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테마기획④ 구조조정 한파 뛰어넘기

연예계 불황탈출 언제?

‘천만영화’로 불리는 영화들(왼쪽부터 괴물, 실미도, 왕의 남자,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계…잇따른 흥행실패로 투자 실종·완성 작품도 창고에서 낮잠
방송계…고비용 저효율 드라마 잇단 폐지·대형스타들 몸값 줄이기  
가요계…불법 다운로드로 음반시장 붕괴·그나마 서태지 동방신기 등 선전
관련업계…한류 ‘뚝’ 해외시장 진출 저조·연예기획사와 대행사 고사 직전

불황의 여파가 연예인들에게도 미치고 있다. 하반기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벌써부터 추운 겨울이다.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하나 같이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죽하면 “과연 지금 이 상황에서 돈을 버는 회사가 있을까”라는 자조적인 말들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펀드와 주식으로 손해를 보고 부동산 거품이 빠져 남몰래 속앓이 하는 연예인들도 알게 모르게 많다. 영화와 드라마 등의 제작이 줄어 출연 기회가 사라지면서 고정 수입도 적어지는 상황이다. 일반인을 넘어서는 절약과 재테크 노하우로 위기를 이겨내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불황에 직면한 연예인들의 실상을 짚어봤다.

영화계

충무로가 가장 암울하다. 최근 영화 <29년>의 제작이 투자유치 부진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김아중, 류승범이라는 스타 캐스팅, 인기 만화가 강풀의 탄탄한 원작, 중견 제작사 청어람의 뒷받침, <천하장사 마돈나>로 호평받은 이해영 감독의 연출력이 있었지만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민감한 소재로 시장 불황까지 헤쳐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로 흥행에 성공한 박진표 감독의 신작 멜로영화 <내 사랑 내 곁에>는 캐스팅 단계에서 위기를 겪었다. 한류스타 권상우가 출연하기로 했지만 ‘투자·배급의 불확실함’ 때문에 망설이다가 제작사와 불협화음을 겪은 끝에 캐스팅이 무산됐다.
외국과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거나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계획하고 있는 제작사들 역시 고환율에 직격탄을 맞고 주춤하고 있다.
영화사 스튜디오2.0의 경우 일본 로케이션으로 제작될 영화 <사라쿠>를 내년 초 크랭크인할 계획이었지만 이 역시 ‘당분간 보류’ 상태가 됐다. 제작 예산은 60억원 가량이었지만 환율 상승으로 제작비가 90억원 이상으로 뛰자 스튜디오2.0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본 투자자를 확보한 뒤 촬영을 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영화계는 한때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등 이른바 ‘천만영화’로 불리는 영화들이 등장하면서 ‘한국영화 르네상스’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올 만큼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무분별한 영화 제작으로 인한 잇따른 흥행 실패로 영화계는 더 이상 매력적인 곳이 되지 못했다. 올 상반기에는 <모던보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고사> 등의 작품에서 배우들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자신의 개런티를 대폭 삭감했다는 소식 정도였지만 이제는 출연할 작품 자체가 없어 문제가 심각하다.새롭게 제작하려는 영화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미 완성된 영화들조차도 개봉을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익이라는 판단 때문에 창고에 묵혀지고 있다. 영화계의 불황을 타계하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가 8백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내년에는 올해보다 제작 편수가 40%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또 대작으로 손꼽을 만한 작품도 몇개 안 돼 상황이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방송계

경기침체로 인한 광고시장의 위축으로 방송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KBS <돌아온 뚝배기>, SBS <신의 저울>, MBC <내 여자> 등 지상파 3사들이 고비용 저효율인 드라마 시간대를 전격 폐지하기로 결정했고 프로그램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출연료가 비싼 MC를 대신해 아나운서를 비롯한 방송사 자체 인력을 동원하고 있다.

