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주사파 전성시대 막전막후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5.15 10:10:35
  • 호수 1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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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띠 매고 대거 청와대로?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서 ‘송민순 회고록’ ‘주적’ 발언 등을 통해 불안한 안보‧대북관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취임 초기 ‘주사파’ 출신 인사를 청와대 핵심 인사로 등용해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첫날인 지난 10일, 1기 내각을 발표했다. 국무총리로 이낙연 전남도지사를 등용했고, 비서실장으로는 임종석 전 의원을 발탁했다. 국정원장과 경호실장에는 각각 서훈 전 국정원 3차장과 주영훈 전 경호실 안전본부장이 내정됐다.

국보법 위반
전대협 출신

청와대는 임종석 비서실장(이하 실장)을 내정하면서 “여야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정치권 인맥을 갖고 있어 청와대와 국회 사이의 대화와 소통의 중심 역할이 기대된다”며 “합리적 개혁주의자로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결정과정을 중시해 청와대 문화를 ‘대화와 토론, 격의 없는 소통’으로 이끌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원 시절 통일외교통상위서만 6년간 활동해 외교 분야에도 전문성이 있다”며 “외교적으로 어려운 상황서 외교안보실장과 호흡을 맞춰 대외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기대감과 달리 정치권에선 임 실장 임용을 두고 우려를 표명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0일 논평을 내고 임 실장 인선을 겨냥해 “권력의 핵심인 비서실장이란 중책을 주사파 출신이자 개성공단 추진자에게 맡기는 것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깊다”며 “국민적 통합을 위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실장은 인선 발표 이후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서 “(문 대통령에게) 격의 없이 토론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신임 비서실장으로서 의지를 다졌다. 자유한국당이 본인을 ‘주사파’라고 비난한 데 대해서는 “한국당과 더 소통하도록 노력하겠다”며 “국회·야당과 잘 소통할 테니 지켜봐달라”고 짧게 답했다.

임 실장 논란의 핵심은 '주사파'다. 주사파는 1980년대 중반 운동권 학생 일파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과 행동지침으로 내세운 주체사상파의 줄임말이다. 특히 민족해방을 강조해 ‘NL파’라고도 불렸다. 이들은 제5공화국 정부를 타도하는 데 앞장서 당시 대학생들로부터 호응을 받아 크게 확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1기 인선 발표…깜짝 등용 술렁
청 누비는 ‘임길동’ 전과도 OK?

임 실장이 주사파 논란에 서게 된 이유는 과거 이력 때문이다. 1989년 한양대 재학시절 임 실장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연합회(이하 전대협) 의장을 맡아 노태우정부에 대한 학생 시위를 주도했다. 같은 해 임수경 방북 프로젝트인 ‘평양 축전참가’를 진두지휘했다. 당시 노태우정부는 평양축전 참가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전대협은 극비리에 임수경을 제3국을 통해 북한으로 파견했다.

당시 임 실장은 ‘임길동’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학생운동으로 지명수배된 상황서 공권력을 따돌리고 신출귀몰한 행적으로 전국을 누볐기 때문이다. 도피생활을 이어가면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기자회견을 발표하는 등 경찰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후 임 실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3년6개월을 복역했다.


임 실장은 2000년 정치권에 데뷔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에 따라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같은 해 임 실장은 16대 총선서 서울 성동구에 입후보해 한나라당의 4선 의원이던 이세기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당당히 국회에 입성했다. 17대 총선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18대 총선에선 낙선했다.

이후 지난 2014년 지방선거서 박원순 캠프에 합류하면서 ‘박원순의 남자’가 됐다. 그는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돼 2015년까지 재직했다. 임 실장은 지난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재차 국회 입성을 꿈꿨지만 공천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내각 급물살
그들의 득세

임 실장의 청와대 등용으로 주사파 출신인 임수경 전 의원의 정치 재개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12년 임 실장은 임 전 의원의 정치 입문에 도움을 줬다. 당시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을 지낸 임 실장은 “임수경을 영입하기를 희망한다”고 강력히 당 지도부에 호소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 두고 전대협 의장단 출신 486그룹의 임 전 의원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도 “임수경씨가 방북했는데 이후 삶의 굴곡이 심한 것을 보고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이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임 전 의원은 19대 총선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선 당내 공천과정서 컷오프 돼 부침을 겪었다. 당시 임 실장은 자신의 SNS에 “그래 수경아, 너무 안타까워하지 않을게. 수고했어”라며 “많이 아프고, 많이 자존심 상할 텐데 담담하게 넘겨줘서 고맙고 아프다. 좀 쉬었다가 나랑 같이 다시 통일운동하자”고 전했다. 임 실장의 임 전 의원에 대한 부채의식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임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탈북자에게 막말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탈북 대학생 백씨에 따르면 임 전 의원이 종로 인근 식당서 백씨에게 “근본도 없는 탈북자 XX들아, 대한민국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아. 개념 없는 탈북자 XX들이 어디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기는 거야. 변절자 XX들아”라며 폭언을 쏟은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임 전 의원은 이 외에도 “너 그 하태경하고 북한인권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짓 하고 있다지. 하태경 그 변절자 XX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라고 말하는 등 동료 의원인 하태경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처럼 임 전 의원은 임 실장과 함께 대표적인 주사파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보수진영에선 문 대통령의 불안한 안보관과 연관해 주사파의 득세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임 실장을 필두로 주사파 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입각에 성공한다면 보수진영의 반발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청와대 인사가 대탕평 기조를 이룬 것은 맞지만 굳이 주사파 출신을 청와대 2인자로 앉힘으로써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가고
종북이 온다

