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안갯속’ 차기 경찰청장 후보

6·13 결과 따라 차기 경찰수장 변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박근혜정부 때 임명된 이철성 현 경찰청장 임기가 3개월여 남은 시점서 벌써부터 경찰청 상층부 인사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됐다. 하지만 이 과정서 다양한 변수들이 예상된다. 당장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이 청장 임기만료 보름여 전에 실시되는 데다 경찰청장 후보군을 대폭 늘리는 법안이 발의돼 후임 예측을 어렵게 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철성 경찰청장의 임기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정권이 바뀐 후 박근혜정부 때 임명된 이 청장이 빠른 시일 내에 교체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말에 이뤄진 치안정감급 이상 고위경찰들의 인사 이동서 이 청장은 임기를 보장받고 여기까지 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이 청장은 검정고시 출신으로 순경서 시작해 대한민국 경찰을 이끄는 수장 자리에 올랐다. 1958년 6월21일 경기도 수원서 태어나 수원 삼일중과 검정고시를 거쳐 국민대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경찰에 재직하는 동안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순경 공채로 경찰에 입문해 간부후보생 37기로 재임용됐다. 

경찰종합학교 교수, 경찰청 경무기획 담당, 강원경찰청 원주서장, 서울 영등포서장, 경찰청 홍보담당관, 경찰관리관, 외사국장, 정보국장, 경남지방경찰청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사회안전비서관을 거쳐 경찰청장에 임명됐다.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친화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정무적 감각도 갖췄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이 청장의 임기기간 동안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다. 자리를 위협할 정도의 사건도 많았다. 지난해 8월 강인철 치안감과의 갈등으로 인해 내부서 이 청장의 자진 사퇴 여론이 일었다. 

논란은 강 교장이 2016년 말 광주지방경찰청장으로 일할 때 이철성이 광주경찰청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게시글의 삭제를 지시했다는 발언으로 시작됐다. 

광주경찰청은 당시 촛불집회와 관련해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민주화의 성지, 광주 시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을 적었는데 강 교장 측은 “이 청장이 이를 보고 ‘민주화의 성지’라는 표현을 문제 삼으며 삭제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철성 측이 삭제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면서 이 청장과 강 교장의 여러 날에 걸친 SNS 진실공방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의 중재로 갈등이 완화됐다. 

이철성 청장 3개월 뒤 퇴임…후임은 누구?
지방선거·후보군 확대 개정안 등 예측 난항

지난해 11월에는 다시 한 번 사임설이 돌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청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직접 사의를 표명했다는 것. 이때도 청와대와 이 청장은 극구 부인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 청장의 임기는 3개월 앞으로 다가왔고 모두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점서 문재인정부가 임명할 첫 경찰수장 인선은 쉽게 앞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이 청장 임기만료 보름여 전에 실시되는 데다 경찰청장 후보군을 대폭 늘리는 법안은 차기 경찰청장 예측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지금까진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 민갑룡 경찰청 차장, 조현배 부산지방경찰청장 등이 차기 경찰청장에 이름을 올렸지만 법안이 통과될 경우 후보군이 대폭 늘어나 차기 경찰청장 자리를 놓고 경찰 안팎의 물밑경쟁이 격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후임 경찰청장 인선이 안갯속으로 빠져들어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6명인 치안정감서 31명인 치안감 이상으로 경찰청장 후보군을 확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경찰법 개정안을 지난 19일 발의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이기도 한 진 의원은 경찰 개혁을 위해 경찰위원회 위상강화와 경찰 권한을 최소화하는 경찰법과 경찰대학 설치법 개정안을 발의하게 됐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진 의원은 “경찰청장은 치안총감으로 보한다는 규정으로 인해 치안정감 6명 중에서만 경찰청장을 임명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이번 개정안은 후보군을 치안감까지 넓혀 현행 6명 후보군에서 31명으로 확대해 대상자를 다양화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지방선거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청장 임기가 6월30일 끝나는데 지방선거일은 이보다 16일 전인 6월13일. 청문회 일정 등을 고려하면 늦어도 6월10일 이전엔 경찰청장 후보를 내정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할 수밖에 없다. 

후보 확대 개정안
지방선거도 변수

경찰청 관계자는 “지방선거 일정을 고려하면 이때까지 경찰청장 후보를 특정하기가 물리적으로 힘들지 않겠냐”며 “선거 결과도 경찰청장 인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짧은 기간이지만 경찰청장 공백 상황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최근까진 경력이나 현정부와의 인연 등을 고려할 때 이주민 서울청장이 차기 경찰청장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초고속 승진가도를 달리고 있는 민갑룡 본청 차장과 현 정부 내 부산 인맥과 관계가 깊은 조현배 부산청장도 후보로 거론돼왔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12월 단행된 경찰 수뇌부 인사로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이 압축됐다고 입을 모았다. 치안정감은 치안총감인 경찰청장 바로 아래 자리로 차기 경찰청장 후보가 된다. 경찰 안에 여섯 자리밖에 안 되는 고위직이다.

