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농심 율촌재단 주먹구구 운영 대해부

뒷전으로 밀려버린 장학사업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최현목·장지선 기자 = 율촌재단의 운영방식을 두고 온갖 뒷말이 나오고 있다. 운영비 지출 내역에서 이해하기 힘든 흔적이 여럿 발견된 탓이다. 신규 사업에 20년 가까이 눈먼 돈이 투입되는 것과 달리 본래 설립 취지는 뒷전으로 밀려버린 지 오래다.
 

▲ ⓒ율촌재단

율촌재단은 1955년 6월 설립된 화암장학회에 뿌리를 둔 공익법인이다. 1984년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이 사재 80억원 출연과 함께 장학회를 양수받으면서 농심그룹 산하 단체로 탈바꿈했다. 신 회장의 이사장 취임 직후 화암장학회는 율촌장학회로 이름을 교체했고, 1998년부터 지금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배당으로
재원 마련

지난해 말 기준 율촌재단의 총자산은 182억원. 금융자산(37억원), 기타자산(19억원), 토지(6억9000만원), 건물(1억30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73%(132억원)는 장기투자자산으로 분류된다. 장기투자자산 가운데 117억원은 농심그룹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분 평가액이다.

율촌재단이 보유한 그룹 계열사 지분은 자산평가에 영향을 주는 동시에, 재단 1년 농사의 밑천으로 작용한다. 실적 증감치를 반영하지 않는 농심홀딩스와 농심의 배당정책이 고정수익으로 연결된 형국이다.

율촌재단은 상장사인 농심홀딩스와 농심 지분을 올해 상반기 기준 각각 2.01%(9만3139주), 4.83%(29만3955주)씩 보유하고 있다. 농심그룹 비상장 유통 계열사인 메가마트 지분 4.84%(15만주)도 율촌재단의 몫이다.


농심홀딩스와 농심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각각 92억7553만원, 231억3050만원씩 결산배당을 집행해왔고, 율촌재단은 지분율에 따라 두 회사로부터 매년 13억6200만원을 배당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이자수익 및 사업 외 수익을 합산하면 연간 14~15억원 안팎의 재단 운용소득이 꾸려진다.

배당 덕분에 안정적인 운용소득을 확보한 율촌재단은 표면상이나마 고유목적사업(설립 목적을 직접 수행하는 사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2018년 86.7%로 ‘적정(목적 사업비가 전년도 운용소득의 70% 이상)’ 수준을 훨씬 상회했던 율촌재단의 목적 사업 수행 실적은 이듬해 110%까지 치솟았다.

특히 청소년 수련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눈에 띈다. 지난해 목적 사업비(12억2000만원) 가운데 청소년 수련시설에 지출된 금액만 10억5000만원에 달했다. 이는 전체 목적 사업비의 86.5%에 해당한다. 반면 장학금, 학술연구비, 발간 및 배포비, 연구기관 지원에 투입된 비용의 총합이 1억6000만원에 그쳤다.

본래 설립 목적은 온 데 간 데…
뒷전으로 밀려버린 장학사업

다만 단일 목적사업에 대한 대규모 집행 이력은 율촌재단의 방만 운영을 의심케 하는 여지를 남긴다.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했던 지난 20년의 행적을 쉽게 이해하기 힘든 까닭이다.

율촌재단은 2000년 2월 정관상 목적사업에 ‘청소년 자연체험 활동 지원’ 사업을 추가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일대에 ‘언양 청소년 자연생태 수련시설(이하 청소년 수련시설)’을 조성하기 위한 첫 단계였다.

이듬해 8월 울산시의 사업허가 신청이 떨어졌고, 2002년 10월 진입도로 착공, 2004년 11월 본 사업부지 착공이 이뤄지면서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 당시만 해도 준공 만료 기간인 2006년 12월이 도래하기 전에 시설 및 진입로 공사가 당연히 완료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당초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공사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율촌재단은 2년 단위로 공사 연장 신청하는 데 급급했다.
 

▲ 메가마트 기장점 ⓒ네이버 지도

20년 가까이 끌어 온 공사는 지난달 21일이 돼서야 ‘관리동’ 준공 소식을 알렸다. 이마저도 지난 5월 서울시 교육청이 감사를 실시하고 6차 공사 연장 기간(2019년 12월~2021년 7월31일) 내 공사 완료를 통보하지 않았더라면 더 미뤄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설계 변경 및 관리동 건축을 이유로 들며 6차 연장 허가서를 제출하면서도, 정작 주무관청에 연장과 관련한 보고를 누락했던 율촌재단의 행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눈여겨볼 부분은 사업이 20년 가까이 멈춰 있는 동안에도 율촌재단은 매년 수억원 가량의 목적 사업비를 청소년 수련시설에 투입했다는 점이다.

빗나간 예상
이제야 겨우

율촌재단이 2018년 말까지 청소년 수련시설 설치 및 운영에 투입한 목적 사업비는 약 8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지난해 투입한 10억5000만원과 올해 편성금액을 포함시키면 올해 연말 기준 총 투입 비용은 100억원에 근접할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착공 당시 예상했던 건립 비용의 3배를 훌쩍 넘기는 규모다.

