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1200호 특집> 잠룡들의 아킬레스건

뒤가 켕기는 건 기분 탓?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까?’ 새해부터 차기 대권주자들을 향한 관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10명에 가까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인사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대권 구도가 스케치되면서 잠룡을 향한 관심은 증폭될 전망이다. 동시에 이들의 적격성 여부와 함께 약점 등이 하나둘 거론되고 있다. 
 

▲ (사진 왼쪽부터)이낙연 국무총리, 황교안 전 국무총리, 유승민 사람사는 세상 이사장,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문재인 대통령의 바통을 이어받을 20대 대통령은 2022년 3월9일에 선출될 예정이다. 차기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3년2개월 정도다. 꽤 오랜 시간이 남았지만 지천타천으로 차기 대권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대권주자에 오른 주요 인사들의 윤곽은 9명 정도로 좁혀진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황교안 전 국무총리,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유승민 전 공동대표,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 바미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그리고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등이다.

이낙연

명실상부 진보진영 차기 대권주자 1순위. 이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기간 특유의 화법으로 여론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 총리는 상대방을 논리로 제압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이 총리는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반면 내각 군기반장으로 통한다. 총리실서 결정적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 이유로 꼽힌다. 현재까지 이 총리는 총리직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명 이후 이 총리의 행보는 직무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정치적 흠결이 가시적이지 않은 까닭이다. 지금까지 거론된 그의 약점은 배우자의 위장전입이다. 이 총리는 당시 국회서 열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서 ‘처참하다’며 이를 시인했다.


그 뒤로 장관·대법관·헌법재판관 후보자 등의 위장전입 전력이 줄줄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공분이 일었다. 여론의 도덕적 기준선도 크게 상향됐다.

청문회를 거치며 이 총리는 아들의 군 입대 회피 논란과 증여세 탈루 의혹, 배우자의 그림작품 강매 등의 의혹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 총리는 사실이 아니라며 강력하게 부인했다.

황교안

태극기 부대의 최대주주. 황 전 총리는 지난해 9월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정계복귀를 공식화했다. 황 전 총리는 대권 외에도 다음 달로 예정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전당대회 출마설도 제기되고 있다. 

황 전 총리는 탄핵정국 당시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황 전 총리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남아있는 이유다. 그 연유로 외연확장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진영에선 ‘새로운 희망’으로 부상했지만 본선서 보수 이외의 진영을 설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뜨겁게 끓어오른 만큼 차갑게 꺼질 수 있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황 전 총리는 국정감사 기간 ‘뺑소니 논란’으로 도마에 오른 바 있다. 황 전 총리는 지난 2016년 7월15일 사드 배치 설득 차 경북 성주를 찾았다가 주민 이모씨의 차와 부딪혔다. 당시 검찰은 ‘도로를 가로막고 있던 이씨가 황 전 총리가 타고 있던 차를 고의로 부딪쳤다’고 보고 이씨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해 10월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서 블랙박스 영상 편집 의혹을 제기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영상 자체는 시동을 끄면 녹화가 중단되는 상황이라 영상이 비어 있는 것이라고 들었다”며 “의혹이 제기되면 법률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감정하는 절차를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이낙연-황교안, 약점은 가까운 곳에?
김경수·이재명 선고 코앞…바짝 긴장

유시민

“여론조사에 넣지 말아 달라.”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정계 복귀에 단호히 선을 긋고 있지만 가장 뜨거운 대권후보로 꼽힌다. 최근 유 이사장은 가짜 뉴스에 대응하고자 ‘알릴레오’라는 제목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그의 입장과 달리 유 이사장은 현실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접어들었다.

