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호 칼럼> 스포츠의 통찰력

<일요시사>가 스포츠 꿈나무들을 응원합니다. <한국스포츠통신>과 함께 멀지 않은 미래, 그라운드를 누빌 새싹들을 소개합니다.
 

2016년 서울특별시야구협회가 주최하였던 ‘제35회 세계청소년야구대회(U-15)’ 당시 필자는 동 협회의 국제이사 직을 수행하며 한편으로는 당시 대표 팀을 구성했던 기술위원회의 부위원장 직을 맡고 있었다. 

대회를 몇 개월 앞뒀던 늦은 봄, 서울시 중학교 야구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목동야구장을 방문했다가 대치중학교 3학년 투수 한 명과 우연히 조우하며 알게 됐다.

머리의 회전

경기를 관람하던 중에 다음 시합의 차례를 기다리던 그 선수는 필자와 마주치자 자신 또래의 타 학교 선수 중 뛰어난 투수들로 누구를 보고 있는지 질문을 해 오며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야구선수로서, 그리고 투수로서 자신의 고충까지 토로하며 이어져 갔다.


리틀야구단의 선수 출신이었던 그 선수는 중학교 진학 이후 훈련 프로그램을 접하며 자신이 리틀야구 선수 시절 수행했던 훈련프로그램에 대해서 불만족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중학교 진학 이후 달라진 지도자들에 의한 달라진 훈련방식에 혼란스러움까지 느끼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었다. 

당시 필자의 결론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결국 본인의 야구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자신이 완성시키는 것이다. 야구를 하는 동안 수많은 지도자들을 거치게 될 텐데, 그들의 각기 다른 지도 방식과 지도 철학을 자신한테 맞게끔 받아들여 소화하는 능력이 좋은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그 선수는 갑자기 어려웠던 난제를 풀어냈다는 듯 환한 표정까지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필자에게 보여줬다.

박지성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클래스 구분하는 결정적 요소 ‘센스’

당시 그 선수의 소속과 이름을 물어보며 필자가 당시 대화서 느꼈던 점은 중학교에 재학 중인 유소년 야구선수로는 대단한 사고력의 깊이를 갖춘 선수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게 성장 중인 학생이라는 것이었다.

몇 개월 후 해당 선수는 중학교 3학년 선수들로 주축을 이루는 대표B 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됐는데 그가 바로 현재 신일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투수 이건(당시 대치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리고 후에 그의 소속 팀 감독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또래의 투수들 중 투구 시 완급조절과 경기운영 능력에 있어서는 최고 수준의 투수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소년과 청소년 나이대의 야구와 축구 등 엘리트 스포츠의 선수들을 취재하다 보면, 이따금 선천적으로 자질이 타고 난 것 같은 선수들을 만날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러한 자질이 항상 똑같은 유형의 요소들이 중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위에서 언급한 이건 선수처럼 사고력이 깊고 풍부해 자신의 스포츠 종목에 대한 선수로서의 수행 능력에 깊은 이해도를 가지고 경기와 훈련에 임하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선수들 보다 월등한 신체조건을 갖추고 힘으로써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들도 있다. 

후자가 운동선수로서의 타고 난 하드웨어를 의미한다면 전자는 소프트웨어에 관한 개념이다.

스포츠의 통찰력은 바로 그 ‘소프트웨어’서 나온다. 흔히 야구에선 ‘센스’라 표현하고, 축구에선 ‘축구지능’이라고 표현하는 통찰력이야말로 해당 선수의 클래스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모든 스포츠의 종목과 선수들의 경기력은 리그 수준의 차원이 높아질수록 힘과 스피드가 배가되고, 정확성이 추가된다.

그리고 그러한 리그가 해당 종목의 최고 정점을 찍었을 때 선수들에게 마지막으로 요구되는 추가 요소가 바로 통찰력이다. 바로 그러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만이 슈퍼스타로 발돋움 한다.

한국이 배출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은 신체적으로 월등한 조건을 가진 선수가 아니었고, 흔히 말하는 현란한 스킬을 가진 축구의 ‘테크니션’도 아니었다. 

