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이태복 국민석유회사 상임대표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12.13 10: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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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4사 공룡들 덤빌 테면 덤벼봐"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기름값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조금이라도 싸게 주유하고자 알뜰주유소 앞에서 30분을 넘게 기다려보기도 하고 고작 몇 십원 할인받는 카드를 만들기도 한다. 누가 주유쿠폰이라도 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하지만 조금 싸게 넣는 다고해서 기름값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섰다.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보다 20% 싼 기름값을 목표로 하는 국민석유회사 설립 및 출범 소식을 알린 것.

 

 

국민석유회사 준비위원회 측은 이미 국민석유회사 홈페이지(http://www.n-oil.co.kr)를 마련해 차량 소유자 등 유류 소비자를 대상으로 1인 1주(1주 1만원) 갖기 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준비위가 목표로 하는 초기 설립자금은 1000억원이며 이중 국민약정 목표액은 500억원이다.

국민석유회사 출범
20% 싼 기름 나오나?

국민석유회사의 목표는 현재보다 20% 싼 기름이다. 이태복 국민석유회사 상임대표는 국내 차량소유자가 1600만명이 넘기 때문에 차량 소유자들이 1인 1주 갖기 운동에 동참만 해준다면 초기 설립자금은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국민석유회사 준비위원회 산하에 경영위원회 및 기술위원회를 둬 경영전략과 원칙, 향후 계획을 철저히 준비하고 석유는 물론 대체에너지, 환경문제 등에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기구들은 기존 정유사들 방해를 우려해 비공개로 운영할 방침이다.

사실 이 대표의 인생은 석유나 에너지와는 전혀 무관한 삶이었다. 1950년 전쟁 중에 충남 보령시 천북면에서 태어난 그는 굴속으로 피난을 가서 1년 가까이 설사병에 시달리는 등 인생을 시련으로 시작했다. 천북초등학교를 거쳐 예산중학교에 진학한 이 대표는 서울 성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 국민대 법과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 시절 대학생 아카데미활동, 고등학생 아카데미 지도위원, 흥사단 대학생 아카데미 전국연합회 총무부장과 대학생 서울 아카데미 회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대통령선거 부정선거 감시단 활동에도 참여했다.

이후 1971년 학원병영화 반대 시위와 함께 교련지지 여론을 조작한 총학생회 사퇴요구 교내시위를 조직해 학생운동을 벌이다가 제적 처리 돼 군에 강제 입대했다.
논산훈련소로 강제 입영된 이 대표는 강원도 인제군 최북방 동부전선으로 보내졌다. 이 대표는 강제 입대 후에도 독재정권의 횡포에 맞서겠다는 기개를 잃지 않았는데 '유신정신함양 웅변대회'에 참가할 것을 강요하는 상관의 지시를 거부하다가 삽자루로 머리를 맞아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더 이상 참을 수도 기다릴 수도 없다”
캐나다·시베리아산 이용 기름값 20% 내린다

1974년 만기제대로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이 대표는 학생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강제연행과 귀향조치가 반복됐다.
1977년 2월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한 이 대표는 학생운동과 강제입영, 강제연행과 귀향조치 등을 겪으면서 반독재민주화운동의 토대가 취약함을 느끼고 그해 '광민사(현재 동녘출판사)'라는 사회과학출판사를 설립했다. 광민사에서 출간한 20여 권의 책들은 70~80년대 민주화운동권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민주화운동의 사상적 토대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이유로 광민사는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판매금지 등 출판탄압을 수차례 겪었다.

광민사 설립 이후 이 대표는 노동운동의 전국적 센터를 건설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1979년 극악무도한 탄압을 자행하던 유신정권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10·26 사건으로 무너지게 됐지만 그 혼란을 틈타 전두환 정권이 등장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새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은 계속됐다. 전두환 정권은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그 배후로 이 대표를 지목했고, 1981년 6월 수사요원들에게 강제 연행돼 남영동 치안본부 분실로 끌려갔다.

학생운동 배후 지목
고문 끝에 사형 구형

이 대표는 당시 남영동 분실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수사요원들에게 모진 고문을 받았고 계엄법,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재판절차 후 사형이 구형되기에 이른다. 당시 그의 나이 32세로, 지난달 15일 31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이 난 이른바 '학림사건'이다.

국내외에서는 이 대표에 대한 탄원운동이 벌어졌고 그 노력으로 후에 진행된 선고공판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대표적인 국제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는 1986년 이 대표를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하고 대대적인 석방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한국정부에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윤보선 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 박형규 목사, 명진 스님 등 각계 인사들이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각계의 노력 덕택에 이 대표는 1988년 10월, 8년 만에 석방되기에 이른다.

출소한 이 대표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편집실장을 맡다가 어렵고 소외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신문의 필요성을 느껴 1989년 10월 <전국주간노동자신문>을 창간, 격주간으로 발행했고 1999년 일간지로 전환해 <노동일보>를 탄생시켰다.

