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돈 받아 성장한 공기업들 난처한 내막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6.05 10:15:30
  • 댓글 0개

공기업 탈피한 '포스코'는 100억 뱉었는데…나머지는?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포스코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위한 재단에 1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일본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각종 사업을 벌였던 나머지 기업들의 추가적인 움직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강제징용피해자재단 설립을 추진하면서 이들 기업에 지원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전한 것. 재단을 통해 징용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매우 적절해 보이지만 포스코를 제외한 일본 지원금 수혜 기업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는 상태다.

1965년 한일협정 타결 이후 이듬해인 66년부터 한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10년 동안 무상공여 3억달러, 유상자금 2억달러, 민간차관 3억달러를 각각 제공받았다. 부속협정인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른 것인데 당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한일 청구권 협상 이후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이유로 임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포스코 가장 큰 수혜

이중 무상·유상 자금 5억달러 중 가장 많은 자금이 투입된 곳은 외환은행이었고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기업은 포항제철(현 포스코)이었다. 포스코에는 총 1억1948만달러가 투입됐고 이는 총 자금의 23.9%에 이르는 돈이었다. 박태준 당시 사장은 근로자들에게 "이 제철소는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금으로 받은 조상의 피 값으로 짓는 것입니다. 실패하면 조상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 목숨 걸고 일을 해야 합니다. 실패하면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던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제강제동원피해자단체 등은 "대일 청구권 자금의 최대 수혜기업 포스코는 역사적 책무를 다하라"며 "매출액의 1%를 일제 장제징용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재단에 출연하라"고 요구해 왔다. 매출액의 1%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약 6800억원에 이른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위자료 지급 청구 소송을 맡은 재판부는 포스코의 손을 들어주면서 한편으로는 포스코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100억으로 생색…매출 1% 출연하라"
"윤리적·사회적 책임 다할 때" 지적도


2006년 징용 피해자 99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1인당 1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의 2009년 항소심에서 서울고법 민사5부는 원고 패소 판결했다. "포스코가 당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청구권 자금 중 일부를 투자받아 설립됐고, 이를 상환했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단 재판부는 "포스코의 설립 경위와 기업의 사회·윤리적 책임 등에 비추어볼 때 강제징용, 임금 미지급 등의 피해를 본 사람이나 그 유족들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했다.

이에 포스코는 내부회의를 통해 직접적인 지원은 않겠지만 국가가 운영하는 재단이 설립될 경우 자금지원을 한다는 방침을 정했고 지난 3월16일 이사회에서 2014년까지 100억원을 지원금으로 내놓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포스코의 움직임은 지난해 8월 국회가 여야 합의로 일제 징용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특별법'을 제정하고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재단 설립에 나서면서 포스코 등 대기업에 재단의 출연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것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코레일·외환은행 등 징용피해자재단 지원 고민

포스코 관계자는 "(100억원 지원은)정부 차원의 피해자 지원활동에 동참한 것이지, 대일 청구권 위로금 소송과는 관련이 없다"며 "100억원 이외의 추가 출연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단체 등이 요구하는 조건에는 터무니없이 못 미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일본자금 수혜기업도 있다.

경제기획원이 펴낸 '청구자금백서(1976)'에 따르면 대일 청구금 수혜기업 및 기관은 포스코, 농협, 한국농촌공사, 대한광업진흥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 KT&G, KT, 외환은행,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서울대병원, 기상청 등 10여 곳에 이른다.


재단 출연 "검토 중"

하지만 포스코를 제외한 이들 수혜기업은 재단 설립을 위한 위원회의 출연 요청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이 기금 출연에 대해 "검토 중"이라는 반응만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법적인 책임이 없는 것으로 결정 난 포스코가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재단 설립을 지원하는 가운데 나머지 수혜기업들도 최소한의 일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