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덮칠 김상조 키워드6

지금까진 몸풀기 지금부터 본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6월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이 되면서 재계는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그의 행보에는 몇 가지 키워드가 따라다니는데 기업들은 여기에 초점을 맞춰 경영전략을 펴는 모양새다. 새해에도 큰 틀에서 김상조호의 공정위는 달라질 것이 없다. 재계를 덮칠 여섯 가지 키워드를 확인했다.
 

“재벌들 혼내 주고 오느라 늦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장관회의에 참석한 자리서 이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곧 논란이 됐다. 일각에선 평소 김 위원장이 재계의 재벌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스탠스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었다.

1.일감

공정거래위원회는 거래 주체간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김 위원장은 현재 재계에 불공정거래가 만연해 있다고 판단한 가운데 일정 부분 재벌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재벌 경영 문제의 ‘시발점’을 일감 몰아주기로 판단하고 있으며 실제로 꾸준히 일감 몰아주기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5일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서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를 엄중 제재하고, 편법적 지배력 확대 차단을 위해 공익법인과 지주회사 수익구조 실태 조사 및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일감 몰아주기는 편법 경영권 승계, 중소기업 경쟁기반 훼손의 대표적 사례로, 총수2세 지분율이 높을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총수 2세 지분율이 20% 이상일 경우 내부거래 비중은 11.4%에 불과하지만 100%일 경우 66%에 달한다. 또 SI(69%), 부동산 임대·관리(56%), 물류(34%) 등 중소기업 집중업종서 내부거래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김 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친족분리 기업의 사익편취 적발 시 분리를 취소하고,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을 확대할 것”이라며 “내부거래 등 취약분야의 공시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기업집단포털시스템 고도화 추진 등을 통해 시장감시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도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서둘러 문제가 예상되는 기업들을 정리하고 있다. 

태광그룹, 대림 등은 과거 일감 몰아주기로 논란이 된 기업들 정리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먹튀’라는 지적이 일기도 하지만 문제가 되는 기업들을 정리하는 부분에는 반색하고 있다.

2.프랜차이즈

김 위원장이 공정위의 ‘방향키’를 잡았을 때 최초의 행보는 가맹점의 문제 개선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었다. 지난해 7월 취임 한달째를 맞은 김 위원장은 가맹본부 단체인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를 만나 선진화된 비즈니스 모델로의 과감한 전환을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선진국은 브랜드 로열티를 내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는데 우리는 필수품목 공급 과정서 마진을 붙이고 광고 및  매장 리뉴얼하는 과정서 수익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현재 프랜차이즈의 수익 모델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구체적인 대책도 내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같은달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 경제력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며 갑질 피해가 많은 주요 외식업종 50개 가맹본부에 대한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6대 과제는 ▲가맹본부 불공정행위 감시 강화 ▲가맹점주 협상력 제고 ▲가맹점주 피해방지 시스템 확충 ▲정보공개 강화 ▲광역지자체와 협업체계 마련 ▲피해예방시스템 구축 등이다.

이에 따라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프랜차이즈에 대해서는 과감히 조사를 실시하고 제재를 가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검찰에 고발도 불사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이 같은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공정위가 프랜차이즈의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면서 고발 조치한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났기 때문이다. 정 전 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동생 회사를 통해 치즈를 납품받아 치즈가격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의혹과 탈퇴 가맹점주에 대한 보복출점 등이다.

압박 수위 높이는데…실효성은 아직
6가지만 보면 공정위 방향키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김선일)는 지난 23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정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200시간을 명령했다. 

함께 기소된 정 전 회장의 동생에게는 무죄를, MP그룹 법인에는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동생 정씨로 하여금 부당이익을 취하게 해 치즈 가격을 부풀렸다고 보기 어렵고, 공급 가격이 정상 형성됐다”며 “(탈퇴 가맹점주에 대한) 위법한 보복행위 증거도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딸 정씨와 측근에 대한 허위급여 지급을 인정하며 “국내서 손꼽히는 요식업 프랜차이즈로 법률과 윤리를 준수하며 회사를 운영할 사회적 책임을 버리고 부당지원했다”고 판단했다. 


미스터피자의 고발 조치가 예상외로 싱겁게 끝나자 김 위원장의 프랜차이즈 개혁에 제동이 걸린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이에 따라 향후 공정위의 다음 행보에 프랜차이즈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3.중소기업

김 위원장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경제적 약자를 위한 지원도 올해 더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대·중소기업간 공정한 거래기반 조성을 위해 협상력 격차를 해소하고 불공정거래를 근절할 수 있는 제도개선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공정위는 전속거래 관행 개선을 위한 하도급 분야 전속거래 실태조사 실시한다. 원가 등 경영정보 요구 관행 근절을 위해 금지대상 경영정보도 구체화한다. 

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중소상공인의 부담완화를 위해 대·중소기업 간 비용분담 합리화를 위해 마련한 제도들이 시장서 효과적으로 작동, 자율적 분담·조정으로 이어지도록 독려·점검한다. 

