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드러난’ 롯데 재판 시나리오

‘노발대발’ 96세 왕회장이 총대 메나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롯데 일가의 법정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지난 20일 벌어진 공판서 한 가지 특이점이 발생했다. 롯데 오너 일가의 대부분의 구성원이 혐의 내용을 대부분 부인하면서 신격호 회장에게 의혹을 떠넘기는 모습이다. 나름의 치열한 전략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날의 법정 안 모습을 정리했다.

지난 20일 롯데그룹 오너 일가는 자신을 둘러싼 비리 혐의를 소명하기 위해 법원에 모였다. 법원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법정으로 향했다. 법원 앞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별다른 말없이 재판에 참석했다.

줄줄이 법정행
어리둥절 신격호 

롯데그룹 관련 비리 재판은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312호서 진행됐다. 비리에 연루된 오너 일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그의 세 번째 부인 서미경씨가 오후 1시33분쯤 모습을 드러냈다.

신 총괄회장은 건강이 우려되는 모습으로 등장해 휠체어를 이용해 법정으로 향했다. 서씨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비교적 당당한 모습이었다. 서씨는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한 채 법정으로 향했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서 서씨가 ‘캐스팅보트’로 떠오르자 여론은 그에게 높은 관심을 보였다.

딸인 신유미씨와 함께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을 6.8% 보유한 것이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기 때문이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 지분을 93.8% 가지고 있어 지배구조상 정점에 있는 회사로 꼽힌다. 모녀의 보유지분은 롯데 오너 일가 중 가장 많은 규모다. 따라서 그가 향후 롯데 일가의 경영권 분쟁서 ‘키맨’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미스롯데 출신인 그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36년 만이다. 서씨는 18세이던 1977년 제1회 미스 롯데로 선발돼 하이틴 영화에 출연하는 등 연예계서 활동하다가 1980년대 초 돌연 종적을 감췄다. 1983년 신 총괄회장과 사이에 딸 유미씨를 낳았고,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채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신동주 롯데그룹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수행원들과 1시47분에 포토라인에 섰다. 그는 관련 혐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짧은 소감만 밝힌 후 법정으로 떠났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1시47분께 등장, 취재진의 질문에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은 채 법정으로 향했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구속 수감돼 다른 경로로 법정에 참석했다.

이날은 롯데 신 회장 3부자가 500여일 만에 한 자리에 모인 자리였다. 그동안 ‘형제의 난’으로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벌인 터라 서먹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마지막으로 모인 자리는 지난 2015년 11월3일 신 총괄회장의 생일 때였다.

당시 신 총괄회장의 집무실인 소공동 롯데호텔 신관 34층에 모인 3부자는 어색한 조우를 했다. 당시에도 ‘형제의 난’으로 형제 간 우애에 금이 간 상황이었다.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과 함께 했던 시간은 30~40분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짧았다.

지난해 신 총괄회장의 생일에는 신 전 부회장만 참석해 3부자간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던 터라 이번 만남까지는 500일이 걸렸다.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뿐이었다. 이날 법정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이들 3부자는 각자 롯데그룹 관련된 비리 혐의를 안고 있다. 신 회장은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을 서씨 일가 등에게 몰아주는 등 총 774억원의 손해를 회사에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혐의 가지가지
형제의 운명은?
 

신 총괄회장은 858억원의 탈세, 508억원 횡령, 872억원 배임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차명으로 소유한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3%를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증여하고, 1.6%를 서미경씨 증여하면서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매매로 가장하는 수법으로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 전 부회장은 10년간 한국 롯데 계열사 여러 곳에 별다른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별다른 활동없이 391억원 상당의 급여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재판정의 모습은 ‘아수라장’이었다. 롯데그룹 내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방청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법정은 치매 증상을 보인 신 총괄회장이 일본어로 고성을 지르면서 상황은 극에 달했다. 재판 시작 20분 후에 입장한 신 총괄회장은 법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재판부를 향해 “니 누고” “와 이라노”라는 말을 반복했다. 재판을 그대로 진행하자 신 총괄회장은 일본어로 “롯데는 100% 내 회산데 누가 기소했냐, 책임자 불러와라”고 큰 목소리로 재판정을 혼란케 했다. 20여분 동안 고성이 이어지자 재판부는 정상적인 재판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신 총괄회장을 퇴정조치했다.

지팡이를 내던지며 횡설수설하는 신 총괄회장의 모습을 보며 피고인석의 신 회장과 신 이사장, 서씨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러나 오너 일가는 혐의를 가리는 과정서 자신에게 덧씌워진 내용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모습이었다. 한 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은 롯데 오너 일가의 모든 인사가 자신의 비리 의혹을 신 총괄회장에 떠넘기는 모습이었다.
 

