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공작당한 국정원 요원 사연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12.04 10:55:43
  • 호수 1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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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도 아니고 전직도 아니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문재인정부의 국정원 적폐 청산이 매섭다. TF를 꾸려 환부를 도려내고 국정원을 ‘대외 안보정보원’으로 바꾸는 등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작 국정원 비리를 고발한 공익제보자에 대해선 눈길조차 주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일요시사>는 국정원 전직 요원 황규한씨를 만나 국정원발 퇴직 공작 이야기를 들어봤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3월 국정원 직원인 황씨는 주이스라엘 대사관에 파견됐다. 파견 도중인 2007년 4월 집주인으로부터 전임자 이씨의 외교부 예산 주택임차료 횡령 사실을 제보 받고 국정원에 보고했다. 국정원 내부직원에 의한 최초의 공익제보였다. 

공익제보 했는데…

황씨의 기대와 달리 국정원 본부는 은폐 지시를 내렸고 황씨가 불응하자 그해 6월 국정원은 고소장을 직접 써서 황씨에게 전달해 전임자를 고소하라고 압박했다. 이는 전임자와 공범관계를 만들어 황씨의 입을 막으려는 국정원의 계획이었다. 국정원의 공작 시도에 맞서 황씨는 사직서를 던졌다.

문제는 2007년 8월1일에 사직서를 내고 난 이후부터 벌어졌다. 국정원은 외교부에 2007년 9월6일 사직서를 수리했다고 통보했다. 해당 내용은 주이스라엘 대사관(총무) 및 국정원 파견관을 통해 그대로 황씨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이는 허위통보였다. 

국정원은 황씨가 퇴직 처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믿을 수 있도록 황씨에게 급여를 보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급여는 기조실 및 황씨를 발령낸 부서가 임의 보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황씨 후임자를 시켜 다시 한 번 퇴직 사실을 알리고 공무원연금공단에 제출할 퇴직급여청구서를 받아갔다. 하지만 국정원은 퇴직급여청구서를 공무원연금공단에 발송하지 않았다. 

황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 건 그해 12월이다. 국정원 감찰실은 황씨를 ‘귀임명령 거부 및 무단 직무이탈’이란 혐의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이미 사직 처리가 된 것으로 믿었던 황씨는 한국으로 복귀할 이유가 없었다. 
 

국정원의 강제적 징계위원회 결정으로 그해 12월 황씨는 해임처분을 받았다. 

일련의 과정서 퇴직공작이 들어간 부분은 사직서 처리 과정이라고 황씨는 보고 있다. 외교부와 황씨는 각각 2007년 9월6일, 7일부로 의원면직(본인이 원해 사직서를 제출해 면직) 됐음을 인식했다. 

사직 처리는 당시 임면권자인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황씨의 사직서를 최종적으로 수리했음을 뜻한다. 

하지만 2010년 9월 황씨와 부인이 김 전 원장을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서 김 전 원장은 수상한 이야기를 했다. 

“당시 사직서를 받지 못했다”고 황씨에게 언급한 것이다. 이는 국정원 내부서 임면권자인 국정원장을 기망하고 외교부와 황씨에게 사직처리 됐다고 허위통보 했음을 의미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일요시사>는 김 전 원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외교부에 사직이 됐다고 보낸 공문이 원장 모르게 간 것이냐는 질문에 김 전 원장은 “완전히 사직처리가 됐다면 (나에게) 보고를 했을 것”이라며 “그때 기억은 내가 없다”고 말했다. 

공문과 다르게 황씨는 퇴직이 되지 않았고 4개월 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과정서 사직서를 수리했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걸 원장이 알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라며 “실무자가 ‘사직서를 냈습니다’하면 보는 것이고, 사직서를 안 냈으면 원장까지 올라오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 전 원장은 황씨의 사직서를 ‘봤다’ ‘안봤다’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만약 김 전 원장이 사직서를 보고 사인을 했다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책임은 김 전 원장에게 돌아간다. 반대로 김 전 원장이 사직서를 보지 못했다면 국정원 내부서 김 전 원장 모르게 황씨에 대한 ‘퇴직 공작’이 들어갔음을 뜻한다. 

이스라엘서 비리 고발…공작 당해 
해임 승소했지만…묵묵부답인 현 정부 

김 전 원장은 황씨가 “징계위원회에 올라가도 원장이 모른다”는 말을 기자에게 하기도 했다. 이는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황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징계의결요구서에는 국가정보원장 김만복이란 이름과 도장이 찍혀있기 때문이다.   
 

당시 고등징계위원장은 기조실장이었던 안광복 현 조폐공사 감사가 맡았다. <일요시사>는 안 감사에게 황씨 해임 과정에 대해 질의했지만 안 감사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짧게 답했다. 

당시 국정원 인사처장으로 징계위원회 간사로 활동해 황씨 징계의안을 작성한 현직 모의원에게 ‘2007년 8월1일 황씨 사직서 수리여부’를 묻기 위해 전화 통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어 퇴직 공작과 관련한 내용을 문자로 남겼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국정원의 불법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임 처분에 반발한 황씨는 이듬해인 2008년 2월 국정원을 상대로 해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 모두 황씨의 손을 들어줬다. 황씨는 복직을 기대하면서 인사명령을 기다렸다. 

하지만 2010년 7월16일 원세훈 국정원장은 황씨를 복직시키지 않고 '2007년 12월26일 부로 해임'⇒'의원면직으로 확인한다‘고 했다. 국정원은 12월26일을 의원면직으로 하는 명령을 내린 셈이다.

이에 황씨는 “2010년에 해임 취소가 됐는데 2007년으로 명령 낸 것 자체가 불법”이라며 “특히 해임날짜가 의원면직일로 동일시된 것도 불법”이라고 말했다.

2010년 말 황씨는 2010년 7월16일 국정원이 내린 의원면직 인사명령에 대한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국정원에게 당시 원 전 원장이 내린 인사명령이 ‘처분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각하를 선고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의원면직은 사의 표시만으로 공무원관계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고, 임용권자에 의한 '면직처분'이 있을 때까지는 공무원 관계가 존속된다’고 나와 있다. 즉 면직처분 자체가 없는 황씨는 불가피하게 국정원 현직 신분인 셈이다. 

실상 현직도 전직도 아닌 아이러니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황씨는 2012년 2월부터 국정원 측에 줄기차게 처분을 내릴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의 국정원장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황씨의 설명이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 공작으로 퇴직당한 황씨는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처분이 내려질 것이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19대 대선 때는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익제보지원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돼 공익제보 활성화에 힘쓰기도 했다.

황씨는 지난 6월 서훈 국정원장과 김상균 국정원 제1차장에게 처분을 내려줄 것을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10월 황씨는 국정원 적폐청산TF에 퇴직공작을 벌인 직원들을 조사해 달라는 서류를 전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정원 및 국정원 TF는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처분은 도대체…

황씨는 “문재인정부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서훈 원장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 더 이상 공익제보자가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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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