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송구영신 특별대담> 홍콩 사태 진단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12.30 10:03:55
  • 호수 12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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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밤이 지나면 새벽은 온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만 독립에 앞장선 ‘민주화의 대모’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이 홍콩 사태에 입을 열었다. 국회 연설을 성공리에 마치고 <일요시사>와 만난 뤼슈렌은 ‘중립’을 통한 동아시아의 평화를 강조했다. 
 

▲ ▲ &lt;일요시사&gt; 대담 나누는 리슈렌 전 대만 부총통 ⓒ문병희 기자

“대만과 한국은 숙명적으로 운명공동체입니다.” 여의도의 한 호텔서 만난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은 인터뷰 내내 한국과 대만과의 관계를 강조했다. 미중 패권주의가 극으로 치닫고 있는 국제 정세서, 두 국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형제·자매의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는 것. 뤼슈렌 전 부총통이 강조해온 ‘평화와 중립’이다. <일요시사>와 뤼슈렌 전 부총통은 한국-대만 국교정상화와 홍콩 사태로 본 평화와 중립의 필요성에 대한 담론을 나눴다. 다음은 뤼슈렌 전 부총통과의 일문일답.

- 이번 방한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대만은 과거 몇 년 동안 중국의 억압에 의해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수많은 국가들과 국교가 단절됐습니다. 이런 상황서 한국의 많은 분들이 공개리에 대만과의 국교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했고, 방문 기간 동안 한국의 많은 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 양국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해서는 개인은 물론 국가적인 노력 또한 필요합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저도 양국 정부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992년 대만과 한국이 단교됐을 당시에 저는 대만 국회의 외교위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국민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정부에 건의하는 일 역시 정부 간의 소통만큼 국교정상화를 추진하는 데 중요합니다. 최근 한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과 호주 국회서도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 어떤 서명운동입니까.
▲독일에서는 지난 9월11일, 중국과의 관계를 모색하는 과정서 민주적인 대만과의 관계를 포기했던 일이 온당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양심선언이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1개월 사이에 서명운동이 전개됐고, 이미 법정 서명 인원 수를 초과해 독일 국회에서는 이번 달 9일, 정식으로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호주서도 비슷한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나라의 국회나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준다면 대만은 국교가 끊겼던 세계 여러 나라와 관계를 수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 ⓒ문병희 기자

- 중국의 압박이 예상됩니다만. 
▲물론 북경(중국 정부)에서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 따라서 그들과 수교한 나라들에 대해 대만과 수교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 중국의 입장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저는 난센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중국을 말한다면 ‘하나의 대만’도 가능한 겁니다. 중국의 무리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대만 숙명적 운명공동체
국교정상화, 민간도 나서야…

- 방한 중 국회서 강연을 하셨습니다. 준비를 하시면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입니까?
▲대만과 한국이 역사적으로 이어져왔다는 점을 알리는 데 가장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동학당 사건으로 청일전쟁이 야기됐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대만이 피해를 받았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미국은 중국의 모택동정부를 지지하던 기존 입장서 선회해 대만해협의 중립이라는 정책으로 바꿉니다. 한국전쟁이 부른 미국의 정책 변화가 대만을 살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대만과 한국이 숙명적으로 운명공동체라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 홍콩 사태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한국 국회서 연설했을 때도 홍콩 사태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애초에 법안을 반대하는 운동으로 시작해 지금은 ‘반 중국’이라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홍콩 쪽 소식에 의하면 몇 개월 사이에 다친 사람은 5000여명이 되고, 사망한 사람은 500여명에 달합니다. 거의 전쟁이라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 홍콩 사태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어떤 여학생이 시위과정서 한 말입니다. 14세의 여학생이었데 언론은 그 여학생에게 ‘왜 시위에 참가하느냐’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여학생은 “내가 비록 지금은 14세지만, 만약에 지금 내가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면, 15세가 됐을 때 홍콩이 없어질 수 있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지금도 그 말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 진정되는가 싶었던 홍콩에 다시금 긴장이 감돕니다. 홍콩 당국이 시위대의 자금줄을 차단하려 하자 투쟁 동력을 유지하려는 시위대가 크게 반발한 일입니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러한 일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홍콩 시민들이 최류탄으로 기관지 손상을 입었고, 피부괴사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 최근 홍콩 기초선거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말이 있잖습니까. 칠흑 같은 밤이 지나면, 새벽이 가까워 온다. 홍콩 시민들이 자유를 위해 노력한 일들이 선거 결과로 표출됐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북경서 이렇듯 강력한 여론을 무시한다면, 또 다른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 홍콩 사태를 보는 대만인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홍콩 젊은이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대만 젊은이들의 정치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에 서명했습니다. 중국은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 홍콩 당국에 의해 체포된 홍콩 시민들이 중국으로 이송된 게 아닌가라는 얘기도 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의가 홍콩 시민들에게 너무 늦게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홍콩 사태가 우리 대만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정치·역사 유사”
형제·자매 강조

- 홍콩 사태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 역시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에 의해 홍콩 시민들이 많이 희생된 것처럼 미중 간 힘겨루기가 대만의 피해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저희 생각에는 한국도 경계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어떤 식의 대처가 필요할지 궁금합니다.
▲제가 대만서도 주창하는 ‘평화와 중립’입니다. 주변국들은 평화와 중립을 지향하며 자국의 이익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같은 제 생각은 현재 대만과 우리 주변국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 대만에서는 곧 대선이 치러집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차이잉원 총통이 추진하는 많은 사안에 대해 찬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대선 출마를 선언했었습니다. 정당의 추천이 아닌 무소속 출마이다 보니 서명 요건을 갖춰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서 많은 방해공작을 받았고 결국 출마를 포기했습니다. 

