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2주년 특집] 아주 특별한 ‘22인22색’ 회장님의 자식 교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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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자식 교육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재계를 주름잡는 회장님들에게도 자식 교육은 회사 경영만큼이나 어렵다. 그래서 더욱 심혈을 기울이는 자녀 교육. 이들은 어떻게 자녀를 육아할까. <일요시사>서 22인22색 회장님들의 특별한 자녀 교육법을 공개했다.
 

재계를 이끄는 회장의 자식 교육은 유별나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회사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는 엄한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회사를 이끄는 경영자로서의 영향력에 따라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도덕적인 모습에 부합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깐깐한 교육을 받고 자나난다.

1.삼성

재계의 맏형 삼성그룹은 자상한 아버지의 교육법을 택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성장기에 운동을 함께 하면서 자상한 면모를 드러냈다. 경제 교육과 관련해서는 신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경제면을 정독하도록 했다. 

기업을 운용하기 위해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경제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을 것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상대에 대한 존중도 중요 덕목으로 가르쳤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경청이라는 휘호를 이 회장에게 물려줬고, 이는 이 부회장이 물려받아 내려오고 있다.


2.범현대가

범현대가는 밥상머리 교육이 유명하다. 범현대가의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청운동 자택서 자녀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 자녀 교육을 했다. 아침 식사 시간이 새벽 5시인 만큼 자녀들과 며느리, 손주, 손녀 들은 자연스럽게 아침형 인간으로 자랄 수 있었다. 

이 같은 모습은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에 이어 그의 장남 정의선 부회장서도 볼 수 있다. 현대가의 근면성실한 모습은 창업주부터 내려온 가풍이 됐다.

3.SK

최태원 SK 회장은 자녀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른바 ‘방목형’ 교육법을 택했다. 최 회장은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차녀 최민정씨가 해군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점이다. 재벌가 자녀가 해군 장교로 복무한 사례는 최씨가 처음이다. 

그가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군대에 간 것은 최 회장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풀이다. 그는 임관 전 학창시절부터 자립심이 뛰어났다. 최씨는 한국서 젊은 유학파와 판다코리아닷컴을 공동 창업을 하기도 했다.

4.LG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유교 교육을 강조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했다. 이는 GS그룹 허씨 일가와의 창업 과정서도 잘 드러나있다. LG그룹의 구씨 일가는 허씨 일가와 동업해 2005년 LG와 GS로 각자의 길을 걸을 때까지 별다른 잡음없이 사업을 영위했다. 독립 이후에도 사이가 소원해지지 않는 점은 유적인 가풍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근검절약 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자녀와 손자에 대한 세뱃돈 ‘상한제’를 한 일화는 유명하다. 부족함 없이 자라는 자녀와 손자들에게 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려는 마음에서다. 직접 보고 느끼는 현장 경험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구 회장의 장남 구광모 LG전자 상무도 8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공장, 해외법인 등을 돌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2012년에는 창원공장 기숙사서 생활하며 현장 직원들과 소통하며 현장직의 고충을 체험하기도 했다.

5.효성

효성그룹 창업주 고 조홍제 명예회장은 자녀들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길 바랐다. 조 명예회장이 해외 출장 시 손자들을 위해 선물을 사왔는데 선물을 주면서 제품에 나온 외국어 매뉴얼을 설명해야 선물을 줬다. 외국어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려는 할아버지의 마음인 셈이다. 

덕분에 자연스레 그의 자제들은 몇 가지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외국 유학을 통해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가 두터운 점도 효성일가의 특징이다. 자립심 역시 중요하게 생각했다. 효성 일가 자제들이 유학 시절 당시 최소의 경비만을 지원해줘 접시닦이를 해야 하기도 했다.

6.두산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도 자립심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자식을 키웠다. 그의 장남인 박서원 두산매거진 대표이사는 미국에 건너가 광고계서 입지를 다졌다. 2006년 광고회사 빅앤트인터내셔널을 세워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광고카피로 세계 5대 국제광고제서 15개 상을 차지하면서 부모의 그늘서 벗어나 독립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회사 안이 아닌 회사 밖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박 대표이사는 현재 두산그룹의 계열사 두산매거진에 합류에 자신의 경험을 살리고 있다.

