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제일은행 총파업 사태 막전막후

“꼭두각시 행장은 빼고 얘기 합시다”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위태롭기만 하던 SC제일은행의 노사관계가 극으로 치닫고 있다. 노조가 노동쟁의의 최고 단계인 총파업에 돌입한 것. 절반에 가까운 직원이 여기에 동참했다. 당연히 영업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조합원인 간부급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는 모습이다. 이 가운데 리차드 힐 행장이 노조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서면서 파업은 장기화 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노조, 한미은행 파업 이후 7년 만에 총파업 단행
노사 타협점 이끌어내지 못해…장기화 수순 밟나

SC제일은행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단행했다. 지난달 27일 노조 2800여명은 버스 65대를 대절, 속초로 떠났다. 전체직원(6500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파업에 나선 것이다. 은행 노조의 장기 파업은 지난 2004년 한미은행 이후 7년만이다.

2800명 파업

SC제일은행 노사 갈등은 사측이 지난해 임금단체협상에서 ‘개별차등 성과급제’를 제안하면서 촉발됐다. 성과급제는 근무평정을 5등급으로 나눠 봉급인상률을 차등 적용하고 최하등급을 두번받게 되면 지점근무가 아닌 개별영업을 시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경영진은 성과급제에 대해 ‘노사가 윈-윈 하는 제도’라고 설명했지만 노조의 생각은 다르다.  성과연봉제는 결국 외국계 경영진과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의 직원들을 희생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이번 총파업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터질게 터졌다는 입장이다. SC제일은행은 업계에서 유독 심한 ‘수익’ ‘성장’ ‘결과’ 중심 경영방침으로 직원들의 반발을 키워왔다는 평가다. 실제 이 같은 불만은 스탠다드차타드(SC)가 제일은행을 인수한 직후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이번 파업은 비노조원인 간부급 은행원들의 공감마저 얻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SC제일은행 간부급 은행원은 “제일은행 시절에는 일에 대한 보람과 사명이 있었는데 이제는 상품을 몇 개 더 팔고, 실적을 얼마나 더 올려야하는 지에 대한 생각뿐”이라며 “직원들은 이번 사건을 생존권의 문제로 보고 있다. 여기가 한국이지 영국이 아닌데 경영진은 이윤추구와 성과만능주의로 모든 걸 판단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총파업으로 SC제일은행은 영업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영업지점을 통합운영영업점과 일반영업점으로 나눠 파업에 대처하고 있다. 통합운영영업점은 모든 은행 업무가 가능하며 SC제일은행 전 지점의 5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일반영업점에서는 입출금, 당좌거래 등의 단순업무만 이뤄질 뿐 대출 업무, 카드 발급, 펀드 가입 등의 업무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SC제일은행 측 관계자는 “고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려 노력 중이지만 파업이 길어지면 피해는 불가피하다”며 “업무 로드가 걸린 직원들도 피로를 호소해 파업 찬반 여부와 상관없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바람과 반대로 파업은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조가 “협상이 되기 전까진 돌아오지 않겠다”고 밝힌데 대해 리차드 힐 SC제일은행장이 처벌 가능성을 시사하는 ‘강수’를 둔 때문이다.

파업 다음날인 28일 오전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과 리차드 힐 SC제일은행장을 만나 중재를 시도했다. 하지만 양측은 약 1시간의 면담 끝에 서로의 이견만 확인한 채 협상은 결렬됐다.

당시 김 위원장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은 다른 시중은행들이 SC제일은행보다 경영성과가 좋다”며 “국민과 직원들은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한국에서 보여준 투기적 경영행태에 실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성과제가 포함하고 있는 상시 퇴출제도는 노동조합으로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영진이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도외시한 경영전략으로 노사간 소모적인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여론도 전달했다.

이에 대해 리차드 힐 행장은 “성과연봉제는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키고 조합원을 보호하는 제도”라며 기존 입장을 지켰다. 리차드 힐 행장은 또 “파업이 길어지면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이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처벌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그다지 놀라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습이다. 리처드 힐 행장은 직원들과 잘 어울리는 등 친화적이고 밀착형 CEO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뿐, 정책 결정에 대한 권한은 전무하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SC제일은행의 대주주인 스탠다드차티드은행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리처드 행장을 노조는 ‘꼭두각시’에 비유했다. 노조의 총파업에 대해 융통성을 발휘할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총파업은 장기화 수순을 밟고 있다. SC제일은행 경영진은 노조원이 집결해 있는 속초의 한 콘도 인근에서 노조와 접촉 중이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타협을 이끌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은행 노조 지지

한편, 대만의 전국은행노동조합은 한국 금융노조와 SC제일은행 노조에 연대 서신을 보내 파업 지지를 표명했다. 라이 완 치 노조위원장은 “대만의 스탠다드차타드은행를 비롯한 5만2000명의 노조원들을 대신해 SC제일은행 노조의 무기한 총파업을 적극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성과연봉제는 SC가 글로벌 정책이라고 주장하며 강력하게 시행하려고 하지만 이는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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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