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학생들에게 악몽 같은 사건이 터졌다. 방학을 맞아 민간업체가 운영하는 국토횡단탐험대장정에 오른 청소년들이 부실한 프로그램 운영은 물론 폭행과 성추행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알고 보니 해당업체는 7년 전 여름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도마에 올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양을 쌓기 위한 극기훈련 정도로 생각했던 국토순례. 그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봤다.
김모(14)군은 여름방학을 맞아 특별한 경험을 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던 김군의 눈에 띈 건 인터넷에 게재된 국토대장정. 서울을 떠나 4박5일 일정으로 울릉도·독도 등 동해안을 찾아가는 국토대장정 탐험프로그램은 강원도에 유명한 산악이나 문화관광지, 환경탐사, 예절교육 등 알차고 다채로운 여정이 기재돼 있었다.
거창하게 포장된 광고 ‘조심’
김군은 교과서로만 알고 있던 울릉도와 독도 땅을 밟아 보는 것은 물론 새 친구도 사귀는 등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군은 부모님을 조르기 시작했다.
김군의 부모도 거창하게 포장된 인터넷 광고를 본 뒤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거라 판단, 참가비 57만원인 국토순례를 허락했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부푼 마음으로 탐험길에 오른 김군의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부실한 프로그램운영은 물론 이 행사를 주관한 H소년탐험대의 탐험대장 강모(55)씨의 도를 넘은 욕설과 폭력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인솔책임자인 강씨가 본색을 드러낸 것은 울릉도에 입도하자마자 부터다. 강씨는 흐트러진 몸과 정신을 바로잡겠다는 미명하에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와 악행이 오픈될 소지는 전부 뺏었다.
이후 텐트 없이 노천에서 잠을 재우는 속칭 비박으로 야영을 대신하는가 하면, 자연식이라고 해서 길 가다 눈에 보이는 것을 직접 찾아 먹게 시켰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60여명의 청소년들은 이런 이유로 27일부터 3일간 유람선 여객터미널 등지에서 노숙을 하고 식사는 하루 한두 끼로 때웠다. 이마저도 주먹밥 1개 등 부실하기 짝이 없어 학생들은 하루 종일 생배를 곯아야 했다.
배고픔과 더위에 지친 학생들이 산을 빨리 오르지 못하면 강씨는 가차 없이 아이들을 폭행했다. 중학교 3학년 이모양은 울릉도 성인봉에서 힘들어서 더는 못 올라가겠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강씨로부터 나무 몽둥이로 55차례나 얻어맞았다.
길가다 먹을 것은 주워서…몽둥이로 때려 골절까지
2005년에도 국토순례 중 학생 폭행으로 실형 살아
김군은 “폭염 속에서 산을 빨리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탐험대장이 울릉도 성인봉 등지에서 몽둥이로 때리거나 발길질을 하기 일쑤였다”며 “한 학생은 심하게 얻어맞아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강씨가 울릉도로 향하는 유람선과 해변에서 여학생을 성추행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오모(17)양과 이모(15)양은 “강씨가 머리끈을 빼앗아 이를 찾으러 갔더니 유람선 내에서 가슴을 더듬고 해수욕이 끝난 뒤에는 호스로 상의에 물을 끼얹은 뒤 엉덩이를 만지고 쳐다봐 수치심을 느꼈다”며 “산행에서 부축해 주는 척 하면서 가슴을 만지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청소년들이 겪은 악몽 같은 일은 지난달 30일 한 용기 있는 여학생이 울릉도에서 묵호항으로 나오는 여객선 안에서 승무원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살려 달라”며 구조요청을 함으로써 밝혀졌다.
강씨가 운영하는 이 탐험대는 2005년에도 무리한 걷기, 형편없는 식사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곳이다.
당시에도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10시간 이상 걷고, 길에서 침낭을 덮은 채 노숙을 해 학부모들의 반발을 사면서 안티카페까지 생기기도 했다. 강씨는 이 사건으로 2007년 1년2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그러던 그가 다시 세상에 나와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한 것이다. 강씨가 다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학생을 모집하는 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개인이 홈페이지를 개설해서 특정행사를 준비했고, 그것을 본 불특정다수 학생이 호감을 느끼고 참여한 것이니 정부, 행정기관으로부터 허가를 얻는 등의 절차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이 참여하는 국토순례사업을 정부가 인증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건을 담당한 동해해양경찰서 관계자는 “현재로선 인증제도는 없는 실정”이라면서 “이번과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선 부모님과 관심 있는 어른들이 개인적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벌인 행사의 경우 더 주도면밀하게 살펴보고, 그 행사가 바른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년 전에도 똑같이…‘뻔뻔’
한편 강씨는 “등반 도중에 종아리를 때린 것은 맞지만 성추행은 아이들이 지어낸 것으로 사실이 아니다”면서 “국토대장정은 극기 훈련으로 학부모도 이 같은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 모든 것을 나약한 학생들의 탓으로 돌렸다.
지난 2일 오후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참가 학생들의 웃으며 물놀이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등 해명자료를 가지고 참석한 강씨는 “30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했다. 떳떳하고 부끄러움이 없다”며 “나처럼 국토대장정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추행과 관련해서는 “얼토당토않다”며 “요즘은 아이들이 나약해져서 힘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는 추행 당했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곧 자숙해서 아니라고 시인할 것”이라고 오히려 아이들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또 폭행부분에 대해서는 “때린 부분은 인정하지만, 훈육차원이었다”며 “주저앉아 있는 아이에게 나무 잔가지로 자극을 준 것이고, 아이가 안 일어나니까 머리카락을 잡고 끌어올린 것인데 아이의 덩치가 크다보니 몸이 무거워 팔이 꺾이고 상처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식사와 관련해서 그는 “약간 배고프게 해야 통제가 되고 그래야 질서가 잡혀가는 것이다”며 일반화되기 힘든 자신의 주장을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