드라마국에서는 특히 지나친 시청률 경쟁을 지양하기 위해 방송 분량을 줄이고 방송 3사가 출연료 상한선을 회당 1천5백만원으로 정하자고 의견을 모으면서 천정부지로 치솟던 스타들의 출연료가 낮아질지 주목되고 있다.
스타들 입장에서 아직까지 스스로 출연료를 낮추려고 하지는 않지만 경제 불황이 이어지면 최소한 출연료가 동결되거나 낮아질 전망이다. 이런 와중에 이미 중년 연기자들과 조연급에서는 출연료 인하 협상이 물밑에서 진행 중이다.
방송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드라마는 일반 프로그램에 비해 제작비가 3배 가량 많이 들어간다. 대부분의 제작비를 광고 수입으로 대체하고 있지만 광고 시장이 축소되면서 드라마를 편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어 “요즘 중견 연기자들로부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내 출연료는 알려진 것보다 낮다’는 요지의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고 덧붙였다. 이는 영화계 불황으로 연기자들이 너도나도 드라마로 몰려들어 공급 과잉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이 관계자는 “제작 편수가 줄어들어 중견 연기자들부터 출연료를 낮춰서라도 어디라도 출연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이는 조·단역들도 마찬가지다”며 “그러다 보니 대외적으로는 얼마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그보다 낮은 가격에 사인을 하는 배우들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우들이 높은 출연료를 숨기기 위해 이면계약을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그나마 출연료를 낮춰서 캐스팅이 되면 다행이다. 그렇지 못한 배우들은 예능 프로그램 등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매니저 L씨는 “예전에는 배우들이 작품을 골라 출연했지만 지금은 치열한 캐스팅 전쟁을 벌여야 한다”며 “‘고정 수입이 아쉽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방송가의 긴축 경영 여파는 예능 MC 몸값 줄이기로 이어지고 있다. 회당 수백만원씩의 출연료를 챙기던 인기 MC들이 지상파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줄줄이 하차하고 있다.
KBS가 가장 먼저 칼을 빼들었다. 가을개편을 앞두고 윤도현, 정관용, 손범수, 김구라 등의 MC 교체 사실을 흘렸던 KBS는 전격적으로 <연예가중계>의 김제동과 <비타민>의 강병규를 자사 아나운서들로 바꾸는 강수를 두고 있다.
일요일 저녁 <해피선데이>의 러브 버라이어티 코너인 ‘꼬꼬관광 싱글싱글’도 방영 3개월 만에 잠정 폐지키로 하면서 탁재훈-신정환 콤비의 일자리가 하나 줄어들었다. 사실상 평일과 주말의 KBS 예능 간판으로 손꼽히는 <해피투게더> 유재석과 <1박2일> 강호동을 제외한 프리랜서 고액 MC들은 모두 구조조정 대상 안에 포함된 셈이다.

가요계

최근 가요계는 서태지, 동방신기, 빅뱅, 비, 김종국 등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대형 스타’들이 시장에 나왔다. 하지만 얼어붙은 시장의 자금줄은 풀릴 기미가 안 보이고 있다. 이런 불황은 기획사의 규모에 상관없이 전방위에 걸쳐 있다.

많은 가수들이 앨범 준비를 마친 상황에도 섣불리 발표를 못하고 있다. 음반 유통사 및 이동통신사 등에서 앨범제작사에 지급하는 선급금도 사라졌다.
선급금은 앨범의 온·오프라인 유통권한을 넘기는 조건으로 제작사가 억대의 제작비를 유통사에 먼저 끌어다 쓰는 제도다. 지난해까지 ‘앨범 3장에 10억원’, ‘싱글 1장에 2억원’ 류의 계약이 많았지만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러시를 이뤘던 해외 공연도 찾아보기 힘들다. 환율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팀들이 해외 공연을 진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불황이 가장 직접적이고 빠르게 영향을 미친 쪽은 가수들이 뛰는 일명 ‘행사’다. 가수들에게는 방송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교통비 정도 버는 수준. 그들에게 주 수입원은 각종 행사 무대에 서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던 행사들이 상당폭 축소되면서 가수들이 가장 먼저 경기 불황을 체감하고 있다. 행사의 꽃은 노래를 통해 흥을 북돋우는 가수인데 그들을 부를 여력이 안 된다는 것.
한 가요 매니저는 “그나마 있는 행사에도 캐스팅되지 못할까봐 가수들이 자진해서 출연료를 5백만원씩 깎는 움직임”이라고 귀띔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예 기획사들은 너도나도 앨범 제작비를 줄이고 있다. 한 앨범을 제작하는 데 사용되는 비용은 평균 2억원선이다. 이는 앨범 발매를 전후로 작사·작곡료, 녹음실 사용비, 뮤직비디오 제작비 등 사전 제작비와 차량 유지비, 마케팅비, 의상·메이크업비 등 사후 제작비로 나눌 수 있다.
각 음반 제작사들은 비용 절감에 적극적이다. 뮤직비디오를 아예 안 찍거나 규모를 줄이고 있다. 마케팅 비용에도 칼을 대기 시작했다. 꼭 만나야 하는 사람만 만나고 여러 사람이 함께 비용을 분담하는 고육지책을 쓰고 있다. 아껴야 잘산다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관련업계

