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승계 판도] 구광모와 LG가 사람들 ‘풀스토리’

같이 갈 수 없는 황태자와 왕자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재계의 큰별이 졌다. LG그룹을 이끌어오던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 것이다. 재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비통함에 빠졌다. 비보에도 LG그룹은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후계자로 구광모 상무가 지목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만 다른 경쟁자에게도 동시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지난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구 회장은 지난해 건강검진서 뇌종양을 발견해 수술을 받은 후 한남동 자택과 서울대병원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했다.

40대 회장
탄생하나

병세가 악화됐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그의 타계 소식에 정재계 많은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이 슬픔을 함께 했다.

구본무 회장의 별세로 LG그룹의 승계구도를 걱정하는 시각도 생겼다. 현재 구 회장을 이어 그룹을 이끌 유력 후보자는 구본무 회장의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다. 1978년 생인 그의 나이는 만 40세다.

LG그룹은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한다. 1969년 12월31일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의 동생 구철회 사장은 이듬해 1월 경영서 한 발 물러섰다. 구인회 회장의 장자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기 위해서였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서 물러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만 70세가 되던 해인 1995년 1월 럭키금성그룹 간판을 LG그룹으로 바꾼 뒤 그룹 경영권을 구본무 회장에게 넘겼다.
 

이에 따라 구자경 회장의 형제였던 구자학 아워홈 회장,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등이 LG그룹의 경영서 물러났다. 회장직을 다음 세대에 장자가 넘겨받으면 윗세대가 경영서 물러나는 식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구본무 회장 별세 “다음 후계자는?”
장자승계 원칙대로?

하지만 3세 경영인 구본무 회장의 별세를 4세 경영인 시대 개막으로 해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일각에선 그가 그룹을 이끌기엔 후계자로서 검증이 안 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구광모 상무는 영동고등학교를 거쳐 미국 뉴욕에 있는 로체스터 공대를 졸업했다. 2006년부터 LG그룹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첫 입사 당시 그의 직급은 대리. 이듬해 유학길을 떠났지만 2009년 LG전자 미국 뉴저지 법인으로 회사에 다시 합류했다. 2013년에는 한국에 돌아와 일했으며 입사 8년 만인 2014년 11월 상무로 진급했다.

그가 회사에 들어와 경영수업을 받은 지 15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1950년에 입사한 후 20년간 근무한 뒤 1970년 그룹 회장직을 맡았다. 구 회장도 20년간 실무경험을 쌓고 50세이던 1995년에 회장직에 올랐다. 


구 상무의 실무 경력이 12년이 안 된 점을 감안하면 연륜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에 따라 구 상무 지배력을 위협할 수 있는 경쟁자들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구 상무는 구 회장의 양자다. 2004년 구 상무는 큰아버지인 구 회장의 양자로 입적했다. 

그의 원래 친아버지는 현 희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구본능 회장. 구 회장은 1994년 외아들을 잃은 뒤 뒤를 이을 자식이 없었다.

구연경·구연수씨 등 두 명의 딸이 더 있었지만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LG그룹의 가풍 상 두 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는 쉽지 않았다. 

LG그룹 측은 “구 회장이 슬하에 딸 두 명을 두고 있는 상황서 장자의 대를 잇고 집안 대소사에 아들이 필요하다는 유교적 가풍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설명한 바 있다.

LG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구연경씨는 지난 2006년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와 결혼했으며 윤관 사장 역시 LG그룹의 경영에는 참여하고 있지 않다. 구연수씨 역시 별다른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구 회장의 자녀 가운데서는 구 상무를 흔들만한 인사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작업 마무리
남은 숙제는?

하지만 현재 그룹 내에서 가장 큰 위상을 차지하는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구 상무를 흔들 여력이 있다. 구본준 부회장은 3세 경영인 가운데 3남이다. 그동안 구본준 부회장은 형인 구 회장이 병마와 싸우고 있을 사이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장자승계의 원칙상 구본준 부회장이 회사 경영서 물러나야 하지만, 구 상무의 연착륙을 위해서 구본준 부회장이 LG그룹을 이끌 명분은 충분하다.
 

그룹 지주사 LG 지분을 7.72% 가지고 있는 구본준 부회장은 구 회장(11.28%)을 제외하면 지분이 가장 많다. 구 상무의 지분은 6.24%다. 물론 구 상무가 온전히 구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는다면 최대주주로 올라서지만 해당 지분을 두 딸을 배제하고 넘길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부분이다. 

