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승계 판도] 구광모와 LG가 사람들 ‘풀스토리’

같이 갈 수 없는 황태자와 왕자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재계의 큰별이 졌다. LG그룹을 이끌어오던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 것이다. 재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비통함에 빠졌다. 비보에도 LG그룹은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후계자로 구광모 상무가 지목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만 다른 경쟁자에게도 동시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지난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구 회장은 지난해 건강검진서 뇌종양을 발견해 수술을 받은 후 한남동 자택과 서울대병원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했다.

40대 회장
탄생하나

병세가 악화됐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그의 타계 소식에 정재계 많은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이 슬픔을 함께 했다.

구본무 회장의 별세로 LG그룹의 승계구도를 걱정하는 시각도 생겼다. 현재 구 회장을 이어 그룹을 이끌 유력 후보자는 구본무 회장의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다. 1978년 생인 그의 나이는 만 40세다.

LG그룹은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한다. 1969년 12월31일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의 동생 구철회 사장은 이듬해 1월 경영서 한 발 물러섰다. 구인회 회장의 장자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기 위해서였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서 물러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만 70세가 되던 해인 1995년 1월 럭키금성그룹 간판을 LG그룹으로 바꾼 뒤 그룹 경영권을 구본무 회장에게 넘겼다.
 

이에 따라 구자경 회장의 형제였던 구자학 아워홈 회장,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등이 LG그룹의 경영서 물러났다. 회장직을 다음 세대에 장자가 넘겨받으면 윗세대가 경영서 물러나는 식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구본무 회장 별세 “다음 후계자는?”
장자승계 원칙대로?

하지만 3세 경영인 구본무 회장의 별세를 4세 경영인 시대 개막으로 해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일각에선 그가 그룹을 이끌기엔 후계자로서 검증이 안 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구광모 상무는 영동고등학교를 거쳐 미국 뉴욕에 있는 로체스터 공대를 졸업했다. 2006년부터 LG그룹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첫 입사 당시 그의 직급은 대리. 이듬해 유학길을 떠났지만 2009년 LG전자 미국 뉴저지 법인으로 회사에 다시 합류했다. 2013년에는 한국에 돌아와 일했으며 입사 8년 만인 2014년 11월 상무로 진급했다.

그가 회사에 들어와 경영수업을 받은 지 15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1950년에 입사한 후 20년간 근무한 뒤 1970년 그룹 회장직을 맡았다. 구 회장도 20년간 실무경험을 쌓고 50세이던 1995년에 회장직에 올랐다. 


구 상무의 실무 경력이 12년이 안 된 점을 감안하면 연륜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에 따라 구 상무 지배력을 위협할 수 있는 경쟁자들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구 상무는 구 회장의 양자다. 2004년 구 상무는 큰아버지인 구 회장의 양자로 입적했다. 

그의 원래 친아버지는 현 희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구본능 회장. 구 회장은 1994년 외아들을 잃은 뒤 뒤를 이을 자식이 없었다.

구연경·구연수씨 등 두 명의 딸이 더 있었지만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LG그룹의 가풍 상 두 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는 쉽지 않았다. 

LG그룹 측은 “구 회장이 슬하에 딸 두 명을 두고 있는 상황서 장자의 대를 잇고 집안 대소사에 아들이 필요하다는 유교적 가풍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설명한 바 있다.

LG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구연경씨는 지난 2006년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와 결혼했으며 윤관 사장 역시 LG그룹의 경영에는 참여하고 있지 않다. 구연수씨 역시 별다른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구 회장의 자녀 가운데서는 구 상무를 흔들만한 인사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작업 마무리
남은 숙제는?

하지만 현재 그룹 내에서 가장 큰 위상을 차지하는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구 상무를 흔들 여력이 있다. 구본준 부회장은 3세 경영인 가운데 3남이다. 그동안 구본준 부회장은 형인 구 회장이 병마와 싸우고 있을 사이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장자승계의 원칙상 구본준 부회장이 회사 경영서 물러나야 하지만, 구 상무의 연착륙을 위해서 구본준 부회장이 LG그룹을 이끌 명분은 충분하다.
 

그룹 지주사 LG 지분을 7.72% 가지고 있는 구본준 부회장은 구 회장(11.28%)을 제외하면 지분이 가장 많다. 구 상무의 지분은 6.24%다. 물론 구 상무가 온전히 구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는다면 최대주주로 올라서지만 해당 지분을 두 딸을 배제하고 넘길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부분이다. 

