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문재인 기막힌 평행이론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4.10 13:28:29
  • 호수 1109호
  • 댓글 0개

1997 ‘창’ 보면 2017 ‘문’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승승장구하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암초에 직면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치고 나오면서 믿었던 대세론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아들 특혜 채용 의혹은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선 문 후보가 과거 대세론을 구가하다 아들 병역 의혹으로 대권 꿈을 놓친 신한국당 이회창 전 총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20여년 전 지금의 문 후보와 유사한 길을 이미 걸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신한국당 이회장 전 총재다. 이 전 총재는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낸 정치거물로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대선주자였다. 1997년 당시 정가는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이 전 총재가 순탄히 대권을 쟁취할 것으로 내다봤다.

“똑같다”

하지만 이 전 총재는 DJP(고 김대중 전 대통령·김종필 전 국무총리)연합, 이인제 출마, 아들 병역기피 의혹이 겹치면서 고배를 마셨다. 특히 아들 병역 의혹은 ‘대쪽’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전 총재의 도덕성에 치명적 상처를 남겼다.

1997년 11월24일 <한겨레>에선 15대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97년 대선 여론조사 지지율에 영향 준 사건들’을 정리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2.6%가 지지후보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병역문제 의혹을 꼽았다. 그 다음으로 ‘김대중 비자금설’ 10.8%, 'DJP연합‘ 6.8%, ’이인제 경선 불복 탈당‘ 등이 뒤를 이었다. 


당시 이 전 총재는 정치권의 아들 병역 특혜 의혹 공세에 ‘거짓말’ ‘정치적 공세’라며 맞섰지만 국민들의 표심은 이 전 총재에게 등을 돌린 뒤였다. 아들 병역 의혹이 이 전 총재의 발목을 잡았다면 문 후보에게는 아들 취업특혜 의혹이 있다.

해당 특혜 의혹은 2007년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던 이래 10년째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의혹의 큰 그림은 당시 한국고용정보원장이었던 권재철 전 청와대 노동비서관과 문 후보간의 ‘특수관계’에 따른 권력형 비리라는 것이다.

권 전 비서관은 문 후보가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을 지냈던 2003년 7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근무했다.

아들 군대 의혹 승승장구하다 삐걱
역대 대통령후보 스캔들 1위 꼽혀

특혜 쟁점은 ‘채용공고 미준수’ ‘필적 가필’ ‘응시서류 제출일’ 등이다. 이에 문 후보는 “(의혹이 있었다면) 이명박·박근혜정부서 가만히 뒀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서 및 증거를 가지고 의혹을 제기하는 정치권의 지적에 문 후보의 해명은 궁색하다는 평가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세우는 문 후보가 일종의 적폐라고 볼 수 있는 취업특혜 의혹에 대해 당당한 해명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정치권의 의구심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문 후보에게 “아들 취업특혜 의혹을 해명하라”며 “해명하지 않고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회창 후보가 아들 병역비리를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대선서 두 번 실패했다”며 “국민은 실수는 용서하지만 거짓말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대선일이 가까워질수록 의혹을 제기하는 측과 문 후보 측간 진실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유의미한 현상은 해당 의혹이 불거지는 동안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이회창 전 총재가 아들 병역 의혹으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지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덜미를 잡힌 패턴과 유사하다. 문재인 이회창 두 사람의 유사점은 아들 의혹과 더불어 ‘대세론’으로 이어진다. 이 전 총재는 1997년 대선서 패배한 뒤 대세론을 이어가며 2002년 대선을 준비했다.

당시 대선을 1년여 남긴 시점인 2001년 12월 <월간말>은 ‘이회창의 대선가도 아킬레스건 9가지’를 실었다. 9가지 중 한 가지인 ‘이회창 비토세력들의 이합집산’은 이 전 총재의 대선행을 가로막는 주요 변수로 봤다. ‘대세론’이 커질수록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비토론’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또한 ‘반이회창 전선’이라는 공통분모에 동의하는 세력들이 많아 어떠한 형태로든 ‘이회창 전선’을 압박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회창 대세론을 견제하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준 전 의원은 막판 단일화를 이뤘다. 정 전 의원이 대선 전날 단일화를 철회하긴 했지만 민심은 노 전 대통령으로 결집됐다. 결국 이 전 총재는 대선 재수서 다시 한 번 낙방했다.

오는 19대 대선에선 문 후보가 대세론을 이루는 가운데 군소주자들의 ‘이합집산’ ‘합종연횡’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문 후보 입장서 우려스러운 부분은 ‘문재인 비토론’ 확산이다. 이러한 바람은 60대 이상 지지율서부터 이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60대 이상 지지율서 안 후보는 문 후보의 지지율을 앞질렀다. 앞서 전 세대서 고른 지지를 받았던 문 후보의 지지율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셈이다. 이에 문 후보 측은 발끈하고 나섰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의 후보 단일화라는 실현 가능성 없는 가정을 전제로 한 여론조사는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사가 조사하는 양자대결 구도 자체가 이번에 처음 실시한 것도 아니고 의도를 갖고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문 후보 측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기 봉착한 대세론
점점 커지는 비토론
"적폐가 적폐청산?"

일단 문 후보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안 후보는 “정치공학적 연대는 시대정신에 어긋난다”며 연대에 선을 그었다. 흥미로운 점은 안 후보가 ‘자강론’을 외치고 있음에도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선 보수진영 후보의 몰락으로 자연스럽게 보수지지층이 안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만약 안 후보가 먼저 나서 보수진영과 연대를 주장했다면 집토끼(호남)를 놓쳤을 것이라 평가한다. 하지만 안 후보가 자강론을 외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문 후보만은 안 된다’는 보수진영이 차악인 안 후보에게 결집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세론’에 대한 국민적 피로도도 상당히 누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이 전 총재의 경우도 첫 번째 대선서 낙방한 이후 줄곧 ‘대세론’을 지켜왔지만 동시에 피로도 누적과 경쟁자들의 집중포화로 지지율 하락을 면치 못했다.


정치권에선 문 후보가 콘크리트 지지율을 바탕으로 1등을 달리고 있지만 확장성은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분석은 민주당 경선 이후 지표로 나타났다. 문 후보는 민주당 경선서 대선후보로 선출됐지만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지지층의 표를 흡수하지 못했다.

같은 기간 국민의당 안 후보는 한 자릿수에 머물던 지지율을 끌어올려 가상 양자대결서 문 후보를 앞질렀다. 일각서 문 후보가 과거 이 전 총재와 마찬가지로 대세론에 취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전 총재는 대세론으로 인해 당내 반대세력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못했다. 그 결과 시시각각 변하는 대선판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악수를 뒀다. 문 후보의 경우도 ‘친문패권주의’라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당내 반대세력을 포용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결과 쓴소리를 하는 인사들은 당을 떠났고 문 후보 곁에는 ‘호위무사’들만 남아 당내 건전한 비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누가 적폐?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은 지난 5일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국정 리더십 위기의 근본은 패권주의서 비롯됐다”며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한 친문 패권세력은 친박 패권세력과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문 후보는 입만 열면 적폐청산을 한다면서 진영논리로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며 “친문 패권세력이 추구하는 정치는 분열의 정치인데 과연 국민이 청산 대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