또 해당 주식이 구 상무가 물려받는다고 하더라도 상속세 때문에 지분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을 수 있다.


현행 상속세·증여세법 상 30억원 이상에는 상속 시 최고세율(50%)이 적용된다. 상장기업 주식은 고인이 사망한 시점으로부터,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 치 주가를 평균 금액으로 기준삼아 산정한다. 여기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에 대한 상속 지분은 20% 할증된다.

구 상무가 구 회장에게 지분을 모두 물려받을 경우 약 1조원에 육박하는 상속세를 마련해야할 것으로 관측된다. 물납을 통해 상속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구 상무는 물려받은 지분을 매각해 상속재원을 마련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렇게 될 경우 구 상무가 가지는 지분율이 11%를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구 상무가 구 회장의 지분을 모두 상속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와 그룹의 지배력이 확실하게 넘어갔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3세 경영인 가운데 4남인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이 4.48%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 구본준 부회장과 연대할 경우 구 상무의 지분을 상회할 수 있다.

사실 구 상무의 불안한 입지 때문에 친부인 구본능 회장의 지원사격이 꾸준히 있었다. LG전자에 첫 입사했던 2006년 구 상무의 LG 지분은 2%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7년 희성전자 지분 14.9%를 매각한 자금으로 LG 지분을 매입했다.

2014년에는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에게 LG 지분 1.10%를 증여받았다. 고모부인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도 2016년 말 LG 지분 0.21%(70만주)를 증여하면서 지원사격을 했다. 현재까지도 구본능 회장이 LG지분 3.45%를 가지고 있어 구 상무의 입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상황서 가장 큰 변수는 구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의 지분이다. 김 여사는 LG 지분 4.20%를 가지고 있다. 승계 구도에 변화를 줄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미다.

현재 다른 구 상무와 같은 항렬에 있는 사촌들 역시 경쟁자로 분류될 수 있다. 구본준 회장의 장남 구형모 LG전자 과장도 그룹 내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4세대 가운데 LG그룹 내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은 구 상무를 제외하면 구형모 과장이 유일하다. 따라서 그의 향후 행보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LG 지분은 0.6% 수준이다. 4세 가운데 가장 많지만 구 상무보다는 현저히 적어 지분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경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외에 구 회장의 사촌 구본길 희성그룹 사장의 장남인 구현모씨와 구본식 부회장의 장남 구웅모씨가 경쟁자로 거론될 수 있다. 다만 이들은 지난해 대부분의 LG 지분을 처분하면서 경쟁구도서 멀어졌다. 현재로써 분란의 소지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황.

이에 따라 재계서 보는 LG그룹의 향후 승계 시나리오는 구 상무가 장자승계의 원칙에 따라 LG그룹을 이끌고 구본준 부회장이 계열사 가운데 한 곳을 분리계열해 독립하는 내용이다. 이 경우 구본준 부회장은 전자 관련 사업부분을 떼갈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구본준 부회장이 전자 부문 계열사에서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구본준 부회장이 전자 사업부문 계열사를 중심으로 독립할 경우 LG그룹내 핵심 계열사 LG디스플레이를 가져갈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LG전자는 LG디스플레이 지분 37.90%를 가지고 있다. 가치로 환산하면 3조원 수준. 이에 따라 인수를 위해 추가적인 재원이 1조원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구본준 부회장이 전자부문 외에 상사나 바이오부문 계열사를 중심으로 독립할 가능성도 전망되고 있다. 향후 거취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이 때문에 구본준 부회장의 계열분리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LG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주력 계열사를 두고 신경전이 생길 수 있어서다. 현 시점에서 승계 작업이 확실하게 마무리 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분율 안심 못해
짧은 경력도 숙제

한편, 구광모 상무는 빠르게 그룹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이다. 구본무 회장의 3일장을 마치자마자 바로 출근한 것. 지난 23일 LG그룹에 따르면 구광모 상무는 이날 오전 9시께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서관으로 출근했다. 구광모 상무는 현재 LG전자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을 맡고 있어 지주사 LG가 있는 동관이 아닌 LG전자가 입주해 있는 서관으로 평소대로 출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내규정상 부모상 경조휴가는 5일이지만 구광모 상무는 3일장을 치른 뒤 곧바로 출근했다. 발 빠르게 새로운 경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구광모 상무의 직급은 아직 LG전자 ID사업부 상무지만 이미 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 현황 파악은 물론 차기 경영구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구광모 상무가 그룹 전반을 조율하며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착돼 있는 만큼 주요 계열사 경영은 6인의 부회장단에게 맡기고 큰 틀에서 미래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는 구상이다.

