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36)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는 거래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정공법으로 나갈 땐 단도직입적으로 밀어붙여라
상대방에게 약점 잡힐 어떠한 구실도 주지 마라

서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반기며 강 전무라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 자는 모 중견 건설회사 영업전무로 근무하다 명퇴를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여직원이 차를 내왔다. 세 사람은 차를 마시면서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강 전무는 내가 갑자기 나타난 게 몹시 의아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애써 감추는 듯했다. 차를 마시며 연말 분위기 얘기를 잠깐 하다가 서 사장이 슬며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저어, 강 전무님! 여기 임 이사는 저와 친구이기 전에 이 회사에 투자한 동업자로써 저와 같은 실질적인 오너입니다.”
“아예….”

강 전무라는 자가 서 사장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새로운 사실에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 사장은 강 전무의 생각에는 관심이 없다는 투로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어제 돈을 입금 받으면서 작성한 약정서가 내용상 문제점이 없는지 한번 검토해달라고 요청해서 이렇게 임 이사가 온 겁니다.”
강 전무는 뭔가 일이 꼬여간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서 사장과 나는 서로 눈빛을 교차하면서 이심전심임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눈짓을 하고 이번에는 내가 말을 시작했다.

“저어 강 전무님! 서 사장으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좋은 분들 소개해주시고 영업을 도와주신다는 말을 듣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뭘요, 아직 제대로 된 영업을 이룬 것이 없는데….”
강 전무는 멋쩍은 듯 겸손을 떨었다. 나는 서 사장이 강 전무로부터 약정서를 건네받아 보관하고 있는 것인 양 넘겨짚듯이 말했다.
“아 참, 서 사장 약정서 좀 봅시다.”
내 말을 눈치 챈 서 사장도 그럴듯하게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 전무님께서 지금 막 주시려고 하는 차에 자네가 도착한 거라네.”
“아, 잘 되었군 그래.”

음흉한 술책 노출돼


강 전무는 우리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주머니에서 돈을 입금해준 상대방 회사의 상호가 찍힌 봉투를 꺼내 서 사장에게 건네주었다.
봉투를 받은 서 사장은 꺼내보지도 않은 채 곧 바로 다시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어차피 이런 거래를 중단하기 위해 만난 것이기에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강 전무에게 어떠한 약점도 잡힐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약정서 내용이 중요한 것처럼 그리 길지 않은 문언을 면밀히 검토하며 천천히 읽어 나갔다. 어제 밤에 서 사장이 말한 내용의 요지와 별 차이가 없었다.

“뭐, 내용을 파악해 보셔도 알겠지만 특이할 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그저 제가 돈이 좀 필요해서 친구회사로부터 차용하는데, 그 친구회사 사정상 이런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하기에 형식상 작성한 것에 불과한 겁니다.”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던 강 전무가 속이 탔는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의 음성이 몹시 긴장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침착하게 그를 쳐다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예, 물론 별문제는 없겠지요. 그런데 친구회사에서 돈을 차용하면 그냥 차용증을 작성하면 될 것인데, 굳이 우리 회사에서 이렇게까지 개발선급금을 지불한 것으로 약정하신 이유는 뭡니까?”
나는 우리 회사라는 대목을 강조하면서 조금 전보다 더 단호한 표정으로 강 전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강 전무가 흠칫하고 있었다. 그가 변명조로 말했다.

“그쪽 회사 사정상 돈을 인출하는데 이런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해서…. 그리고 제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차용증을 작성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이해하기 어렵지요! 대여인 회사에서 돈을 차용하는 차주로부터 차용증을 받았으면 그만이지, 법인통장을 이용하도록 허락해준 선의의 제3자에게 이런 약정서까지 받아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지 않습니까?”
“아니 그러면, 제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각서를 작성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강 전무는 목전에 1억원이 걸려있기에 어떻게라도 돈을 받기위해 나를 설득하고자 하는 눈치였다.

죽 쒀서 개 주는 격

“물론 그렇게 각서로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건 서 사장과 강 전무님 두 분 쌍방 간의 문제만은 아닌 듯합니다. 지금 두 분이 아무리 안전장치를 한다고 하더라도 돈을 빌려준 당사자는 다른 분이 아닙니까? 입금해준 상대방 회사가 이 약정서 자체를 무효로 하고, 서 사장 개인이나 회사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확실한 안정장치가 없는 한 서 사장과 회사의 책임은 면할 수가 없는 것 아니겠어요? 이런 상태에서 돈을 제때에 상환하지 못하게 되면 그쪽에선 이 약정서를 들고 나올 게 아닙니까? 그럴 경우 아주 복잡한 문제로 발전되지 않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쪽 회사에서는 돈의 책임은 우리 측에 전가하고 돈 1억원은 다른 사람들이 챙기게 된다 이겁니다.”

말을 하면서 강 전무를 살피자, 그는 마치 자신의 음흉한 술책이 사전에 노출되어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이번일은 변칙이고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벗어난 거래일 뿐만아니라 일반적으로 해서는 안 될 거래라 이겁니다.”
어차피 정공법으로 나갈 바에는 단도직입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핵심을 찔러 말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한층 굳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과잉 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겠습니까마는 그렇게 염려가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강 전무는 더 이상 설득할 말을 찾지 못한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이 틀어져 굴러들어온 1억원이라는 돈을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닌지 안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하고 말에 힘을 실어 대꾸했다.

“그냥 원점에서 다시 하시죠?”
“어떻게요?”
“강 전무님께서 돈을 빌려주고자 한 대여인 회사에 가서 제 뜻을 전하세요. 좀 전에 말 한 바대로 이 계약서를 무효로 하고 단순 통장계좌만 이용하는 것으로, 돈을 강 전무님께 건네줘도 우리 서 사장 개인과 회사 측에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오시면 됩니다. 각서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함과 동시에 강 전무님께 돈을 건네주겠습니다. 아니면 저도 달리 방법 없이 이번 건을 무효로 돌리고 그 쪽에 돈을 반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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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