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베이스볼> ‘아마야구 서포터’ 임용수 아나운서

  • 홍현선 기자 ihu2000@naver.com
  • 등록 2019.04.01 10:19:11
  • 호수 1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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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왔다, 야구 현장으로!

[JSA뉴스] 홍현선 기자 = 임용수 아나운서가 프로야구 중계 현장으로 돌아왔다. SPOTV는 지난 1월 말 임 아나운서를 2019 KBO리그 중계 캐스터로 섭외했고, 이로써 프로야구팬들은 올 시즌 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TV를 통해 다시 접할 수 있게 됐다.
 

임용수 아나운서는 1997년 한국스포츠TV에 공채 2기로 입사했다. 그 후 한국스포츠가 SBS스포츠로 명칭이 바뀐 다음에도 SBS스포츠서 계속 근무했다. 2005년에 SBS스포츠를 퇴사한 후 현재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다.

임 아나운서는 2005년 대한야구협회 주최로 열린 최우수고교야구대회 전 경기를 중계한 기록을 갖고 있다. 당시 SBS스포츠에서는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으로 동대문야구장서 벌어진 최우수고교야구대회 전 경기를 중계(일부 경기는 녹화방송)한 적이 있는데 임 아나운서가 그 현장에 있었다.

기자가 임 아나운서를 처음 만난 것도 그 무렵. 당시 임 아나운서는 아마야구의 열악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기자에게 앞으로는 내가 아마야구의 홍보대사라는 마음으로 중계를 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임 아나운서는 그 후 XTM, 스카이스포츠 등을 통해 계속 방송 현장서 일해왔고, 최근에는 야구 종목만을 중계하는 전문 캐스터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임 아나운서가 소속된 스카이스포츠가 프로야구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 중계권 문제로 마이크 잡지 못해
대신 IB 스포츠 고교야구 중계 …2년 만에 복귀


그러나 야구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다. 비록 KBO리그가 열리는 경기장의 중계석에는 앉을 수 없었지만, 계속 TV중계나 경기장을 찾아서 프로야구 경기를 지켜봤다고 한다. 종종 IB스포츠를 통해 고교야구 경기를 목동야구장서 중계하기도 했고,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때는 아프리카TV를 통해 팬들에게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년 만에 프로야구 현장에 복귀하면서 인터뷰에 응한 임 아나운서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지난 시즌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올 시즌 KBO리그 중계를 위해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는 임 아나운서를 만나 그동안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작년에 목동야구장에서 뵙고 오랜만이네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 1월 말에 SPOTV 방송사와 KBO리그 중계 계약을 맺었습니다. 요즘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있는데, 시범경기부터 보면서 올 시즌 중계를 위해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야구를 처음 접하신 것은 언제인가요?

초등학교 다닐 때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야구장(구 서울운동장)에 고교야구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제가 강남중학교 출신인데, 학교에 야구부가 있어서 재학 중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응원을 간 기억도 있고요. 1982년에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TV중계를 보기도 했고 가끔씩 경기장을 찾기도 했습니다.

-스포츠 아나운서가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 잠시 다른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1997년 한국스포츠TV에 입사하면서 스포츠아나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명재 아나운서, 김성주 아나운서가 저랑 동기죠. 어려서부터 방송을 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결국 이뤄졌네요.

-야구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야구는 우선 혼자서 할 수 없는 단체종목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투수나 타자가 아무리 잘해도 다른 선수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기기 어렵습니다.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하죠. 회사에서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마케팅을 잘 못하거나 마케팅을 잘해도 물건이 좋지 않으면 팔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협조가 중요하죠. 야구 경기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는데, 그런 점에서 매력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방송 준비는 어떻게 하시나요? 자기 계발은 어떻게 하시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우선 시즌 중에는 중계가 끝난 후 다른 경기결과도 챙겨봅니다. 야구는 매일 경기를 하니까 자료를 매일매일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저는 손으로 직접 정리를 합니다. 국내 경기뿐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경기들도 관심을 갖고 보죠.
 

또 중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야구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세상 돌아가는 다양한 소식들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뉴스 프로그램도 항상 관심을 갖고 챙겨보고 있습니다. 중계가 있는 날에는 오후 23시경 구장에 도착해서 방송 준비를 하고, 중계가 끝나면 다른 경기들도 찾아보고, 다음 날 오전에는 또 자료 정리하고 그렇게 야구와 씨름하다 보면 하루가 가더군요.

-본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중계는 무엇인가요?

