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문재인정부 딜레마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9.18 11:05:53
  • 호수 1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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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하다 무너지게 생겼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문재인정부가 위기에 빠졌다. 안으로는 인사문제부터 시작해 밖으로는 북핵문제까지 겹치면서 시름이 계속되고 있다. 뚜렷한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 상황. 문 정부의 해법은 무엇일까. <일요시사>는 안팎으로 몰린 문재인정부의 현 상황을 짚어봤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로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국회는 지난 11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표결했다. 결과는 총 투표수 293표 중 찬성 145표, 반대 145표, 기권 1표, 무표 2표로 부결됐다. 

인사 난맥상
야3당 맹공

청와대는 곧바로 강한 유감의 뜻을 표했다. 이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다른 안건과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연계하려는 정략적 시도는 계속됐지만 그럼에도 야당이 부결까지 시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김 후보자에게는 부결에 이를 만한 흠결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헌정질서를 정치·정략적으로 악용한 가장 나쁜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며 “오늘 국회서 벌어진 일은 무책임의 극치이자 반대를 위한 반대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의 낙마로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헌법재판소장이 국회 임명을 받지 못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번 부결이 특히나 충격이 컸던 이유는 문재인정부에 대한 야 3당의 공세 신호탄이란 성격 때문이다. 

앞서 이낙연 총리의 경우 임명동의안이 국회서 통과한 바 있다. 재적의원의 과반수 이상 출석과 출석의원의 과반수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임명하긴 어려웠다. 

당시 야당은 정권초기 허니문 기간을 고려해 대승적 차원서 이 총리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김이수 임명동의안 부결…청와대 충격
대법원장 부결가능성↑…매서운 공세

문 정부 정책에 사활이 걸린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도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야 3당은 국무위원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면서 문 정부에 공세 수위를 높여갔다. 야당 입장에선 더 이상 문 대통령의 독주를 두고 볼 수만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5대 비리’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을 제시했던 문 정부의 모순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 정부는 논란이 있던 인사를 강행하거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대로 앞선 이명박·박근혜정부의 실정을 지적하면서 ‘적폐청산’에 나섰다. 문 대통령의 광폭행보와는 별개로 김 후보자에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선 ‘사법부 코드 인사’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아울러 국민의당은 김이수 전 후보자보다 김명수 후보자의 ‘이념 편향’을 더욱 문제삼고 있다. 만약 김명수 후보자까지 부결된다면 문 대통령이 추진했던 ‘헌재소장 김이수, 헌법재판관 이유정, 대법원장 김명수’라는 구상은 붕괴되는 셈이다. 

계속되는 인사 난맥상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최근 조현옥 인사수석,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수석·보좌관 회의서 “인사 원칙과 검증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라” “인재풀을 확보하라”는 지시와 함께 “이번이 마지막이란 각오로 임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수보회의에 참석 했던 한 인사는 “상당히 엄하게 질책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라진 협치
인사 돌파구는? 

김 후보자 부결로 야당은 존재감을 표출한 반면 청와대와 여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인사 관련해 풀어야할 숙제가 남아 있다.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인 청와대 탁현민 행정관부터 시작해 각종 논란에 휘말린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이 물러나면서 문 정부의 앞날이 어두운 상황이다. 

특히 탁 행정관의 경우 정현백 여성부장관이 나서 해임을 건의할 정도로 문 정부 ‘인사실패의 아이콘’이 됐다.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부터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이력, 뉴라이트 사관, 다운계약서 작성 논란 등으로 논란을 빚은 박 전 후보자는 여야 모두 부적절한 인사라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즉 인사를 함에 있어 야당의 건의나 국민여론을 살피지 않고 독단적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최근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문재인정부가 인사에 있어서 전혀 협치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서 협조만 요청할 게 아니라 정말 국민 대다수가, 또 정치권과 언론서 문제제기하는 잘못된 인사에 대해서는 전향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임명동의권이 필요 없는 인사들의 경우 논란이 됐더라도 임명을 강행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번 김 후보자 부결로 인해 문 대통령이 더 이상 ‘강경책’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향후 임명동의안이 필요한 인사의 경우 또다시 야당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명이 실패할 경우 결국 문 대통령이 구상한 정책과 방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문재인정부의 딜레마는 인사에 그치지 않는다.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나흘 뒤 문 대통령은 사드 발사대 4기 임시배치를 완료했다. 문재인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의 대응차원서 사드 임시배치를 단행했지만 그로 인해 정치·외교적 어려움에 봉착했다. 특히 진보진영에선 ‘배신’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지난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의 자문그룹 ‘10년의 힘 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공개석상서 “이름과 용모는 같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사드 배치도 그렇고, 전부 촛불 민심과 거꾸로 가고 있다”고 정면비판했다. 

