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잘 만난’ 재벌 2·3세 승진잔치 백태

‘쭉쭉쭉’ 이대로 회장까지 가즈아!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그룹 및 기업 오너 일가의 엘레베이터 승진은 계속된다. 이들에게 연말인사나 새해인사는 승진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인사를 통해 장악력을 높이는 데 성공한 이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향후 이들의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새해 대규모 인사를 통해 많은 오너가의 2·3세가 승진의 기쁨(?)을 맛봤다. 경영권 강화의 방편으로 승진인사를 이용하는 것은 재계의 관행이다. 한미약품은 새해 첫날 오너 2세 임주현, 임종훈 전무를 각각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들은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자녀다.

새해벽두
벼락승진

74년생인 임주현 신임 부사장은 임 회장의 장녀(2남1녀, 둘째)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미스칼리지 음악과를 나와 제약회사 임원로서의 시너지 효과에 물음표가 찍히지만 오너 일가가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데는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는 2007년 회사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글로벌전략, 인적자원개발 등을 담당하고 있다. 유일한 여성 임원이기도 한 임주현 부사장은 지난해 한미벤처스 사내이사에 등기하며 그룹내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3남매 가운데 막내인 임종훈 신임 부사장(77년생)은 지난해 3월 주력 계열사인 한미약품의 사내이사에 선임된지 1년도 되지 않아 승진 대상자에 포함됐다. 


그는 미국 벤틀리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친누나인 임주현 부사장과 같은 2007년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한미약품의 전무로 근무하며 관계사인 한미IT가 100% 출자한 의료기기 물류회사 ‘온타임솔루션’의 대표직을 지냈다.

남매의 승진으로 2세 승계작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는 평이다.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은 2000년 한미약품 전략팀 과장으로 입사한 후 6.1년만에 사장직에 올라 한미약품그룹의 경영에 직간적접인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다만 이들의 승진의 적절성에는 의문이 따른다. 초고속 승진을 단행할 만큼 경영능력이 준비돼 있는지 여부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뚜렷한 경영 성과가 없는 부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올해 자신의 경영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경영 행보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입사한지 얼마됐다고…초고속 승진
일반 평사원과 얼마나 차이 날까?

한국타이어그룹도 새해 벽두부터 경영권 승계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우선 조양래 회장이 그룹의 지주사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대표이사직서 물러나면서 두 아들에게 길을 내줬다. 조 회장이 물러난 자리에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이 단독으로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앞서 조 부회장은 지난 1일자로 부회장 직에 올라 명실상부 그룹내 차기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70년생인 조 부회장은 1997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했다. 


회사 내 경영혁신팀, 해외영업본부장, 마케팅본부장, 한국지역본부장 등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로 자리를 옮겨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조현식 부회장은 지주사의 대표직을 맡으면서 그룹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계획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동생 조현범 사장은 한국타이어의 대표이사직에 올라 핵심계열사의 ‘방향키’를 쥐게 됐다. 지난 2일 한국타이어는 이사회를 개최하고 조 사장을 대표이사직에 선임했다. 현재 그는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에서 최고운영자(COO)직도 동시에 역임하고 있다. 

조 사장은 미국 보스턴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했으며, 마케팅 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거치며 경영을 배웠다. 2012년 경영기획본부장으로 승진했으며, 그의 부인 이수연씨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딸이라 한국타이어를 이 전 대통령의 사돈 기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조 사장은 주력 사업회사인 한국타이어를 이끌면서 형인 조 부회장을 측면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조현식 부회장과 조현범 사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하지만 갈길이 멀다. 그룹을 장악하기에 지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양래 회장은 지난해 말 한국타이어 지분 598만7994주를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에 매각했다. 

그러나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조 회장이 23.59%로 최대주주 신분이다. 조 부회장과 조 사장은 각각 19.32%, 19.31% 수준으로 경영권을 완전히 물려받았다는 평가에는 무리가 있다.

정신없는 아빠
속도내는 아들

따라서 향후 조 부회장과 조 사장의 경영 성과가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한국타이어의 실적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한국타이어는 올 3분기 매출액 1조824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1%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2141억원으로 29.2% 감소했다.

4분기 실적 및 올해 총 누적 실적 역시 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타이어의 4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1% 성장한 1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18.6% 감소한 1948억원으로 추정한다”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두 형제의 등판에 경영성과가 더욱 절실할 것으로 풀이된다.


푸르밀은 오너 경영체제로 방향을 선회했다. 

롯데분유서 2007년 독립한 푸르밀은 그동안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푸르밀이 창업주 신준호 회장의 차남 신동환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면서 전문경영인 시대서 오너 경영 시대로 전환했다.

신 대표는 1998년 롯데제과 기획실에 입사했다. 2016년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2년만에 대표이사직에 앉게 됐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동생이자 푸르밀의 최대주주인 신준호 회장은 그동안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를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장남 신동환 부사장이 신임대표 이사직에 오르면서 오너 일가 경영 체제가 됐다. 

푸르밀의 지분은 신준호 회장 60%, 신동환 대표이사 10%, 신경아 이사 12.6%, 신재열 4.8%, 신찬열 2.6% 등 오너 일가가 90% 가까이 소유하고 있다.

