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권오현시대> 왕년의 삼성 2인자들 ‘어디서 뭐하나’

야인으로 돌아가 안락한 노후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용퇴를 결심했다. 국내 대표기업 삼성의 2인자로 평가 받는 그의 결심에 삼성뿐만 아니라 재계의 눈길이 쏠렸다. 이제 야인으로 돌아간 권 부회장의 향후 거취에도 시선이 모아지는 가운데 역대 삼성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삼성전자는 지난 13일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용퇴 소식을 전했다. 사측에 따르면 권 부회장은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부품부문 사업책임자서 자진 사퇴함과 동시에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

이학수는 지금…
수천억 임대사업

권 부회장은 “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사실상 삼성의 2인자로 평가받는 그의 퇴진 소식에 역대 삼성을 1등 기업으로 이끌던 주역들의 근황에도 눈길이 쏠렸다.

그 가운데 이학수 전 삼성물산 고문은 단연 호사가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전문경영인이다. 이 전 고문은 이건희 회장 시대서 활약했다. 이 전 고문은 이 회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회사 2인자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인 그는 그룹내 재무 부문의 실력가였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최측근이었던 소병해 실장의 후임으로 1990년 초부터 20여년동안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이후 구조조정본부장과 전략기획실장을 거치면서 명실상부한 이 회장의 ‘복심’으로 통했다. 

이 전 고문의 인맥은 화려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부산상고 선후배 사이고, 이명박 대통령과는 고려대 동문이라는 인연이 있다. 

이 전 고문은 이 회장이 2008년 경영 일선서 물러났을 때 함께 물러났다가 2010년 삼성물산의 고문으로 복귀, 이듬해 12월 삼성을 완전히 떠났다.

현재 그는 뚜렷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이 전 고문은 부인 자녀 등과 ‘엘앤비인베스트먼트’라는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엘앤비인베스트먼트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엘앤비타워’를 소유하고 임대사업을 벌이고 있다. 

엘앤비타워의 가치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2006년 토지를 매입해 빌딩을 올려 안정적인 경제력을 확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최고 기업의 2인자라고까지 평가받는 그는 현재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권오현 부회장 퇴진…바통은 누가?
조용한 분위기 속 내부 실세들 꿈틀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이 회장의 신임 아래 이 전 고문과 쌍벽을 이루는 행보를 보였다. 윤 전 부회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그는 이병철 창업주 시절 1966년 삼성전자(당시 )에 입사한 공학도 출신이다. 그를 적극적으로 중용한 것은 이 회장의 안목이었다.


재계에선 삼성 이 회장 아래 삼성내 이학수 사단과 윤종용 사단이 나눠져 있다는 말이 나왔다. 윤 전 부회장은 지난 2006년 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료 산출을 위해 집계한 표준 보수를 기준으로 21억1000만원으로 이 회장(10억원)보다 많은 보수를 챙겨 그룹 내 그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윤 전 부회장 역시 이 회장이 물러났었던 2008년 삼성전자 부회장직서 물러나 삼성전자 고문으로 활동했다. 이후 2011년을 끝으로 삼성전자를 떠났다. 다만 이 전 부회장에 비해서는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2008년부터 맡고 있는 있는 수원삼성 블루윙즈 프로축구단 구단주로 삼성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또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 IEEE 명예회원이기도 하다. 2009년부터는 새만금개발사업 명예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외에도 활발한 활동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삼성그룹서의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현 KT 대표이사)도 삼성서 알아주는 전문경영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출신인 황 전 사장은 1992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이사로 삼성맨이 됐다. 2009년 회사를 떠날 때까지 황 전 사장의 행보는 반도체의 역사였다. 

