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일요시사 선정> 2011 이슈메이커 50인 ①정계 10인

‘신묘년’ 요동쳤던 정치판 ‘껑충껑충’ 토끼 탓?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능곡지변(陵谷之變)’이란 말이 있다. 이는 높은 언덕이 변하여 깊은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변하여 다시 언덕이 된다는 뜻으로 세상사가 극심하게 뒤바뀔 때 사용하는 말이다. 2011년 정치권에 능곡지변이란 표현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토끼가 껑충껑충 뛰듯이 정국이 극심하게 출렁였던 신묘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한 해였다. <일요시사>가 ‘송년기획’으로 2011년 정치판을 쥐락펴락 뒤흔들었던 10대 인물을 선정해봤다.

기성정치판에 성난 민심 ‘안철수 신드롬’으로 분출
분당승리로 한나라 아성 깬 손학규 일순 대권 탄력

<신드롬에서 기부까지 안철수>

2011년 정치권은 ‘총체적 예측불허’로 요약될 수 있다. 변화무쌍하며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던 형국이 연출되면서다. ‘안철수 신드롬’이 그렇고 ‘디도스 파문’이 그랬다. 특히나 올 한 해 정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가 커지며 정치권은 계속해서 요동쳤다. 정국을 뿌리째 뒤흔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단연 화제의 인물 1순위로 꼽힌다.

안 원장은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박근혜 대세론’의 아성을 단박에 무너뜨렸다. 안 원장의 묵묵부답에도 ‘대망론’은 거세게 불며 여의도 정가를 뜨겁게 달궜다.

그간 부패하고 부조리한 모습을 보였던 기성 정치판에 대해 불신과 혐오는 극에 달했다. 때문에 전혀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는 민심이 안 원장에 열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원장은 백신을 개발하여 무료로 나눠주며 헌신하는 공적 삶을 살았다. 그는 ‘청춘콘서트’를 통해 대중과의 스킨십을 꾸준히 이어왔다.

기존의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압도적 지지를 받던 그가 박원순 서울시장과 후보단일화를 하며 ‘아름다운 양보’라는 선례도 남겼다. 게다가 그의 연구소 주식 1500억을 쾌척하는 ‘통큰 기부’도 선보였다.

이러한 안 원장의 행보는 기존 정당정치가 하지 못한 부분을 비정치권 인사인 그가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에 정치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을 정도의 ‘안철수 신드롬’으로 번지며 ‘철수’라는 이름은 교과서뿐만 아니라 올 한해 언론까지 화끈하게 장식했다.

<시민세력 전면 등장 박원순>

‘안풍’을 등에 업은 시민후보 박(원순) 시장의 당선은 단연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는 여야 잠룡까지 사활을 걸고 뛰어든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당당하게 승리했다. 특히 박 시장은 탄탄한 정당 조직력을 갖춘 여야의 후보들을 맥없이 무너뜨리며 60년 정당정치의 역사에 충격과 굴욕을 안겨줬다.

박 시장은 국내 대표 진보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만든 시민운동 1세대로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하면서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이에 한때 대권후보로 거론될 만큼 정치권의 영입 제의도 잇따랐지만 박 시장은 그간 시민사회 진영의 울타리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 정치를 더 두고 볼 수 없었다며 출사표를 던졌고 당선으로 이어졌다. 박 시장의 당선으로 시민세력이 정치권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한나라당 텃밭 탈환 손학규>

지난 4‧27 재보선 당시 최대 접전지역이던 분당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주목받았다. 분당을 지역은 단 한 번도 야권성향 후보가 당선된 적 없던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불린다. 이런 불모지에 민주당의 깃발을 꽂으며 이변을 일으킨 장본인이 손 전 대표였던 것.

재보선 당시 투표 마감 직전인 오후 7~8시 사이 한 시간 동안에만 1만389명이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손 전 대표는 ‘넥타이부대’와 ‘킬힐부대’ 결집의 요체였다는 평을 받으며 순식간에 대권가도까지 탄력을 받았다.

<정치인생 벼랑 끝 선 나경원>

반면 재보선으로 정치인생의 나락에 선 인물도 있다. 바로 한나라당 나경원 전 의원이다. 그는 지난 10‧26 재보선 당시 박 시장과 맞붙었지만 처참하게 깨졌다. 후보로 나와 검증과정에서 수두룩한 먼지가 털리며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부친의 사학비리와 1억원 피부샵, 일본 자위대 행사 참석 등의 치명적인 과거로 정치인생까지 위태로워 진 것.

이에 그는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12일 서울시장 선거운동 당시 장애아동의 동의 없이 사진을 촬영‧공개한 것에 대해 인권위가 인권침해라고 판정해 또다시 곤혹을 치루고 있다.

‘얼짱 국회의원’으로 불리며 촉망받던 정치인에서 한 순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 친 나 전 의원에겐 이래저래 올 겨울이 어느 때보다 쓸쓸하고 추운 계절임에 틀림없다.

<한나라 저주의 불씨 오세훈>

2011년을 기억하기 힘든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최근 한나라당에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 ‘서울대첩 패배’ ‘디도스 파문’ 등 악재가 겹치며 당의 해체까지 거론되는 위기일발의 상황이다.