신 회장 변호인은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에게도 월급 통장을 주지 않고 급여만 지급했다”며 “명색이 회장인데 월급 통장도 주지 않을 정도로 부자 관계가 그렇다(폐쇄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신 총괄회장이 신 전 부회장과 서씨 모녀에게 부당 급여를 지급하고 서씨 모녀와 신 이사장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독점 운영권을 넘겨줄 때도 신 회장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이 수도권은 미경이네, 지방은 유미네 주라고 직접 지시했고 자필로 메모지에 주주 명단을 하나씩 정해주기도 했다”고 했다. 가계도까지 슬라이드로 띄우며 신 총괄회장이 가족들의 이권을 직접 챙겼음을 주장했다.

신 회장 측이 신 총괄회장의 지시받고 실행한 인물로 지목한 채정병 전 롯데카드 대표 측 변호인 역시 “신 총괄회장은 채 전 대표에게 매점을 임대하라고 지시하면서 적정 임대료로 제대로 받으라고 했다”며 “채 전 대표는 적법하게 임대료를 정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서씨 측도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신 총괄회장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서씨는 롯데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돌연 일본으로 사라져 많은 추측을 낳은 가운데 이번 재판에 참여해 그의 입에 시선이 쏠렸다. 그가 한국에 돌아온 것은 경영비리 의혹을 둘러싼 롯데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된 지난해 6월 일본으로 출국한지 9개월 만이다.


일본행을 택한 서씨는 이후 검찰의 거듭된 소환 요구에도 응하지 않다가 20일 열린 첫 공판기일에 맞춰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씨는 그동안 신 총괄회장과의 사이에 낳은 외동딸 유미씨의 도쿄 자택과 도쿄 인근 별장 등을 오가며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검찰의 재산 몰수 압박에도 귀국하지 않던 서씨가 첫 공판기일에 맞춰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그의 주장에 눈길이 쏠렸다. 그가 내세운 전략 역시 신 회장과 마찬가지로 신 총괄회장에 혐의 떠넘기기였다.

서씨 측 변호인은 “서씨에게 배임의 의도가 있거나 그런 행위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배임 혐의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런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서씨는 ‘수익성 있는 새로운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고 (신 총괄회장에게) 말했을 뿐이며 (사업권을 받는 과정서) 관여한 사실이 일체 없다”며 “영화관의 매점 사업은 임대해선 안 되고 반드시 회사가 직영해야 한다는 검찰의 전제도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장녀인 신영자 전 이사장도 아버지 신 총괄회장에게 혐의를 넘겼다. 신 전 이사장 변호인은 “영화관 매점 임대는 시작부터 유지 관리까지 신 총괄회장의 의사에 따라 이뤄져 신 전 이사장은 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경영권 다툼
각자 셈법은?
 


롯데가의 오너 일가들이 자신의 혐의를 신 총괄회장에 떠넘기자 치열한 법리적인 고민이 있었던 거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신 총괄회장이 건강상태 문제로 형 집행이 사실상 어려운 만큼 신 총괄회장이 모든 죄를 안고 가는 형식을 취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신 총괄회장의 나이는 올해 96세다. 건강도 최근 급격히 악화돼 수차례 병원 입원을 했으며, 인지능력에도 이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지난해 롯데수사 당시 신 총괄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자택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따라서 신 총괄회장이 징역형을 받더라도 형 집행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으로 판단되고 있다. 롯데 총수 일가의 혐의를 신 총괄회장이 안고 가는 형식이 될 경우 징역형에 대한 부분은 대부분 피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신 총괄회장 자신은 건강을 이유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논리를 펴고 있는 상황이다. 신 총괄 회장의 변호인은 “구체적인 경영 일선서 물러난지 오랜 피고인에게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시 사항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정책본부의 구체적인 판단과 업무 집행 과정서 계열사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신 전 부회장은 법정에서는 아버지 신 총괄회장과 보폭을 맞추는 모습이었지만 법정밖에서는 신 총괄회장의 주식을 압류하는 등 아버지의 건강상태를 최대한 이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법정서 신 전 부회장의 변호도 동시에 맡은 신 총괄회장 측 변호인은 “한국과 일본의 그룹 경영 전반에 관여한 신 전 부회장이 그에 상응한 보수를 지급받는 건 당연하고 적법한 일”이라며 “이 사건의 수사 과정서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은 법정 밖에선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를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최근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의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주식 지분에 대해 압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에 아버지의 악화된 건강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각서 제기됐다. 신 전 부회장은 이같은 비판이 제기되자 “아버지(신 총괄회장)의 상장주식에 대해 현재 강제집행할 의사가 없다”고 해명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이날 배포한 입장자료를 통해 “신 회장은 자신의 주식재산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주식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롯데 총수 일가는 신 총괄회장의 건강을 둘러싸고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신 총괄회장이 롯데를 둘러싼 모든 비리 혐의를 안고 가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서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합심한 분위기
법원의 판단은?
 