또 해당 주식이 구 상무가 물려받는다고 하더라도 상속세 때문에 지분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을 수 있다.


현행 상속세·증여세법 상 30억원 이상에는 상속 시 최고세율(50%)이 적용된다. 상장기업 주식은 고인이 사망한 시점으로부터,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 치 주가를 평균 금액으로 기준삼아 산정한다. 여기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에 대한 상속 지분은 20% 할증된다.

구 상무가 구 회장에게 지분을 모두 물려받을 경우 약 1조원에 육박하는 상속세를 마련해야할 것으로 관측된다. 물납을 통해 상속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구 상무는 물려받은 지분을 매각해 상속재원을 마련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렇게 될 경우 구 상무가 가지는 지분율이 11%를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구 상무가 구 회장의 지분을 모두 상속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와 그룹의 지배력이 확실하게 넘어갔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3세 경영인 가운데 4남인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이 4.48%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 구본준 부회장과 연대할 경우 구 상무의 지분을 상회할 수 있다.

사실 구 상무의 불안한 입지 때문에 친부인 구본능 회장의 지원사격이 꾸준히 있었다. LG전자에 첫 입사했던 2006년 구 상무의 LG 지분은 2%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7년 희성전자 지분 14.9%를 매각한 자금으로 LG 지분을 매입했다.

2014년에는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에게 LG 지분 1.10%를 증여받았다. 고모부인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도 2016년 말 LG 지분 0.21%(70만주)를 증여하면서 지원사격을 했다. 현재까지도 구본능 회장이 LG지분 3.45%를 가지고 있어 구 상무의 입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상황서 가장 큰 변수는 구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의 지분이다. 김 여사는 LG 지분 4.20%를 가지고 있다. 승계 구도에 변화를 줄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미다.

현재 다른 구 상무와 같은 항렬에 있는 사촌들 역시 경쟁자로 분류될 수 있다. 구본준 회장의 장남 구형모 LG전자 과장도 그룹 내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4세대 가운데 LG그룹 내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은 구 상무를 제외하면 구형모 과장이 유일하다. 따라서 그의 향후 행보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LG 지분은 0.6% 수준이다. 4세 가운데 가장 많지만 구 상무보다는 현저히 적어 지분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경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외에 구 회장의 사촌 구본길 희성그룹 사장의 장남인 구현모씨와 구본식 부회장의 장남 구웅모씨가 경쟁자로 거론될 수 있다. 다만 이들은 지난해 대부분의 LG 지분을 처분하면서 경쟁구도서 멀어졌다. 현재로써 분란의 소지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황.

이에 따라 재계서 보는 LG그룹의 향후 승계 시나리오는 구 상무가 장자승계의 원칙에 따라 LG그룹을 이끌고 구본준 부회장이 계열사 가운데 한 곳을 분리계열해 독립하는 내용이다. 이 경우 구본준 부회장은 전자 관련 사업부분을 떼갈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구본준 부회장이 전자 부문 계열사에서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구본준 부회장이 전자 사업부문 계열사를 중심으로 독립할 경우 LG그룹내 핵심 계열사 LG디스플레이를 가져갈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LG전자는 LG디스플레이 지분 37.90%를 가지고 있다. 가치로 환산하면 3조원 수준. 이에 따라 인수를 위해 추가적인 재원이 1조원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구본준 부회장이 전자부문 외에 상사나 바이오부문 계열사를 중심으로 독립할 가능성도 전망되고 있다. 향후 거취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이 때문에 구본준 부회장의 계열분리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LG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주력 계열사를 두고 신경전이 생길 수 있어서다. 현 시점에서 승계 작업이 확실하게 마무리 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분율 안심 못해
짧은 경력도 숙제

한편, 구광모 상무는 빠르게 그룹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이다. 구본무 회장의 3일장을 마치자마자 바로 출근한 것. 지난 23일 LG그룹에 따르면 구광모 상무는 이날 오전 9시께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서관으로 출근했다. 구광모 상무는 현재 LG전자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을 맡고 있어 지주사 LG가 있는 동관이 아닌 LG전자가 입주해 있는 서관으로 평소대로 출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내규정상 부모상 경조휴가는 5일이지만 구광모 상무는 3일장을 치른 뒤 곧바로 출근했다. 발 빠르게 새로운 경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구광모 상무의 직급은 아직 LG전자 ID사업부 상무지만 이미 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 현황 파악은 물론 차기 경영구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구광모 상무가 그룹 전반을 조율하며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착돼 있는 만큼 주요 계열사 경영은 6인의 부회장단에게 맡기고 큰 틀에서 미래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는 구상이다.

