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과 도박, 그리고 판돈 막전막후

하룻밤 수십억 왔다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돈이 많은 기업인들은 상대적으로 도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밑천이 두둑하기 때문. 이들이 거는 액수는 보통 사람이 평생 만져보지도 못한 액수인 경우가 많다. 하룻밤 새 판돈이 수천억에 달하는 도박판이 부지기수다. 서민들을 허탈감에 빠뜨리는 기업인들의 도박 ‘사이즈’를 확인했다.
 

중견기업 오너 일가 2세 A씨가 원정도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법의 심판을 받았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 과정서 회삿돈으로 밑천을 마련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판돈이 100억원에 달해 세간의 눈길이 쏠렸다.

판돈 수천억
서민은 허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지난달 29일 상습도박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중견기업 A사의 최대주주 박모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횡령한 자금은 상당 부분 도박과 관련이 있다”며 “이번 상습도박의 규모와 방법을 감안하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간접적인 해악도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A씨는 수사 초기부터 범행 대부분을 자백하고 반성했다”며 “횡령금액은 거액이지만 오랜 기간 횡령 후에 다시 돈을 채우는 과정을 반복하여 실제 피해금액보다 자금이 불어난 측면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회삿돈으로 조성한 비자금으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필리핀 등 해외서 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기업인들은 도박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쉽다는 점 때문에 도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서민층의 도박판과는 스케일 면에서부터가 다르다. 20년 전에는 100억원대 해외카지노 도박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1997년 서울지검은 카지노서 거액을 빌려 도박을 한 혐의로 오종섭 대전 동양백화점 부회장과 박종섭 서울 강남구 스위스안경점 대표 등 4명을 기소했다. 오 전 부회장은 1996년 5월부터 1997년 6월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서 한국인 마케터 최모씨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355만달러를 빌려 도박으로 탕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그를 구속 기소했으나, 보석금 1억원을 내고 풀려났다. 당시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악화되기도 했다.

동양백화점은 대전 지역의 향토기업으로 지역민의 오랜 사랑을 받았지만 경영난으로 한화갤러리아에 매각됐다. 오 전 회장은 2011년 향년 5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회삿돈 들고 도박판으로 ‘고∼’
필리핀 등 해외 원정도박 적발

김인태 경남종합건설 전 대표는 1997년 20만달러의 도박자금을 해외로 밀반출한 혐의로 도피행각을 벌이다 2002년 구속됐다. 김 회장은 마카오 등지서 수억원의 도박을 벌이며 외화를 반출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김 대표는 수차례 마카오호텔 카지노 등에서 원정도박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박 판돈 액수가 기업인치고 많다고 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사건이 알려졌을 당시 IMF 등으로 전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외화벌이에 나선 때라 국민들의 분노는 컸다.


김 전 대표는 50만달러를 빌려 도박을 하고 같은 해 12월 위조여권을 사용해 해외서 도피행각을 벌인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한때 재계 서열 3위였던 그룹의 회장도 도박 구설에 올랐다. 1978년 김창원 거화그룹 회장도 원정도박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김 전 회장은 1984년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당시 23만달러를 카지노 도박으로 날린 혐의를 받고 검찰의 수사망에 올랐다.
 

거화그룹은 김 전 회장의 구속으로 흔들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계열사 거화자동차와 신진자동차는 쌍용차와 대우차로 각각 매각됐다. 이후 주력 계열사들이 그룹의 품을 떠나면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77년 7월 설경동 대한그룹 창업주의 차남 설원철씨가 대규모 도박판을 벌인 혐의가 드러났다. 설씨 등 6명은 상습도박을 벌이고 도박장을 개장한 혐의로 구속됐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서울 중구 충무로 2가에 있는 L관광호텔서 하룻밤 새 1000여만원이 넘는 판돈을 놓고 포커를 쳤다. 모두 열두 번에 걸쳐 오고 간 판돈 총액은 2억8000만원에 달했다.

회사 어려워도 
카지노에 펑펑

당시 자장면 가격이 200원이었던 점을 감안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하룻밤 새 오고 간 판돈은 대략 75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당시 검찰은 도박판 현장에 급습해 미화 5199달러, 엔화 2만2500엔, 한화 110만원 등을 회수했다. 설씨는 도박 사건 이후 경영권서 멀어졌다.

설경동 창업주는 장남 설원식 전 회장에게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물려주고 3남에게는 대한전선을 줬다. 4남인 설원봉 회장은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설원철씨는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의 고문직을 맡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적은 없다.