‘한류열풍’으로 대표되는 해외시장 진출도 한풀 꺾였다. 가수를 비롯해 드라마와 영화, 배우들이 아시아 각국에서 호응을 얻었지만 근래 해외로 수출되는 일이 줄어들었다. 간혹 한국영화의 판권이 할리우드 유명 제작사에 리메이크 판권을 판매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금액은 전성기에 비해 한참 모자란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불황으로 연예인들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와 홍보대행사들도 힘겨워하기는 마찬가지다. 매니지먼트사는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출연료를 지급받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수익은 30~50% 정도 줄어들었지만 차량 유지비와 스타일리스트 급여 등 부대비용은 줄어들지 않거나 오히려 증가해 고사 직전의 상황이다. 또 홍보대행사는 제작사로부터 대행료를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연예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상황이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더 좋지 않다. 과거에는 견딜 수 있을 정도였지만 요즘은 정말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타계책

연예인들은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제일 먼저 연예인 생활에 있어 필수 품목인 차를 팔아버리기도 한다. 환율과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유지비가 만만치 않아 연예인에게 수입차는 큰 골치거리가 됐다.
탤런트 A씨는 지금 아예 차가 없다. 과거 외제차를 좋아했지만 모두 팔고 매니지먼트사가 소유한 차량만 이용한다. 영화배우 B씨는 최근 수입차를 팔고 국산차를 구입했다. 애국심 때문에 국산차를 애용한다고 말하지만 유지비를 아껴보겠다는 속내가 숨어있다.
최근에는 광고 연계 행사에 소극적이던 연예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풍경도 볼 수 있다. CF 출연만으로도 몇억원을 챙기던 톱스타들의 계약서에 최근 자잘한 옵션들이 추가되고 있다. 과거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광고 연계 행사나 팬 사인회 등의 옵션들이다.

불황에 따른 개런티 삭감이 대세지만 스타들은 몸값을 낮추지 않는 대신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홍보 활동에 나선다는 조건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몸으로 뛰는 홍보가 활발하다. 각종 인터뷰는 물론 전국 방방곡곡 순회하는 무대인사에도 불만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영화 홍보사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영화 홍보를 위한 방송 출연이나 언론사 인터뷰도 며칠을 설득해야 하던 배우들이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먼저 일정을 잡기도 한다”고 전했다.

불황의 돌파구로 부업을 찾는 연예인들도 늘고 있다. 짧은 연예인 생명에 고정적 수입을 원하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업은 요식업과 패션몰. 탤런트 홍석천은 이미 여러 개의 음식점을 소유한 알짜배기 성공 사업가로 꼽힌다.
개그맨 이홍렬은 최근 햄버거 가게를 오픈해 운영하고 있다. 여자 연예인은 대부분 인터넷 쇼핑몰, 홈쇼핑 등을 통한 패션업에 도전장을 던진다. 이미 이혜영, 김준희, 엄정화 등 성공사례가 있다. 이 외에도 웨딩 사업과 꽃배달 사업 등 사업 분야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여자 연예인들은 불황나기 방법으로 은밀히 스폰서를 구하기도 한다. 최근 C양은 경제계 인사들 모임에 은근히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자연스럽게 스폰서를 구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중이다. 남자 연예인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D군은 최근 좋은 스폰서를 구해 별다른 활동 없이도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경기 불황은 연예인들의 스폰서 몸값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헐값’(?)에 스폰서를 구하는 경우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한 연예 관계자에 따르면 “몸값을 50%까지 낮춰서 스폰서를 구하는 여자 스타도 있다. 스폰서 시장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과거 스타들까지 후보로 나와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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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