이 모든 사태는 오 전 시장의 불명예 퇴진에서 비롯됐다. 이른바 ‘오세훈의 저주’라는 성토가 이어지는 이유이다. 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불장군 식으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밀어붙이다 무산되자 전격적으로 시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저주가 시작됐다는 것.

오세훈의 ‘돌발사퇴’ 저주에 한나라당은 ‘만신창이’
‘자학개그’ 선보여 연예대상감으로 거론된 강용석 

주민투표는 한나라당의 패배로 귀결됐다. 이어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도 한나라당은 패했다. 게다가 재보선 당시 선관위 디도스 공격이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수행비서 소행으로 밝혀지며 한나라당은 만신창이로 전락했다.

문제는 이 저주의 끝이 언제인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다시 언제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몰라서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내년 선거 때까지 한시도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형국이다.


<개그맨과 개그 배틀 강용석>

2011 불명예 넘버원 정치인은 강용석 무소속 의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올 한 해 누구보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며 포털 인기검색어 연속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강 의원은 작년 7월 국회 전국대학생토론회 뒤풀이에서 한 아나운서 지망 여대생에게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 “대통령도 예쁜 여학생의 연락처를 알려고 했을 것”이라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 이에 한국아나운서협회와 방송사 여성 아나운서 78명은 지난해 검찰에 집단모욕죄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강 의원은 똑같은 방식으로 KBS <개그콘서트>에서 정치인을 풍자한 개그맨 최효종을 국회의원 집단모욕죄로 고소했다.

자신의 집단모욕죄 부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개그맨을 미끼로 고소하는 자학개그를 선보인 셈. 역풍은 생각보다 거세게 불었다. 누리꾼들은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강 의원이 다른 사람을 고소까지 한 입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비난했고, 이때부터 뭘 해도 욕먹는 미운털이 박혔다.

개그맨과 한판 배틀을 벌인 그는 올해 연말 연예대상감이라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무죄로 검찰굴욕 준 한명숙>

한명숙 전 총리가 검찰과의 대결에서 잇단 2연승을 거머쥔 것도 화제였다. 지난해 7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 9억7000만원을 받은 혐의와 지난해 4월에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기소된 사건에서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은 것.

당시 수사에 자신감을 내비쳤던 검찰은 한 전 대표와 곽 전 사장의 진술 외에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따라서 검찰은 제보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한 전 총리를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검찰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전 정권 인사를 탄압한 전형적인 사례”라며 ‘표적수사’ ‘정치탄압’이라는 평가도 줄을 잇는다. ‘정치검찰’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족쇄가 풀리며 전세를 역전시킨 한 전 총리는 검찰개혁에 칼을 빼든 상태다.

<헌정 초유 최루탄 테러 김선동>

지난 11월22일 오후 4시8분,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이 터지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최루탄 테러의 주역은 바로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다. 그는 한나라당에 의해 한미FTA가 기습처리 되는 것에 반발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한국 언론뿐만 아니라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로 인해 국회의 ‘날치기’와 ‘테러’ 등 후진적인 한국정치의 치부가 세계만방에 널리 알려졌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양보로 전남 순천에서 단일후보로 출마해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금배지를 달았던 김 의원은 이번 사태로 정치 앞날이 가물가물한 지경에 처한 형국이다.

<상왕통치시대 종식 이상득>

현 정권의 실세로 통하던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은 ‘상왕통치 시대’의 폐막을 알렸다. 그는 불출마 배경에 대해 “한나라당이 새롭게 태어나는데 하나의 밀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불명예퇴진이라는 평이다.

15년지기 보좌관 박모씨가 제일저축은행 및 SLS그룹 구명 로비자금을 받아 검찰조사 중에 있어서다. 보좌관이 받기에는 너무 거액이라는 의심에 검찰의 칼날이 이 의원을 향해 있는 상태다.

게다가 현 정권에서 의혹이 일었다 하면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해 ‘만사형(兄)통’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절대권력으로 통했던 그의 불출마 선언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한나라의 ‘5개월 천하’ 홍준표>

지난달 디도스 파문이 불거지며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고 지난 9일 사퇴한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올 한 해 천당과 지옥을 오간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선출직 최고위원 3인의 동반사퇴로 ‘억지춘향격’으로 밀려난 홍 전 대표 체제는 ‘5개월 천하’로 막을 내렸다. 7‧4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당선된 이후 한나라당의 온갖 악재와 맞물려 그 역시 막말로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홍 전 대표는 당 대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며 갖은 사퇴 압박 속에서도 당 쇄신안을 앞세워 사퇴를 거부했었다. 하지만 결국 여론에 밀려 대표직에서 물러나며 한나라당은 다시 격랑에 휩싸인 분위기다.

올 한 해 정치권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특히 국회의 고질적 병폐인 폭행사태가 난무했고, 대통령 친인척‧측근비리가 봇물을 이루며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과 불신을 더했다. 때문에 유난히도 올 한 해 민심이 계속해서 출렁였고, 2012년의 정치 일정까지 미리 앞당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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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