- 다시 도전할 의사는 있으십니까?
▲늘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만약 대만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전 늘 대만의 평화와 중립을 외쳐왔습니다. 과거 차이잉원 총통은 이러한 제 생각에 지지의사를 밝혔지만, 이후에는 보이콧을 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 대만 국회에서는 차이잉원 총통의 박사학위 취득 의혹과 관련해 청문회까지 열렸습니다. 실망을 감출 수 없습니다.
 

▲ 최민이 일요시사 편집국장과 대담 나누는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 ⓒ문병희 기자

- 주제를 바꿔서 질문을 드립니다. 21세기경제사회연구원과 함께 매년 동아시아평화포럼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현재 3회까지 개최됐는데, 4회 포럼은 어디서 열 계획입니까.
▲1회 대만, 2회 한국, 3회는 다시 대만서 성황리에 마무리됐습니다. 한국과 대만서 개최했었으니 4회는 동경이나 마닐라서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과 대만뿐만 아니라 일본과 필리핀서 많은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유준상 21세기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등이 워낙 큰 역할을 하셨기 때문에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한국서 포럼이 열렸으면 합니다.  

- 앞으로도 대만이 하나의 중국에 휩쓸리지 않고 독립된 존재로 한국과 공동의 번영을 이뤘으면 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요시사>와 같이 영향력이 있는 매체와 인터뷰를 하게 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건의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대만에는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한국을 무척 좋아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서도 대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에 대만에서는 제가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 한국을 널리 알리도록 노력할 테니, 한국서도 대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한국과 대만은 정치·문화·역사적으로 어느 나라들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민간의 교류·협력을 통해 양측의 관계가 지금보다 더 강화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고, 진정한 형제·자매의 나라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대담 = 최민이 편집국장
정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뤼슈렌은 누구? 

뤼슈렌 대만 전 부총통은 대만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가다. 뤼슈렌은 대만의 첫 여성 부총통으로 천수이볜 총통 시절 10대·11대 부총통을 지냈다. 뤼슈렌은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 창당 멤버로 ‘민진당 출신 첫 부총통’이란 타이틀도 갖고 있다. 민진당 대표 등을 역임한 그는 당을 대표하는 원로 중 한 사람이다.


뤼슈렌은 대만의 민주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지난 1970∼1980년대 대만의 민주화를 위해 거리와 감옥서 투쟁했다. 뤼슈렌은 1979년 대만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 중 하나인 ‘메이리다오 사건’의 1급 주동자로 체포됐다. 

메이리다오 사건은 1979년 12월10일 발생했다. 뤼슈렌 등 민주화 인사들은 대만 가오슝서 잡지 <메이리다오>를 창간하는데 잡지의 이름은 노래 제목서 따왔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집회를 불허했지만, 이날 뤼슈렌 등은 잡지 창간 기념집회를 열었다.

뤼슈렌 등은 이날 대만의 민주화를 요구하다 경찰과 충돌했고, 당시 국민당 정부는 집회 주동자들을 강경 탄압했다. 당시 사건의 변호를 맡은 인물이 뤼슈렌과 함께 대만 총통을 지냈던 천수이볜이다. 

뤼슈렌은 이 사건으로 1980년 1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만의 민주화와 함께 1985년 특별사면됐다. 뤼슈렌은 석방 이후 민진당을 창당했다. 한편 ‘메이리다오’는 현재 대만의 독립과 민주화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뤼슈렌은 여성운동에도 앞장섰다. 페미니즘 문학 전문출판사를 이끌며 여성들에게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뤼슈렌은 지난 2000년과 2004년 총통 선거서 민진당 소속으로 천수이볜 총통과 함께 승리했다. 8년간 부총통을 역임한 그는 대만의 독립과 반중국을 지향한다. 뤼슈렌은 취임 이후 대중정책과 여러 차례 부딪쳤다.


뤼슈렌은 첫 취임해인 2000년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해 “하나의 중국을 받아들이는 것은 항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논의할 수 있을지언정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 대륙과 대만, 홍콩, 마카오는 절대 나뉠 수 없고 합법적인 정부는 오직 중국 정부 하나라는 중국의 주장이다.  

2004년 중국이 ‘반분열국가법’을 추진하던 때에도 뤼슈렌은 강경하게 대응했다. 뤼슈렌은 “중국은 대만을 합병하려는 의도를 전 세계에 드러냈다”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므로 ‘분열’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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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