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망가진’ 대기업 막전막후

‘꿈 깨!’ 사라지는 차이나 드림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기업에게 중국시장은 꿈의 무대다. 14억 인구서 나오는 충분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나가떨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국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일요시사>는 중국 진출의 닻을 올렸지만 쓴맛을 보고 회항한 기업들을 확인했다.
 

한국은 지난 1992년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이념적으로 달랐던 양국이었지만 경제적인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한국의 기업들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압도적인 인구서 나오는 시장에 열광했다.

한중수교 후
속속 현지 진출

중소기업과 대기업들은 국내에 있던 공장을 속속 중국으로 이전했다. 양국간 경제 긴밀도가 높아지면서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다른 국가를 제치고 1위(2017년 기준)를 기록했다. 하지만 정작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결과는 ‘빛 좋은 개살구’란 평가가 나온다. 

심혈을 기울여 진출했지만 중국 시장의 정치적 불안이 경영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친 탓이다. 

경영 여건도 빠르게 변했다. 중국 투자의 매력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인 값싼 노동력은 옛말이 됐다. 2010∼2016년 연평균 임금 상승률은 9.28%에 달할 만큼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6년 기준 중국의 임금은 한국의 76% 수준까지 따라왔다. 


더 이상 공장 이전의 매력을 느끼기에 어려운 구조였다. 여기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와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 진출 기업의 불확실성이 고조됐다. 잇단 리스크에 기업이 휘청거리는 사례가 잦아지자 차이나드림을 꿈꾸던 기업들이 철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지난 15일, 더페이스샵이 중국의 모든 매장을 철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더페이스샵은 2010년 LG생활건강에 인수된 해 중국 상해법인을 설립해 시장 개척을 노렸다. 

실적이 문제였다. 지난해 더페이스샵(상해)화장품소수유한공사의 194억20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반한감정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반한감정은 LG생활건강 외에도 유통 관련 한국기업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롯데쇼핑 역시 사드발 역풍을 맞은 뒤 중국 내 사업을 접기로 했다. 롯데쇼핑은 2007년부터 중국에 진출해 마트 사업을 벌였으나 신통한 성적표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사드 보복으로 영업점의 영업이 중단되고 매출이 80% 가까이 감소하자 시장철수라는 카드를 꺼냈다.

사드 보복이 롯데쇼핑에 집중된 것은 사드 관련 이슈가 롯데그룹과 연관돼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 부지였던 성주골프장에 사드 배치가 결정되면서 중국 내 반 롯데정서가 매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롯데마트가 손실을 본 매출 규모는 1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 정부 당국은 중국에 진출한 롯데 계열사를 상대로 위생 점검, 세무조사 등 전방위 압박을 가하면서 경영활동을 사실상 지속하기 어려웠다.

롯데쇼핑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 내 롯데마트 철수에 속도를 내기로 해다.  중국에 설립된 법인은 총 6개로 112개의 점포가 있다. 앞서 롯데쇼핑은 롯데마트 화동법인의 74개 점포 가운데 53개 점포를 중국 유통기업 리췬그룹에 매각했다. 
 

또 베이징 점포 21곳도 중국 유통기업인 우마트에 넘겼다. 중국 내 철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롯데마트의 중국 내 매장 철수 계획이 알려지자 현지 중국 롯데마트 노동자 1000여명은 베이징시 롯데마트 총본부에 집결해 3일동안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롯데쇼핑은 중국에 진출한 마트 사업에 이어 백화점 사업 역시 발을 빼기로 했다. 롯데쇼핑은 2008년 베이징에 백화점 매장을 론칭하면서 중국 진출을 꾀했다. 이후 5개 점포로 확대했으나 롯데마트와 마찬가지로 사드 보복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면서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값싼 노동력 옛말
각종 리스크 부각

사드 보복은 롯데의 유통부문뿐만 아니라 수년간 공들여온 ‘청두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청두프로젝트는 중국 청두시에 1400가구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 후 호텔, 백화점, 쇼핑몰, 시네마 등의 문화 편의시설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투입되는 자금 규모만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프로젝트는 롯데그룹의 염원이 담긴 사업이기도 했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 내 롯데그룹 계열사 사업이 휘청거리는 시기에도 롯데그룹 측은 청두 사업철수 전망에 대해서 사실무근이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백화점 사업까지 철수하기로 한 지금 청두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시각이 늘고 있다. 

중국 내 쓴맛을 본 롯데그룹이 청두 프로젝트를 밀어붙일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에는 중국 유통업계에 진출한지 20년이 된 신세계그룹의 이마트가 중국 철수를 마무리했다. 이마트는 1997년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 시장을 개척했다. 중국 진출이후 30곳까지 매장을 늘렸지만 수익성 악화로 돌아서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결국 짐을 쌌다. 
 

2012년부터 출점 매장 매각에 돌입했다. 2016년에는 당시 중국 상하이의 1호점을 폐점했다. 철수 수순은 지난해말 마무리됐다. 이마트는 상하이 매장 5개를 태국 CP그룹에 일괄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매각 허가가 나지 않아 철수가 미뤄졌다. 지난해 말에야 허가를 받으면서 철수가 사실상 종료됐다.


이랜드그룹 역시 중국 시장의 한계를 실감했다. 이랜드는 자사가 운영하는 커피빈의 중국지점을 철수할 방침을 밝혔다. 

이랜드는 2016년 중국 상하이에 커피빈 1호점을 오픈한 바 있다. 이랜드는 중국 내 1000개 이상의 매장을 늘려나간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2년 만에 ‘중국몽(夢)’서 깨야 했다. 이랜드는 중국에 진출한 다른 외식사업까지 철수하기로 했다. 