일각에선 당시의 도박 논란이 후계 구도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한보그룹 역시 도박 스캔들이 있었다. 1997년 당시 정태수 총회장의 차남인 정원근 상아제약 회장은 1996년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도박으로 거액을 탕진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당했다.

서울지검 회사부에 따르면 정 회장은 30만달러의 자금을 빌려 카지노 도박을 했다. 당시 외국환관리법에 따르면 1만달러 이상의 외화를 송금할 경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정 회장은 이를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정 회장이 도박 스캔들에 연루된 시기가 한보그룹이 경영난을 겪고 있던 와중이라 비난의 목소리는 높았다. 1997년 한보그룹의 주력 계열사 한보철강은 15억원의 자금을 해결하지 못해 부도가 났다. 이후 지급 보증을 섰던 다른 계열사가 쓰러지면 한보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돈 많은 호구
설계자 타깃

여성 기업인도 도박판 스캔들에 연루된 적이 있었다. 1992년 검찰에 따르면 이춘자 한국광학 대표는 1987년부터 강남 일대서 벌어진 판돈 100억원 규모의 도박을 한 혐의로 수배자 신세가 됐다. 이 대표를 비롯해 도박에 빠진 도박꾼들은 하루 평균 300만∼1800만원의 판돈이 걸린 도박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7년에는 북악파크호텔의 기업인이 도박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구판서 북악파크호텔 회장의 4남 구상회(당시 37세)씨가 100만달러를 빼돌려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구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서 대학을 졸업한 뒤 국내로 비디오테이프를 수입하는 사업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악파크호텔은 70~80년 북악을 대표하는 호텔이었으나 1990년 중후반을 기점으로 쇠락의 길에 접어들어 2003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던 1966년에 하루 판돈 2000만원이 넘는 돈이 오간 도박판도 있었다. 당시 유화열 인천올림포스호텔 회장을 비롯해 전락원 구왕건설사 대표 등 3명이 대규모 카드 도박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유 회장 일행은 호텔 등을 전전하며 도박판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 회장은 카지노를 이용해 탈세를 저지른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유 회장은 사위 함양섭 회계계장이 손님으로 가장해 딜러가 보관 중인 게임용 칩을 현금으로 바꿔 수입금액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90년부터 3년 동안 14억3000만원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았다.


후계자 밀리거나
회사 사라지거나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은 수억원대 원정도박을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2016년 항소심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박 회장도 정킷방서 도박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지법 형사항소1부(부장판사 이근수)는 2017년 상습도박 혐의로 기소된 박 회장에 대한 항소심서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해외서 자금을 조달해가며 도박을 벌여 죄질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피고인의 연령·건강 상태와 범행을 반성하는 태도 등을 참작해 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2014년 2월부터 3월까지 마카오 한 호텔의 정킷방서 판돈 190만홍콩달러(약 2억6000여만원)를 베팅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바카라 도박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14년 5월 서울 한 호텔서 고스톱 도박을 하던 이모(64)씨 등에게 2800여만원의 판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상습적으로 도박하고 도박 참여자들에게 도박자금으로 수백만원서 수천만원까지 대여해 이득을 취하는 등 죄질이 무겁다”며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논란이 된 점은 박 회장이 상습도박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이다. 앞서 박 회장은 2002년 상습도박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2013년 6월과 2014년 6~7월 총 3차례에 걸쳐 총 48억원을 대출받도록 알선해준 대가로 한 생수업체 대표로부터 4억9460만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기소돼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화장품 업계의 신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도 원정도박 혐의로 ‘옥살이’를 하고 있다.

검찰은 정 전 대표가 2012년 3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마카오, 필리핀의 카지노 호텔에 설치된 정킷방서 100억원대의 도박을 한 것으로 보고 구속 기소했다. 정씨는 해당 정킷방서 한 판에 500∼2000만홍콩달러의 판돈을 베팅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 대표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극구 부인하며 지루한 법정 공방을 예고했지만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마무리됐다.

정 전 대표는 1심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2심서 8개월로 감형됐다. 이후 검찰과 정 전 대표 측이 대법원 상고를 원치 않아 사건은 일단락됐고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재미 삼아…
두 번 세 번

재계의 한 관계자는 “도박판에 걸려 거액의 빚을 진 참여자가 다른 물주를 물색하는 조건으로 갚을 돈을 탕감해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이런 과정서 기업인들이 주요 타깃이 돼 도박판에 참여하게 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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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