문제는 율촌재단이 청소년 수련시설에 목적 사업비를 할애하는 과정에서 서울시 교육청이 내놓은 전제조건을 수차례 여겼다는 점이다. 지난 2000년 서울시 교육청은 율촌재단이 청소년 자연체험 활동 지원 사업을 목적사업에 추가하는 것을 허가하는 대신 단서를 달았다.

해당 사업에 재단 연간 목적 사업비의 50% 미만을 집행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율촌재단이 청소년 수련시설에 목적 사업비의 절반 이상을 지출한 것만 해도 10년 사이에 3개 회계년도(▲2013년 55.1% ▲2015년 50.3% ▲2019년 86.5%)에서 목격된다.

2010년 이전에는 청소년 수련시설에 목적 사업비를 과다 지출한 사례가 더욱 빈번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2006년의 경우 목적 사업비 12억9500만원 가운데 10억1600만원을 수련시설 조성 용도로 처리한 이력이 확인된 상태다. 당해에는 목적 사업비 1억1100만원을 지출해 청소년 수련시설에 쓸 용도로 공사용 굴삭기를 구입했는데, 이를 농심그룹 골프장 계열사가 올해 초까지 무상으로 사용해온 사실이 서울시 교육청 감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 울산청소년수련원 조감도 ⓒ율촌재단

율촌재단 측은 준공 지연에 대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다는 입장이다.


율촌재단 관계자는 “청소년 수련시설 부지 인근에서 고속철도 확장, 문화재 발굴 사업 등이 연이어 계획되면서 당초 예상과 달리 준공까지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며 “해당 내용을 충분히 소명했고, 교육청에서도 문제없다고 결론내린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뒷전으로 밀린
재단의 근간

청소년 수련시설 건립 과정에서 이해하기 힘든 비용 처리 흔적을 남긴 율촌재단은 정작 본업인 장학사업에서는 소극적인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율촌재단이 최근 5년간 장학사업에 투입한 목적 사업비는 ▲2015년 5800만원 ▲2016년 1억1400만원 ▲2017년 6300만원 ▲2018년 1억200만원 ▲2019년 9000만원 등 연평균 8600만원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청소년 수련시설에 지출한 금액의 1/5 수준이다.

장학사업으로 지출된 금액은 재단 이사에게 지급한 급여보다도 적은 액수다. 퇴직금과 같은 일회성 지출 내역을 제외하면 최근 5년간 율촌재단은 2억2000만원 안팎의 금액을 급여 및 상여금 명목으로 산정해왔다. 

급여는 임원 1명과 직원 2명에게 지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직원에게 지급된 급여 지출이 5000만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임원에게 매년 1억7000만원가량 급여 및 상여금이 지출된 셈이다.


장학사업에서 드러난 또 다른 문제점은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지급 기준이다. 율촌재단은 장학금 및 연구비를 학술연구기관 또는 단체에 지급하면서 명확한 선발 규정을 명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선발 과정에서 서류전형 및 면접을 거친다는 말만 했을 뿐 선발위원회 개최 사실을 증빙하는 서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올해 초 율촌재단에 대한 서울시 교육청 감사를 통해 확인된 사안이다. 추천자를 이사회 서면보고만으로 확정해 장학금을 지급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다른 곳 쓰기도 부족한데…
공익재단이 계열 측면 지원?

공교롭게도 재단의 근간인 장학사업에서 투명성이 결여된 흔적이 발견되자, 농심그룹 주력 계열사의 영업을 율촌재단이 간접 지원해왔다는 항간의 소문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간 율촌재단은 메가마트가 출점한 지역을 중심으로 장학사업을 벌였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실제로 몇몇 메가마트 점포의 출점 지역 및 시기는 율촌재단이 장학금을 전달한 지역 및 시기와 엇비슷하게 겹친다. 
 

▲ (사진 왼쪽부터)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

2010년 6월 메가마트 부산 기장점이 오픈하고, 석달 후 율촌재단이 기장군청에 장학금 2000만원을 지급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8년 4월 춘천 M백화점이 문을 열자, 한 달 후 율촌재단이 춘천시청에 2000만원의 장학금을 쾌척했던 것도 유사한 양상이다. 2009년 9월 메가마트 천안점은 율촌장학재단을 통해 천안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메가마트의 오너 경영인과 율촌재단의 이사장이 동일 인물이라는 점은 율촌재단이 메가마트의 영업을 간접 지원한다고 의심받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신춘호 회장의 삼남인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은 지난해 말 기준 메가마트 지분 56.14%(173만8135주)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2007년에는 아버지로부터 율촌재단 이사장직을 넘겨받은 바 있다.

꼬리를 무는 
의혹의 연속

율촌재단 관계자는 “서울시 교육청 감사를 거치며 해당 내용들에 대한 소명을 충분히 했고, 대부분의 사안이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며 “몇몇 시정조치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개선을 완료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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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