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올림픽 격변기 “게임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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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0.04.13 09:18:43
  • 호수 12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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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뉴스] 코로나19 사태로 오는 724일 개막 예정이었던 ‘2020 도쿄올림픽1년 후로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프랑스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근대 올림픽이 부활된 지 124년이 흐른 지금, 그동안 역사적인 격변기에 휘말렸던 역대 올림픽들을 살펴봤다.
 

▲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191274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서 열린 제15IOC 총회서 IOC는 후보지 중의 하나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탈락시키고 독일 베를린서 1916년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독일 제국의 황제 카이저 빌헬름 2세에게 전보를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1916년 베를린

독일은 올림픽을 위해 베를린 서쪽 그뤼네발드지역에 3만 석 규모의 주경기장을 건설했다. 당시 올림픽 역사학자 볼커 클루게는 그뤼네발드 주경기장이 올림픽 최초의 스포츠 단지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독일 스포츠의 정신적 본거지가 될 중심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191368일 완공된 주경기장은 카이저 빌헬름 2세의 즉위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기념행사서 독일 경기장(German Stadium)’으로 명명됐다.

올림픽 경기의 진행 프로그램은 게임 위크’(528일부터 64일까지), ‘스타디움 위크’(71일부터 10일까지), ‘세일링 위크’(812일부터 21일까지) 세 부분으로 나눠 계획됐다.


올림픽의 모든 준비는 1914627일과 28일에 열린 테스트 이벤트까지 잘 진행됐다. 그러나 628일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과 그의 아내가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결국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전쟁에 휘말린 대부분 국가들 간 갈등으로 인해 결국 1916년 베를린에서는 올림픽을 개최할 수 없었다. 쿠베르탱은 전쟁 중 IOC 본부를 스위스의 로잔으로 옮겼고, 독일 제국은 전쟁 기간 중 올림픽 주경기장을 포함한 그뤼네발드의 스포츠 단지를 철거했다.

그후 독일은 동일한 장소에 다시 경기장을 건설해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주경기장으로 사용한다.

1940년 도쿄

20113월 발생한 일본의 관동대지진과 쓰나미 사태 후 2013년 일본의 도쿄가 2020년 대회 개최지로 선정된 것과 동일하게, 일본의 수도인 도쿄는 1923년 대지진 후 올림픽을 통한 재건의 기대를 품었던 1940년 올림픽 후보지였다.

당시 일본 유도의 창시자이자 일본 최초의 IOC 위원인 전설적인 스포츠인 가노 지고로가 1940년 일본의 도쿄올림픽 개최를 주도했다. 도쿄는 1936년 베를린서 열린 제36IOC 회의서 선정됐다.

왕위 계승자 아내 암살로 중단
1·2차 세계대전 때문에 연기


이 대회는 전설 속 일본의 초대 황제였던 진무의 대관식 2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릴 예정이었으나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중일전쟁이 발발하며 개최가 어렵게 됐다.

1938716일 일본 IOC 위원인 토구카와 소에시마는 코메 드 바일레-라투르 당시 IOC 위원장에게 서신을 보내 즉각적인 평화의 전망이 없는 오랜 적대행위가 도쿄 올림픽 개최의 취소를 의미하는 것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명시하며 올림픽 개최 포기를 통보했다. 동시에 같은 해 일본도 홋카이도 최북단 섬 삿포로서 열릴 예정이던 동계 올림픽 개최도 취소됐다.

그후 IOC1940년 하계 올림픽의 대체 개최지로 핀란드의 헬싱키를 선택했고, 동계 올림픽의 대체 개최지는 스위스의 상트 모리츠로 계획했고, 이후 헬싱키를 다시 독일의 가르미슈-파텐키르헨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역시 개최되지 못했다.

일본은 1964년 하계 올림픽을 도쿄서, 1972년 동계 올림픽을 삿포로서 개최하며 결국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가 됐다.

1944년 런던

39IOC 총회는 19396월 런던서 열렸으나 독일군의 군화 소리가 이미 유럽 전역에 울려 퍼지고 있던 시기였다. 독일 제3제국의 군대가 폴란드를 침공한 91일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이 시작됐다.

영국의 런던은 1944년 개최지로 로마(이탈리아), 디트로이트(미국), 로잔(스위스)에 앞서 올림픽 무대를 꾸몄다. 그러나 프랑스처럼 영국은 전쟁 발발 후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독일과의 전쟁에 참가했다.
 

세계를 폐허로 만든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항복으로 1945년서야 끝이 났고, 1944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였던 영국 런던과 동계 올림픽 개최지였던 이탈리아 코르티나 담페초서 올림픽은 열리지 않았다.

그후 런던은 1908년 대회 40년 후, 2차 세계대전 종전 3년 만에 두 번째로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다. 1948년 올림픽은 독일의 폭격으로 상처를 입은 영국의 수도 런던서 열렸는데 궁핍한 올림픽으로 알려졌다.

“일본 처음 아니다”
후보지 꼽혔다 포기

전쟁의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은 참가하지 않았고, 1948년 런던올림픽은 전 세계에 재건에 대한 한줄기 희망을 안겨주었다. 동계 올림픽 또한 1948년에 스위스 상트 모리츠서, 1952년에는 노르웨이의 오슬로, 1956년에는 드디어 이탈리아의 코르티나 담페초서 개최됐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대회 기간 중 경기가 중단된 사태가 발생한 올림픽이다. 1972년 뮌헨서 열린 하계 올림픽 기간 중 95일 오전 팔레스타인 테러단체인 검은 9월단(Black September)’의 테러리스트들이 올림픽 선수촌의 이스라엘 팀 숙소에 침입해 인질들을 구금한 사태가 발생했다.

인질극 과정서 11명의 이스라엘 선수, 코치, 심판, 그리고 한 명의 서독 경찰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으로 IOC는 올림픽 기간 중 34시간 동안 모든 경기를 중단시켰다.
 

다음 날 올림픽 경기장서 무고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약 8만명의 관중 앞에서 열렸고 베토벤의 3번 교향곡의 장례 행진곡이 연주됐다. 당시 IOC 위원장 에이버리 브런디지는 게임은 계속돼야 한다고 발표했다.

국제 스포츠 운동은 테러리즘에 굴복하기를 거부했고, 평화, 나눔, 단결이라는 올림픽 정신이 자리를 잡았다. 올림픽과 그 이후, 특히 올림픽 선수촌을 보호하는 면에서, 올림픽 경기에선 보안이 강화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은 이후 자국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요원들로 해금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에 관계된 테러리스트들을 끝까지 추적해 응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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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