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세종로국정포럼 박승주 이사장

“장차관과 대화의 장을 열어드립니다”

박승주 세종로국정포럼 이사장은 30년간 공직서 일한 정통 관료다. 행정고시 21회 출신으로 참여정부 시절엔 여성가족부 차관을 맡았다. 행정자치부 지방재정경제국장,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기획운영실장 등을 거치며 지방행정에 정통했다. 현재는 국가사회발전 거버넌스(Governance) 네트워크인 세종로국정포럼서 이사장을 맡아 정부에 다양한 정책들을 건의하고 있다. 공직서 물러난 이후에도 국민에게 봉사하는 박승주 전 여성가족부 차관을 <일요시사>가 만났다.
 

▲ 박승주 세종로국정포럼 이사장이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거버넌스(Governance)는 시민이 직접 주권을 관할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근본과 직결된다. 세종로국정포럼은 2005년 한국시민자원봉사회 민간회원들로 창립된 거버넌스다. 시민들에게 정부 정책을 알릴 수 있고, 시민들이 정부에게 정책을 건의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공론장인 셈이다. 박 이사장은 한국국제자원봉사회에서 이사장을 맡으며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다음은 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일요시사> 구독자분들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일요시사 구독자 여러분. 저는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이사장, 세종로국정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승주입니다. 저는 30년간 공직 생활을 했습니다. 지방자치제도, 지역경제 활성화, 정부 혁신 분야서 일을 해서 중앙행정과 지방행정을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범국민적인 자원봉사, 생명 존중 운동, 또 미래 전략 운동, 인성 진흥 운동 등 여러 가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을 위한 많은 활동들을 하고 계십니다.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제가 근무했던 부처가 과거에는 내무부였습니다. 국민운동을 담당하는 부처라 새마을운동이나 재건 국민운동 쪽에 관심이 많았고. 국민운동이라는 건 나라를 좀 잘 되게 하자. 사람들을 잘 살게 하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또, 고위 공직자로 일했기 때문에 마땅히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라고 생각해서 퇴직해서도 국가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30년간 공직에 몸담은 정통 관료 출신
참여정부 시절 여성가족부 차관 맡아

-세종로국정포럼에서 이사장을 역임하고 계십니다. 세종로국정포럼은 어떤 곳인가요?
▲세종로국정포럼은 한국시민자원봉사회 민간회원들로 창립된 자원봉사포럼 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밀어 주자는 국가사회발전 거버넌스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장차관님들께 정책을 직접 건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거죠. 또 장차관이 직접 정책을 설명하기도 하고요.


-세종로국정포럼의 취지가 궁금합니다.
▲시민들이 정부의 정책을 건의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민간과 경제 부문서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사람들 얘기를 직접 들어봐야 합니다. 세종로국정포럼도 그런 창구 중 하나입니다. 어느 특정 개인이 좌지우지하지 않고, 운영도 민주적이기에 세종로국정포럼은 오픈 포럼(Open forum)이고, 퍼블릭 포럼(Public forum)입니다.

-최근 세종로국정포럼서 ‘공직자 전문성 제고를 위해 스마트폰 80% 수준 활용 교육 및 공직사회 저서발간 분위기 조성’에 관련된 정책 건의를 하셨습니다. 어떤 정책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과거에는 책을 쓰고, 글을 쓰려면 수작업으로 모든 걸 다 해야 했습니다. 일일이 워드로 치고, 사진을 찍고, 직접 번역해야 했고. 그래서 책을 쓰기가 굉장히 어려웠죠. 그런데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라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금방 자료를 찾고, 저장합니다. 클라우드 기반의 저술 작업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거죠. 손 안에 컴퓨터, ‘핸드컴’으로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몇 달만 해도 책을 씁니다. 스마트폰으로 저서를 발간할 수 있게 교육을 해서 공무원들이 저서를 쓰는 분위기를 만들자. 이런 취지입니다.

-어떤 건의를 하셨습니까?
▲공직자들이 저서를 쓰는 분위기를 만들려면 정부의 장려 정책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첫째로 공직자 개인이 전문적으로 맡은 분야에 대해 저서를 쓰거나 전문 분야 저널에 글을 기고하면 근무 성적 평점에 가산점을 주자고 건의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매년 공직자 저서 경진대회, 글 논문 경진 대회를 열어달라고 건의했습니다.

