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62) 갈등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12.11 10:35:23
  • 호수 1144호
  • 댓글 0개

선덕여왕, 당나라만 믿었는데…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연개소문이 그를 확인하고 남아 있는 힘을 다해 설인귀에게 칼을 휘둘렀다.

잠시 호흡을 고르던 설인귀가 갑작스런 공격에 말머리를 돌려 뒤로 물러나는 순간 연개소문이 급히 말머리를 돌려 고구려 진영으로 돌아갔다.

“오랑캐 중에도 저런 놈이 있었다니.”

호흡을 가다듬으며 당의 진영을 주시하자 설인귀가 부하들과 함께 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놈 영웅으로 만들어 주어야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의 실정을 살펴보시지요.”

가만히 선도해의 표정을 살피며 고구려 군사들을 돌아보았다.

추격만 생각했지 장기적 측면에서 고려해 보지 않았다.

그를 살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결국 쥐새끼를 놓아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언뜻 보기에 그리 오래 가지 않을 듯합니다.”


“하기야, 정통으로 맞았으니. 그러면 어찌해야 하오?”  

“퇴각해야지요.”

“바로 말이오? 그러면 저들이 쫓아올 터인데.”

“곧바로 퇴각할 수는 없지요. 저놈에게 한번 본때를 보여주어야지요.”

“영웅으로 만들어 주는 대가로 말입니다.”

영웅의 대가

연개소문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선도해의 지시로 고구려 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되는 대로 진을 세우고 일찌감치 밥을 해먹고 저녁 무렵이 되자 슬금슬금 이동했다.

설인귀가 당나라 진영에서 그를 유심히 살피고는 밤이 깊어지자 고구려 군들이 퇴각한 것으로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고구려 진으로 다가섰다.

가까이 이르러 고구려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설인귀를 필두로 당당하게 진으로 들어섰다.

거의 모든 당나라 군사들이 진에 들어서자 선도해의 지시로 불화살이 날아올랐다.

그를 신호로 주변 숲속에 매복해 있던 고구려 군사들이 일시에 튀어나와 당나라 군사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고구려의 진이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해갔다.

진을 세우면서 겨울철 마른 풀들 역시 곳곳에 배치해 놓았고 살랑살랑 이는 바람에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던 때문이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나라 군사들이 싸움은 고사하고 등을 돌려 달아나기에 바빴다.

다시 불화살을 날리자 당나라 군사들의 몸에서 불이 타오르며 이러 저리 도망가는 모습이 흡사 불꽃 축제를 하는 듯 보였다.

설인귀가 크게 낙담하며 전방을 주시하자 연개소문이 고함과 함께 곧바로 짓쳐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낮에 한번 겨루어 보았던 터고 사기가 꺾일 대로 꺾인 상태서 곧바로 말머리를 돌려 도망가기에 급급했다.


모든 화살을 소비하고 진 앞에 서서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가는 그들을 주시하며 연개소문이 선도해를 주시했다.

“자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퇴각하도록 하시지요.”

연개소문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렸다. 

당태종이 고구려 침공에 실패하였고 그 과정에서 연개소문에게 치명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신라 조정은 그야말로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 와중에도 황룡사에 탑을 건조하는 데 혼신을 다하던 선덕여왕이 비담과 염종의 강력한 요구에 회의를 소집했다.

그 회의에는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춘추는 물론이고 알천과 필탄ㆍ술종(죽지의 아버지)ㆍ임종ㆍ호림(고승 자장의 아버지)ㆍ염장 등 다수의 각간들이 참여했다. 

“이게 뭡니까. 흡사 우리 꼴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되자 염종이 포문을 열었다.

고구려에 패한 당나라…위기의 신라
회의 소집한 선덕…날선 책임론

“뭐라. 우리가 개란 말인가.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필탄이 핏대를 올리자 여러 사람이 혀를 찼다.

“이보시게, 트집 잡지 말고 현실을 자세히 살펴보게.”

“현실이 어떻다고 그러시는가?”

비담의 이야기에 알천이 나섰다.

“그래요. 그동안 조정 일에 그다지 신경을 기울이지 못했는데 이참에 한번 세심하게 살펴봅시다.”

아들 자장이 여주와 함께 황룡사 탑을 건설하자 본의 아니게 그 일에 매달렸던 호림이 선덕여왕을 주시했다.

“이왕 이야기 나온 거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여주가 힘없이 말을 받았다.

“먼저 이 나라에 중심이 누구인지 살펴봅시다.”

“중심이라니요. 당연히 전하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누가 그를 몰라서 이럽니까. 그러나 전하께서는 전쟁 상황보다 불교에 심취하셔서 너무 자비롭게 일처리 하시려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라간의 문제는 단지 불덕으로 해결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차원에서 일을 도모해야지요.”

염종과 필탄의 대화를 들으며 선덕여왕이 신하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수품 상대등은 아직도 편치 않으십니까?”

오래전에 상대등에 오른 수품의 건강이 악화되어 그동안 거의 공석이다시피 했다.

“일전에 방문한 적 있는데 거동조차 힘들다 합니다.”

비담이 염종의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깔았다.

“그렇다면 이대로 있을 수는 없고, 이른 시일에 상대등을 새로 임명하셔야 할 일입니다.”

염종이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겠다는 듯이 모두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당연한 일이오.”

“그렇다면 말이 나온 김에 탁방을 내시지요.”

염종이 시선을 비담에게 주며 말을 이었다.

“잠깐, 그 전에. 지금 이 자리에 김유신 대장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술종의 말에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패장 입장에서 언감생심 참석할 수 있었겠소.”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패장이 아니면. 기껏 백제군을 격퇴시키라고 군사를 주어 보냈는데 격퇴는 고사하고 당나라에게도…….”

“그걸 어떻게 패장이라 칭할 수 있는 게요.”

염종과 필탄의 대화에 술종이 개입했다.

초췌한 모습

“아들이 함께 있다고 편드는 겁니까?”

김유신 휘하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들 죽지를 지칭했다.

“뭐라! 공과 사를 그리고 대인과 소인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무슨 망발이오!”

술종의 목소리가 올라가는 순간 밖에서 김유신이 도착했다는 전갈에 이어 초췌한 모습의 유신이 들어섰다.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온다고 했는데 늦었습니다.”

사태의 추이를 짐작하였는지 목소리가 차분했다.

“그곳에서 여기까지 짧은 거리가 아닌데, 여하튼 고생하셨습니다.”

춘추의 치사에 유신이 여주를 향해 가볍게 고개 숙였다.

“김유신 장군이 도착하였으니 금번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패장으로서 유구무언입니다.”

“아니오. 그러니 더 들어봐야겠어요.”

비담의 점잖은 말투에 유신이 늘어선 대신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모두의 시선이 유신에게 한 마디 하라는 듯이 비쳐졌다.
 

<다음 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