박진우 경찰청 차장이 경찰대학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박운대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은 인천경찰청장으로 승진 내정됐다. 이기창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과 조현배 부산지방경찰청장은 유임됐다.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이 인사로 경찰 최고 실세로 급부상했다는 평가다. 당시 이 청장이 서울청장으로 내정된 것은 문재인정권서 차기 경찰청장으로 사전 낙점한 것과 다름없다는 해석이 많았다. 

실제로 차기 경찰청장 3파전 구도를 형성했던 이기창 경기남부청장, 조현배 부산청장이 유임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이 청장의 노무현정부 인사들과의 인연 때문이다. 이 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초기인 2003∼2004년 청와대 국정상황실서 근무했다. 

한 경찰 간부는 “청와대에 근무할 때 함께 일했던 행정관 중 상당수가 현재 청와대 비서관급으로 일하고 있다. 다양한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평 출신인 이 청장은 경찰대 1기다. 주로 외사·정보 파트서 일했다. “꼼꼼하게 일을 챙기면서도 동료들을 다그치지 않는 온화한 성품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와의 인연
투톱의 급부상


민갑룡 경찰청 차장도 이른바 친노(친 노무현)·친문(친 문재인) 인사들과 인연이 있다. 

민 차장은 지난 2007∼2011년 수사구조개혁팀장·기획조정담당관 등을 맡으며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를 주로 담당했다. 당시 업무 과정서 서울대 교수이던 조국 수석과 인연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구조개혁팀장을 맡은 2009년엔 조 수석에게 검사 수사지휘권의 한계에 대한 연구 용역을 맡긴 적이 있다. 민 차장이 치안감 진급 1년 만에 다시 치안정감으로 고속 승진한 것을 놓고도 “실세로 떠오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의 또 다른 관계자는 “승진 속도를 보면 청와대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남 영암 출신인 민 차장은 경찰대 4기로 황운하 울산경찰청장과 함께 수사권 조정과 기획 업무를 오래 맡았다. 유능한 지략가라는 게 경찰 내부의 평가다.

현재까진 이 서울청장과 민 차장의 투톱체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치안정감급 6인 모두가 차기 경찰청장 후보다. 박진우 경찰대학장은 제주 출신으로 1989년 간부후보 37기로 경찰에 입문했다. 서울 서초경찰서장, 경찰청 경호과장, 인천지방경찰청 제1부장, 경찰청 수사기획관 등을 역임했다. 

12월 인사로 후보군 압축됐지만… 
“아직 모른다” 새로운 세력 등장?

지난 2015년 치안감으로 승진해 경찰청 수사국장과 경남지방경찰청장을 맡은 뒤 올해 7월 경찰청 차장을 지냈다. 자타공인 수사 전문가로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을 바탕으로 조직 내 신임이 두텁다는 평이다. 

박운대 인천지방경찰청장은 부산 출신으로 대공 분야 경사 특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경찰대 학생과장, 서울 서부서장, 서울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 등을 거쳤다. 경찰청에서는 정보화장비정책관과 경무인사기획관 등 다양한 부서서 두루 경험을 쌓았다. 

보안 전문가로서 이제는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의 치안을 책임지게 됐다. 소탈한 성품의 소유자로 합리적이고 소통을 중시하는 업무 스타일로 직원들의 신망이 두텁다는 평이다. 

조현배 부산지방경찰청장은 경남 창원 출생으로 간부후보 35기로 경찰에 첫발을 내디뎠다.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과장·정보관리부장, 경찰청 정보심의관, 경찰청 정보국장 등 정보 분야서 오래 몸담았다. 

지난 2015년 경남지방경찰청장을 거쳐 지난해 12월부터 경찰청 기획조정관을 맡았다. 업무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며 성실과 열정을 다하는 자세로 후배들의 귀감이 된다는 평이다. 

이기창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경찰대 2기로 졸업해 1986년 경찰에 첫발을 들였다. 서울 종암경찰서장, 경찰청 정보4과장, 강원지방경찰청 차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 치안감으로 승진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1차장, 지난해 12월부터는 광주지방경찰청장을 맡았다. 
 

정보·교통 분야에 능통한 현장 전문가로 합리적 성품을 바탕으로 대내외 신임이 두텁다는 평이다. 

여기에 진선미 의원의 개정안까지 통과되면 후보군은 치안감까지 넓어져 대상자는 31명으로 확대된다. 이럴 경우 현재 거론되는 후보들 외에 적어도 너댓명 이상이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에 추가로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그간의 경찰청장 선임 과정을 고려할 때 후보군이 늘어난만큼 당정청간 이해관계도 복잡해지면서 차기 경찰청장 선정에 난항을 겪을 확률도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후보간은 물론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간 물밑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치안정감 모두…
후보군 더 확대?

한편 임기 2년의 경찰청장 임명제청하는 경찰위원회는 위원장(장관급) 1인을 포함, 5인의 비상임 위원과 1인의 상임위원(차관급) 등 7인의 위원으로 구성돼있다. 동 위원회서 경찰청장을 임명 제청하면, 행안부장관이 제청하고 국무총리를 경유하고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경찰청장 역시 국세청장과 마찬가지로 인사청문회를 거친다. 차기 경찰청장 인사에 대해 현재로선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다. 3개월이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남은 시간동안 후보들의 움직임은 더욱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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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