거기서 좋은 책을 쓰고, 좋은 논문을 쓴 사람에 대해서는 정부 표창, 기관장 표창도 해 주시고, 다음 인사 때 우선적으로 승진시키자는 건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스마트폰 교육을 6시간만 받으면 책을 쓸 수 있습니다. 공직자들이 스마트폰 교육으로 책을 쓰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연수원서 적어도 6시간을 배정해 달라 건의했습니다.

-공직자전문성제고저서갖기운동본부(이하 공저본)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현직 시절부터 공무원 저서 갖기 운동을 해서, 저서 가진 공무원의 모임 이런 걸 했었습니다. 사실 공직자들이 저서를 갖는 것이야말로 전문성을 가장 높이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요즘 공직자분들은 저서를 갖겠다는 생각을 잘 안 하고 있어요. 그래서 공직자 저서 갖기 운동을 한 번 하자는 생각에 세종로국정포럼 산하에 공저본을 만들게 됐습니다.

-공직자 전문성 제고 방법으로 저서 쓰기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현직에 있을 때, 지방자치제도에 관한 책을 썼는데요. 그 책으로 전국의 지방의회 의원들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중앙부처가 지방자치를 해석하는 데 기여도 했고요. 이뿐 아니라, 공무원들이 저서를 쓰면 자긍심이 생겨서, 정책을 잘 만들려고 하죠. 민간에 활력을 불어 넣는 정부를 만들려면 공무원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계적으로 시야를 넓히고, 또 국민들 삶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공저본 운동으로 공무원들이 전문 분야에 글을 쓰게 해서 전문성을 높여보자 생각했습니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고 있는 박승주 세종로국정포럼 이사장

-공저본서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위한 고수급 강사를 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 분들도 수업을 들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누구나 가능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서 인공지능이 얼마만큼 발전했는지, 공직자 분들 포함해 일반 시민들도 알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또, 어르신들은 조그만한 스마트폰으로 뭐 보려고 하면 보시겠습니까. 스마트폰으로 스마트TV를 연동시켜서 큰 화면으로 유튜브로 강의 자료도 보고 음악회도 보고. 재밌고 멋있게 사시라고. 이 뿐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앱 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교육이 빼 놓을 수 없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이를 업무에 도입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일하는 방법이 스마트워킹(Smart working)으로 바뀌게 되겠죠. 스마트폰이 일의 80%, 노트북이나 PC가 일의 20%가 되는 방법이 스마트워킹인데요. 지금은 핸드폰 시대를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손 안의 컴퓨터, ‘핸드컴’으로 업무가 다 됩니다. 클라우드에 자료만 저장돼있으면 인터넷을 통해서 24시간 언제든지. 장소가 어디든지 업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죠.

-공저본에서 지난 4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해 <대한민국의 파트너,외국인> 책을 발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을 위했던 외국인들을 조명한 점에서 좀 더 특별해보였습니다. 외국인을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라를 위해 노력한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한제국 말기부터 1945년 8월 15일 전날 8월 14일까지 나라를 위해 독립 운동하거나 의병 운동하신 분들이 수십만 명입니다. 그중에 3458명은 순국선열로 나라서 훈장을 받으시고 돌아가셨지만, 이분들만 있는 게 아니라 외국 분들도 도와주셨습니다. 학교도 짓고, 병원도 짓고 신문을 창간하고... 나라의 계몽운동에 일조해주신 분들이죠. 근데 이분들에 대해 책으로 엮어낸 분이 없었어요. 외국 분들의 은혜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3·1운동 100주년에 외국인을 선정했습니다.

국가사회발전 거버넌스 네트워크
국민과 소통하고 정부에 정책 건의

-이번 해에 공저본서 추가적으로 공저본총서를 발간할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구체적으로 궁금합니다.
▲공저본서 스마트폰 교육을 받은 분들 대상으로 글을 쓰게 할 계획입니다. 근데 개인이 책을 쓰면 부담이 될 수 있으니, 1인당 각자 분량을 갖고 한 주제로 써서 묶어도 좋을 거 같습니다.

