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풍 몰고 온 4·11 총선] ⑩ 한명숙의 운명은?

  • 정혜경 jhk@ilyosisa.co.kr
  • 등록 2012.04.16 14: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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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오리알 신세…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일요시사= 정혜경 기자] “정치인생의 마지막 승부다.” 지난 1월15일 열린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신임 대표에 당선된 한명숙 전 민주통합당 대표는 이처럼 밝혔다. 4·11 총선에서 정권을 교체하고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였다. 상황은 낙관적이었다. 원내 제1당이 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참담했다. 그야말로 ‘무참히’ 깨졌다. 패배의 책임은 한 전 대표에 돌아갔다.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결국 한 전 대표는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치인생 마지막 승부에서 주저앉고 만 것이다.

재야운동에 25년 몸 바치다 DJ 권유로 정치 입문
정권교체에 비장한 각오 보였지만 ‘천재일우의 기회’ 놓쳐

한명숙 전 민주통합당 대표는 과거 한국 민주화 운동과 여성 운동 등에 25년을 몸 바쳤다. 그런 한 전 대표가 정계에 발을 들인 건 1999년의 일이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새천년민주당 창당 작업에 여성 분과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

당시 한 전 대표는 자신의 정치 참여에 대해 “여성의 정치참여, 남녀평등 수준은 후진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며 “지난 25년간 재야운동을 해왔지만 역시 가장 효율적인 길은 정치 참여를 통한 것이라고 느껴 정치에 투신했다”고 설명했다.

한 전 대표는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로서 제16대 국회의원에 선출됐다. 환경노동위원회 활동을 통해 미군 송유관, 비정규직, 공단들의 국립공원 훼손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성실하고 차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전 대표가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건 2000년 국정감사에서다. 새만금 사업의 경제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노사정위원회에 주 5일제를 실시함과 더불어 주 5일 수업제, 여가시설 확충 등을 함께 추진할 것을 요구하며 일약 국감스타로 떠올랐다.

2001년에는 여성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초대 여성부장관에 임명됐다. 한 전 대표는 여성부장관을 지내면서 자신이 발의한 모성보호법 통과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통해 성희롱에 대한 인식을 넓혔고,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는 등 원칙이 분명하게 일을 해냈다는 평을 받았다.

2003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과 함께 참여 정부의 초대 내각 발표 전까지 여성부 장관으로 유력시 됐지만 결국 환경부장관으로 발탁됐다. 대선 당시 경쟁 후보들 중 환경 공약이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던 노무현 후보의 환경 정책은 정권의 시작부터 우려를 낳았고 결국 핵 폐기장 논의에 배제되거나 새만금 사업과 독도 개발 특별법 등을 반대하며 다른 부서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 전 대표가 이끄는 환경부는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안,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 야생동식물 보호법 등의 제정을 위해 앞장섰으며, 정부업무평가 최우수 부처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 전 대표는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환경부 장관을 사직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이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갑선거구에 공천이 확정, 한나라당 5선 중진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을 상대로 선거에서 승리하고 17대 국회의원이 됐다.

17대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한 전 대표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소속돼 활동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위해 노력했다. 이 기간 동안 당 내에서는 신행정수도 건설특별위원회 위원장을, 가정법원에서는 가사·소년제도개혁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중앙상임위원국회의원에 당선된 한 전 대표는 한때 당의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열린우리당 내에서 청와대의 국정 수행을 지원하는 국정과제수행특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2005년 이부영 당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4대 법안 처리 불발에 책임지고 사퇴할 당시 한 전 대표도 함께 상임중앙위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새 지도부의 당의장 후보로 문희상 의원과 함께 이름이 거론되다가 돌연 의장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당의장 경선에서 친정동영 측이 지지의사를 밝히자 한 전 대표는 다시 경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박영선, 김희선 의원 등 당내의 여성 의원들은 모임을 갖고 한 전 대표로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전당대회 결과 문희상 의장이 당 대표로, 한 전 대표가 4명의 중앙상임위원 중 하나로 당선됐다.

그러던 2006년 3월 노 전 대통령은 한 전 대표를 이해찬 전 총리에 이은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이틀에 걸친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한 전 대표는 당적 정리 문제와 국정 능력 및 이념적 편향 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그러나 결국 국회의 임명 동의안이 가결되면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에 등극했다.
2007년 3월에는 총리직을 내려놓고 열린우리당으로 돌아갔다. 한 전 대표는 민주당과의 통합작업에 참여하는 동시에 대선 주자로 나서기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대선 경선 참가를 선언했지만 결국 이 전 총리로 단일화를 선언하면서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이 전 총리는 정동영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에 대통령 후보 자리를 넘겨줬다. 한 전 대표는 이후 정 최고위원 진영에서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와의 단일화에 대한 공동협상기구 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단일화는 실패했고, 정 최고위원은 대선에서 결국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새누리당 단독 과반
향후 유리한 고지

대선 패배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은 지도부 구성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2008년 1월 손학규 민주통합당 의원이 대표로 선출되자 한 전 대표의 만류에도 불구, 친노계열로 분류되던 이 전 총리, 유 공동대표는 대통합민주신당에서 탈당한다. 결국 대통합민주신당에 남은 한 전 대표는 2008년 3월 고양시 일산동구 선거구에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로 공천을 받게 됐다.