유 이사장은 지난 2013년 2월19일 공식적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꽤 오랜 시간 정치권과 거리를 뒀다. 대권주자로 언급되는 상황서 특별한 약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다만 유 이사장은 최근 ‘20대 남자 폄하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유 이사장은 지난달 21일 한 출판사 주최로 열린 특강서 “저희 세대는 ‘여자는 대학을 안 가도 그만이다’라는 시대였다”며 “그러나 지금 20대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거의 여자였고 말 잘 듣는 여자애들은 선생님들이 예뻐해줬다. 남자들을 얼마나 차별했는지 느껴 온 세대”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 이사장은 “남자들이 군대도 가야 하고, 여자애들보다 특별히 다른 것도 없는데 또래 집단서 보면 여자들이 훨씬 유리하다”며 “자기들(남자들)은 축구도 봐야 하는데 여자들은 축구도 안 보고, 자기들은 ‘롤(LOL·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도 해야 하는데 여자들은 롤도 안 하고 공부하지, 모든 면에서 남자들이 불리하다”고 밝혔다.

유 이사장은 20대 남성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또래 집단서 여자들이 훨씬 유리하다’는 말로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유승민

잔류, 복당, 신당창당. 바미당은 정치권을 가로지르고 있는 정계개편의 중심에 서 있다. 유 전 대표가 소속될 정당이 어디가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유 전 대표의 결단에 따라 향후 행보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당으로 복당할 것인지, 바미당에 잔류할 것인지, 새로운 당을 창당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 전 대표가 대권에 도전할 경우 ‘인사청탁 의혹’이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26일 SBS <김어준의 뉴스타파>는 ‘안종범 전 청와대경제수석의 문자메시지와 녹취파일을 공개하면서 당시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 김무성 전 원내대표와 유 전 대표 등이 인사 청탁을 했다’고 보도했다. 

유 전 대표는 이튿날 보도자료를 통해 “인사와 관련해 문자로 문의하고 사람을 추천했던 적이 있다”면서도 “이 문제는 지난해 대선과정서 똑같은 내용이 보도됐고 소명한 바 있다. 당시 제 의도는 청와대가 미리 내정하는 경우가 많아 내정된 인사가 있는지 물어보고 후보를 추천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탁으로 비친 점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심상정

정의당의 간판인 심 전 대표는 정의당 고 노회찬 전 의원의 뒤를 잇는 정치인이다. 심 전 대표는 지난 19대 대선에 출마해 정의당의 입지를 제고했다는 평을 받는다. 

심 전 대표는 대선 이후 특별한 행보를 보이지 않다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선거제 개편 요구가 야당 대표들의 단식으로 이어지면서 국회 공식 논의 기구인 정개특위에 이목이 집중됐다. 심 전 대표가 성과를 낼 경우 그의 정치적 입지는 한 단계 상승할 수 있다. 반대로 여야 합의에 실패할 경우 대선 이후 이렇다할 정치적 입지서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다.

정의당은 지난해 창당 이래 최고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선전했다. 정의당의 숙제 중 하나인 외연확장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안철수

녹색 바람의 주인공. 안 전 대표는 19대 대선 당시 녹색 바람을 일으킨 돌풍의 주역이었다. 낙선 이후 바미당을 창당했지만 당은 지난 6월 지방선거서 참패했고 서울시장에 출마했지만 역시 고배를 마셨다. 안 전 대표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기 위해 당 공동대표직을 사임하고 독일로 건너갔다. 그의 정치 생명력은 현재 잠잠한 상태에 가깝다.
 

▲ ▲(사진 왼쪽부터)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안 전 대표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안 전 대표가 돌아올 둥지는 흔들리고 있다. 바미당은 정계개편을 목전에 두고 있고, 당내 인사들은 하나둘씩 짐을 싸고 있다. 그의 정치적 상징성 또한 빛이 바래는 형국이다. 

그가 복귀 이후 당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안 전 대표는 지난 6월 지방선거 당시 공천을 두고 유 전 대표와 대립한 바 있다. 당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서 안 전 대표는 손 대표의 송파을 공천을 밀어붙였고, 유 전 대표는 공개적으로 이를 반대했다.

