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문재인정부 딜레마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9.18 11:05:53
  • 호수 1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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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하다 무너지게 생겼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문재인정부가 위기에 빠졌다. 안으로는 인사문제부터 시작해 밖으로는 북핵문제까지 겹치면서 시름이 계속되고 있다. 뚜렷한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 상황. 문 정부의 해법은 무엇일까. <일요시사>는 안팎으로 몰린 문재인정부의 현 상황을 짚어봤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로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국회는 지난 11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표결했다. 결과는 총 투표수 293표 중 찬성 145표, 반대 145표, 기권 1표, 무표 2표로 부결됐다. 

인사 난맥상
야3당 맹공

청와대는 곧바로 강한 유감의 뜻을 표했다. 이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다른 안건과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연계하려는 정략적 시도는 계속됐지만 그럼에도 야당이 부결까지 시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김 후보자에게는 부결에 이를 만한 흠결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헌정질서를 정치·정략적으로 악용한 가장 나쁜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며 “오늘 국회서 벌어진 일은 무책임의 극치이자 반대를 위한 반대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의 낙마로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헌법재판소장이 국회 임명을 받지 못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번 부결이 특히나 충격이 컸던 이유는 문재인정부에 대한 야 3당의 공세 신호탄이란 성격 때문이다. 

앞서 이낙연 총리의 경우 임명동의안이 국회서 통과한 바 있다. 재적의원의 과반수 이상 출석과 출석의원의 과반수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임명하긴 어려웠다. 

당시 야당은 정권초기 허니문 기간을 고려해 대승적 차원서 이 총리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김이수 임명동의안 부결…청와대 충격
대법원장 부결가능성↑…매서운 공세

문 정부 정책에 사활이 걸린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도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야 3당은 국무위원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면서 문 정부에 공세 수위를 높여갔다. 야당 입장에선 더 이상 문 대통령의 독주를 두고 볼 수만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5대 비리’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을 제시했던 문 정부의 모순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 정부는 논란이 있던 인사를 강행하거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대로 앞선 이명박·박근혜정부의 실정을 지적하면서 ‘적폐청산’에 나섰다. 문 대통령의 광폭행보와는 별개로 김 후보자에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선 ‘사법부 코드 인사’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아울러 국민의당은 김이수 전 후보자보다 김명수 후보자의 ‘이념 편향’을 더욱 문제삼고 있다. 만약 김명수 후보자까지 부결된다면 문 대통령이 추진했던 ‘헌재소장 김이수, 헌법재판관 이유정, 대법원장 김명수’라는 구상은 붕괴되는 셈이다. 

계속되는 인사 난맥상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최근 조현옥 인사수석,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수석·보좌관 회의서 “인사 원칙과 검증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라” “인재풀을 확보하라”는 지시와 함께 “이번이 마지막이란 각오로 임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수보회의에 참석 했던 한 인사는 “상당히 엄하게 질책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라진 협치
인사 돌파구는? 

김 후보자 부결로 야당은 존재감을 표출한 반면 청와대와 여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인사 관련해 풀어야할 숙제가 남아 있다.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인 청와대 탁현민 행정관부터 시작해 각종 논란에 휘말린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이 물러나면서 문 정부의 앞날이 어두운 상황이다. 

특히 탁 행정관의 경우 정현백 여성부장관이 나서 해임을 건의할 정도로 문 정부 ‘인사실패의 아이콘’이 됐다.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부터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이력, 뉴라이트 사관, 다운계약서 작성 논란 등으로 논란을 빚은 박 전 후보자는 여야 모두 부적절한 인사라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즉 인사를 함에 있어 야당의 건의나 국민여론을 살피지 않고 독단적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최근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문재인정부가 인사에 있어서 전혀 협치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서 협조만 요청할 게 아니라 정말 국민 대다수가, 또 정치권과 언론서 문제제기하는 잘못된 인사에 대해서는 전향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임명동의권이 필요 없는 인사들의 경우 논란이 됐더라도 임명을 강행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번 김 후보자 부결로 인해 문 대통령이 더 이상 ‘강경책’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향후 임명동의안이 필요한 인사의 경우 또다시 야당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명이 실패할 경우 결국 문 대통령이 구상한 정책과 방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문재인정부의 딜레마는 인사에 그치지 않는다.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나흘 뒤 문 대통령은 사드 발사대 4기 임시배치를 완료했다. 문재인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의 대응차원서 사드 임시배치를 단행했지만 그로 인해 정치·외교적 어려움에 봉착했다. 특히 진보진영에선 ‘배신’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지난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의 자문그룹 ‘10년의 힘 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공개석상서 “이름과 용모는 같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사드 배치도 그렇고, 전부 촛불 민심과 거꾸로 가고 있다”고 정면비판했다. 

