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위협하는 암초 ‘넷’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8.04 19:21:27
  • 호수 1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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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 시동…끝까지 밀고 나갈까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추경 정국을 돌파한 문재인정부가 암초를 만났다. 북한의 도발로 시작된 대북·외교 정책부터 증세 방안까지 야당에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첫 시험대에 오른 문재인정부가 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지난달 29일 북한은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기습 발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의식해 사드 잔여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토록 지시했다. 그는 “필요시엔 우리의 독자적 대북제재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길 바란다”며 강경 대응했다. 

사드 임시배치 
오락가락 행보

북한의 실질적 위협에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 추가를 지시했지만 각 당의 반응은 싸늘하다. 우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일부서 반발 조짐이 감지됐다. 당 지도부 공식 입장은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에 공감한다”였지만 일부 의원들은 “대통령이 되면 이런 식으로 (사드 관련 입장을) 바꿔도 되느냐”며 “노무현정부 시절 이라크 파병 결정처럼 지지층 균열을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드 배치에 반대 입장을 밝혀온 민주당 사드특별대책위원회는 이번 주 비공개회의를 열고 이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사드특위 소속 김영호 의원은 “대통령의 사드 배치 결정에 깜짝 놀란 의원들이 많다. 상황이 바뀐 진짜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며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사드 강경파’들의 반발 조짐은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의 비판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사드 임시 배치 결정이 충분한 소통 없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 문제를 놓고 민주당 지지층 내부서 균열이 생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싸늘한 야3당…대 정부 파상공세
사드 임시배치 강행 ‘이랬다저랬다’ 

청와대가 사드 임시배치를 결정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염두에 둔 일반 환경영향평가 실시도무색해지는 모양새가 됐다. 청와대는 일반 환경영향평가와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31일 “일반 환경영향평가는 일관되게 하겠다고 했던 것이고 사드 발사대를 임시 배치해도 나중에 최종 배치 여부를 확정하겠다는 것”이라며 “아무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권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지난 1일 문재인정부의 ‘선 사드 임시 배치, 후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말장난’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국내법에 환경영향평가를 먼저 하도록 돼있는데 환경영향평가를 포기하고 임시 배치를 한다고 한다. 그럼 배치를 했다가 환경영향평가서 곤란하다고 나오게 되면 철수 시킬 거냐”고 지적했다. 

비단 국민의당뿐만 아니라 정치권 안팎서도 북한의 도발·위협이 새롭게 불거진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연내 불가능하다는 듯이 했다가 급작스럽게 임시배치로 돌아선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부동산 대책
노정부 시즌2?

사드뿐만 아니라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일 문재인정부는 서울 강남권과 세종시 등에 대한 투기과열지역·투기지역 지정 등을 골자로 한 8·2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부동산업계는 8·2부동산대책이 노무현정부 때 발표된 8·31부동산대책에 버금가는 규제로 평가했다. 투기수요 억제를 통해 부동산 상승요인을 조기에 진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번 부동산 대책을 놓고 여·야의 입장은 엇갈렸다. 민주당은 지난 2일 8·2부동산대책에 대해 “매우 강력하고 우선적인 조치”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당정협의 모두발언을 통해 “서민 주거문제 해결이야말로 최고의 민생 대책이고 정치가 해야하는 일”이라며 “집값 상승의 원인이 다주택자의 투기수요인 만큼 강력한 핀셋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제2의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를 거듭할 것”이라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다. 

한국당 송석준 원내수석부대표는 “시장 경제 추체들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측면서 경제활동을 도모해야 하는데 반시장 정책이 너무 난무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며 “수도권 규제와 같은 시대착오적 규제 등이 심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로 “정부는 8월에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겠단 한가한 소리하다 발표했지만 결국 뒷북”이라며 “미온적 대책이란 평가를 받고 정책실패로 귀결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노무현정부의 시즌2 정책’이라는 비판을 한귀로 듣고 흘리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정부 주도 성장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주도 성장은 증세와 연결된다.

문재인정부는 지난 2일 소득세와 법인세를 동시에 인상하는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내놨다. 연 3억∼5억원에 달하는 과표구각능 신설해  현재 38% 세율을 40%로 상향조정했고, 5억원 초과 구간은 현행 40%서 42%로 올렸다. 소득세 증가분에 적용되는 대상자는 약 10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추가세수분은 2조2000억원으로 예상된다. 

