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문재인 반년 성적표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12.26 13:08:36
  • 호수 1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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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가 진짜! 기대해도 좋을까?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지났다. 전 정권의 국정 농단으로 촛불혁명이 일어났고 그 중심에는 문 대통령이 있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아직도 고공행진 중이다. <일요시사>는 송구영신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의 반년 성적표를 뽑아봤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촉발된 뒤 촛불은 광화문을 뒤덮었다. 정치시계는 빠르게 돌아갔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전환됐다. 대선 과정서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는 40%가 넘는 지지율로 10년 만에 진보진영 대통령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경제 대통령
불안한 지표

문 대통령 취임 직후 중점을 둔 부분은 바로 ‘일자리’다. 문 대통령은 업무지시 1호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출범시켰다. 청와대에 일자리수석실이 신설됨과 동시에 각 부처와 17개 지자체에 일자리 전담 부서가 만들어졌다. 

정부가 일자리 정책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일자리의 핵심인 청년층(20∼30대)의 일자리 확대는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다.

실제로 청와대 홈페이지 상 ‘대한민국 일자리상황판’을 보면 지난 9월 기준 취업자수는 2684만명으로 전년비 31만4000명 증가했지만 청년과 30∼40대는 오히려 취업자수가 감소했다. 취업자수 증가를 이끈 것은 50세 이상 장년층으로 청년실업 문제는 여전한 상황이다. 


문 대통령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지난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서 문 대통령은 “고용은 늘었지만 주로 50대 이상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고, 청년들이 취업할만한 좋은 일자리는 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줄었다”고 진단했다. 

문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곳곳서 들린다. 

김대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각종 청년일자리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애초에 인력에 대한 수요가 줄어버리면 실업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정부는 민간기업서 거둬들인 세금을 소모해 일자리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세금을 많이 걷어 인력 수요를 줄이고 그 돈으로 아무리 일자리 정책을 펼쳐봐야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며 “민간 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일자리 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청와대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나올 문재인표 ‘일자리 정책’을 가지고 평가를 받겠다는 각오다.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경제시스템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소요된다”며 “올해 하반기 공공기관, 대기업, 금융기관 등의 채용 확대도 대부분 내년에야 실제 취업이 이뤄져 취업자 통계에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자리 정책 이외에도 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경제 슬로건은 ‘소득주도성장론’이다. 소득주도성장은 기업에 고인 소득을 노동자 임금 상승 등을 통해 가계로 흐르도록 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내수 시장 중심의 성장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을 중심으로 한 경제 정책이 구조적 저성장 탈출을 위한 근본적 해법은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구정모 한국경제학회장은 “최근 수출 호조에 따른 3%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없다”며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정책에는 단기 처방만 있고 전체적인 밑그림이 없다”고 평가했다.  

적폐청산 기조
국민통합 저해

이밖에 '적폐 청산'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서부터 적폐 청산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특정 사건에 대한 조사와 처벌 등이 적폐 청산의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를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려는 것이다. 아마도 이번 정부 5년으로 다 이뤄질 과제도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부처별 적폐 청산 TF를 구성했고, 검찰 등 사정기관은 MB정권을 겨냥했다. 그 결과 당시 청와대 중심으로 이뤄진 야당 사찰, 관권선거, 언론·문화계 탄압 등의 사실들이 밝혀졌다. 

취임 초기 많은 성과를 이뤘지만 현 정부의 적페 청산 기조를 바라보는 정치 전문가들의 시선은 다르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은 “적폐 청산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등을 지켜본 국민들의 요구”라며 “현재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것도 적폐 청산 추진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유한국당이 정치보복 운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정치보복 프레임을 비판했다. 반면 검찰의 적폐 청산이 야권에만 향해 있고 정치보복 모양새를 띠어 국민 통합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쪽이 피해의식을 갖게 하면 통합이 어렵다”며 “문무일 검찰총장이 올해 안에 (적폐 청산을) 끝낸다고 했는데 너무 오래 끌면 부작용이 크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권의 한쪽은 너무 강하고 한쪽은 너무 죽어 있다”며 “중도와 합리적 보수 정당은 계속 국민들이 분열돼있으면 그 이후에는 통합에 힘썼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당 독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신 교수는 “여당이 예산안 처리 과정서 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쪽으로 갔으면 어땠을까”라며 “정치는 적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야당도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줘야지, 지금처럼 밀어붙이면 부메랑으로 좋지 않게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대통령 강조…소득주도·혁신성장 명암
끝나지 않은 적폐 청산…정치보복 프레임 맹공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도 정부의 적폐 청산 TF의 인사구성을 문제 삼아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정부부처와 산하기관의 적폐 청산 관련 TF를 전수 조사한 결과 5명 중 1명꼴로 ‘편파·이념 지향적 인사’로 구성됐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적폐청산 기조로 인해 “일선 현장서 자신이 관련된 사업에 잘못이 드러날 경우의 두려움 때문에 방조, 침묵 및 통상 업무까지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에 대해서는 “무차별한 기업 대상 사정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으며 금융권도 채용비리 논란으로 사정 정국 심화 중”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정용기 원내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적폐 청산에 대해 정치보복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정치보복의 악순환이 끝난 줄 알았는데 현 정권이 정치보복을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포장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문 정권의 적폐 청산 기조에 대해 비판했다.


