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경총 새 수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노하우와 노련미로 소통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경영자총협회(경총)의 새 수장에 손경식 CJ 회장이 추대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손 회장은 올해 80세의 고령이지만 수시로 해외를 드나들 정도로 여전히 왕성한 경영활동을 보이고 있다. 재계는 손 회장이 오랜 노하우와 노련미로 정권과 소통하며 원만히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5일, 경총회관서 제7대 손경식 회장의 취임식을 개최했다. 손 회장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경총이 노사관계 안정과 일자리 창출 등 국가 사회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재계 목소리 대변
노사정 대화 약속

그는 먼저 노사정 대화를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손 회장은 2009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재직 당시 ‘노사민정 합의’를 이뤄낸 경험을 언급했다.

그는 “2009년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저출산·고령화 심화, 내수부진, 신성장 산업 부재 등 펀더멘탈의 위기를 맞고 있다”며 “우리 미래세대에게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경제·사회의 펀더멘탈을 개선시킬 수 있는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 전반에 얽혀 있는 불합리한 규제들을 문제제기하고 해결하는 일에 앞장서겠다”며 “제조업, 서비스산업뿐 아니라 미래 먹거리가 될 4차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지금까지의 낡은 인사고과 관행, 제도를 개선함에 있어서도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노사관계 경쟁력 제고를 약속하며 “대립과 갈등의 노사관계를 종식시키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노사관계로 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진정성을 가지고 노동계와 끊임없이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총이 일부 대기업 회원사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비판을 의식해 “변화된 시대 정신을 반영해 대기업은 물론 중소·영세기업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경총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경총은 지난달 27일 손경식 회장을 경총 제7대 회장으로 공식추대했다. 경총 전형위원회는 손 회장의 경력과 현재 왕성한 행보들을 볼 때 위기에 빠진 경총의 구원투수로 최고 적임자라며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손 회장도 고심 끝에 “마지막 사회적 소임으로 생각하겠다”며 수락했다는 전언이다. 경총 회장직은 임기가 2년이지만 연임이 일반적이다. 
 

손 회장은 이전부터 재계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대한상의 회장을 지낸 데 이어 경총 회장을 맡은 손 회장은 디테일에 강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를 받을 때면 세부 사항을 꼼꼼히 챙겨 간부들이 진땀을 뺀다고 한다.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인사는 “나이에 비해 체력이 좋고 활동도 왕성하다”고 덧붙였다. 눈에 띄는 성격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순간 ‘할 말은 하는’ 성격이어서 조용한 카리스마로 불린다. 


재계 관계자는 “의전과 격식을 다소 중시하고 명문대 등 엘리트 인재들을 아끼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새 회장을 맞는 경총 직원들은 대한상의에 전화를 걸어 손 회장의 업무 스타일이나 성격을 묻는 등 긴장하는 분위기다. 

위기의 조직 구할 적임자…만장일치로 추대
나서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조용한 카리스마

2016년 12월 ‘최순실 게이트 국정 조사 청문회’서 증인으로 출석한 재계 오너가 인사들 중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가 바로 손경식 CJ그룹 회장이다. 

1939년생으로 증인 중 최고령이었지만,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부당성에 대해 세밀하고 솔직하게 꼬집어 속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했단 평가가 나왔다. 재계서도 ‘원로’ 손 회장의 인품과 덕망 뿐 아니라 성공적 경영 성과들에 이견을 다는 이는 거의 없다. 

그가 이재현 회장과 함께 일군 CJ그룹은 설탕회사를 넘어 외식·바이오에 이어 문화산업까지 ‘차별화 전략’을 통해 재계 15위권으로 승승장구했다.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하는 기업으로 늘 CJ를 손에 꼽는다. 

여기에 2013년까지 8년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았고 2007년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위원, 2011∼2013년 국가경쟁력 강화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각종 협회장도 맡으며 오랜 기간 동안 각계서 교류를 통해 두터운 인맥을 쌓았다. 사실상 한국 경영인이 해 볼 수 있는 중책들을 거의 다 섭렵했다. 

민간외교관 역할
정부와 원만하게

손 회장은 민간 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2009년 한-아세안 CEO 서밋을 비롯해 2010년 주요20개국(G20) 비즈니스 서밋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치렀다. G20정상회의 기간 중 세계 최고의 CEO들을 초청해 한국경제를 알리는데 일등 공신했다. 

“경제계 인사 가운데서 가장 어른인데 맏형 역할을 잘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청와대서 기업인 간담회를 열었을 때 손경식 CJ 회장에게 건넨 덕담이다. 손 회장은 당시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한 인사 가운데 가장 연조가 높았다. 문 대통령은 손 회장의 겉옷을 받아주는 등 상당한 예우를 갖췄다. 