부자 잡는 부동산 정책
노무현 정권이 보인다

이명박정부서 22%로 낮춘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율도 25%로 상향 조정됐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2일 “비과세 감면 등 일부 정비를 통해 세입보충 노력을 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세율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계층과 일부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율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세제개편안의 특징 중 하나는 문재인정부의 역점사업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고용증대세제를 신설하는 방안을 추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상시근로자 수를 늘리고 2년 동안 고용을 유지하면 1인당 중소기업은 1400만원, 중견기업은 1000만원의 세금이 감면된다. 

문 대통령이 대선과정부터 심혈을 기울인 정부주도 성장에 대해서도 야권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야당은 일제히 이번 세제개편안에 대해 ‘졸속 개편’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법인세 인상 반대를 주장한 자유한국당과 달리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증세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아 온도차를 보였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2일 브리핑을 갖고 “정부의 법인세 인상과 관련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며 “법인세가 인상되면 기업의 세부담이 증가하게 되고 그 부담은 결국 모든 주주, 근로자, 협력중소기업,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이는 국민증세이자 기업 발목 잡는 증세, 일자리 감소 증세”라고 지적했다. 

국민의당은 재정개혁을 위한 청사진 제시를 요청했다. 국민의당 이용호 정책위의장은 같은 날 서면논평을 통해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생색내기용 세제개편안”이라며 “100대 국정과제에  필요한 소요재원 마련 등 향후 재정소요 및 조달방안에 대한 종합적인 청사진이  없다”고  꼬집었다.  

바른정당도 청와대의 ‘불도저식’ 행정을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바른정당 이종철 대변인은 지난 2일 논평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증세 논의는 하루 만의 말바꾸기 증세”라며 “여야청 협의를 하자더니 그대로 밀어붙인 독선·독주 증세”라고  날을 세웠다. 
 

여야의 최대 쟁점은 법인세와 소득세율 인상으로 보인다. 여당은 이번 증세법안은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문재인정부의 철학이 담긴 만큼 법안 통과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해당 개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민의당 및 바른정당과의 공조가 핵심 관건이 될 전망이다. 


개정안은 오는 22일까지 입법예고한 뒤 8월 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다음달 1일 정기국회에 넘겨질 예정이다. 

법인세 딜레마
불안한 탈원전

정부 초기 문재인정부는 탈원전을 화두로 던졌다. 이에 대한 반발도 거세 문 정부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및 100대 국정과제에 따르면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발전 비중은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이 과정서 문 대통령은 탈원전 로드맵을 수립해 단계적으로 원전 제로시대를 열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특히 6기의 원전 신규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노후 원전 수명연장을 금지하는 등 단계적 원전 감축계획을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반영키로 했다. 

특히 이 계획에는 신고리 5·6기 건설 중단 여부도 포함돼 여야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에 돌입했다. 정부는 신고리 5·6기 공론화위원회를 지난달 24일 출범시켰다. 공론화위는 오는 10월21일까지 3개월간 활동하면서 설문조사, 배심원단 구성, 공청회 등을 진행한다.

공사 중단 혹은 재개 결정은 실질적으로 시민배심원단이 내리도록 했다. 이에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신고리 5·6기 건설중단은) 혈세 낭비의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라며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배임행위를 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고리 원전 중단
혈세 낭비 시작?  

국민의당도 공론화위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국민의당 탈원전 TF팀장을 맡고 있는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공론화위가 지난달 27일 원전 중단 여부는 공론조사를 통해서가 아닌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명분을 만들기 위한 위원회 구성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바른정당 역시 신고리 원전 중단은 국회서 먼저 논의돼야 하는 것이 맞다며 공론화위 활동을 부정적으로 봤다. 야권의 공세가 계속되자 민주당은 지난 1일 탈원전 정책에 대한 야당과 일부 언론의 문제제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기자간담회서 “2022년 이후 원전 설비 감소로 10GW(기가와트) 설비 확충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향후 15년 동안 신재생 에너지과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 건설로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다”며 “(항간의) 전력 대란이나 블랙아웃을 우려하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서도 “탈원전 정책이 오해를 사고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키도 했다. 

막연한 과제
매서운 공세

내각을 모두 마친 문재인정부는 대북·외교, 정부주도 성장, 부동산 대책, 탈원전 등에 있어서 시험대에 올랐다. 다만,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 야권은 더욱 공세 수위를 높일 수밖에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재인정부의 행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나라의 진로와 미래를 급격하게 변경하는 정책을 결정할 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정책 효과를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정책 과제가 성과를 내고 국민들이 체감하기 위해선 막연하게 100대 과제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하기 보다는 정교하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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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