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37)바다

진정한 의미의 사랑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별이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으로 미루어 삼복의 입을 통해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훤히 예견할 수 있었다.

천하의 자유인 허균이 아니라 천하의 난봉꾼 허균으로 일러주었을 터였다.

“그 녀석이 뭐라 이르던가.”

그래도 별의 입이 열리지 않고 몸만 더욱 옹크리고 있었다.


그 사이 사이 슬쩍슬쩍 별의 탱탱한 가슴살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목구멍에서 다시 침이 넘어가고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눈동자

그 모습에 몸 안에 모든 힘이 중심으로 쏠리기 시작했고 그 순간 매창이 인기척을 내며 방으로 들어섰다.

허균을 향해 잠시 미소를 보이던 매창이 방문 가까이에 어색한 자세로 서 있는 별을 보았다.

“왜 거기에 그렇게 서 있느냐.”

“상을 차리고 막 물러나려던 참이었습니다.”


물론 그 말이 정상적으로 흘러나왔을 리 없었다.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시선을 허균에게 주었다.

허균이 그 시선을 모른 체하고 아니, 그보다도 뻣뻣해진 가운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새로이 차려진 상 앞에 자리 잡았다.

“아니, 어디를 갔다 오시기에 이리도 사람을 무료하게 만드는 게요.”

“소녀도 잠시 측간을 다녀오느라. 참, 별이 너도 잠시 이 자리에 앉아 보거라.”

말을 마친 매창이 자리 잡고 앉았다. 

“아씨, 소녀는 밖에서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는데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허균의 귀를 간질이고 있었다.

“일이 있으면 일을 마무리 해야지. 그래야 홀가분하게 쉴 수 있는 노릇이고.”

별을 바라보던 매창의 시선이 허균에게 향했다.

“그러면 일을 마무리하고 바로 이곳으로 오도록 하거라.”


별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급히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나리, 저 아이가 마음에 드시옵니까?”

“허 허, 이 사람은. 쓸데없는 소리를.”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고 진심으로 아뢴 것이옵니다.”

매창의 표정이 잔잔했다.

그 표정에서 여타의 다른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진심이오?”

“나리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기꺼이 자리를 마련하겠나이다.”

매창의 차분한 표정이 어색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허균이 이상한 눈초리로 매창을 바라보았다.

“왜요, 나으리.”

“혹시 그대가 내게 싫증나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어 그런다오.”

매창이 잔잔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나리!”

미소를 보내던 매창이 정색하며 허균을 불렀다.

“말해보구려.”

“나리께서는 남녀 간의 사랑을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남녀 간의 사랑이라…….”

“소녀는 그간의 경험으로 사랑,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은 주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특히 자신이 마음 속 깊이 사랑하는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지요.”

허균이 가만히 매창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 이야기인즉슨, 자신을 위해서 기꺼이 별이란 아이를 주선해 줄 수 있는데 그는 결국 자신에 대한 정 때문이라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었다.

별을 탐내는 난봉꾼의 기질 발휘
매창, 별과의 자리를 권유…거절

“이보게, 매창. 이야기가 너무 난해하구려. 그러니 우리 다른 이야기나 합시다.”

에둘러 이야기를 마친 허균의 손이 다시 술잔으로 움직이자 매창이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안주에 손을 뻗었다.

“그러시다면 그 부분은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찬찬히 생각해보시도록 하시지요. 대신 그 이후의 일이나 말씀해 주시지요.”

“그 후의 일이라면.”

“강릉에서의 생활 말이옵니다.”

순간 묘한 생각이 허균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앞에 앉아 있는 매창이 처음 만난 여인이 아니라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과 함께 해왔던 그런 사람으로 생각됐다.

그윽한 시선으로 매창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의 의미는…….”

“갑자기 야릇한 생각이 들어 그런다오. 그대를 바라보니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이가 아니란 생각이 드는구려. 마치 전생에 깊은 인연이었던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단 말이오.”

“송구하옵게도 소녀 역시 그런 생각했사옵니다.”

“허허, 이런 경우를 두고 일심동체니 이심이 전심이라 하는 게 아니겠소.”

“물론이옵니다.”

“나도 그러이.”

“소녀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그 은혜 하해와 같사옵니다.”

허균이 손을 뻗었다.

매창이 그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신의 손을 뻗어 허균의 손을 잡았다.

매창의 손이 차가웠다. 

“손이 왜 이리도 차갑소.”

“그야…….”

볼일을 보고 닦은 지 얼마 되지 않으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무언의 표정으로 답을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좋소, 내 이야기하리다.”

“나리, 소녀가 어색하옵니다. 이제는 그냥 하라 하십시오.”

“허허, 그것은 아니 될 말이오. 매창이 그러지 않았소. 사랑은 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해주는 것 역시 진정한 의미의 사랑 아니겠소.”

매창의 얼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일부분이라고 한다면 결국 나일 터. 나를 존중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해줘야 함이 당연하지 않겠소.”

“소녀, 하해와 같은 나리의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나이다.”

매창이 약간은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매창이, 강릉의 바다는 파란 것이 하늘 색깔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오. 마치 하늘을 바다에 풀어놓은 듯하오.”

“그렇다면 강릉의 바다 색깔은 바다 색깔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하늘 색깔 때문에 파란 것이 아니온지요.”

파란색의 이유

허균이 강릉의 바다를 그리고 있었다.

매창의 이야기가 맞을 듯했다.

모래 색깔도 또 물속에 있는 바위의 색깔도 파란 색이 아니었는데 바닷물은 온통 파란색이었다. 그렇다면.

“매창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구려. 아니, 그런 모양이오. 파란 하늘을 그대로 품에 안은 듯.” 

“또한 나리의 파랗게 멍든 마음의 색깔이 함께 했고요.”

매창이 가슴시리도록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잠시 매창을 바라보다가 매창의 손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당겼다.

아무런 저항 없이 다가온 매창의 손에 입과 코를 마주 대보았다.

그곳에서 파란 바다 냄새가 일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