LG그룹을 서둘러 구광모 상무 체제로 선회하고 있는 모습이다. LG는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고 다음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LG그룹 관계자는 “다음달 29일 임시주총에서 LG의 사내이사 선임안이 통과되면, 그 이후 이사회를 다시 열어 구광모 상무의 직급과 역할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계열 분리
가능성 솔솔

LG그룹은 그동안 큰 잡음 없이 장자승계의 원칙 아래 계열분리에 성공한 그룹이다. 방계그룹 GS, 아워홈, 희성, LS, LIG, GS, 오성, 성철, 코멧 등 많은 방계 그룹을 계열분리 하면서 큰 잡음없이 승계와 독립을 반복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구광모 상무로 승계 작업이 마무리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재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LG그룹은 장자승계의 원칙에 따라 별다른 잡음없이 승계작업이 이뤄졌다”면서 “지난해 받은 수술 이후 건강이 악화된 구본무 회장의 별세가 어느 정도 예견돼 있다고 하지만 시기가 갑작스러운 면이 있어 향후 승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눈길이 쏠린다”고 말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정당국이 불안한 구광모 '왜?'

최근 사정당국이 LG그룹을 들여다보고 있다. 승계과정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양상이다. 구광모 상무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 국세청은 승계 자금줄 역할을 했던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구광모 회장의 승계 자금줄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되는 판토스의 최대주주 LG상사를 세무조사했다. 판토스 지분은 LG상사가 51%다. 구광모 상무 7.5% 등 오너일가 지분이 19.9% 수준이다. 이 때문에 판토스가 구광모 상무의 승계 자금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점쳐졌다. 오너일가의 지분율 19.9%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내부거래 제재 범위를 간발의 차로 피해나가는 수준이었다.

공정위는 내부거래 규제오너일가의 지분율이 상장사의 경우 30% 이상, 비상장사 20% 이상의 경우 제재하고 있다. 판토스의 경우 0.1% 차이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벗어나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당시 세무조사가 구광모 상무의 승계 과정을 살펴보는 성격이라고 판단하는 시각이 있었다. 

세무조사 대상에는 구광모 상무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시 세무조사 결과 LG상사는 711억2900만원의 추징금을 이달 15일 부과 받았다.

특히 검찰의 칼날이 무섭다. LG전자가 23일 채무증권 신고서 정정신고 공시를 통해 탈세혐의 관련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공지했다. 

LG전자는 이날 오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지난 5월 초 LG그룹 내 일부 개인 특수관계인의 조세 관련 문제로 당사의 지주회사인 LG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다”며 “압수수색은 당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 않고, LG그룹 내 일부 개인 특수관계인과 관련된 문제로 현재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이라 당사도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사실관계가 파악되고 당사와 관련된 문제점 등이 확인될 경우에 공시 등의 방법을 통해 투자자 분들께 알리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유력 후계자인 구광모 상무를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까지 사정당국의 수사망에 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구광모 상무가 그룹을 물려받기까지 험로가 예상되는 상황이다.<호>

 

<기사 속 기사> 구본무 영면한 화담숲은?

구본무 LG 회장이 숲에서 영면한다. 매장 중심의 우리 장묘문화를 개선하고자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재벌총수로는 이례적으로 ‘수목장’의 형태로 잠들게 됐다.

지난 22일 오전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구 회장의 발인이 엄수됐다. 유족들과 LG그룹 임원, 범 LG가 인사, 재계 인사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분하게 진행됐다. 이후 가족들만 따로 장지로 이동해 비공개로 장례를 치렀다. 

고인의 유해는 화장한 뒤 수목장의 형태로, 생전 즐겨 찾았던 경기도 곤지암 화담숲 인근 지역에 매장된다. 재벌 총수로는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르게 되는 첫 번째 사례다.

수목장은 화장한 후 나온 뼛가루를 나무 뿌리에 뿌리거나 별도로 단지에 담아 묻는 자연 친화적인 매장 방식이다. 장례를 위한 공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매장이나 납골에 필요한 부지가 늘어나면서 대안으로 등장했다. 수목장은 1999년 스위스서 최초로 도입됐다. 주로 국토가 좁은 일본, 뉴질랜드, 영국 등의 국가에서 새로운 장례문화로 자리 잡았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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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