더불어 공정위는 대형유통업체의 4대 불공정행위에 징벌배상제를 도입하고, 기술유용행위에 대한 징벌배상제를 강화(배상액 3배→10배)한다. 4대 불공정행위는 상품대금 부당감액, 부당반품, 납품업에 종업원 부당사용, 보복행위 등이다. 


TV홈쇼핑, 대형슈퍼마켓 분야에 대해 직권조사도 실시한다. 가맹사업의 경우 판촉행사 시 사전동의를 의무화하고, 가맹금 수취를 기존 공급물품 유통마진 부과방식서 매출액의 일정비율만 지급하는 로열티 방식으로 전환토록 유도하기 위해 협약평가기준을 개선한다. 

이 외에도 공정위는 대리점단체 구성권을 인정하고 상생협약 체결 등 대리점 분야의 불공정행위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4.내부단속

내부단속에도 한창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후 지금까지 공정위의 OB(올드보이)로 불리는 공정위 퇴직자들과 현직 공정위 직원 간 유착관계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쓴소리를 내놨다. 

취임 초기 김 위원장은 OB과의 만남을 자제하고 불가피하게 만나야할 경우가 생기면 기록을 당부했다. 그러나 실제 보고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외부 관계자들, 특히 OB와의 접촉을 스크리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시스템은 지난 12월에 마련돼 올 1월부터 시범시행을 거친 후 2월부터 공식 시행한다. 

공정위 직원이 조심해야 할 부분은 OB와의 만남 뿐 아니다. 기업이나 로펌으로 이직한 공정위 OB(퇴직자)뿐만 아니라 대형로펌에 소속된 변호사·회계사, 기업 대관담당자와 접촉한 공정위 직원은 일일이 기록에 남기고, 누락할 경우 제재를 받게 됐다. 

경제민주화 가는길
쉽지 않은 난제들

‘부정 청탁’이 이뤄진 외부인은 향후 1년 간 접촉을 금지하는 방안도 담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제도 시행에 앞서 접촉가능성이 높은 민간인에게도 “업무 관련성이 있는 모든 민간인 접촉을 보고하겠다고 언명한 만큼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문자를 발송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건 처리의 공정성·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정위 공무원이 퇴직자 등 일정요건에 해당하는 외부인과 접촉할 경우 그 내용을 보고하도록하는 ‘외부인 접촉 관리규정(훈령)’을 제정했다. 

이는 그간 공정위의 불신을 씻고 신뢰를 제고하겠다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실험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외부인 접촉 차단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부정한 접촉을 막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며 “공정위 신뢰 회복을 위해 불가피하게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제도 시행에 앞서 내부 규정서 한발 더 나아가 로펌 변호사, 대기업 대관 담당 외에도 모든 민간인 접촉을 보고하겠다고 지인에게 문자를 발송했다. 그간 시민단체서 활동하면서 대기업 임원들과 잦은 접촉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모든 접촉에 대해서는 기록에 남기고 투명화하겠다는 취지다.

5. 4대 그룹

김 위원장은 취임 초부터 재계의 개혁을 4대 주요 그룹부터 시작할 것을 천명했다. 해당 4대그룹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 4대그룹 주요경영인들과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는 권오현 삼성 부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박정호 SK사장, 하현회 LG 사장,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이들 그룹에 대해 12월까지 변화의지를 보일 시간을 줬다. 김 위원장은 이날 한 일간지와 인터뷰서 “그룹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12월 정기국회 법안 심사 때까지가 1차 데드라인”이라며 개혁의 의지가 안 읽힐 경우 구조적 처방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은 “4대그룹을 비롯한 대기업집단들은 한국경제가 이룩한 놀라운 성공의 증거이며 미래에도 한국경제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면서도 “그간 대기업집단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크게 달라졌음에도 우리 대기업집단들이 사회와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이 없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업인들 스스로 선제적으로 변화 노력을 기울이고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김 위원장의 기준에는 4대그룹 변화가 미치지 못 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서 김 위원장은 이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각 그룹의 문제점은 그룹 내에서 가장 잘 알고 있다”며 “문제는 실행하는 결정인데 그 결정을 빨리 해달라는 것이다. 변화의 끝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을 보여달라”고 날을 세웠다.

자율적인 개혁의 시간을 줬지만 아직까지 김 위원장의 생각만큼 진척이 안 됐다는 판단이다. 다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제재는 없다. 재계가 김 위원장의 다음 결정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6.경제민주화

김 위원장의 둘러싼 키워드는 ‘경제민주화’로 가는 수단이다. 그는 지난 18일 경제민주화에 대해 “경제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재벌개혁도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을관계를 해소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갑을관계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번 하도급 대책도 그것에 포함되지만 가맹·유통·대리점 분야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을관계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경제민주화가 단순히 구호로만 좋은 게 아니라 국민 삶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게 지난 6개월 간 주력한 분야”라고 말했다.

특히 “그것을 통해 우리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으로 확산하고 그 결과가 다시 한 번 소득주도 성장을 통해 더 위로 상승하는 ‘트랙’의 국민경제·공정경제의 기반을 만드는 일을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에도 주력하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개혁의지가 취임 반년이 넘어가면서 드러났다”며 “그 가운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부분도 있지만 강도 높은 압박에 재계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 완급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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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