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요.” 3명의 네팔 노동자들은 어눌한 발음이지만 힘줘 말했다. 돈을 벌어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만이 그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처럼 느껴졌다. 네팔까지는 비행기 직항으로 6시간이 걸린다. 한나절도 채 안 걸리는 거리지만 지금은 한국을 떠날 수 없다. 설날 역시 그들에겐 그저 지나가는 하루일 뿐.
한국 사람들은 명절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귀성 인구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명절마다 민족대이동이 일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추석에는 닷새간의 연휴 동안 전국서 총 3356만명, 하루 평균 671만명이 고향을 향해 떠났다. 고속도로로 서울서 부산까지 가는 데 8시간30분이 걸렸다.
명절 때마다…
명절 때면 귀성 행렬에 동참하지 못한 이들을 조명하는 보도가 나온다. 취업을 준비하느라 고향에 갈 시간이 없는 취준생, 국방의 의무로 군대에 매여 있는 군인,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가족을 보러 갈 수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 떡국을 먹는 모습은 설 풍경의 식상한 단면이 됐다.
법무부 집계에 따르면 2018년 6월 말 기준 취업 비자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는 101만8419명에 달한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늘었다. 여기에 관광 비자를 받고 들어오거나 취업 체류 기간이 지났는데도 한국에 머무르는 불법체류자 32만명을 합치면 전체 외국인 노동자 수는 130만명을 웃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영세 중소기업의 공장부터 이삿짐센터, 식당 주방, 건설 현장, 요양병원, 농어촌 등 일손이 부족한 전 업종에 퍼져 있다. 특히 3D(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자리는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의 몫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의 노민선 연구위원은 “3D업종은 외국인 없이는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서 외국인 노동자는 ‘어디에나 있지만 또 어디에도 없는 존재’로 인식된다.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영세 중소기업이 굴러가지 않을 만큼 인력난 해결에 큰 도움을 주고 있지만,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들이기 때문이다.
외노자 100만명 넘어
명절 동료들과 함께
실제 지난해 9월 경기도 산하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발간한 <경기도 외국인 근로자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생활서 겪은 가장 큰 어려움으로 58.4%가 ‘언어와 소통 문제’를, 23.7%가 ‘한국인들의 편견과 차별대우’를 꼽았다. 편견과 차별을 겪은 외국인 노동자의 70% 이상은 ‘그냥 참았다’고 답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지탱하는 힘은 돈을 많이 벌어 고향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겠다는 소망이다. 지난달 27일 충북 청주의 한 생산 공장서 만난 네팔서 온 3명의 노동자 케샵, 루송, 미라주도 마찬가지였다. 케샵은 8년, 루송과 미라주는 6년 전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들어왔다.
네팔 출신 외국인 노동자는 최소 3만3000명 이상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세청이 발간한 <2019년 국세통계 연보>에 따르면 2018년 귀속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을 신고한 외국인 노동자는 57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네팔서 온 외국인 노동자는 3만3000명으로 중국(20만5000명), 베트남(4만3000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네팔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아 한국으로 왔다는 케샵과 루송, 미라주는 “돈을 많이 벌어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41세의 케샵은 “혼자 벌어서 가족이랑 살아야 했는데 네팔에는 일자리가 없었다”며 “결혼을 일찍 해서 큰아들이 21세, 막내딸이 20세다. 애들 공부도 시켜야 한다”고 언급했다.
루송은 결혼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다. 신혼이지만 신부는 네팔에, 루송은 한국에 있어 생이별 상태다. 루송은 “아내가 너무 보고 싶다”며 “돈을 많이 벌면 고향에 가서 작은 공장을 차려 친구 3∼4명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루송이 아내를 보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1년. 그의 신혼은 1년 후에야 시작된다.
미라주는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딸이 하나 있는데 올해 세 살이다. 정말 사랑한다”며 “한국서 돈을 많이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면 사업을 하고 싶다. 지금은 그저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다.
미라주는 딸에게 한복을 선물로 사주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아내와 딸이 정말 많이 보고 싶다. 가족들을 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 여긴 너무 멀고 힘들다. 같이 있고 싶다”고 심경을 밝혔다. 미라주 역시 1년 뒤에나 딸을 만날 수 있다.
현지에 일자리 없어 한국행
“돈 많이 벌어 돌아가고파”
케샵과 루송, 미라주는 일을 하면서 힘든 점이 없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말을 아끼면서도, 한국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다고 했다. 케샵은 “한국인들에게 편견을 받은 적은 없다. 물론 나쁜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그런 일을 겪은 적은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가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인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안 좋게 보는 면도 있는 것 같다”며 “(한국인들이) 다같이 사랑하고 행복하고 도와주고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후 세 사람은 인터뷰가 조금 편안해진 듯 각자 휴대폰을 꺼내 가족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루송은 한 달 전 아내와의 결혼식 사진을, 케샵은 지난해 네팔로 잠깐 돌아갔을 때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하듯 건넸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가리켜 ‘마누라’라고 말하면서 환히 웃었다. 미라주는 딸 사진을 내보였다.
비자는 4년10개월씩 한 번만 연장이 가능하다. 세 사람이 한국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10년 남짓인 셈이다. 케샵은 1년7개월, 루송과 미라주는 3년10개월 정도 한국에 더 체류할 수 있다. 케샵은 “(비자가 끝나) 네팔로 돌아가면 여행사나 식당 등에서 일을 하고 싶다. 한국서 한 것과 똑같은 일을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리운 가족
케샵과 루송, 미라주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 가운데 미혼자는 없다고 한다. 다들 가족은 네팔에 있고 혼자 한국으로 들어와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세 사람과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서 케샵은 “속마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며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다들 열심히 잘 살고 있다. 다들 행복하게 다같이 잘 살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루송 역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