다른 캐스터들의 중계방송도 많이 봅니다. 요즘 중계방송을 보면 너무 디지털화된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기록은 참고자료일 뿐 야구는 의외성이 많은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방송이 너무 전문적일 필요는 없고 때로는 아날로그 같은 중계도 필요합니다. 세미나 같은 방식보다는 토크쇼 같은 중계가 좋지 않을까요?

-특별히 기억나는 중계방송이 있으신가요?

2003년 이승엽 선수가 아시아신기록인 56호 홈런을 터뜨렸을 때와 2010년 이대호 선수가 9경기 연속 홈런 세계신기록을 세웠을 때 그 경기를 제가 현장서 중계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경기를 중계했지만 특히 두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방송을 하시면서 보람을 느꼈던 것은 언제인가요?

야구장서 팬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때입니다. SNS에서 방송 잘 봤다는 반응을 해주실 때도 감사하고요. 요즘은 야구장 아닌 곳에서도 알아보고 먼저 인사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올해는 시즌 오픈 전에 야구장이 아닌 곳에서 팬들과 오프라인을 통해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계를 하시며 힘든 점이 있다면요?

요즘 팬들은 대부분 야구 박사들이시죠. 예전보다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져서 방송을 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지만 좋은 자극제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한국 야구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1982년 프로야구가 창설된 후 이 시점서 방향성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야구계의 상황을 보면 야구발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과 공유가 부족합니다. 당장 오늘이나 일주일이 아닌 먼 미래를 보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KBO를 중심으로 야구인들이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봤으면 합니다. 정확한 목표와 방향이 설정되어야 야구가 좀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선 당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KBO리그에서는 우선 타고투저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개선이 시급합니다. 스트라이크존 확대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으면 하고요, 경기시간도 단축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2018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에는 3할 타자가 18(30)이었고 일본은 20(12)이었는데 한국은 34(10)이나 되었습니다. 그만큼 타고투저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죠.


-롤모델은 어떤 분인가요?

이장우 아나운서를 꼽고 싶습니다. 예전 KBS에서 방송을 하실 때는 TV를 통해 중계를 접했고 제가 한국스포츠TV에 입사한 후에는 같은 방송국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이장우 아나운서와는 요즘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중계 캐스터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경기 중계는 캐스터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계방송을 할 때 해설하시는 분과 평소에도 많은 대화를 합니다. 그래야 해설자의 말하는 습성이라든지 많은 정보들을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캐스터와 해설자와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타방송사의 중계방송도 많이 보고 있고 야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의 중계방송도 보면서 참고하고 있습니다. 캐스터는 타순이라든지 자막 등을 포함한 경기 상황을 빠짐없이 전달해줘야 하고 경기 외적으로도 적절한 비유를 섞어서 멘트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예전에는 라디오중계를 경험한 아나운서들이 많이 계셨죠. 저도 원음방송서 라디오 중계를 잠시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라디오는 TV와는 달리 화면 없이 중계를 해야 하니까 캐스터의 표현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취미는 무엇인가요?

평소에 많이 걷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종로나 청계천변을 걷기도 하고 또 근처 서점에 가서 책을 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팬 여러분 덕분입니다”
‘아마야구 홍보대사’ 마음으로 중계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어떤 아나운서로 기억되기를 바라시는지요?

솔직히 지난해 중계를 못하게 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중계할 수 있게 된 지금 상황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좀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려고 합니다. 여건이 된다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야구중계를 계속 하고 싶습니다.

제가 2005년에 SBS스포츠서 퇴사하고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회사에서는 제게 방송보다는 조직 관리를 원했는데, 저는 중계현장에 좀 더 많이 그리고 오래 있고 싶었습니다.

또 그동안 제가 아마야구에는 좀 소홀했던 것 같은데 지난해 IB스포츠서 고교야구 경기를 가끔씩 중계하면서 또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포스트시즌 아프리카TV 중계도 마찬가지이고요. 팬들께는 임용수 아나운서를 생각했을 때 재미있고 향기 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드리고 싶습니다. 향기와 냄새는 느낌부터 다르잖아요.

-후배 아나운서들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다면요?

중계방송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이 중요합니다. 제가 보기에 지식이 뛰어난 후배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지식과 지혜는 엄연히 다르죠. 지식을 기본으로 지혜를 갖춘 아나운서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혜라는 것은 결코 저절로 생기지 않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팬들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잊혀지는 것이겠죠. 제가 잊히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야구 중계 현장에 다시 설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인사할 때 안녕하세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하죠. 세상살이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겁니다. 다시 한 번 팬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팬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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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