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푸드 급식사고 흑역사

대기업 맞아? 믿고 먹을 수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신세계푸드가 비위생적인 식품을 유통하다 보건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숙명여자대학교에 납품한 식품 가운데 일부서 기준치를 초과한 대장균이 발견된 것. 감독당국은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비위생적인 음식물 논란이 처음이 아니라 비판이 고조될 전망이다. 논란의 신세계푸드를 조명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신세계푸드가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신세계푸드가 급식을 책임지는 숙명여자대학교서 식중독 논란이 발생했다. 보건당국은 원흉으로 지목된 신세계푸드가 숙명여자대학교 급식에 사용한 식품 및 식자재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신세계푸드의 식품 가운데서 기준치 이상의 대장균이 검출됐다.

집단으로 
식중독 증세

숙명여대의 식중독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서울 용산구 보건소에 따르면 지난 9월 숙명여대 학생들은 집단으로 식중독 의심 증세를 보였다.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생들이 먹은 김치 등에서 기준치의 4배를 웃도는 대장균이 검출됐다. 다만 당시 식중독 증세를 보인 학생들에게서 검출된 원인균은 신세계푸드의 김치와는 다른 종류의 대장균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법상 음식서 허용 가능한 대장균 기준치는 1g당 10 이하다. 하지만 신세계푸드의 식자재에선 40 이상의 대장균이 검출되면서 제재가 불가피했다. 이에 따라 감독당국은 신세계푸드에 영업정지 15일 처분을 내렸다.


용산구청 보건소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9월 발생한 집단 식중독 증상을 보인 학생들에게서 나온 대장균과 신세계푸드의 식자재서 나온 대장균과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며 “원인불명으로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신세계푸드 관계자 역시 “학생들에게서 나온 세균은 음식서 나온 세균과는 달라 원인불명으로 판명됐다”며 “김치서 대장균이 기준치보다 높게 나와 영업정지 15일을 받게 됐다”고 전했다.

신세계푸드는 지난 4일까지 사전통지 기간을 거친 다음, 2주 이내에 해당 식당의 영업을 중단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숙명여대가 거래처를 바꾸기로 결정하면서 신세계푸드는 자존심을 회복하지 못하고 불명예스러운 퇴출을 맞게 됐다.

툭하면 비위생 급식 파문…결국 덜미
 기준치 넘는 대장균 검출 ‘영업정지’

숙명여대 측은 지난달 21일 “식중독 의심 증상의 역학조사 결과와 관계없이 업체를 변경하기로 했다”며 “현재 위탁운영 사업자 선정을 위해 입찰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숙명여대와 신세계푸드 사이서 발생한 구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른바 ‘선착순 바나나’ 논란은 숙명여대 학우들의 자존심을 긁었다. 복수의 언론 등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2013년 신세계푸드가 2300∼3100원 수준의 밥값을 200원씩 인상하면서 발생했다.
 

▲ ▲숙명여자대학교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학생들을 무시한 처사”라며 학교 앞에서 밥값 인상에 반대하는 ‘반값 밥차’를 운영하면서 맞섰다. 신세계푸드는 여론이 악화되자 “사전협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해 유감”이라며 “중간고사 기간에 바나나 500개를 선착순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선착순 바나나’ 논란으로 재확대됐다.


신세계푸드의 이러한 대처 방식은 아쉬움을 남겼다. 여성 고객층이 다수인 신세계그룹은 아이러니하게도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종종 받아왔기 때문이다.  

2016년 이마트는 주꾸미 할인행사를 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홍보글을 올렸다. 당시 사용했던 홍보문구는 “남편이든 애인이든 그만 들들 볶고 주꾸미를 볶으세요”였다. 여성은 사람을 귀찮게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불가피했다.

비판이 거세게 일자 이마트는 이내 사과문을 올렸다. 이마트는 해당 논란에 대해 “잘못된 표현으로 인친(인스타 친구)분들의 마음 상하게 해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생각이 짧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올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마트가 지분 50%를 가지고 있고 주고객층이 여성인 스타벅스코리아도 여혐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불량식 유통
3년째 구설

스타벅스코리아는 매장 이용 캠페인의 일환으로 자사 홈페이지에 포스터를 올렸는데 민폐고객으로 지목된 손님이 여성이었다. 이에 대한 여성 고객들의 반발은  당연지사였다.

이와 관련해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성차별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향후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했지만 이미지 훼손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에는 신세계의 제주소주 제품명이 성매매 용어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6년 12월 이마트는 제주소주를 인수했다. 이후 논란은 제주소주가 16.9도의 푸른밤과 20.1도의 푸른밤 두 종류의 제품을 출시하면서 각 제품을 ‘짧은 밤’과 ‘긴 밤’으로 별칭하면서 시작됐다.