1996년 사회복지단체인 '인간의 대지'를 설립한 이 대표는 사회복지제도의 대안을 연구하기 위해 뒤늦게 고려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학교강단에 서서 강의를 하면서 70세 이상의 무의탁노인을 돌보는 집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1년 3월 청와대에 들어가 복지노동수석을 맡게 됐고, 2002년 1월 보건복지부장관에 임명됐다. 이 대표는 장관 재임 중 국민을 위한 보건복지행정 구현을 위해 애썼다. 특히 국민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약값 인하정책을 추진하다가 국내외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로비와 반개혁세력에 밀려 2002년 7월 개각에서 장관직을 물러나게 됐다.

이후 이 대표는 점핑코리아연구소를 만들어 국가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인간의 대지 이사장을 맡아 복지활동에 정성을 쏟고 있다.
특히 사회의 빈곤층과 정직한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희망을 주기 위해 지난 2007년부터 '5대 거품 빼기 운동'을 추진 중이다. 5대 운동은 경제회생과 일자리, 행정개혁, 복지정비와 국민생활 안정, 보건 의료 구축, 교육 혁신 등 국민생활과 직결된 5대 핵심과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 대표는 당시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약값·기름값·휴대폰·카드수수료·은행금리 등 5개 항목은 정부의 감독 부실로 거품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며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적정한 이윤은 보장하되 거품은 걷어내야지 그대로 두면 국민생활 불안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렇다할 성과는 없었고 이 대표는 시장 참여를 통해 기름값부터 잡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정유4사 대응 심할 것
대책마련 이미 끝났다"

지난달 26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국민석유회사 설립추진 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말할 정도로 기름값 문제가 심각하지만 정유사의 이익을 건드리지 않고 힘없는 유통업체만 건드리니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면서 "그간 5대 거품빼기 운동을 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어 시장 참여를 통해 기름값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부에서 TF까지 만들어 가면서 기름값 안정 정책을 폈지만 TF가 친정유사 인사들로 구성되면서 현재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알려진 알뜰주유소 등으로 국민을 우롱했다"며 "더 이상 참을 수도 없고 기다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말에 따르면 현재 기름값이 비싼 또 다른 이유는 비산 중질원유와 정제비 때문이다. 정유사마다 세팅되어 있는 고비용의 정제시설이 악순환을 만든다는 것.
국민석유회사는 값싼 캐나다와 시베리아의 저유황원유를 도입해 원가, 정제비, 운송비 절감으로 값싼 기름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정유4사의 강력한 대응까지 예상하고 있다. 정유4사가 한국시장의 포화상태를 이유로 들어 신규회사 진입을 막고 있는 것에 대해 이 대표는 "정유4사의 속내는 폭리를 항구적으로 보장받자는 의도"라며 "1년에 150만대 이상 차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재벌특혜가 아닌 독과점 폭리를 뺀 국민석유회사가 출범하면 시장상황은 바람직하게 급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국민석유회사의 설립요구를 정치권력이 마냥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1천600만 차량소유자 1만원씩 출자로 1천억 설립자금 목표
인터넷 약정운동 전개…각계인사 참여해 추진위원회 구성

천문학적인 자금조달에 대한 의구심에 대해서는 SK의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이 대표는 "애초 SK도 3만5000배럴의 정제시설을 수백억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했으며 정부의 정책자금을 얻어 오늘의 거대석유회사로 컸다"면서 "국민을 위한, 소비자가 주인이 되는 국민석유회사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회사이니만큼 당연히 저리의 정책자금을 요구해야 되고, 필요하면 국민연금의 투자를 요청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국민석유회사도 추후에는 초심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다. 국민의 회사인 만큼 투명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이 대표는 ▲창립 후 경영 전문가를 공개 오디션 등의 방식으로 뽑겠다 ▲기술 정보 공개는 어렵지만 경영에 대한 사항은 전반적으로 공개하겠다 ▲대주주의 지배를 배제하기 위해 1인 소유 지분 한도를 3% 이내로 제한하고 1주의 가격을 1만원 이하로 해 광범위한 국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겠다 ▲각종 사업자조합, 신용조합, 법인 등의 참여를 적극 넓히되 지배주주화를 방지한다 등의 대책이 이미 마련돼 있다며 반박했다.

500억원을 목표로 한 인터넷 약정은 지난달 21일 출범이후 일주일 만에 235억5000만원을 돌파했을 정도로 국민들은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당초 준비위는 올해 말까지 인터넷 약정 캠페인을 진행하고 본격적인 창립 절차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창립시기가 꽤 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풀어야 할 과제 산적
이 대표 행보 기대 집중

아직까지는 "되냐, 안되냐”를 놓고 말이 많지만 기름값 인하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진 셈이다. 물론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자본금 1000억원을 만들어야 하고 각계 인사들의 촉구도 끌어내야 한다. 결정적으로는 아직 정부의 설립허가가 나지 않았다.
한 평생 노동운동과 국민복지에 힘써온 이 대표가 산적해 있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이태복 상임대표 프로필>

▲성동고등학교 졸
▲국민대 법과 졸, 고려대 노동대학원 석사 졸, 순천향대 명예박사
▲1986년 흥사단 대학생 서울아카데미 회장
▲1977년 도서출판 광민사 설립
▲1989년 <주간노동자신문> 창간
▲2001년 그리스도신학대학교 객원교수
▲2001년 청와대 복지노동수석
▲2002년 보건복지부 장관
▲2003년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객원교수, 한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현재 (사)인간의 대지 이사장, 5대운동본부&5대거품빼기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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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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