-정해 놓은 주제가 있으신가요.
▲공직자의 전문성과 미래에 관련된 것도 주제가 될 수 있겠죠. 뉴질랜드에서는 올해 가을에 휴머노이드(humanoid)가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EU에서는 휴머노이드에 인격을 부여하는 법을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미래를 주제로 글을 쓰면 급변하는 미래에 사람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방법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겁니다. 내가 지금 하는 업무가 10년 후에 어떻게 바뀔지, 지금부터 어떻게 준비해 가야 할 것인지요.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언제부터 시작하셨는가요.
▲봉사활동은 행정안전부 과장이었을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봉사가 옛날엔 일반화돼있지 않을 때라 자원봉사 운동을 해보자 했는데, 제가 젊은 층에 속했기 때문에 실무도 하고 아이디어도 내고, 구상을 했죠. 그 때는 보통 무슨 활동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생각할 때인데 “우리 돈 안 드는 운동 합시다. 사무실도 그냥 어디 한 칸 얻고, 일은 우리가 스스로 합시다” 이렇게 직접 제안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사장님에게 봉사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보통 자원봉사라고 하면 어디 복지시설에 가서 직접 하는 걸 봉사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보수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도와주는 게 봉사입니다. 그러니까 생명 운동을 하는 것도 봉사고, 국제 자원봉사 운동하는 것도 봉사고, 학부모 샤프론 하는 것도 봉사고, 모두가 다 봉사입니다. 봉사의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홍익인간’ 뜻을 살려서 민주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누군가를 돕는 게 봉사죠.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좋고, 또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좋고.

-국제 자원봉사회서도 이사장을 역임하고 계십니다. 어떤 단체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국제자원봉사라고 하면 보통 외국에 나가서 하는 자원봉사로 많이 생각하시는데요. 한국 안에서 국제자원봉사를 하자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서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응원해 주자. 하면서요.

-어떻게 국제 자원봉사활동을 할 생각을 하셨나요.
▲제가 2002년 행정안전부 국장일 때 월드컵을 한국서 했어요. 그런데 그때 월드컵을 한번 맡아서 해 보겠다고 했다가 장·차관님한테 꾸중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우리가 월드컵서 한 게임도 이긴 적이 없었거든요. “박 국장, 당신이 월드컵 담당하면 우리가 한 게임이라도 이길 것 같아?” “우리가 16강라도 갈 것 같아?” 이랬지만 해 보고 싶었죠. 그때부터  국제 자원봉사활동이 시작됐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까지 올라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왕 할 거면 뭔가 좀 신나는 일을 해 보자. 그래서 ‘한국팀 필승 전략’이라는 것을 하나 수립해 운동장에 7만명의 붉은악마를 만들었습니다. “빨간 옷을 입고 운동장에 갑시다!” 이러면서. 기억 나겠지만, 부산, 대구, 인천, 대전, 한국팀 경기가 열리는 운동장은 7만명 모두가 빨간 옷을 입었죠? 그리고 또 기억나는 게 있을 겁니다. 바로 김덕수 사물놀이단에 꽹과리요. 이 두 가지를 제가 기획한 거죠.

-당시 15개 국가가 한국에 왔었습니다. 외교와 직결되는 부분이라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우리만 응원하고 그러면 또 외국팀에게 미안하잖아요. 세계 최고의 나라들인데. 우리 대한민국의 좋은 따뜻한 정을 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동시에 했던 일 중의 하나가 코리안 서포터즈입니다. 외국팀 응원단이죠. 우리나라서 16개 나라가 조별 리그전을 했는데, 우리 한국 팀은 필승전략, 나머지 15개 나라는 코리안 서포터즈 이걸 만들었습니다.

한 나라가 3개 도시서 시합했으니깐 45개의 코리아 서포터즈를 만들었습니다. 이분들이 운동장에 가서 그 나라 깃발을 흔들고, 또 인천공항에 가서 그 나라 선수단이 오면 환영하고 이렇게 응원하니까 세계적으로 ‘이야... 축구는 전쟁인데, 전쟁서 상대방 국가를 이렇게 응원해 주다니’ 그렇게 공공외교에 상당히 큰 획을 그었죠. 그 경험을 살려서 만든 게 국제자원봉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은.
▲세종로국제포럼은 국가 사회 발전을 위한 거버넌스 국정포럼입니다. 기업인과 경제인, 이분들이  정책을 건의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빠르게 개혁할 수 있는 재료를 이분들이 드려야 됩니다. 이해관계에 얽히지 말고, 중립적 시각서 재료를 드려야 합니다. 퍼블릭 포럼서 만나서 정부에게 전달하고 최고 정책 결정권자인 장차관들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오픈 포럼이기 때문에 정부 개혁을 위해선 경제계서 잘 활용해줬으면 좋겠습니다.


<sangmi@ilyosisa.co.kr>


[박승주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카이스트 대학원 산업공학 석사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박사 
▲제21회 행정고시 합격
▲전 대통령사회통합위원회 부위원장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종로국정포럼 이사장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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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