철수 법인은 ‘자연별곡’과 ‘애슐리’였다. 지난 2015년 이랜드의 외식브랜드 자연별곡은 중국 상하이 와이탄 지역에 ‘자연별곡(쯔란비에구)’를 개점했다. 한식뷔페의 중국진출 사례는 처음이었다. 자연별곡 1호점은 총 660㎡ 규모에 202석의 좌석을 갖추고 손님을 맞았다. 

시작은 좋았다. 한류열풍과 맞물리면서 1개 점포서 100일동안 매출 1062위안(한화 20억원)을 기록하며서 순조롭게 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여세를 몰아 2호점까지 오픈했지만 고객들의 재방문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수익이 악화돼 지난해 사업을 철수했다.

애슐리 역시 아픈 손가락이다.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 애슐리는 자연별곡보다 앞선 2012년에 중국 상하이에 1, 2호점을 오픈하면서 중국 외식업계에 발을 들였다. 1호점인 상하이 푸동의 애슐리는 외식 브랜드로는 최대규모인 1530㎡로 총 400석을 확보했다. 

상하이 최대 백화점 빠바이반에 입점한 2호점은 1200㎡에 총 320석을 확보하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5개 매장까지 확대했으나 수익성은 떨어지면서 결국 중국 시장서 짐을 쌌다.


국내 의류브랜드 에잇세컨즈 역시 야심차게 중국시장에 발을 들였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지난 10일, 에잇세컨즈 브랜드를 운영하는 삼성물산 측은 중국 사드 여파와 함께 투자대비 성과가 나지 않아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SPA 브랜드인 에잇세컨즈는 지난 2016년 9월 상하이 쇼핑거리 화이하이루에 3630㎡ 규모의 매장을 오픈했던 바 있다. 다만 중국시장서의 완전한 철수는 아니다. 에잇세컨드는 온라인 유통 채널을 통해 중국 공략에 변화를 줄 방침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도 중국의 몽니에 불확실성이 적지 않게 부각되고 있다. 

SK가스는 2016년 중국 진출 사업을 청산했다. SK가스는 2000년 후반부터 중국내 다양한 사업들을 론칭했다. 하지만 해외 기간산업 회사에대 한 중국의 인식은 배타적이었다. 이 때문에 사업 확장에 고심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중국 내 관련 법인들은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2011년 중국 지린성 창춘시 LPG충전소를 매각하고, 2013년 축천연가스(CNG) 생산·판매업을 주력으로 하던 ‘다칭SK란치유한공사’를 청산했다.

각종 불확실성 
고조에 ‘덜덜’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중국 선전에 위치한 통신설비 공장 철수를 결정했다. 높아진 인건비에 따라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 원인이었다. 이에 따라 선전서 생산하던 물량은 인도와 베트남에 위치한 공장서 맡게 됐다. 

중국 1인 근로자에게 투입되는 인건비는 월 5000위안(80만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근로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하는 보험 등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하면 1만2000위안까지 인건비가 상승한다. 

반면 베트남 노동자의 인건비는 10분의 1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인도의 경우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란 점에서 현지 공장에 대한 증설이 계획됐다. 기존 운영 중이던 인도 노이다 공장에 8000억원을 투입해 증설하기로 한 것이다.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현재 노이다 공장의 생산능력은 6000만대다. 증설 완료 후에는 1억2000만대로 생산력이 늘어날 예정이다.
 

한화리조트도 중국 시장 개척에 쓴 고배를 마셨다. 2016년 야심차게 아쿠아리움 사업을 벌였지만 2년 만에 철수했다. 당시 한화리조트는 중국 부동산 1위 기업 완다그룹과 아쿠아리움 사업을 추진해 월드 클래스 아쿠아리움 난창완다해양낙원(이하 해양낙원)을 론칭했다.

해양낙원은 종합테마파크인 완다시티 내 핵심시설로 국제 규격 축구장 5개 넓이 규모였다. 한화리조트는 당초 10년간 시설, 공연, 생물관리, 마케팅 등을 비롯한 운영을 맡은 계획이었다. 

하지만 완다그룹이 재무건전화 작업에 따라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서 해양낙원이 매각되면서 한화리조트가 자연스럽게 관리 위탁 사업서 손을 떼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화리조트로서는 중국 진출의 기회서 한 발 물러서게 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중국과의 정치적 이슈에 민감한 일본 기업들도 탈중국 추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지난 6월 일본 스즈키사가 중국 자동차 생산합작 사업을 철수했다. 인도 시장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 회사 측 입장이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한 뒤의 행보라 눈길이 쏠렸다.

스즈키사는 당시 중국서 자동차 생산을 포기하고 수입 판매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즈키사와 충칭 창안 자동차와의 합자회사인 충칭 장안 스즈키 자동차는 양사의 자본이 1:1 비율로 투입돼 1993년 설립됐다.

일본 미쓰비시전자는 미중 무역분쟁이 시작되던 무렵부터 중국 다롄에 있는 제품 생산기지를 일본 나고야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일본 도시바사도 관세부과에 부담을 느끼고 생산라인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기업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시장이다. SK그룹은 수년째 그룹 차원서 중국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른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을 통해 중국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구글 역시 8년 전 중국 검색 시장에 진출에 실패한 이후 다시 한 번 진출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구글 내부의 분위기는 물론 미국 정부까지 중국 진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재추진은 유예됐지만 언제든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대·중견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진땀

증권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정치 리스크가 커 한국기업들이 중국진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한다”면서도 “경쟁사가 중국 시장에 선점할 경우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경쟁자로 부각할 가능성이 있어 있어 중국 진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사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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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