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이 우리 뿌리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전투에 앞서 병사들의 서약을 받는 의식입니다.”
인문이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니었다. 자꾸 유신이 공격을 자제하는 그 모습이 탐탁하지 않았던 터였다.
“옹산성을 공격하고 그들을 제물로 출정식을 감행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소. 출정식은 전투 전에 해야 하오.”
출정식 빌미로…
문무왕이 결국 유신의 의견에 따라 출정식을 거행하도록 지시 내렸다.
출정식을 빌미로 시간을 지체한 유신이 전군에게 옹산성을 포위하도록 했다.
“소장이 선두에서 진격하겠습니다.”
옹산성을 바라보는 유신 곁으로 흠돌이 다가섰다.
“어떻게 섬멸하려오?”
유신이 흠돌의 얼굴을 살피며 성에 세워둔 깃발로 고개를 돌렸다. 깃발이 바람에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흠돌 장군, 적진을 자세히 살펴보시게.”
흠돌이 깃발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목책으로 만들어놓은 옹산성을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대장군, 그러면 불로?”
유신이 답하지 않고 미소만 보냈다.
그를 살피던 흠돌이 급히 화공을 준비시키고 얼추 준비가 끝나자 옹산성을 향해 불화살을 쏘도록 했다.
불화살이 목재에 꽂히자 불길이 솟기 시작했고 옹산성은 이내 화염에 휩싸였다.
상황이 그에 직면하자 조복과 파가는 무리를 이끌고 급히 성을 빠져나가 우술성(雨述城, 대덕구 읍내동)으로 후퇴했다.
그곳에서 무리를 정비한 조복은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고 신라군을 맞이했다.
“이번에는 소장이 나서겠사옵니다.”
신라군이 우술성 가까이 이르자 품일이 나섰다. 유신이 그를 살피며 문무왕을 주시했다.
“전하, 다시 한 번 저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회유하심이 옳을 듯하옵니다.”
“무슨 회유입니까, 바로 들이치지요.”
인문이 나서 유신의 말에 반기를 들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아시오?”
“무엇입니까?”
“당연히 전투하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지요.”
“하면 대장군께서는 전투하지 않고 저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를 떠나서, 비록 전쟁이란 게 어쩔 수 없이 생명을 취하지만 가급적이면 피를 보지 않았으면 하오.”
유신과 인문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문무왕은 품일에게 우술성에 사자로 다녀올 것을 직접 지시했다.
문무왕의 지시에 따라 품일이 우술성에 가서 조복을 만나 문무왕의 뜻을 전하자 조복과 파가는 힘의 열세를 인정하고 항복했다.
문무왕은 항복한 조복에게 급찬의 관등을 주고 고타야군(경북 안동) 태수로 삼았으며, 파가에게는 급찬의 관등과 아울러 토지와 집, 옷 등을 내려주었다.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진군하려는 중에 당나라 사신이 경주에 도착하였다는 전갈이 왔다.
문무왕이 급히 경주로 돌아가자 유신은 그를 빌미로 군사들에게 휴식의 명을 내렸다.
압록수에서 당군을 대파한 연개소문이 급히 평양성으로 이동했다.
사수(蛇水, 청천강의 지류로 추정) 근처에 이르자 강가에 진을 치고 있는 당나라 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멈추어서 자세하게 그곳을 주시했다.
‘沃沮道總管 龐孝泰(옥저도총관 방효태)’란 깃발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를 살피던 연개소문이 급히 장수들을 소집했다.
“대감, 날씨도 차가운데 이곳은 소장들에게 맡기시고 곧바로 평양성으로 드시는 게 이롭지 않겠습니까?”
고문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럴 수 없소. 내가 선봉에 서서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사수에 처박아 버리겠소.”
“대감, 이번에는 소장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연개소문이 나서자 검모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모든 장수들이 서로에게 선봉을 맡겨달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연개소문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번 전투는 모두가 선봉장이 되는 수밖에 없구려.”
연개소문이 익살스런 표정을 짓자 모두 파안대소했다.
“그러면 이곳은 장군들에게 맡기고 나는 평양성으로 들어가야겠소.”
막 웃음기가 사라질 무렵 연개소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하십시오, 대감.”
‘화공’으로 옹산성 불바다…항복 권유
연개소문 평양성으로 진격 ‘속전속결’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자 연개소문은 칼을 뽑아 땅바닥에 앞에 전개되어 있는 지형을 그리며 장군들에게 일일이 지시하고는 검모잠을 대동하고 얼어붙은 강을 건너 평양성으로 이동했다.
평양성에 들자 보장왕과 연정토, 아들 남건이 맞이했다.
“다른 당나라 부대는 어디에 있는가?”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연정토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소정방의 부대는 지금 패수(대동강) 남쪽에서 그리고 임아상의 부대는 서쪽에서 압박하고 있습니다만.”
“남쪽과 서쪽에서라. 여하튼 침공한 지 오래되니 슬슬 군량이 떨어질 때가 되었다는 말이네.”
“그래서 수성에 전념하는 중입니다.”
“그리는 안 되지!”
“무슨 계책이라도 있소, 대감.”
“비록 신의 불찰이 있어 일이 이리 되었지만.”
말을 하다 말고 연개소문이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갑자기 선도해 그 사람이 생각나서.”
“하기야, 그 사람이 살아 있다면 당나라 놈들이 감히 이곳까지 들어오지 못했을 겁니다.”
“어찌되었던 이번에 내 실책을 반드시 만회할 일이야.”
“어찌하시게요?”
“오다가 방효태가 이끄는 당나라 군사들이 사수가에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네.”
“그런데요?”
“지금 고문 장군을 위시해서 주력군이 그들의 배후에서 준비하고 있네. 그러니 사수 가까이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다 저들을 몰살시켜야겠네.”
“그런 경우 당의 다른 부대가 가만히 있을까요?”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속전속결로 끝내려 합니다.”
보장왕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양성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연개소문이 검모잠과 남건을 대동하고 중앙군 일부와 함께 사수로 이동했다.
강가에 이르자 주변을 살펴보았다.
강이 너무나 단단하게 얼어 포차는 물론 여하한 경우라도 얼음을 깨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연개소문이 사수 기슭에 매복하라 지시했다.
얼어붙은 강으로…
매복을 마치자 연개소문이 강가에서 연을 띄워 올렸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연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당나라 진영에서는 물론 고문 장군의 진영에서도 한눈에 연의 모습이 들어왔다.
삼족오의 모습이 그려진 방패연이 하늘 높이 떠오르자 연개소문은 잡고 있던 방패의 실을 끊어버렸고, 연은 급격하게 바람에 날기 시작했다. 그 순간 고문 장군이 이끄는 고구려 군사들이 앞으로 내달렸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