신 대표는 실적 회복에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동안 푸르밀은 실적이 둔화되고 있다. 2012년 매출액 3132억원·영업이익 115억원 각각 기록하다 2014년 매출 2662억원·영업이익 97억원, 2016년 매출 2736억원·영업이익 50억원 등으로 실적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50세를 넘지 않는 신 대표가 회사의 실적에 반전을 줄지 의문의 시각이 있다. 뚜렷하게 경영성과를 낸 적이 없는 오너 일가가 회사를 이끄는 데 대한 우려가 혼재돼있어 올 한해 푸르밀의 실적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DB그룹(옛 동부그룹)은 오너이자 회장이 성추문 논란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그의 아들이 빠른 속도로 회사를 장악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3일 재계에 따르면 DB그룹은 전날 김남호 DB손해보험 상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김 부사장은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DB그룹 창업자인 김 전 회장은 1남1녀를 뒀지만,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김 부사장뿐이다. 김 전 회장의 장녀는 현재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부사장은 지난 2009년 동부제철로 입사해 2013년 동부팜한농으로 이동했다가 2015년 DB금융연구소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지난해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한 뒤 올해 부사장이 됐다.

재계에서는 김 전 회장이 지난해 여비서 성추행 혐의로 경찰의 수배 상태에 놓이자 경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김 부사장이 회사 경영승계에 속도를 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단 김 부사장이 금융계열사의 지부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DB손해보험에 승진하면서 그룹내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지분 승계도 마무리된 모습이다. 김 부사장은 지난해 12월22일 기준 지주회사인 DB 지분 18.21%와 지난해 9월30일 기준 DB손보 지분 9.0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따라서 향후 DB그룹의 주요현안에 김 부사장의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말 신년인사를 단행한 삼진제약 역시 오너 일가의 승계 후계자가 승진의 기쁨을 맛봤다. 

해열진통제 '게보린'으로 유명한 삼진제약에 따르면 지난 2일자로 총 71명 임직원이 승진 대상자에 포함됐다. 이 가운데 삼진제약 공동 창업주 최승주, 조의환 회장의 2세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임원에 안착
수장 맡기도

최 회장의 딸인 최지현 이사와 조 회장의 장남 조규석 이사가 각각 상무로 진급했다. 이들은 2015년말 함께 임원으로 승진한 바 있다. 이번 승진은 2년만인 셈. 현재 최 상무와 조 상무는 미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최 상무는 1974년생으로 홍익대 대학원 건축학 석사과정을 거쳐 삼진제약에 입사해 마케팅과 홍보 등의 부서에서 8년5개월째 근무하고 있다.
 

1971년 생인 조규석 상무는 최 상무보다 근속연수가 1년6개월 정도 짧다. 텍사스대 대학원 회계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회사에 입사해 경리 및 회계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

현재 이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회사 경영권을 장악할 수준이 아니다. 최 상무가 1524주를 가지고 있을 뿐 조 상무는 주식이 한주도 없다. 

재계에서는 최승주, 조의환 회장의 ‘친구경영’이 2세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높다. 삼진제약은 올 3분기 누적 매출 1873억원, 영업이익 37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 20% 수준으로 비교적 알짜 회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회사라 이목이 더욱 집중된다.

두산도 지난해 연말인사를 통해 오너일가의 4세들이 모두 임원이 됐다. 산인프라코어에 따르면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전략팀 부장은 최근 인사서 상무로 승진했다. 지난 2014년 승진한 지 약 3년 만이다. 

박 신임 상무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신사업을 발굴하는 한편 디지털 혁신 업무를 맡게 된다. 기존의 전략팀 업무도 병행한다.

박 상무는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차남으로 두산그룹 4세대의 막내다. 1985년생인 박 상무는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근무했다. 2013년 말부터 두산인프라코어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금수저가 최고의 스펙
부사장·사장은 기본

그의 승진으로 두산그룹 오너 일가 가운데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4세는 모두 임원진에 오르게 됐다. 

형제경영이었던 두산그룹은 4세로 넘어가면서 사촌경영 시대로 접어든 점도 눈길을 끈다. 4세로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박진원 네오플럭스 부회장,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등이 있다.

GS그룹은 연말인사서 오너가 4세 허철홍 GS 부장을 상무로 승진 발령했다. 허 상무는 허준구 전 LS전선 명예회장의 2남인 허정수 GS네오텍 회장의 장남이다. 허정수 회장은 허창수 GS그룹 동생이다. 허 상무는 허만정 창업주의 증손자로 4세 경영인이다. 

허 상무의 승진으로 GS그룹서 경영에 참여하는 임원은 5명이 됐다. GS그룹 역시 두산그룹과 마찬가지로 최근들어 4세 경영인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허세홍 GS칼텍스 부사장은 GS글로벌 대표로 지난해 선임됐다. 69년생인 허세홍 부사장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아들로서, 4세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허준홍 GS칼텍스 전무, 허윤홍 GS건설 전무, 허서홍 GS에너지 상무 등도 현재 계열사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향후 이들의 경영권 관련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4세 가운데 지주사인 GS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맏형 허세홍 대표(1.43%)가 아닌 허준홍 전무(1.79%)다. 허철홍 상무는 1.37%로 세 번째로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고 허서홍 상무와 허윤홍 전무가 각각 1.24%, 0.53%로 뒤를 잇고 있다.

일진그룹도 지난해 12월 연말인사를 통해 새해를 대비했다. 25명이 승진 대상에 포함됐는데 이는 창사 이래 최대규모였다. 특히 오너 2세인 허정석 일진홀딩스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눈길이 쏠렸다. 

1969년생인 허 부회장은 허진규 회장의 장남으로 일진홀딩스 대표이사 사장, 일진전기 대표이사 등을 맡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일진그룹 계열사인 일진다이몬드에 대리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일진다이아몬드서 임원(이사)을 달았고 상무, 일진전기 전무, 일진중공업 부사장, 일진전기 대표이사 사장, 일진홀딩스 사장을 역임했다.

경영 능력은?
성과는 나몰라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신년인사 및 연말인사 등 대규모 인사를 통해 오너 가의 후계자가 진급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의 승진이 경영성과와 무관한 초고속 승진이라 향후 자신의 경영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행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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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