안 대표는 “지금 서로 전, 전전, 전전전 (정권을)때려잡느라고 완전히 정신이 없다”며 “복수하려고 서로 정권을 잡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의 정치보복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현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한겨레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이명박·박근혜정부 당시의 청와대·국정원·군 등에 대한 조사·수사가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67.8%를 기록했고 “동의한다”는 응답은 29.2%에 그쳤다. 

낙제점 인사
캠코더 논란

문 정부의 ‘인사’는 반년 성적표에 있어 낙제점에 가깝다. 앞서 문 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병역면탈·부동산투기·위장전입·세금탈루·논문 표절 등을 인사 5대 원칙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내각 인사를 발표할 때마다 인사들은 5대 원칙을 위배했고, 12월에 들어서야 내각이 완료됐다.

특히 공공기관장에 참여정부 인사들 및 문재인 캠프 인사들이 대거 합류해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논란에 휩싸였다. 

국민의당 김철근 대변인은 "민주당이 야당일 때 이명박정부 인사는 '고소영' '영포라인' 등으로 비판하고 박근혜정부에서는 '수첩인사'라고 비판하지 않았느냐"라며 "국민들은 적폐 청산하자면서 새로운 적폐가 쌓여가는 과정을 똑똑하게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정부의 외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우선 청와대는 “문재인정부 출범 후 6개월 정도 지나면서 외교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몇 개의 산을 힘들게 넘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자평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정부의 외교를 ‘산’으로 비유했다. 

이 관계자는 “첫 산은 6월 말 워싱턴을 공식 방문했을 때”라며 “6월29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 7월7일 독일 함부르크 한미일 정상 공동성명서 북핵의 평화적 해결 원칙, 남북문제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약속받았다. 이런 기조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민주연구원 주관 ‘문재인정부 2017년 국정운영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 외교·안보 분야 발제를 맡은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정부가 안보적 측면서 강한 안보체제 구축과 책임 국방 구현을 위한 기반과 남북관계의 북핵위기 안정화 및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기반이 조성됐다”며 “외교에선 주변 4강과의 외교가 정상화되면서 새로운 외교지평을 마련했다”고 진단했다.

다만, 국방개혁은 여전히 미진하고 한국이 주도하는 외교를 위한 제도와 인력 부족 문제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및 여권은 반년 동안 이뤄진 문 정부 외교·안보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줬다.

하지만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자유한국당은 문 정부의 ‘균형외교’를 비판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은 “함께 전쟁을 치른 미국과의 군사 동맹과 북한과 여전히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중국과의 관계는 차원이 다르다”며 “지금은 한미가 굳건한 군사동맹으로 중국을 압박해 북핵을 제거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훈수했다.

중국과 우호관계 형성을 원하는 문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판한 셈이다.

인사 적폐 솔솔…불안한 대북·4강 외교
중국서 홀대 받은 문통…외교 해법은?  

문 정부 외교·안보에 대한 지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4강(미중일러) 외교서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북핵 이슈와 관련해선 “문재인정부는 ‘코리아 패싱’도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에 깊이 연루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최근 방중외교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무능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중국 국빈 방문서 ‘홀대’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3박4일간 중국 지도자와의 식사가 단 두 차례뿐이었다는 ‘혼밥’ 논란과 방중 첫날 중국 지도부의 베이징 부재, 우리나라 취재기자가 중국 경호원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등 논란이다.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출발 전부터 삐걱거렸다. 중국 국영 중국중앙TV가 중국 방문 하루를 앞두고 문 대통령과의 인터뷰서 사드 문제에 대한 의도적 질문 공세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CCTV는 이어 문 대통령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편집 방송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중국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중국 측의 홀대논란은 본격화됐다. 국빈 자격으로 방문한 문 대통령을 차관보급 인사가 영접을 한 것이다. 통상 중국을 방문하는 각국 정상은 차관급 인사가 영접하는 것이 의전 관례다. 

혼밥 논란에 대해선 중국 지도부가 의도적으로 문 대통령과 식사 약속을 잡지 않아 불가피하게 수행원과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청와대는 문 대통령 식사 일정이 중국 서민 일정을 체험하기 위한 기획성 이벤트로 사전에 준비된 행사라며 궁색한 변명을 했다. 

이러한 홀대 논란에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무리한 일정으로 문 대통령의 방중을 추진하면서 중국의 홀대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안보는?
대북문제 관건

정치권 한 관계자는 문재인정부에 대해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부 이후 들어선 만큼 국민들의 기대가 큰 것이 사실”이라며 “집권 초기인 내년까지는 문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국내를 둘러싼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국민들의 위기감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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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