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16)이면

손곡 이달은 누구?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내가 왜 그대와 비슷하다고 했는지 그 연유를 아시오?”

매창이 허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직접 그 답을 이야기해줄 것을 종용했다.

“그대는 첩의 딸로 태어났다 하지 않았소.”

“그러하옵니다만.”

“그대와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나의 경우도 원래 정실부인의 소생이 아니었소.”


“그야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허균의 어릴 적

“그 이면을 살펴보자 이 말이오.”

허균이 매창을 주시하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강릉을 떠나 한양 집으로 돌아갔을 때였소. 그곳에서 아버지뻘 되는 형님을 만났소.”

매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성 형님이 나에게 배다른 형님이라 이 말이오.”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는 듯 허균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나의 아버지에게는 본부인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나 그 분이 세상을 달리하셨고 나의 어머니와 새로 가례를 올리신 것이오. 물론 이전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배다른 형님과 형제들이 있을 줄은 몰랐소.”

“그런 경우라면 저와 다르지 않은가요.”

“살아 있으나 죽은 후나 결국 그게 그거지 뭐.”

“무슨 말씀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사옵니다. 그저 제 입장에 대해 배려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사옵니다.”

막상 말을 해놓고는 허균 자신도 조금은 어이 없다는 듯이 슬그머니 미소로 답했다.

“균아!”

“네, 형님.”

“가서 네 누나를 불러오너라.”

“초희 누나를 말이에요.”

“그럼, 지금 집에 초희 말고 또 네 누나가 있느냐.”

둘째 형인 허봉이 출타했는가 싶었는데 언제 돌아왔는지 균에게 누나를 불러오라는 주문을 넣었다.


막 붓을 들어 시를 쓰려던 균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다가섰다.

“형님,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지금 아버지께서 너희 둘을 찾으시니 한번 가보자.”

“아버지께서요?”

“그러니 어서 불러 오거라.”

아버지께서 누나와 자신을 찾으신다고 했다. 둘에게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 모양인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형님,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요?”

허봉이 나이 어린, 자신과 열여덟 살이나 차이 나는 어린 동생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글쎄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고 너희 둘에게 아마 좋은 일이 생길 듯한데 말이야.”

“좋은 일이라.”

정식으로 시 공부를 하게 된 허균과 초희
스승은 손곡 이달… 관심을 보이는 매창

하기야 균을 그리고 초희를 끔찍이도 아끼시는 아버지께서 좋은 일이 아닌 나쁜 일로 부르지는 않을 터였다.

균이 내처 방을 나가 오래지 않아 초희와 함께 돌아왔다.

초희의 모습을 확인한 허봉이 둘을 데리고 아버지 거처로 이동했다.

“아버지, 저희들 왔습니다.”

안에서 아버지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어 문이 열리며 어머니의 모습도 나타났다.

어머니의 안내로 방에 들어 자리 잡았다.

“아버지께서 너희 둘, 초희와 균에게 이르실 말씀이 계시다니 잘 들어 보거라.”

아버지의 시선이 균을 향하기를 잠시 초희에게 고정되어졌다.

“너희 둘 문제로 너희 오라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균과 초희의 시선이 동시에 허봉에게 향했다.

허봉이 미소 지으며 고개 돌리고 애써 모른 체 했다.

“너희 오라비 생각으로 너희 둘에게 정식으로 공부를 시키기로 했다.”

“네, 정식으로요!”

초희와 균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왔다.

아버지께서 대답 대신 미소를 보내며 다시 초희를 주시했다.

초희의 얼굴이 상기될 대로 상기되고 있었다.

“너희 오라비의 의견대로 너희들 특히 초희의 경우 정식으로 시 공부를 시키기로 결정했다.”

“아버지, 그러면 이제는 어깨 너머로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가요.”

초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오라비 허봉과 허균의 어깨너머로 슬그머니 글을 배우고는 했는데 지금 아버지께서 정식으로 글공부하도록 배려한다고 했으니 그 심정 말로 표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초희가 아버지에게 다가 앉았다.

다가오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일전에 이야기했던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이제는 더 이상 어깨 너머로 공부하지 않아도 돼.”

“아버지, 그러면 저희를 가르쳐주실 스승님은 어떤 분이시온지요.”

균이 점잖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대답 대신 허봉을 바라보았다.

“너희 둘도 잘 알고 있겠지. 내 친구 이달 말이다. 손곡 이달.”

허봉의 친구로 자주 집을 드나들며 허봉과 함께 시를 논하던 절친한 친구였다.

시뿐만 아니었다.

가끔은 조선의 앞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견하고는 했었다.

“나리, 지금 손곡 이달 선생님이라고 하셨는지요.”“그렇소. 이달이라오. 나와 누나의 스승이 바로 이달이었다는 말이오.”

“손곡, 이달.”

매창이 가만히 손곡 이달을 되뇌었다.

“그분의 경우도…….”

허균이 슬며시 웃음을 흘렸다.

“촌은 유희경이나 매한가지로세, 암 매 한가지고말고, 아니지 더 심한 경우라고 보아야지.”

“나리, 손곡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여쭈어 보아도 좋은지요.”

허균이 잠시 주저했다.

“왜요, 나리. 말씀하시기 곤란하신지요.”

“곤란할 것은 없고…….”

“하오시면.”

더 심한 경우

“혹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그것이 염려되는 바요.”

매창의 눈이 반짝였다. 어렴풋이 이달에 대해 알고 있었던 터였다.

매창 자신의 경우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관기의 자식 즉 얼자였다.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 분의 경우 어머니께서 관기였다오.”

조심스럽게 말을 끝낸 허균이 매창의 얼굴을 주시했다.

매창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허균을 마주보았다.

 

<다음 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