LG그룹을 서둘러 구광모 상무 체제로 선회하고 있는 모습이다. LG는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고 다음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LG그룹 관계자는 “다음달 29일 임시주총에서 LG의 사내이사 선임안이 통과되면, 그 이후 이사회를 다시 열어 구광모 상무의 직급과 역할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계열 분리
가능성 솔솔

LG그룹은 그동안 큰 잡음 없이 장자승계의 원칙 아래 계열분리에 성공한 그룹이다. 방계그룹 GS, 아워홈, 희성, LS, LIG, GS, 오성, 성철, 코멧 등 많은 방계 그룹을 계열분리 하면서 큰 잡음없이 승계와 독립을 반복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구광모 상무로 승계 작업이 마무리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재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LG그룹은 장자승계의 원칙에 따라 별다른 잡음없이 승계작업이 이뤄졌다”면서 “지난해 받은 수술 이후 건강이 악화된 구본무 회장의 별세가 어느 정도 예견돼 있다고 하지만 시기가 갑작스러운 면이 있어 향후 승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눈길이 쏠린다”고 말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정당국이 불안한 구광모 '왜?'

최근 사정당국이 LG그룹을 들여다보고 있다. 승계과정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양상이다. 구광모 상무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 국세청은 승계 자금줄 역할을 했던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구광모 회장의 승계 자금줄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되는 판토스의 최대주주 LG상사를 세무조사했다. 판토스 지분은 LG상사가 51%다. 구광모 상무 7.5% 등 오너일가 지분이 19.9% 수준이다. 이 때문에 판토스가 구광모 상무의 승계 자금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점쳐졌다. 오너일가의 지분율 19.9%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내부거래 제재 범위를 간발의 차로 피해나가는 수준이었다.

공정위는 내부거래 규제오너일가의 지분율이 상장사의 경우 30% 이상, 비상장사 20% 이상의 경우 제재하고 있다. 판토스의 경우 0.1% 차이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벗어나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당시 세무조사가 구광모 상무의 승계 과정을 살펴보는 성격이라고 판단하는 시각이 있었다. 

세무조사 대상에는 구광모 상무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시 세무조사 결과 LG상사는 711억2900만원의 추징금을 이달 15일 부과 받았다.

특히 검찰의 칼날이 무섭다. LG전자가 23일 채무증권 신고서 정정신고 공시를 통해 탈세혐의 관련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공지했다. 

LG전자는 이날 오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지난 5월 초 LG그룹 내 일부 개인 특수관계인의 조세 관련 문제로 당사의 지주회사인 LG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다”며 “압수수색은 당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 않고, LG그룹 내 일부 개인 특수관계인과 관련된 문제로 현재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이라 당사도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사실관계가 파악되고 당사와 관련된 문제점 등이 확인될 경우에 공시 등의 방법을 통해 투자자 분들께 알리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유력 후계자인 구광모 상무를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까지 사정당국의 수사망에 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구광모 상무가 그룹을 물려받기까지 험로가 예상되는 상황이다.<호>

 

<기사 속 기사> 구본무 영면한 화담숲은?

구본무 LG 회장이 숲에서 영면한다. 매장 중심의 우리 장묘문화를 개선하고자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재벌총수로는 이례적으로 ‘수목장’의 형태로 잠들게 됐다.

지난 22일 오전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구 회장의 발인이 엄수됐다. 유족들과 LG그룹 임원, 범 LG가 인사, 재계 인사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분하게 진행됐다. 이후 가족들만 따로 장지로 이동해 비공개로 장례를 치렀다. 

고인의 유해는 화장한 뒤 수목장의 형태로, 생전 즐겨 찾았던 경기도 곤지암 화담숲 인근 지역에 매장된다. 재벌 총수로는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르게 되는 첫 번째 사례다.

수목장은 화장한 후 나온 뼛가루를 나무 뿌리에 뿌리거나 별도로 단지에 담아 묻는 자연 친화적인 매장 방식이다. 장례를 위한 공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매장이나 납골에 필요한 부지가 늘어나면서 대안으로 등장했다. 수목장은 1999년 스위스서 최초로 도입됐다. 주로 국토가 좁은 일본, 뉴질랜드, 영국 등의 국가에서 새로운 장례문화로 자리 잡았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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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