정치권의 비판을 의식한 듯 지난 8일 문 대통령은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현 상황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며 “정부는 한반도서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드 임시배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해당 메시지는 청와대가 현 상황을 얼마나 위중하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라는 평가다. 

사드 ‘갈팡질팡’
미·중 눈치보기


보수진영의 공세도 매섭다.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선 환영한다면서도 ‘임시’ 배치라는 점을 들어 중국과 사드 반대론자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지난 9일 자유한국당 강효상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임시배치’라는 단어만 반복했는데 이는 언제든 사드를 다시 철수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이중 플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드배치는 대북 유화책의 처참한 실패로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안보정책 중 유일하게 칭찬받을 만한 조치였다”면서도 “대통령 입장문은 대국민 메시지가 아니라 일부 사드 반대세력과 중국의 반발에 눈치 보듯 변명하는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었다”고 언급했다. 

중국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사드를 악성 종양에 빗대며 원색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시진핑 주석도 문 대통령의 통화 요청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등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은 한층 강화되는 모양새다. 

야권 일각에선 전술핵 재배치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선 비대칭 무기인 ‘핵’을 한반도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전술핵 재배치를 놓고 야당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은 “북한이 핵폭탄을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해서 완성단계에 이르렀는데 한반도 비핵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같은 당 김학용 의원은 “북한서 7차 핵실험 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때도 전술핵 상시배치 안 할 건가”라고 강도 높게 전술핵 재배치를 촉구했다.

북한 6차 핵실험…사드 우왕좌왕
문통 방미 주목 북핵·외교 분수령 

반면,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야당의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주장과 관련해 “민주당은 평화보다는 오직 핵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술핵 주장을 반대한다”며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는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반도 비핵화 원칙 (훼손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도 전술핵 재배치 불가를 분명히 했다. 

이상철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전술핵 재배치와 관련해서 검토한 바 없다”며 “우리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전술핵 재배치 불가 이유로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 위배 ▲북한 핵 폐기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 명분 약화 및 상실 ▲동북아의 핵무장 확산 등을 들었다.

정부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국가안보실 고위 당국자가 직접 공개적으로 전술핵 재배치 불가를 선언한 것은 6차 핵실험 이후 북핵 대응 차원서 전술핵 재배치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최근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서도 북핵에 맞선 ‘핵균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전술핵 재배치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18일부터 시작될 방미 일정이 문 대통령 대북 외교전의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18일부터 3박5일 일정으로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이번 방문서 문 대통령은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나선다. 북한의 핵위협으로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서 강력한 대북 제재의 당위성 등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답답한 흐름
지지율 하락

최근 북핵 문제에 대한 답답한 흐름이 이어지자 문 대통령의 지지율도 취임 후 처음으로 70%가 무너졌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조사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4% 하락한 69.1%를 기록했다. 부정평가는 2.8% 오른 24.6%를 각각 기록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소득주도 성장의 이면

문재인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 성장’이 곳곳서 삐걱대고 있다. 문 정부는 출범 이후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등 소득주도 성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소득주도를 강조하다 보니 기업 등 재계에서는 산업정책이 실종됐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계의 불만이 커지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그동안 혁신성장이 상대적으로 소홀했음을 인정했다. 

지난 12일 김 부총리는 기자간담회서 “모든 경제정책 방향이 소득주도에만 몰린 것으로 보이다 보니 전체 경쟁력과 비교우위를 높이는 쪽(혁신성장)이 간과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후 기대를 모았던 고용시장도 한파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며 추경, 세법개정안까지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률 최고치 경신을 막지는 못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소득주도 성장이 저성장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담은 것은 아니다”라며 “분배와 성장의 상충관계를 외면하지 말고 산업에서 성장동력을 찾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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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