전 총리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은 한 전 총리의 부인 최아영 여사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해 12월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최 여사는 화가이자 미술계의 큰손”이라며, “무속에 너무 심취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 여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무속의 지배를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부인 무속·해몽 일화 정치 공세 가능성도 최 여사에 대해선 한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서도 같은 논란이 제기됐던 적이 있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최 여사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느 여성이 강남에 있는 유명 점집을 함께 드나드는 사이란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 전 총리는 “공직 생활 동안 명리학에 대한 배우자의 관심이 공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일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최 여사가 무속에 관심을 가진단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지난 2014년 8월 <조선일보> 연재 칼럼 <조용헌 살롱>서 최 여사의 해몽 과정을 언급했다. 칼럼에 따르면, 최 여사는 한 전 총리가 무역협회장이 되기 전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자신의 침실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이 되기 전엔 헬리콥터 조종사가 권총으로 부부를 쏘는 꿈을 꿨다. 부총리가 되기 전엔 스프링 콩콩을 타고 뛰는 꿈을 꿨다. 현재 소유 중인 주택을 사들이기 전엔 집이 물에 잠겨 물바다가 되는 꿈도 꿨다. 최 여사는 특이한 꿈을 꾸면 ‘영험한 해몽가’로 알려졌던 고 임훈씨와 해몽 상담을 했다고 전해진다. 최태민씨 일가가 박근혜 전 대통령 일가에 접근한 연결고리 중 하나가 해몽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심상치 않은 대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해몽은 야심을 동반한단 측면서 의미심장하다. 신라 원성왕과 조선 태조 이성계 등 권좌에 오른 사람의 설화 중엔 꿈과 해몽이 곁들여진 사례가 많다. 최 여사가 정기적으로 해몽가를 방문했단 것이 사실이라면, 야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 대목이 사실이라면, 두 전직 대통령의 전례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민의힘이 세 번째 배신을 당할 가능성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임기 내내 주변인의 구설수로부터 야당의 공세가 시작돼 파면됐단 공통점이 있다. 대선서 낙선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로부터 파상 공세를 당해 체면을 구기거나 끊임없이 이어질 정치 공세의 소재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한 전 총리까지 포함한 빅텐트를 친다고 해서,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후보는 시종일관 강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명백한 중범죄자를 봐주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지는 국민 판단에 따를 일”이라고 말했다. 압도적 의석 이재명 경고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이 후보가 윤 전 대통령 등 비상계엄 관련 사안에 대해선 이를 적용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이 후보가 집권한다면, 압도적 의석을 가진 여당과 그 여당을 일극 체제로 지배하는 대통령을 배경으로 진행될 각종 수사 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이 후보는 한 전 총리에 대해서도 “내란 주요 종사자들과 부화뇌동자들이 여전히 정부의 중요 직책을 갖고 남아있는 것 같다”며 “내란 세력이 끊임없이 귀환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의 발언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의 ‘몸부림’은 이를 막는 방패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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