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18)강경책

김유신의 분노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유신이 경주로 돌아오자 무사 귀환을 두고 서서히 말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연개소문과의 비밀스런 만남에 대해 둘 사이에 모종의 협의가 있었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굴욕적인 행동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서서히 증폭되기 시작하여 김유신이 고의로 행군 일정을 지연시켰고 그에 당의 소정방 대장군이 진노하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로 비약되었다.

또한 지난 시절 고구려 침략을 중지하고 퇴각한 일 역시 연개소문과 모종의 사전협약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왔다.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가 돌아다니자 유신이 측근들을 시켜 상황을 정리하도록 했다.


결국 진원지로 인문이 거론되었다.

그와 관련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유신이 문무왕을 독대했다. 

유언비어

“전하,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초지종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맞이한 문무왕에게 연개소문과 나누었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송구하오나 그러합니다.”

“연개소문이라!”

문무왕이 연개소문을 되뇌며 혀를 찼다.

“비록 현재로는 적군이지만 영웅기질이 다분했습니다.”

“영웅이라! 대장군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소장은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합니다.”

“지나친 겸손이십니다.”

유신이 가볍게 고개 숙였다.

“그런데.”

“말씀하시지요.”

“당나라에서 그 일로 문책이 있을 듯합니다.”

“문책이라니요?”


“기한 내에 보급품을 전하지 못했으니 그를 구실로 반드시 뭔가 트집을 잡고자 할 것입니다.”

“당연히 그리하겠지요.”

문무왕이 답을 하고는 미소를 보였다.

“무슨 의미입니까?”

“먼저 손을 쓰도록 하렵니다.”

“손을 쓰신다 함은.”


“사절을 보내려 합니다.”

“소장의 실책으로 일이 그리되었습니다.”

“아니오. 한편으로 생각하면 잘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 말씀은.”

“짐 역시 연개소문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신이 가볍게 신음을 뱉었다.

“지금은 상황이 이래서 어쩔 수 없지만 당의 하는 행동을 살피면 언제고 일전을 불사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역시 뜻이 깊으십니다.”

유신이 가볍게 고개 숙였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는 백제의 일을 마무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려 합니다.”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저들이 도독부를 두고 눌러 앉아 백제를 자신들의 영토로 삼키려 하는데 우리 힘으로 백제를 정벌하고 빨리 두 나라 간의 통일을 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유신의 말에 문무왕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문무왕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슨 일 있습니까?”

“인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유신이 인문을 되뇌며 신음을 내뱉었다.

“어찌 처리하면 좋겠소?”

“전하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

“나라의 앞일을 생각하면 이쯤에서.”

“혹시 죽이시…….”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마치 아우가 아니라 당에서 건너온 세작 같은 생각이 듭니다.”

“여하한 경우라도 절대 죽이시겠다는 생각은 안 됩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첫째는 선왕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무열왕 김춘추를 의미했다. 그 소리에 문무왕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은 당나라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당과의 관계요?”

“지금 바로 신라가 당을 적대국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아울러 당과의 관계에서 인문 왕자의 역할이 적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를 이용하자는 말씀이십니까?” 

“반드시 그래서라기보다도 현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혹여 인문 왕자를 제거한다면 당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큰일을 이루기 위해 작은 희생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문을 어찌 처리했으면 좋겠소?”

“당나라로 보내는 편이 이롭습니다.”

“조공과 함께 사절로 말이지요?”   

인문에 관한 처우는?…결국 당나라로
진주·진흠의 횡포…군법으로 다스리다

문무왕이 오래지 않아 조공과 함께 김인문을 당나라에 보내고는 백제의 잔당들을 치기 위해 흠순을 장군으로 하여 군사를 보내 내사지성(內斯只城, 대전 유성)을 토벌하는 중에 대당 총관 진주와 남천주 총관 진흠에 관한 보고가 들어왔다.

그 둘이 거짓으로 병을 핑계 삼아 한가로이 지내며 나라 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유신이 세작을 보내 그 실정을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그들이 남모르게 당나라 군사들에게 조공을 바치며 나름의 신임을 얻고 그를 구실로 업무를 소홀히 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그 사실을 문무왕에게 고한 유신이 두 사람을 잡아들여 무릎 꿇렸다. 

“너희 두 놈이 병을 핑계 삼아 업무에 소홀하며 계집질에 환장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는데 그게 사실인가?”

“대장군, 너무 심하지 않소?”

유신이 취조를 시작하자 진주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무어라, 너무하다고!”

“그렇지 않고서 무고하는 말만 듣고 소장들을 이리 대할 수 있습니까?”

진흠 역시 뒤질세라 소리를 높였다.

“그러면 너희 두 놈은 전혀 그런 일이 없다는 말이냐?”

재차에 걸친 유신의 추궁에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주시했다.

“바로 답하지 못하겠느냐!”

“그게.”

진흠이 어물거렸다.

“여봐라, 저 두 놈을 매우 쳐라!”

유신의 지시에 따라 매를 든 두 명의 병사가 등줄기를 내리쳤다.

“대장군, 이러시면 곤란하십니다.”

매를 받은 진흠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유신을 노려보았다.

“네 놈들이 국법을 무시하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더냐? 저 놈들을 매우 쳐라!”

두 사람의 등으로 지속해서 매가 떨어지고 이어 피가 튀었다. 

“잠시 멈추시오!”

한 순간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당나라 복장을 한 사람이 급하게 다가서고 있었다.

“그대는 뉘시오?”

“신은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사비성을 수호하고 있는 유인궤 장군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외다.”

“그런데 여기는 어인 일이오?”

“신라 조정에서 진주와 진흠 두 장군을 잡아들였다 하여 그 사유를 알고자 급히 찾아왔소.”

“그게 무슨 말이오?”

“두 장군이 우리 당나라에 협조적인 점을 감안하시라는 장군의 말씀이 있었소.”

말을 마친 유인궤의 사자가 두 사람을 주시하자 일말의 희망을 보았는지 표정이 살아나고 있었다.

“유인궤 장군에게는 따로 전할 터니 귀하는 물러나시오!”

유신이 칼로 땅을 치며 완곡한 표정을 짓자 잠시 머뭇거리던 사자가 슬그머니 물러났다.

“네 놈들이 어떤 짓을 했기에!”

일벌백계

당나라 사자의 출현이 오히려 유신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는 감을 받은 두 사람의 표정이 다시 어둡게 변해갔다.

“어서 이실직고하지 못하겠느냐!”

결국 두 사람이 거듭되는 추궁과 매질에 조정 몰래 당나라 군사들에게 조공을 바친 사실을 실토했다.

“여봐라, 저 두 놈, 아니 저 버러지만도 못한 두 놈의 삼족까지 모두 효수하도록 하라!”

유신의 불호령에 놀란 진주와 진흠의 아랫도리에서 액체가 흘러내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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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