CEO 출신들
활발한 행보

반도체 메모리 용량을 1년에 2배씩 증가시킨다는 이른바 ‘황의 법칙’은 반도체 업계에 아직도 통용된다. 이는 18개월에 2배씩 증가시킨다는 인텔 공동창업주 고든 무어의 법칙보다도 빨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론은 황 전 사장이 실증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1999년에 256M 낸드플래시메모리를 개발하고, 2000년 512M, 2001년 1G, 2002년 2G, 2003년 4G, 2004년 8G, 2005년 16G, 2006년 32G, 2007년 64G 제품을 개발한 것. 이 같은 ‘황의 법칙’을 등에 업고 삼성은 반도체 부문 세계 1위에 안착했다.

황 전 사장은 8년전 삼성전자를 나온 뒤에 경영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공학한림원 이사, 지식경제부 최고기술경영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단장 등을 거친 뒤 2014년 KT대표이사 회장직을 맡아 현재까지 이끌고 있다. 

그는 공기업 성향이 강했던 KT에 삼성의 정신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경영효율화를 극대화하며 흑자경영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애니콜 신화’ 이기태 전 부회장도 삼성의 역사 굵직한 이름을 남겼다. 1973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 전 부회장은 불도저식 인재다. 그는 삼성 역대 부회장 가운데 가장 많은 사표를 낸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평사원 시절부터 부당한 지시에 사표로 맞섰던 것이다. 1985년 비디오사업부장 때 사표를 내고 강원도로 20여일간 잠적했던 일화는 업계서도 아주 유명하다.


그런 그가 삼성전자의 얼굴이 된 것은 실력이었다. 1991년 이사보가 된 이후 1994년 무선사업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 전 부회장 시대가 열렸다. 당시만 해도 삼성의 휴대폰 시장서의 인지도는 시장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무선사업부는 비디오나 팩스사업부에 비해 인기가 없었다.

역대 회장 그림자 근황 눈길
퇴임 후 생활 모습 각양각색

하지만 이 전 부회장 특유의 불도저 스타일에는 제격이었다. 1995년 무선전화기의 품질 이상 보고를 받고 모든 제품을 수거해 불태우고 휴대폰 브랜드 애니콜의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시절 품질을 의심하는 바이어 앞에서 휴대폰을 바닥에 던져 제품 내구성을 강조한 일화는 아직도 업계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그 결과 삼성의 휴대폰 사업은 수출 초기인 1998년 4억달러서 2011년 30억달러까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2위 자리까지 올랐다. 현재 삼성이 휴대폰 및 스마트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게 되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 그도 황 전 사장과 같은 해인 2008년 회사를 떠났다. 그는 경영서 물러난 뒤 2012년까지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이후 KJ프리텍 사내이사, 동양네트웍스 기타비상무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역 시절 언론의 노출을 꺼렸던 최도석 전 삼성카드 부회장 역시 삼성그룹 내 실세로 분류된다. 재무통인 최 전 부회장은 이학수 전 부회장과 보조를 맞추면서 회사내 입지를 다졌다. 


1975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그는 제일모직 경리과를 시작으로 삼성전자 경리 부장, 삼성전자 관리이사,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재경팀장 상무이사,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전무이사,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부사장,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담당 대표이사 부사장,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담당 사장 등 주요직을 거치면서 실세란 평가가 어색하지 않게 됐다. 

최 전 부회장은 2009년부터 삼성카드로 자리를 옮겨 2010년 12월 삼성카드 부회장을 끝으로 퇴진했다.

현재 그는 현역시절과 마찬가지로 조용한 행보를 보내고 있다. 이따금 대학 강연서 자신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며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김순택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도 삼성내 2인자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김 전 부회장은 1972년 입사해 78년부터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서 20년간 일했다. 이 회장을 지근거리서 보필했던 그는 이 회장의 경영철학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97년부터 삼성중공업 건설기계부분 대표이사 부사장, 삼성SDI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2011∼2012년 6월까지 미래전략실장 직을 끝으로 삼성을 떠났다. 삼성을 떠난 그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비서실 출신이다 보니 대내외 활동을 의도적으로 삼가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반면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은 현재 금융투자협회 회장으로 활발한 행보를 펼치고 있다. 황 전 사장은 과거 삼성그룹서 실력자로 통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방미 당시 이건희 코리아소사이어티 연설 통역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황 전 사장을 삼성그룹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할 것으로 꼽히고 있었다. 