문제는 짧은 밤과 긴 밤이 성매매를 지칭하는 ‘은어’를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푸른밤 광고모델로 나선 가수 소유가 “너는 어떤 밤이 좋아?”라고 묻는 광고 카피가 불쾌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급기야 여성단체까지 일어났다. 제주여성인권연대는 논평을 내고 “현실에서는 이런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용어인지 확인하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고의든 실수든 소비자에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품 홍보 과정서 사용되는 성적 대상화로 인해 특정 성을 비하하거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바라보고 그럴 가능성이 있는 용어에 대해서는 좀 더 세심하게 다듬는 등 신중한 마케팅 전략이 요구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신세계푸드

신세계 측은 “성매매 은어를 연상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황당하다면서도 “노래 ‘제주도 푸른밤’과 연관 지어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일각에선 남성 중심의 경영진 운영이 여성 소비자와의 불통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일례로 지난 3분기 기준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신세계푸드는 미등기임원과 등기임원이 모두 남성이다. 이는 기업 경영이 남성 중심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여성 고객과의 소통에 애를 먹는 것 아니냐는 지적의 근거가 된다. 실제 오너 일가인 이명희 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을 제외하면 그룹 내 남성 임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숙명여대와의 악연(?)을 차치하고서라도 신세계푸드로는 이번 대장균 검출로 급식업체로서의 체면을 구기게 됐다. 지난해에도 식중독균이 검출된 제품을 납품했다가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대표 교체로 
분위기 반전?

지난해 신세계푸드는 급식사업에 가장 기본이 되는 위생관리에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신뢰도가 하락했다.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칼호텔 구내식당에서 장티푸스 집단 감염사고가 발생하면서 호텔 내 급식을 담당한 신세계푸드가 그 원인으로 의심받았다.

역학조사 결과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구내식당 종사자가 감염원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급식사업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위생관리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에 비판의 강도는 더욱 거셌다.


당시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역학조사 결과 감염원으로 지목된 칼호텔 구내식당 조리종사자 A씨를 석 달 동안 조리공간에 방치함으로써 감염자가 늘어났다. 결국 총 7명의 장티푸스 환자가 발생했다. 특히 조리사 가운데 2명이 장티푸스 보균자인 사실이 드러났다.

급식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신세계푸드의 직원이 장티푸스 감염원으로 지목되면서 비위생적인 업무 환경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장티푸스는 대표적인 후진국형 질병이다. 서울대학교병원에 따르면 장티푸스는 살모넬라 타이피균의 감염으로 발생한다. 감염 환자나 보균자의 대변 및 소변에서 나온 균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감염된다. 몸속으로 들어온 균의 수가 100만개서 10억개 정도면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 최성재 신세계 전 대표

장티푸스를 예방에는 위생관리가 중요하다. 상하수도 정비 등의 공중위생 정책과 더불어 개인적 차원의 위생관리가 필요하다. 유행지역에선 반드시 물을 끓여 먹고 음식물의 위생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보균자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통해 세균이 몸속에서 모두 제거되기 전까지는 식품을 다루거나 환자를 간호하는 업무 등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신세계푸드는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숙대와의 씁쓸한 인연 눈길
과거 선착순 바나나 재조명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당시 감염된 A모씨는 그해 3월 5차례, 4월 2차례, 5월 4차례, 6월 3차례 등 석 달 동안 모두 14차례 두통과 열감 등의 증상을 호소하고 병원을 방문했다. 신세계푸드가 세심하게 직원을 관리했더라면 장티푸스 보균자를 일찌감치 격리·치료조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처음 장티푸스 환자가 발생한 뒤 한 달 뒤인 6월, 신세계푸드가 감염원일 가능성이 유력했지만 신세계푸드는 질병관리본부의 최종보고서 발표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미온적을 태도를 보여 비난을 샀다. 이미 전년 7월에도 제주국제공항서 식품위생법 위반 등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바 있어 신세계푸드의 위생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

이에 따라 최성재 대표의 위기관리 능력도 도마에 올랐다. 최 대표는 1983년 신세계에 입사한 이후 2016년 3월부터 신세계푸드 대표이사로 선임돼 현재까지 회사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취임 후 3년 연속 위생관리에 실패하면서 연임도 실패했다. 당초 최 대표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신세계푸드는 계열사의 지원을 아낌없이 받고 있다. 계열사를 상대로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

지난 3분기 기준 신세계푸드가 매출을 올린 계열사는 이마트, 세린식품, 스무디킹코리아, 이마트에브리데이, 신세계조선호텔, 신세계건설, 신세계아이앤씨, 스타벅스커피코리아, 광주신세계, 신세계엘앤비, 스타필드하남, 스타필드고양, 신세계영랑호리조트, 신세계페이먼츠, 이마트24, 신세계프라퍼티, 신세계티비쇼핑, 제주소주, 신세계,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사이먼, 신세계동대구복합환승센터, 센트럴시티, 센트럴관광개발, 신세계디에프, 신세계디에프글로벌, 신세계면세점글로벌, 신세계인터코스코리아, 서울고속버스터미널, SHINSEGAE MAMEE SDN. BHD 등 30개사다.

신세계그룹 대부분의 계열사를 상대로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 이들을 대상으로 올해 3분기까지 올린 매출액은 2958억5503만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2815억4460만원 대비 5.08% 증가한 수준이다.

신세계푸드 전체 매출액서 차지하는 내부거래 규모도 상당하다. 신세계푸드는 올 3분기 누적 별도기준 9530억9075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따라서 내부거래 비중은 31.04% 수준이다.  

각지서 펑펑
오명 씻을까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급식사업을 영위하는 신세계푸드서 식중독 사건이 터지면서 비위생적인 음식물을 유통시킨 식품기업이라는 비난에 직면하게 됐다”며 “과거 제주 칼호텔 사건까지 더해 이미지 제고에 더욱 힘써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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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