그러했던 선수가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모여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즐비했던 가운데 팀 역사상 가장 강했던 시기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의 선택을 받았고 팀의 주축 선수 중 한 명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86년부터 2013년까지 27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맡으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리그 우승과 유러피안 챔피언스리그(UEFA)의 우승 트로피를 거둬 올렸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자신이 직접 발견하고 발탁한 박지성을 가리켜 “공을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의 움직임이 가장 뛰어난 선수”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흔히 박지성을 일컬어 세 개의 폐를 가졌다고 표현될 만큼 그의 왕성한 체력과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상대 선수를 괴롭히는 수비력 등을 장점으로 이야기하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퍼거슨 감독의 평가만큼 박지성의 재능을 잘 나타낸 표현은 없다고 생각한다.

선천적 자질이냐
후천적 노력이냐


바로 그 박지성의 경기 중 움직임이, 현대 축구의 전술개념서 가장 중요시하는 ‘공간 창출’과 ‘공간 점유’를 의미하는 것이고, 볼의 점유와 공수의 주도권이 예측불허의 상태로 시시각각 변하는 축구 경기서 최고 수준의 축구선수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지성과 함께 동시대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에서 24년 동안 때로는 윙어로,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불세출의 스타 라이언 긱스는 노장으로 접어들 무렵 이 같은 말을 남겼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은 느려지지만, 머리의 회전은 빨라진다.”

스포츠의 통찰력에 관한 개념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했던 인물은 바로 네덜란드 토탈사커의 대명사였던 '요한 크루이프'다. 

1974년 서독월드컵서 비록 주최국 독일에게 우승을 넘겨줬지만 우승국 독일의 축구보다 더 축구의 지향적인 가치로 평가 받으며 세계 축구계의 전술 흐름에 혁명적인 영향을 줬던 인물이다.

네덜란드 토탈사커의 개념을 그라운드 안에서 그대로 실현해 나갔던 네덜란드 국가대표 축구 팀의 중심에 서 있었고 ‘누가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였는가’라는 명제서 벗어나 ‘누가 축구의 전술적 동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는가’라는 물음에 항상 압도적으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현역 시절에는 훈련에 성실치 않은 게으른 선수로 평가 받았고 축구선수로는 드물게도 항상 담배를 피워대던 요한 크루이프는 2016년 결국 과도한 흡연 때문이었는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펠레와 마라도나, 호날두와 메시 같은 인간 한계의 영역을 넘어섰던 최고의 축구선수들과는 다른 개념서 축구 천재로 세계 축구계에 회자되고 있는데 그 중심의 한 가운데에는 항상 그의 축구에 대한 통찰력이 자리 잡고 있게 된다.

마지막 단계

선수 시절 토탈사커의 개념을 현대 축구에 도입하며 축구의 전술적 역사를 토탈사커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누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요한 크루이프는 훗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바르셀로나 팀의 감독을 맡았다.

그는 당시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게 항상 밀리던 바르셀로나 팀을 스페인 라리가의 정상에 올려놓으며 오늘날의 축구계에 FC바르셀로나의 위상을 정립하게 된다.

감독 재임 당시 그가 구축했던 FC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스템서 배출된 선수들로는 나중에 FC바르셀로나의 감독까지 올라갔던 과르디올라, 사비, 피케 그리고 메시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나중에 토탈사커 이후 세계 축구 역사에 또 하나의 전술적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는 스페인 축구의 ‘티키타카’를 완성해 보여주게 된다.

그랬던 요한 크루이프가 축구서 뿐만 아니라 스포츠의 모든 분야서 통찰력이 어떠한 의미를 뜻하는 것인지를 가장 잘 표현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비록 종목은 다르지만, 필자는 현재 신일고등학교 야구부서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이건 같은 똑똑하고 전도가 유망한 모든 스포츠의 선수들이 이 말을 읽고 자신의 깊은 사고력을 통해 본인의 통찰력을 발전, 심화 시키는 것에 매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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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