경험 살려 자문
대학서 후진 양성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국제금융팀 팀장,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인사팀 팀장, 삼성생명 전략기획실 실장 등 핵심 부서를 거친 그였기에 이 같은 평가가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 중론. 그는 2001년 6월 삼성증권 대표이사를 끝으로 홀연히 삼성을 떠났다. 

그는 퇴직 후 2004년 우리은행 은행장, 2007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초빙교수, 2008∼2009년 KB금융지주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부터는 제3대 금융투자협회 회장으로 대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윤우 삼성전자 고문 역시 삼성그룹을 성장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경영 일선에 물러나 있지만 고문으로 삼성그룹에 조언을 해주고 있다.

이 고문은 해외파가 즐비한 삼성전자서 토종파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고문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해 1968년 삼성전관에 입사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이 고문은 1974년 이 회장이 사재를 털어 인수한 한국반도체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고문은 1985년 기흥공장 건설 초기부터 관여했다. 인재를 영입하는 데도 이 고문의 역할이 컸다. 반도체 전문가를 구하기 어려운 당시 권오현 부회장, 조수인 사장, 전동수 사장 등을 직접 영입했다. 

그는 2008년 삼성특검 직후 삼성이 계열사 사장단 협의체를 구성 그룹 의사 결정을 내렸는데 당시 이 고문이 중심이 돼 주요 사안을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창업주 세대인 강진구 전 삼성전자·삼성전기 회장이 지난 8월 별세했다. 삼성의 역사이자 반도체의 대부로 평가받는 강 전 회장은 1927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대구사범학교와 서울대 공대 전자과를 졸업했다. 
 

강 전 회장이 사회생활 첫발무터 삼성그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었다. 육군 대위 복무를 마치고 KBS와 미8군 방송국, 중앙일보 동양방송 이사를 거쳐 1973년에 비로소 삼성맨이 됐다.

당시 강 전 회장의 삼성전자 합류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지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 전 회장의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이라는 회고록에 따르면 이병철 선대 회장은 동양방송 평이사였던 그와 점심식사도 함께 하고 위성 중계되는 권투경기를 시청하기도 했다.  

강 전 회장은 회고록에 “흔이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막연히 ‘회장님께서 나를 눈여겨 보시나보다’ 정도로 생각했지 삼성전자를 맡기실 줄은 몰랐다”고 기술했다.

그는 선대 회장이 1973년 삼성전자 대표이사로 임명하자 1969년 창립 이후 5년간 적자이던 회사를 단번에 흑자로 전환시켰을 정도로 경영자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선대 회장의 신뢰 속에 강 전 회장은 삼성전자 상무·전무·사장을 거쳐 삼성전자부품·삼성정밀 사장, 삼성반도체통신 사장, 삼성반도체통신·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기 대표이사,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관·삼성전기 회장, 삼성의료원 강북병원재단 이사장, 삼성전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구조조정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후 2000년 12월31일 건강문제와 후진양성을 이유로 삼성전기 회장직서 사임, 37년간 몸담았던 삼성을 떠났다. 

실제 강 전 회장은 후진양성에 힘썼다. 

강 전 회장은 발명특허협회 부회장, 한국전자통신 사장, 한국전기·전지시험검사소 이사장,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평통 자문위원, 전자공업진흥회 회장, 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한·벨기에경제협력위원장, 한·헝가리경제협력위원장,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고문,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 표준과학연구소 이사장, 중동학원 이사장, 한국전자산업진흥회 회장,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내며 대내외에서 두루 인정받기도 했다. 

2006년에는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포함돼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쏟아지는 러브콜
스카우트 1순위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성장한 삼성그룹내 실세들이 2008년을 기점으로 경영 일선서 물러난 경우가 많다”며 “현재도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인사가 있는 반면 언론서 자취를 감춘 실세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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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