7.동원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은 혹독한 자녀 교육을 통해 기업인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에게는 금융부분은 차남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에게는 식품계열 사업부문을 맡겼다. 하지만 이들이 회사에 합류하면서 기다린 일상은 범상찮았다. 
 

참지잡이배를 타고 남태평양 망망대해에 나가 하루 16시간씩 중노동을 했다. 참치통조림 생산공장서 참치캔 포장 등의 일을 하기도 했으며, 영업부 평사원으로 서울 시내를 돌며 제품을 배달했다. 

각종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김 회장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이는 회사를 이끌 이들이 바닥부터 경험해야 한다는 김 회장의 교육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두 딸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교육이념으로 유명한 가나안학교를 다녔다. 


8.대신증권

대신증권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도 자식들에게 바닥에서부터 깨닫고 성장하길 바랐다. 그의 아들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은 29세에 대표이사 직함을 달았다. 하지만 그가 처음 입사했을 때 핵심부서가 아닌 현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 당시 그가 영업직원으로서의 고충을 겪으면서 경영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되새겼다. 이 회장은 이 사장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받은 뒤에야 승진은 결정했다는 일화는 널리 회자되고 있다.

9.한국콜마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은 독서의 중요성을 자식들에게 강조했다. <CEO의 자녀교육>에 따르면 윤 회장은 자녀가 더불어 사는 능력을 높이기 위해 베풂의 경험을 많이 해야 하며, 독서를 통해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안목을 키울 것을 주문했다. 윤 회장은 자식들에게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갖출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교육이 안 되고 자격 없는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지 말라’는 평소 지론은 이미 유명하다.

10.GS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현장’을 통해 자식들을 교육했다. 장남 허윤홍 GS건설 전무는 2002년 GS칼텍스 주유소서 차에 기름을 넣는 주유원으로 3개월간 일했다. 충분한 현장 경험이 향후 그룹을 이끌어갈 필수 덕목이라는 판단에서다. 

허 전무는 이후에도 현장서 경험을 축적했다. 동남아시아, 중동, 미국, 캐나 등을 무대로 자식을 담금질 했다. 해외서 많은 경험은 실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허 전무가 사업지원실장으로 재직했을 당시 싱가포르 정부가 발주한 14억여달러 규모 빌딩형 지하철·버스 차량기지 공사를 따내기도 했다.

11.코오롱

이웅렬 코오롱 회장 역시 현장서의 중요성을 자식에게 강조했다. 그의 장남 이규호 코오롱 상무의 행보를 봐도 이 회장의 지론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상무는 미국서 출생했다. 영국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미국 코넬대학교서 호텔경영학과를 전공한 그는 학업을 마친 뒤 귀국해 병역의 의무를 행사했다. 

미국 출생자라 병역의 의무를 피할 수 있었던 터라 이를 두고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가 회사에 합류해 처음 근무한 곳은 공장이었다. 구미 공장서 근무하면서 사원숙소서 생활하며 대중교통으로 통근을 할 만큼 평직원과 격없이 지냈다. 검소함 역시 이 회장이 강조한 덕목이기도 했다. 그가 임원으로 진급하기 전까지 소형차를 타고 다닌 일화는 유명하다.

12.세아

세아그룹 일가의 자식교육 철학은 겸허한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3세 경영인인 이태성 세아홀딩스 부사장과 이주성 세아제강 부사장은 세아그룹이 아닌 곳에서 ‘눈칫밥’을 먹었다. 이태성 부사장의 경우 포스코차이나서 마케팅 담당 대리로 근무했다. 당시의 경험은 현재 임직원과의 소통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주성 부사장은 글로벌 컨설팅회사서 금융기관 컨설팅 업무를 맡았다. 남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었던 경험은 자연스레 겸허함과 함께 직원간 소통의 방법을 알려줬다. 이에 따라 현장 직원들과의 소통이 어색하지 않은 점은 경영인으로서의 자산이 될 전망이다.

13.다우기술

김익래 다우기술그룹 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김 회장의 외아들 김동준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가 현재 이끌고 있는 벤처캐피탈 비즈니스 키움인베스트먼트는 그룹내 소형계열사로 분류된다. 이는 김 회장이 경험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김 회장은 한국 벤처 창업을 이끈 인물로 꼽힌다. 
 

