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교묘한 신종 납치수법 천태만상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7.06 16: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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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 깨나 사람 조심 “친절한 사람도 다시보자”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연일 뉴스에서 흉흉한 소식이 들려온다. 각종 범죄가 만연하고 사람이 사람을 적대시하는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는 이미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어 버렸다. 특히 인신매매, 납치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이와 관련한 괴담까지 퍼지고 있다. 그 수법도 진화해 최근에는 차량을 이용한 단순 납치는 줄어든 반면, 경찰가장납치, 취업알선납치 등 지능형 납치가 늘어나는 추세다. 사람이 사람을 이용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세상.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한 신종 납치수법들을 들여다봤다. 

최근 인터넷상에는 신종 납치수법에 관한 글과 ‘납치괴담’ 등의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버스에서 괜히 시비를 걸어 따라 내리게 만든 뒤 뒤따라오는 봉고차에 납치하는 인신매매, 택시기사로 위장해서 약이 든 음료수나 껌을 건넨 뒤 납치하는 인신매매 등 그 수법도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고통 감내 능력 임상실험 지원자 모집’이라는 구인광고 인신매매다. 25세 이상 성인남자 1명을 모집한다는 알바 광고를 올린 신일의과대학교. 알바급료는 무려 오천만원이다. 

납치될까 ‘덜덜’
괴담의 실체는…

상세 모집요강에는 “건강한 체격의 25세 이상 남성을 찾습니다. 실험 전 신체검사와 약간의 심리테스트를 거치며 기간은 약 5개월. 실험 중 2일에 한 번씩 1~28단계까지의 고통을 느끼시게 되는데 중도 포기 가능합니다. 종종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있지만 숙련된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고 신체적 후유증은 전혀 없습니다”라고 게재돼 있다.

그러나 실제 신일의과대학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한 네티즌은 “방학시즌을 맞아 25세 이상인 대학생, 복학생들을 잡아들여 새우잡이 어선에 보내거나 살인 후 장기적출하려는 모양이다”라면서 “게다가 실험이 고통 감내 실험이니 고의로 의식을 잃게 폭행하면서 하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있고, 그때를 대비해 의료진이 대기한다고 밝혔다. 방학이고 경제도 어려워 방학 때 알바를 구하려는 사람들 많은 세상인데 다들 조심해야 겠다”고 당부했다.

괴담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친절을 가장한 인신매매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아이를 이용한 범죄가 발생했다는 글이 올라와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사례글 게시자 A씨에 따르면 그는 서울 광장에서 귀가하던 중 샛길에서 5~6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와 마주쳤다. 아이는 고기집 근처에서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달라며 A씨를 어두컴컴한 골목 앞으로 데려갔다.

아이의 손을 잡고 고기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한쪽 골목에서 덩치가 큰 2명의 남성이 “왔다”라고 외치며 A씨에게 걸어왔다. 살아야겠단 생각에 소리를 지르며 무작정 뛴 A씨는 그들로부터 벗어나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아무도 믿지 마라” 충격적인 납치의 갖가지 유형
오천만원짜리 알바 구인광고?친절 가장한 납치 등

지난해에는 노인에게 범죄를 당할 뻔 했다는 B씨의 이야기가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왔다. B씨는 경기 안양시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도중 한 노인이 “안양역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되냐”고 물어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길을 가르쳐 드리자 노인은 동문서답을 하며 갑자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고 느낌이 이상했던 B씨는 자리를 빠져나와 급하게 택시를 잡아탔다. 이후 B씨는 창밖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B씨는 “다리를 절뚝거리던 노인이 뛰어오고 있었다”며 “이제 노인이 길을 물어 와도 대답을 못해줄 것 같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그 밖에 집에 가기위해 택시를 탔다는 C씨도 “택시 기사가 권하는 은단껌을 먹은 뒤 어느 순간 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어 택시에서 뛰어내렸다”면서 “택시는 가지 않고 계속 나를 주시했고, 모범택시를 잡아 상황을 모면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아까 탄 택시의 번호판이 하얀색이었다”는 글을 올려 삽시간에 퍼졌다.

이외에도 상품을 싸게 판다며 가게로 유도하는 납치, 무료쿠폰을 주며 공짜심리를 이용한 납치, 자신이 경찰임을 가장해 휴대폰으로 위치를 묻고 조사에 도움을 달라며 접근하는 납치, 택시합승 납치, 몸매가 너무 좋다며 쇼핑몰 모델을 권하는 납치 등 다양한 괴담들이 온라인상에 존재한다.

지능형으로
진화하는 수법

가끔 실제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해 8월에는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이 제작진 사칭 주의보를 내리기도 했다.

