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허은경 작가는 2012년 옻칠, 자개 기법으로 ‘마스크 시리즈’를 선보인 바 있다. 그는 물질 자체가 주는 직접적인 존재감과 시간적인 소멸성에 관심을 보였다. 또 물질과 비물질의 간극 속에서 양자의 특성이 대척점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교차점으로 귀결하는 색즉시공의 시공간, 즉 정신적인 색과 물질적인 공을 표현하려 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오는 24일까지 허은경 작가의 개인전 ‘보태니멀 가든’을 개최한다. 허 작가는 세포의 이형적 증식과 교합을 통해 유기체에 기이한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작업으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전시에선 140점의 보태니멀 드로잉 시리즈를 포함해 전시장 지하의 대형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생명 에너지
보태니멀 시리즈의 보태니멀은 식물이라는 의미의 ‘보태닉(botanic)’과 동물의 ‘애니멀(animal)’을 합성해 부르는 말이다. 정형과 이형의 경계, 동물과 식물의 분류, 아름다움과 낯선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한다. 갤러리 1층에 전시된 작품의 이미지는 식물처럼 보이지만 모두 이형적 생물체의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허 작가는 기괴함과 비정형을 배제해버리는 지구 한 구석에 이들의 자리를 마련했다. 또 한없이 하찮고 부질없어 보이는 생명체들이 주변에 치열하게 적응하려는 모습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이파리 한 줄기, 풀대에 돋아난 솜털, 우주를 비추는 것 같은 반짝이는 눈알에서는 처절한 생명에너지까지 느껴진다.
동물과 식물을 교합해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허 작가의 작업은 생물 분류학과 맞닿아 있다. 생물분류학은 생물의 계통과 종속을 특정 기준에 따라 나눠 정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다. 현존하는 모든 생물체를 대상으로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의 진화과정을 밝혀 생태계 분석의 토대를 마련한다.
동식물 결합 새로운 생명체
유기체에 생명력 불어넣어
허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 생물체들은 자연 환경에 의해 선별, 탈락하는 진화의 과정과 닮아있다. 기존의 생물학적 특성을 변화시켜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고 이들을 증식, 분열시켜 다양한 생물의 유전자들이 얽힌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허 작가가 창조한 생물체들은 진화이론에 따라 자연선택의 결과로 형성된 종들이 갖는 유전적 다양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듯하다.
허 작가는 ‘생물을 창조하는 것은 누구인가’ ‘창조를 과학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생물학과 종교의 철학적 질문을 전복시키려 한다. 허 작가의 생물체는 창조와 생물체를 과학의 논리로만 제한적으로 설명하려 한 우리의 태도를 반증하고 있다.
전시장 지하에는 유기체에 대한 허 작가의 사유를 3차원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대형 설치작업이 놓여있다. 은사를 뜨개로 엮은 레이스 천막이 하늘을 만들고 땅에는 축축한 이끼가 생물체의 관처럼 보이는 무덤 위에 자라고 있다.
작가는 실존하는 생명체가 사는 공간이 아닌 외계의 장소로 관객들을 인도하면서 우주적 생명력을 전달한다. 이로써 관객들은 거대한 매커니즘 속에 존재하는 인류, 나아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시간과 운명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종 탄생
아라리오갤러리 관계자는 “익숙한 풍경서 이형적 낯섦을 증식, 분열시키는 허은경의 보태니멀 시리즈를 완성도 있게 보여주고자 했다”며 “이번 전시서 피조물과 생명에 대한 미학적 탐구의 면모를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jsjang@ilyosisa.co.kr>
[허은경은?]
▲학력
Art Center College of Design, Pasadena, CA, USA 및 동 대학원
▲개인전
‘역공간(Liminal Space)’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2013)
‘Odd-Bod Spectrum’ 아트스페이스 루, 서울(2012)
‘옻칠’ 아트링크, 서울(2009)
‘물, 불, 달, 털’ 덕원 미술관, 서울(1997)
‘AFTER MYTH 2’ Brewery 로스엔젤레스, 미국(1994)
‘AFTER MYTH’ Pasadena, 캘리포니아, 미국(1992)
▲단체전
‘조우’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2015)
‘장면의 재구성 #2 개관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2013)
‘도원몽(장응복의 부티크 호텔)’ 서울 시립 미술관, 서울(2013)
‘Magic Hour, 메타갤러리’ 대만, 중국(2013)
‘디스로케이션전’ 대구미술관, 한국(2012)
‘나비전’ 함평미술관, 한국(2012)
‘Nostalgia’ Shanghai MOCA, 샹하이(2012)
‘Time temple’ Cais Gallery, 서울(2011)
‘Design Cube’ 예술의 전당 (2010)
‘Korean Gene’ 한국 디자인 공예 진흥원(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