정치권의 비판을 의식한 듯 지난 8일 문 대통령은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현 상황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며 “정부는 한반도서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드 임시배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해당 메시지는 청와대가 현 상황을 얼마나 위중하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라는 평가다. 

사드 ‘갈팡질팡’
미·중 눈치보기


보수진영의 공세도 매섭다.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선 환영한다면서도 ‘임시’ 배치라는 점을 들어 중국과 사드 반대론자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지난 9일 자유한국당 강효상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임시배치’라는 단어만 반복했는데 이는 언제든 사드를 다시 철수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이중 플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드배치는 대북 유화책의 처참한 실패로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안보정책 중 유일하게 칭찬받을 만한 조치였다”면서도 “대통령 입장문은 대국민 메시지가 아니라 일부 사드 반대세력과 중국의 반발에 눈치 보듯 변명하는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었다”고 언급했다. 

중국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사드를 악성 종양에 빗대며 원색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시진핑 주석도 문 대통령의 통화 요청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등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은 한층 강화되는 모양새다. 

야권 일각에선 전술핵 재배치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선 비대칭 무기인 ‘핵’을 한반도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전술핵 재배치를 놓고 야당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은 “북한이 핵폭탄을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해서 완성단계에 이르렀는데 한반도 비핵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같은 당 김학용 의원은 “북한서 7차 핵실험 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때도 전술핵 상시배치 안 할 건가”라고 강도 높게 전술핵 재배치를 촉구했다.

북한 6차 핵실험…사드 우왕좌왕
문통 방미 주목 북핵·외교 분수령 

반면,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야당의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주장과 관련해 “민주당은 평화보다는 오직 핵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술핵 주장을 반대한다”며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는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반도 비핵화 원칙 (훼손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도 전술핵 재배치 불가를 분명히 했다. 

이상철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전술핵 재배치와 관련해서 검토한 바 없다”며 “우리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전술핵 재배치 불가 이유로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 위배 ▲북한 핵 폐기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 명분 약화 및 상실 ▲동북아의 핵무장 확산 등을 들었다.

정부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국가안보실 고위 당국자가 직접 공개적으로 전술핵 재배치 불가를 선언한 것은 6차 핵실험 이후 북핵 대응 차원서 전술핵 재배치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최근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서도 북핵에 맞선 ‘핵균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전술핵 재배치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18일부터 시작될 방미 일정이 문 대통령 대북 외교전의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18일부터 3박5일 일정으로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이번 방문서 문 대통령은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나선다. 북한의 핵위협으로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서 강력한 대북 제재의 당위성 등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답답한 흐름
지지율 하락

최근 북핵 문제에 대한 답답한 흐름이 이어지자 문 대통령의 지지율도 취임 후 처음으로 70%가 무너졌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조사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4% 하락한 69.1%를 기록했다. 부정평가는 2.8% 오른 24.6%를 각각 기록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소득주도 성장의 이면

문재인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 성장’이 곳곳서 삐걱대고 있다. 문 정부는 출범 이후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등 소득주도 성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소득주도를 강조하다 보니 기업 등 재계에서는 산업정책이 실종됐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계의 불만이 커지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그동안 혁신성장이 상대적으로 소홀했음을 인정했다. 

지난 12일 김 부총리는 기자간담회서 “모든 경제정책 방향이 소득주도에만 몰린 것으로 보이다 보니 전체 경쟁력과 비교우위를 높이는 쪽(혁신성장)이 간과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후 기대를 모았던 고용시장도 한파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며 추경, 세법개정안까지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률 최고치 경신을 막지는 못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소득주도 성장이 저성장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담은 것은 아니다”라며 “분배와 성장의 상충관계를 외면하지 말고 산업에서 성장동력을 찾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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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