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박상미 기자]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야한다.’ 예능계를 호령하던 ‘국민MC’ 강호동이 떠난 후 패닉상태에 빠졌던 방송가가 본격적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크고 작은 타격을 입고 잠시 혼란에 빠졌던 방송 3사 예능프로그램들은 제각기 미봉책을 마련해 큰 피해를 막았다. 미봉책은 미봉책일 뿐, 무엇보다 확실한 대책마련이 급선무다. 방송3사는 새로운 에이스 영입을 위한 전쟁을 조용히 진행 중이다.
국민 MC 떠난 방송가 비상체제 돌입…쏠림 현상은 여전
후속 타자 시급, ‘제 2의 ○○○’ 아닌 새 인재 발굴해야
방송가 소리 없는 전쟁의 막이 올랐다. ‘강호동 쇼크’ 이후 대체주자 발굴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역량 있는 재목을 영입하려는 각 방송사의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2000년대 예능계는 사실상 강호동과 유재석이 두 개의 태양으로 군림해왔다. 예능계의 연례행사인 방송연예대상의 영예는 수년간 강호동과 유재석이 사이좋게 나눠가지며 공로를 인정받아왔다. 지난해 KBS 방송연예대상은 관록 있는 MC 이경규가 차지했지만, 이 역시 앞서 2년에 걸쳐 강호동이 수상한 전력이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교체 아닌 새 주전으로
진주 발굴이 관건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강호동의 은퇴는 국내 예능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각 방송사가 강호동의 빈자리를 대신할 새 얼굴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예능가에 새 바람이 불어올 태세다. 유·강 체제에 밀려 주춤하던 스타급 MC, 때를 기다리던 보조 MC들에게는 반가운 봄바람이 아닐 수 없다. 관록 있는 MC 이경규·김국진부터 강호동의 수제자인 유세윤·이수근·이승기,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온 김구라, 다크호스 윤종신·전현무, 돌아온 붐 등 많은 예능 MC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예능 MC의 시조격인 주병진도 오랜 겨울잠을 끝내고 방송가 복귀를 타진 중이다.
예능 MC 입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신예들도 이 기회를 틈타 부푼 꿈을 꾸고 있다. 한 연예 관계자는 “기존에 입지를 다진 MC들에게 먼저 기회가 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기성 MC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이미지 소모가 이미 시작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상 현재 방송가에 강호동의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는 캐릭터는 없다고 본다”며 “전혀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강호동의 그림자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슈 몰이 vs 깊은 내공
방송가 고민 여전
유·강 체제에서 벗어나 넓은 시각으로 예능 스타를 살펴보면, 끼 있는 아이돌 스타와 정통 개그로 기본을 다진 개그맨 출신 MC로 양분된다. 방송가는 빈틈을 메울 구원투수를 선택하기에 앞서 또 한 번 고민에 빠졌다. 예능돌을 택할 것인가, 기본기가 탄탄한 개그맨을 택할 것인가가 문제다.
예능돌의 최대 강점은 두터운 팬 층이다. 이들은 방송 프로그램의 생명인 시청률에 지대한 공을 세워왔다. 그간 유명 아이돌은 일회성 출연만으로도 예능프로그램 시청률 지표가 들썩일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 개중 특출난 끼를 발휘하는 멤버들이 모인 예능돌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왔다.
반면 개그맨 출신은 쉽지 않은 개그시장에서 다진 근성이 강점이다. 재치·순발력·개그감이 개그계 입문에 있어서 필수요건인만큼 일정 수준은 누구나 갖추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예능계에서 MC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스타 중 상당수가 개그맨 출신이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관계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진주가 분명 더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내비쳤다.
이제는 내가 예능 대세
‘달인’ 김병만
이번 MC 영입전쟁에서 가장 눈에 띄는 후보는 개그맨 김병만이다. 2000년 KBS 2TV <개그콘서트> 특채로 개그계에 입문한 김병만은 말개그가 대세였던 개그계에서 슬랩스틱 외길을 걸어왔다. 매주 묘기에 가까운 몸개그를 펼치는 그의 코너 ‘달인’은 <개그콘서트>의 장수 프로그램이다.
정통 개그 판에서만 뛰놀던 그는 최근 예능계에 발을 들이면서 급부상했다. 김병만을 둘러싼 영입전쟁의 선두에 선 것은 ‘내 사람 만들기’에 남다른 힘을 쏟기로 잘 알려진 SBS다. SBS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에서 모래가마니를 등에 지고 밤낮없이 피겨스케이팅연습을 하던 그의 열정이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다큐멘터리 <웃기는 놈, 김병만>, 야생 적응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 등이 연달아 전파를 타며 SBS와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돌 예능샛별 VS 개그맨 출신 MC, 방송 3사 선택은?
‘급부상’ 김병만 “도움닫기만 10년, 드디어 빛이 보인다”
지상파, 케이블, 종편 등 방송가 전역이 ‘병만앓이’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김병만의 측근은 “요즘은 러브콜이 말 그대로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특정 방송사가 아니라 방송가 전역에서 출연제의가 밀려들고 있어 섭외가 들어온 프로그램을 나열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라고 귀띔했다.
처음 김병만을 SBS로 이끈 것은 예능국의 ‘대장’으로 통하는 정순영 CP다. 그는 “우연히 김병만이 물 속에서 라면 먹는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관심이 생겨 그를 지켜보니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면서 “저 친구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정말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병만이 친정인 KBS 밖으로 외출을 하기까지는 장장 3개월이 걸렸다. 정 CP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김병만을 설득해 <키스 앤 크라이>에 출연시켰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김병만의 가능성을 세상에 알렸다. 고심 끝에 출연을 결정한 김병만은 친정에 누가 되지 않도록 일주일에 2회분씩 ‘달인’을 녹화하고, 밤에는 링크에서 스케이트날을 밀며 의리를 지켰다.
어렵게 결정한 외출은 그를 예능계의 블루칩으로 이끌었다. 정 CP는 “김병만이 KBS의 개그맨이라는 것은 처음 섭외 요청을 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전혀 우려할 부분이 아니다”면서 “그의 근성과 재능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봤다.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재목이니만큼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고 남다른 애정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