고양 일산 갑 선거구에서는 이 대통령의 인수위 행정실장을 지냈던 백성운 한나라당 의원과 경쟁했다. 총선을 20여일 앞둔 여론 조사결과 한 전 대표가 백 의원보다 약 10%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그러나 선거 사흘 전 한명숙의 선거운동원이 지역 사회단체장과 저녁식사를 한 뒤 “잘 부탁한다”며 음식값을 낸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43.8%의 지지율을 얻은 한 전 대표는 47.1%의 지지율을 얻은 백 의원에게 패배하게 됐다.

그러던 2009년 12월, 한 전 대표의 정치인생 최고의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총리 재직 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인사청탁으로 5만달러(당시 환율로 4500만원 정도)를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것. 이른바 ‘대한통운 비자금 의혹’이다. 한 전 대표는 검찰의 수사에 대해 부당한 수사라고 주장하면서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체포 영장이 발부돼 체포됐고 조사과정에서 곽 전 사장과의 대질신문 등이 이어졌으나 한 전 대표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당시 일각에선 검찰과 곽 전 사장 간의 거래가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경찰이 곽 전 사장의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불법 주식거래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리로 종결한 것을 두고서다.
길고긴 공판 끝에 2010년 4월, 이 사건의 1심 재판 결과 한 전 대표에 무죄가, 곽 전 사장에게 횡령 혐의로 징역 3년형이 선고되면서 의혹을 벗었다. 그 직후 한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리고 100% 여론조사로 이루어진 민주당 경선에서 이계안 전 의원에게 승리하면서 민주당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하게 됐다.

낙관적인 상황…막상 뚜껑열어보니 무참한 패배
총선 패배 책임론 사방에서 사퇴 요구하는 목소리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 전 대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맞붙었다. 그러나 모든 여론조사에서 20%정도 뒤지며 오세훈 대세론이 형성됐다. 그러나 실제 선거에서는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선거 다음날 새벽까지 엎치락뒤치락 개표 끝에 오 전 시장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며 낙선했다.


이후 몸을 낮추고 있던 한 전 대표는 지난해 말 민주통합당 당 대표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지난 15일 지도부 선출을 위해 열린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24.05%의 득표율을 보이며 16.68%로 2위를 차지한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를 따돌리고 신임 대표에 당선됐다. 한 전 대표는 정치인생 마지막 승부에 나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관심은 한 전 대표가 정권교체를 이뤄낼 수 있을지에 집중됐다.

상황은 좋았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과 새누리당에 대형 악재가 겹치면서 어느 때보다 야권에 유리했다. 원내 제1당이 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참담했다. 민주통합당은 ‘무참히’ 깨졌다. 고작 127석을 얻는데 그쳤다.

반면 고전할 것이라 예상되던 새누리당은 단독 과반을 확보하면서 향후 정국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당초 이번 총선을 정권교체의 교두보로 여겼던 민주통합당에게는 큰 충격이다.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이루면서 MB정권과 새누리당을 심판하겠다는 야심 또한 힘들어졌다.

민주당의 이 같은 결과는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친노·486 특혜와 구 민주계 학살 논란, 도덕성 후퇴 논란, 모바일경선과 야권 단일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부정선거 논란 등이 승리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선거 운동 막판 서울 노원갑에 전략공천 했던 김용민 후보가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막말 발언들이 드러나면서 새누리당의 거센 공격을 받게 됐지만, 민주통합당이 이에 대한 입장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민간인 불법사찰로 더욱 거세진 정권 심판론이 김용민의 막말 파문에 묻혀버렸다.

장성민, 박지원
사퇴·은퇴 촉구


화살은 한 전 대표에게 돌아갔다. 총선 패배에 따른 책임을 물어 한 전 대표와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장성민 전 의원은 지난 12일 한 전 대표의 대표직 사퇴 및 정계은퇴, 지도부 해체를 요구했다. 박지원 최고위원도 이날 지도부 사퇴론에 가세했다. 한 전 대표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해버린 순간이다.

결국 한 전 대표는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정치인생의 마지막 승부에서 패배를 맞고 주저앉게 된 것. 한 전 대표는 이번 시련을 딛고 일어날 수 있을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한명숙 프로필>?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여성학 석사 
▲이화여자대학교 불문학 학사 
▲정신여자고등학교 

경력
▲민주통합당 대표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민주당 상임고문
▲제17대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제17대 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
▲제37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국정과제수행특별위원회 위원장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제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제8대 환경부 장관
▲제1대 여성부 장관
▲제16대 국회의원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한국여성민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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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