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코로나19에 봄이 가려졌다. 햇살은 따뜻하고 꽃은 만개하는데 시민들은 봄을 누릴 수 없다. <일요시사>서 화사한 봄을 담은 개인전을 소개한다. 야외서 접할 수 없는 봄을 전시장서라도 만끽할 수 있길 바란다.
부산 해운대구 소재 소울아트스페이스서 김덕용의 개인전 ‘봄 - 빛과 결’ 전시를 준비했다. 관람객들은 봄의 기운과 생명력을 풍성하고 원숙한 이미지로 담아낸 작품과 마주할 수 있다. 김덕용은 이번 전시서 30점 이상의 신작과 새로운 시리즈 작품을 선보인다.
추위 뚫고
나무는 돌이나 금속보다는 무르지만 생명이 있는 것 중 가장 단단한 매체다. 나무에는 어두운 땅속, 생을 다했을 것 같은 씨앗으로부터 기적처럼 싹을 틔우고 성장을 넓혀간 에너지와 역사가 깃들어 있다. 인류가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키고 풍요로운 삶을 선사하는 데 나무는 아낌없는 도움을 줬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창작활동의 기반이 되는 종이 또한 나무서 만들어진다. 김덕용이 나무를 캔버스 삼아 작품을 제작하는 이유도 그 존재 자체가 주는 ‘덕(德)’ 때문이다. 사용한 사람의 흔적이 밴 나무는 절대 뒤틀리는 법이 없어 그림의 좋은 바탕이 된다.
신작 30점 선보여
나무를 소재 삼아
김덕용은 오래된 가구나 나무문의 판을 깎는 등 고목을 다듬어 그 위에 가구용 안료, 석채, 단청 재료를 혼합해 채색했다. 나무 위에 이미지를 판 후 속을 채우고 표면을 갈아내는 상감법을 응용하거나 나전칠기의 방식을 따라 자개를 붙이기도 했다.
나무와 자개가 가지는 구조적이고 견고한 특징은 회화나 건축, 공예의 기법을 다양하게 실험하는 데 적합하다. 김덕용은 책을 통해 혹은 장인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직접 실험해가며 다루기 쉽지 않은 재료를 만졌다.
재료를 만지는 과정에는 힘은 물론, 부드럽게 선을 긋고 면밀히 색을 입히는 섬세함이 동시에 요구된다. 한국적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는 그의 어린시절 포부가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재료부터 기법까지 모두 한국 전통에 기인한 작품으로 완성됐다.
그는 나무의 나이테 동심원을 그대로 살려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또 나무를 파내면서 갈라진 거친 표면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유려한 풍경을 펼쳐냈다. 특히 봄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다양한 꽃을 다룬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향기 높은 꽃을 피우는 홍매화, 분홍빛 가득한 복사꽃 등을 표현했다.
‘관대한 사랑’이라는 꽃말답게 드넓게 펼쳐진 자운영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렸다. 금빛 산수유가 여러 개의 창에 그려진 ‘차경-산수유’는 각기 다른 관점을 갖는 마음의 창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표면을 까맣게 태운 작품
소멸이 아닌 재생·되살림
나무 표면을 까맣게 태운 작품도 다수 소개하고 있다. 봄의 전형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김덕용은 이 태움을 소멸이 아닌 재생과 되살림으로 바라봤다. 겨울을 지나 소생하는 봄의 기운과 생명력을 강조했다. 까만 부분은 꽃을 더욱 도드라지고 간절하게 만드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숯가루를 잘게 쪼개 빼곡히 얹고 자개를 더해 옻칠로 마감한 작품 ‘심현의 공간’을 통해 표현하려 한 것은 우주다. 미지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빛은 기나긴 겨울의 어둠을 거치고 생명의 봄빛을 향한 지점과 닿아 있다. 쓰임을 다하고 태워져 숯이 된 뒤에도 예술의 일부분이 되는 나무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소울아트스페이스 관계자는 “김덕용은 이번 신작을 통해 더욱 완숙한 기량으로 끊임없이 도약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며 “김덕용의 창을 통해 산과 들에 피어난 봄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마음에도 봄빛이 차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로와 희망
이어 “어두운 새벽을 밀어내고 떠오르는 해, 추위로 얼어붙었던 표면을 뚫고 살아난 역동적인 봄의 빛과 결을 따라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우리 삶에 위로와 희망의 꽃잎을 틔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6월23일까지.
<jsjang@ilyosisa.co.kr>
[김덕용은?]
▲학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서울대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
‘봄 - 빛과 결’ 소울아트스페이스(2020)
‘결 - 사이 間’ 소울아트스페이스(2018)
‘오래된 풍경’ 이화익 갤러리(2017)
‘코리안 아트 나우 II’ 수잔 일레이 파인아트(2016)
‘결이 흐르는 공간’ 소울아트스페이스(2015)
‘김덕용展’ 켄지 타키 갤러리(2013)
‘시간을 담다’ 갤러리 현대(2011)
‘박경리와 김덕용 특별전’ 갤러리 현대(2009)
‘김덕용展’ 켄지 타키 갤러리(2009)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