이는 경남 창원에서 <런닝맨> 제작진을 사칭해 여중?고생을 차에 태우는 등 납치와 관련된 일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역에서 <런닝맨 아이돌 특집(경남 창원)>이라는 문구와 함께 <런닝맨>과 지디&탑의 로고가 있는 종이가 부착된 차량이 발견되기도 했다.

제작진은 공식 홈페이지에 “최근 지방에서 <런닝맨> 촬영을 사칭하는 집단이 출몰하고 있다. <런닝맨>은 현재까지 창원에서 촬영한 적이 없으며 현재로서는 창원에서 촬영할 계획도 없다”라고 공지하며 사건 수습에 열을 올렸다.

<런닝맨>의 멤버로 출연중인 개리 역시 “창원지역 <런닝맨>촬영은 없다. 얘기 들어보니 촬영 관계자처럼 행세하며 소녀들을 차에 태우고…암튼 창원지역 여러분들은 착오 없으시길 바라며 주변에도 일러주시길 바란다. 그 지역 경찰에게 연락이 올 정도니 조심하시길. 그리고 꼭 신고하시길”이라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지난 4월에는 ‘취직시켜 주겠다’며 노숙인 등을 유인해 감금하고 이들의 명의로 불법대출을 받는 등 사기행각을 벌인 ‘노숙인 인신매매’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취업과 숙식 제공을 미끼로 노숙인들을 유혹한 뒤 고시원이나 여인숙 등에 불법 감금시키고, 노숙인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해 수백만원씩을 대출받았다.

지난 2008년에는 가출소녀 18명을 유인해 1인당 400만원씩을 받고 중소도시 티켓다방에 팔아넘긴 인신매매단과 이들을 감금하고 빚을 안겨 성노예 생활을 시켜온 다방업주 등 21명이 경찰에 적발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예방하려면
어떻게?

그렇다면 실제사례든 괴담이든, 납치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일단 납치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예고 없이 발생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예방법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실생활 속에서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은 있다.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빙자한 납치 같은 경우 우선 제대로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정확히 자신이 어떤 곳에서 어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며 믿을 만한 곳인지 확실히 확인해야 한다. 특히 하는 일에 비해 아르바이트 급여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경우는 반드시 의심이 필요하다.

 

택시 탈 때 번호판도 꼭 확인해야 한다. 영업용택시는 노란번호판으로만 등록허가가 되어있으며, 개인택시나 법인택시 상관없이 번호판이 ‘아’, ‘바’, ‘사’, ‘자’ 중 하나여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외의 택시는 불법으로 개조된 것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또 도움을 줄 때는 신중해야 한다. 어린아이, 장애인, 노인들을 이용한 납치괴담과 사례들이 늘고 있는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되 외진 곳으로 가는 것은 주의하고 경계해야 한다.

특히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무거운 짐을 부탁하는 경우 주위에 있는 자신보다 더 도움이 될 만한 성인남자에게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서운 납치 사례들, 어떻게 하면 예방 할 수 있을까?
각박한 사회 속 커가는 불신 “불행한 삶 초래할 수도”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이나 SNS상에 떠도는 신종 납치수법과 관련해 사실무근인 이야기들이 많다”면서 “악성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난 괜찮을 거야’ ‘남들 이야기인데’ ‘방법들이야 뻔하지’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사전에 주의하고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괴담’이긴 하지만 ‘무조건 조심하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모르는 이가 도움을 청해 와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의심부터 하는 ‘불신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씁쓸하다”고 말했다.

주부 김은심(38)씨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거운 짐을 들고 계시면 들어서 옮겨 드려야하고, 누군가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주어야 한다고 배우고 또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우리들이 이제는 우리 아이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야할지, 아니 내 자신조차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고민에 휩싸였다”면서 “울고 있는 아이가 인신매매를 위한 미끼이고, 할머니까지 동원해서 인신매매를 한다니 연약한 사람을 이용해 이루어지는 인신매매 괴담과 사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냐”고 씁쓸한 속내를 털어놨다. 

불신 사회
깊어지는 ‘한숨’

이와 관련 헝가리 출신 사회학자인 <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 저자 프랭크 푸레디는 “낯선 사람에게 차를 태워주는 히치하이크는 이타적인 행동이 아닌 범죄의 전조로 이해 된다”면서 “공포가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일상화한 이유는 ‘인간불신’에 있다”고 설명했다.

불신 회복에 대한 해법으로 프랭크는 “위험에 대한 경고만으로는 공포를 확대재생산 할 뿐이다”라면서 “사람은 해답이지 문제가 아니다. 공포에 대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나 깨나 불조심’이라는 표어가 ‘자나 깨나 사람조심’으로 변해가는 현실. 이런 사회적 불신과 불안은 결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남는다. 내 안전을 위해 낯선 사람은 일단 경계하고 아이들에게는 “누구도 믿지 말라”고 가르쳐야 하는 삭막한 사회가 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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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