임 실장과 마찬가지로 운동권 출신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송영길 의원의 입각 가능성도 점쳐진다. 민주당은 오는 16일 새 원내대표 선출이 있기 때문에 우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직서 물러날 예정이다. 몸이 가벼워진 우 원내대표는 최근 통일부장관으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그는 19대 국회서 외교통일위원회 상임위 소속으로 활동했다. 평소에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우 원내대표가 입각에 성공할 경우 임 실장과 함께 운동권 인사라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우 원내대표는 1987년 연세대 총학생 회장으로 대규모 시위를 이끌면서 전대협 부의장을 맡은 경력이 있다. 1995년에는 ‘8월 부여 간첩사건’에도 연루된 바 있다.

당시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남파간첩 김동식, 박광남은 한국으로 침투한 뒤 이인영 당시 전대협 동우회장, 우상호 당시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등을 만나 “함께 통일운동을 하자”며 포섭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우 원내대표는 검찰에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해 신고할 가치를 못 느꼈다”고 주장해 기소를 면했다.

우 원내대표는 임 실장과 같은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 이외에 정치적 입문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나란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젊은 피’로 영입했던 인사들이다. 외교부장관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민주당 송영길 의원도 운동권 출신이다.

송 의원은 1984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부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인천광역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여권 내 ‘중국통’으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 11월23일 북측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송 의원은 망언으로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연평도를 찾은 자리서 북한군의 포격으로 불에 탄 소주병을 들고 “이거 진짜 폭탄주네”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운동권 출신 우상호·송영길 선봉
불안한 보수진영…마찰 심해질 듯

흥미로운 것은 입각에 성공한 임 실장을 비롯해 입각을 노리는 우 원내대표와 송 의원 세 사람이 함께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는 점이다. 2009년 12월 국회에선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논란이 일었다. 2004년 설립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은 2005년부터 북한 당국의 저작권 자료에 대한 저작권료를 걷어 북한에 보내는 단체였다.

해당 단체는 북한 작가의 소설이나 역사서 등을 출판하던 국내 소형 출판사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해 합의금을 받고 북한 당국에 전달했다. 이 단체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북한에 준 저작권료는 67만6525달러(한화 8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은 임 실장이었다. 부이사장은 송 의원과 우 원내대표가 각각 맡았다. 상임고문은 이미경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이 맡았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통일부는 “해당 단체의 사업 파트너인 북 저작권 사무국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고, 저작권료가 저작권자에게 전달됐는지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밝혀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은 저작권료라며 국내 소형 출판사로부터 받은 돈 가운데 1억2700만원을 북한에 전달하지 않고 보관했다. 정부로부터 지적을 받은 뒤 법원에 공탁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문재인정부서 하마평에 오르는 해당 인물들이 과거에 북한과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수진영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 진영
친북 우려↑

자유한국당 중앙선대위원장을 맡아 이번 선거를 이끌었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인선은 대통령 재량이므로 일단은 존중한다”면서도 “친북적인 생각에 전과도 있는 인물을 핵심 요직에 앉히는 배경이 무엇인지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미친북 성향을 드러낸 문 대통령의 그동안 발언을 우려했던 사람들이 이미 많지 않으냐”며 “이런 경향을 강화하는 인선이 계속되면 국민의 걱정이 현실적 저항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주사파란?

주사파는 대한민국 민족해방 계열의 하나로 북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지지하고 그에 따른 정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사파는 80년대 중반 통일을 지향해 당시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제5공화국 정부를 타도하는 데 앞장섰다.

지나친 북한 노선에 치중해 우리나라가 반봉건사회고 미국의 식민지라고 주장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다. 특히 1986년 10월 건국대학교서 무리하게 애학투련을 결성하려다가 대규모 공권력의 투입으로 인해 조직이 타격을 받았다.

1987년 이후에는 반정부 투쟁으로 이어졌고, 주사파 세력은 운동권 전면에 나서 서울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등 학생단체를 주도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통일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면서 1989년 7월 평양서 개최된 한민족 축전에 전대협 대표를 파견해 주목을 받았다. 문민정부 이후에는 학생운동이 퇴조해 주사파의 활동은 위축됐다.

1995년 박홍 서강대 총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주사파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키자 잠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다만, 공산주의의 퇴조, 김일성의 사망, 학생운동 위축으로 주사파 세력은 미미해졌다는 평가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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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