안철수·유승민 거취 따라 운명 결정
김부겸의 변수, 흔들리는 TK 민심 

이재명

변방의 장수. 지난해 가장 많은 논란을 낳았던 정치인으로 꼽힌다. 이 지사는 그간의 의혹에 대해 정면 돌파를 불사했지만 결국 이 지사의 향후 정치 행보에 걸림돌로 되돌아왔다는 평이다.

이 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를 언급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지사는 ‘혜경궁 김씨’ 논란 당시 준용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꺼내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친문(친 문재인)계는 이 지사와 대척점을 형성했다. 민주당 소속 일부 의원들도 공개적으로 이 지사의 탈당을 요구했다.

일단락된 의혹은 이 지사에게 도덕성 흠결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어 제기된 의혹은 정치적 공세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이 지사의 대권가도가 순탄치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김경수

연관 검색어 드루킹. 김 지사는 2018년의 마지막까지 드루킹과 함께했다. 김 지사는 댓글 조작 프로그램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남도지사로 당선됐지만, 김 지사의 ‘정치 주가’는 하락했다. 특검의 수사과정서 고 노회찬 전 의원이 별세한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허익범 특검은 지난달 28일 김 지사에 대해 ‘일탈한 정치인’이라며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김 지사에 대한 1심 선고는 오는 25일 열리는데 이번 선고를 통해 김 지사가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 지사는 재판 결과를 통해 드루킹 의혹을 일거에 털어내겠다는 의중이다.

반면 1심 재판부가 김 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한다면 상황은 급반전을 맞게 된다. 대권 도전은 물론이고 당장 도지사직의 수행도 난관에 봉착할 공산이 크다. 김 지사는 연말이었던 지난달 31일 “크게 걱정 안 해도 되고, 도정에는 한 치의 차질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부겸

민주당의 TK 지킴이. 김 장관은 민주당의 대표적 험지인 TK(대구·경북)를 재수 끝에 탈환했다. 동시에 김 장관의 정치적 위상도 한 단계 상승했다. 김 장관은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출마 직전까지 갔던 만큼 당내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대선 전에 실시되는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면 현재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TK 수성에 실패할 경우 그의 정치적 입지는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TK 지역의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TK에선 한국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넘어섰다. 차기 총선서 김 장관의 지역구에 한국당 깃발이 꽂힌다면 대권 출마에 먹구름이 낄 공산이 크다. 김 장관의 대권 출마는 TK 지역 사수에 달려 있다는 평이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

최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진보진영에선 이 총리가 1위를 차지했다.

반대로 보수진영에선 황 전 총리가 1위를 기록했다. 전·현직 국무총리가 보수, 진보 진영서 각각 선두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한편 유 이사장의 요청으로 해당 여론조사에선 유 이사장이 포함되지 않았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지난달 24, 26~28일 조사를 진행해 지난 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범여권·무당층서 이 총리가 19.2%로 가장 앞섰다. 이어 이 지사가 11.7%, 박원순 서울시장이 10.7%, 김 지사가 8.7%, 심 의원이 7.4%, 황 전 총리가 6.2%, 유 의원이 5.8%, 한국당 오세훈 국가미래특별위원회 위원장이 4.6%, 김 장관이 4.1%,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3.7%, 손 대표와 안 전 공동대표가 각각 2.8%를 기록했다. ‘없음’과 ‘모름/무응답’은 각각 8.7%와 3.6%를 기록했다.

보수야권·무당층에선 황 전 총리가 22.5%로 압도적이었다. 이어 오 위원장이 14.4%, 유 의원이 9.3%, 홍 전 대표가 9.0%, 이 총리가 5.1%, 이 지사가 4.9%, 김 지사가 4.7%, 안 전 공동대표가 4.5%, 김 장관이 4.2%, 박 시장이 4.1%, 손 대표가 2.2%, 심 의원이 2.0%를 기록했다.

‘없음’은 9.7%, ‘모름/무응답’은 3.4%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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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