1981년 국내 벤처기업 ‘큐닉스’를 설립에 참여해 국내 1호 벤처기업으로 거론된다. 1986년에는 소프트웨어 벤처회사 다우기술 창업으로 본격적인 경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김 대표이사가 아버지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경영자 수업을 받고 있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걷고 있는 아들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14.신세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친근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자녀를 대한다. 자녀들과 함께 봉사활동 등을 하며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고 있다. 실제 어린이재단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이나 장애원 등에 자주 자녀들과 방문해 몸소 보여주는 자녀교육을 하고 있다. 

자녀의 교육에 관심도 많다. 학교행사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말이면 차를 직접 몰고 교외로 자녀들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가족들과의 시간 속에서 살아있는 교육을 하는 셈이다.

15.한국블록체인

벤처업계의 대부로 통하는 전하진 한국블록체인협회장도 자신의 경험을 중요시 했다. 그는 한글과컴퓨터 대표를 지내면서 뛰어난 경영성과를 통해 벤처 1세대의 중흥을 이끌었다. 그는 자녀의 교육법으로 자율성을 꼽았다. 그는 자녀들에게 간섭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자율적으로 공부해 성공할 수 있었다.

16.선병원

재계와의 인연이 많은 선병원의 자녀 교육법도 화제다. 대전 선병원 선두훈 이사장 일가는 현재 현대자동차·LIG·애경그룹과 사돈 관계다. 간접적으로 재계에 영향이 있는 셈이다. 선 이사장 일가의 교육 철학은 문화다. 자녀들에게 공부뿐만 아니라 악기를 꼭 하나씩 익히도록 한 공부법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17.현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역시 자식교육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뿐만 아니라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적 책임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사보 인터뷰서 “남을 배려하고 어려운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작은 봉사라도 직접 실천하는 자세를 갖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앤아이 전무는 현대상선 평사원으로 회사에 합류해 어머니를 돕고 있다.

18.풀무원

풀무원 원경선 창업주의 교육철학도 대단했다는 전언이다. 자녀들을 믿고 신뢰했다는 것. 그의 아들 원혜영 국회의원은 이에 따라 경영자의 길이 아닌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부천시를 기반으로 14대, 17대,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중진 의원으로 나랏일을 하고 있다.

풀무원은 원 의원의 친구인 남승우 전 풀무원 총괄사장이 ‘바통’을 넘겨받아 이끌고 지난해 말까지 이끌다 전문경영인 이효율 대표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은 모습이 풀무원 기업 문화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19.샘표식품

샘표식품은 솔선수범형 가정교육을 통해 자녀를 훈육했다. 고 박규회 샘표 창업주는 일일이 자녀를 가르치기 보단 몸소 실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게 했다. 이 같은 정신은 장남인 고 박승복 회장을 거쳐 현재 샘표를 이끌고 있는 박진선 사장에게 이어지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외부서 실력을 검증 받은 뒤 회사에 합류했다는 점이다. 이 또한 박 창업주의 교육철학. 고 박 회장은 국회의원 행정조정실장 직을 수행하다 55세가 돼서야 샘표그룹에 합류했고, 박 사장은 교단에 있다가 38세 때 그룹에 힘을 보탰다.
 

20.오뚜기

오뚜기 함영준 회장은 자녀의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해 주는 아버지였다. 함 회장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그의 장녀 함연지씨는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서 데뷔해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남 함윤식씨는 현재 회사의 직함이 없다. 오뚜기가 장자승계의 원칙을 모이는 만큼 윤식씨가 차기 유력 승계 후보자지만 아직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

21.금호

금호아시아나그룹 역시 자식들에게 실전적인 경험을 쌓을 것을 주문했다.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은 자식들이 별다른 경험없이 그룹에 합류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박삼구 회장에게까지 이어졌다. 박 회장의 아들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이 그룹 합류전 2년간 AT커니서 근무하며 자립심을 키운 것도 이 같은 가풍인 것으로 풀이된다.

22.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역시 온실 속에서만 자라길 원하지 않았다. 특히 대기업 오너 자제라고 특권의식을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전언이다. 장차 현대중공업 승계 후보로 꼽히는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이 2009년 울산공장서 첫 근무를 시작한 것도 이 같은 정 이사장의 의중이 반영됐다. 퇴근 후 동료들과 회사 주변 소박한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소탈한 정 이사장의 모습이 투영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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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