손 회장은 지난해 문 대통령의 방미와 방중 경제인단에 모두 참여하는 등 문재인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1월 동남아 순방 때는 재계 단체장인 박용만 회장을 제외하면 기업 오너일가로서 유일하게 동행하기도 했다. 


손 회장이 경총 수장으로 추대되면서 다소 소원했던 경총과 문재인 정부의 관계가 다소 풀릴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경총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여러 차례 대립각을 나타냈다. 문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정책을 추진하자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산업현장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며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경총도 비정규직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라며 “책임감을 지니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문 대통령의 엄중한 반응에 경총의 반발 수위가 다소 낮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경총은 비판적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박병원 전 경총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을 비판했다. 

선임 과정 잡음
“반성 기회로…”


올해 박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정부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에 개선 조짐이 없다”며 “규제 혁파 없이는 일자리 창출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총은 노사정위원회에 경영계를 대표해 참여하고 있으며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의에서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정부 입장서 경총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유다. 이를 고려할 때 손 회장은 재계를 대변하면서 정부와 관계를 풀어나갈 적임자로 꼽힌다. 무엇보다 손 회장은 이미 재계단체장을 맡아 진보정권과 파트너십을 구축한 경험이 있다. 
 

당시에도 재계와 정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6년 참여정부 시절 손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으로 있을 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대한상의 초청 강연에 나선 적도 있다. 노 대통령은 당시 “손 회장께서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상공인들과 소통을 위해 왔다”고 말해 손 회장이 재계와 소통 창구 역할을 했음을 시사했다. 

손 회장은 당시 사회적 대화에도 참여했다. 2006년 노사정위원회를 현재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로 개편할 당시 손 회장은 이수영 경총 회장과 함께 재계 대표로 나섰다. 문재인정부에서 노사정위원회를 개편하고 사회적 대화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손 회장의 경험은 사회적 대화 재개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진다. 

하지만 경총 신임 회장 선임 과정서 흘러나온 잡음은 손 회장의 임기 초반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정부와 관계에 앞서 재계를 대표하는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내홍으로 크게 흔들린 조직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당초 박병원 전 회장이 연임할 가능성이 우세하게 점쳐졌다. 하지만 박 회장이 사퇴 의지를 굳히면서 중소기업중앙회장을 역임한 박상희 대구경총 회장이 다음 회장에 낙점됐다. 박상희 회장은 “진정한 노사정 상성 모델을 만들겠다”며 취임 소감까지 밝혔다. 

“마지막 사회적 소임”
세부사항 꼼꼼히 챙겨

하지만 회장 선임 권한을 지닌 전형위원회서 반대의견을 내면서 박 회장은 회장에 오르지 못했다. 박 회장이 선임되면 유임될 것으로 여겨졌던 김영배 전 상임부회장도 자리서 물러났다. 이 과정서 여권이 회장 선임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어려운 과정 끝에 회장자리에 오른 손 회장의 러닝메이트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총은 손 회장에게 현재 공석 중인 경총 상임부회장을 추천하도록 요청했다. 통상 경총 상임부회장 선출은 회장이 지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앞서 박상희 회장은 경총 회장 선임 시 김영배 전 상임부회장을 재임명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결국 박 회장 선임은 무산됐고, 김 전 부회장은 사임을 결정했다. 

손 회장은 자신과 호흡을 맞출 상임부회장으로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노동정책, 노사관계 전문가로, 한국노동연구원장으로 재직하던 2007년 국내 노사관계가 불안정한 이유로 ‘재계 책임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재계에선 기업의 입장을 적극 대변한 김영배 전 경총 상임부회장이 물러난 뒤 후임으로 과거 참여정부에서 일한 최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과거 노조 측 입장을 대변해왔던 만큼 재계의 어려움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이번 회장 선임 과정서 발생한 복잡한 일들을 통해 경총이 변화와 발전을 미루고 안일하게 대처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기회로 삼겠다”고 언급했다.

온화한 리더십
빛나는 친화력

1939년생으로 올해 79세인 손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한일은행과 삼성전자에서 근무한 뒤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직을 거쳐 제일제당(현 CJ)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3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부터다.

현재 그의 공식직함은 CJ㈜ 대표이사 회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부드러운 리더십과 모나지 않은 친화력이 손 회장의 최대 강점”이라며 “2005년 대한상의 회장직을 맡기 시작한 이후 여러 재계단체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더욱 그의 진가가 발휘된 케이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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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