법정서 자신의 혐의를 소명한 이들은 재판이 끝난 뒤 각기 법원 청사를 빠져나갔다. 이들 오너 일가가 이번에 진행되는 혐의와 관련돼 다시 한 자리에 모두 모이는 일은 없다. 그러나 한국 기업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재벌 총수 일가의 법정공방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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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미묘한 시기에 사정기관의 칼끝이 문재인정부를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관에 대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행보를 달리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기’ 상황에 놓여있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탄핵안 인용으로 파면됐고 새 대통령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 이후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정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는 이른바 ‘반쪽짜리 정부’ 상태에 있는 셈이다. 새 정부 앞두고…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와 180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보고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형태로 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 정부는 여느 정부보다 ‘전 정부 지우기’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서 새로운 정책을 펴거나 기존 정책을 발전시키는 행보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정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라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특히 유력 후보와 관련한 사건은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칫하다가는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 이번 대선은 선거 기간이 짧아 국민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작은 사건이 대선에 나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검찰과 감사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전 대통령이 표적이 됐다. 이전부터 해온 수사와 조사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하기엔 시기가 미묘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21년 12월 시민단체 고발 이후 3년5개월여 만이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모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등을 수사해 왔다. 서씨가 취업했던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도 뇌물공여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전 대통령의 딸인 다혜씨와 서씨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다혜씨, 서씨와 공모해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이스타항공의 해외법인 격인 타이이스타젯에 서씨를 임원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서씨는 2018년 8월 취업 이후 2020년 3월까지 타이이스타젯에서 급여로 약 1억5000만원, 주거비 명목으로 6500만원을 받았다. 집값 통계 조작 결과 발표 청와대 외압 정황도 나와 검찰은 서씨의 취업으로 문 전 대통령이 그간 다혜씨 부부에게 주던 생활비 지원을 중단한 점을 들어 문 전 대통령이 이 금액만큼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판단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의원은 “터무니없고 황당한 기소”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보복성 기소”라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다. 그는 “법정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검찰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행사되고 남용되고 있는지 밝히는 계기로 삼겠다”며 “수사권 남용 등 검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 고소하는 것은 물론, 검찰을 개혁하는 기회로 여기겠다”는 발언도 내놨다. 검찰 기소에 앞서 감사원도 문정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놨다. 문정부 임기 동안 부동산 등 국가 통계를 광범위하게 조작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가 통계 작성 기관 등에 압박을 가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지난달 17일 감사원은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주택통계), 가계동향 조사(소득통계), 경제활동인구 조사(고용통계) 등을 감사한 자료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11명)·국토교통부(7명)·한국부동산원(7명)·통계청(6명) 등 총 31명에 대해 징계 요구(14명)·인사자료 통보(17명) 등 엄중 조치하는 한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통계청 등에 통계의 정확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제도개선 통보 및 주의 요구를 처분했다. 검찰 기소 왜 지금? 감사원은 2023년 9월 대통령비서실·국토부·통계청·한국부동산원(이하 부동산원) 소속 22명 가운데 일부 주요 관련자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당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및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부는 주택 가격에 대해 부동산원에 ‘통계 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사전 제공하도록 지시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결과를 임의로 수정하고 통계 개선 명목으로 표본 가격을 조작하는 등 통계 왜곡을 은폐했다. 이렇게 집값 관련 통계 수치를 조작한 사례는 감사원 확인 결과 102건에 달했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외압은 2018년 1월 서울 양천, 성남 분당의 주택 매매 가격 주간 변동률 왜곡 등에 처음 시작됐고, 2018년 하반기 부동산시장이 요동치자, 객관적 근거도 없이 특정 지역 개발계획 철회 등 정부 발표 내용이 시장 안정에 효과를 준 것처럼 통계에 반영토록 요구했다. 감사원은 “국회·언론은 국정감사 등에서 주택 가격 동향 조사 변동률 등이 시장 상황 및 민간 통계 등과 다르다며 통계의 정확성·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으나 개별 표본 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표본 가격이 시장가격과 격차가 벌어진 사실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정부가 핵심 정책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문정부는 출범 때부터 ‘소득 주도 성장’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도 정부 주도로 진행했다. 문제는 그 효과를 정부 차원에서 왜곡했다는 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각각 2·3·4분기 가계소득을 가집계한 결과 전년 대비 감소로 확인되자, 정당한 절차 없이 표본 설계에 없는 가중값을 임의로 적용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켰다. 부동산·고용 다 건드렸다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마사지’가 들어갔다. 청와대는 2018년 1분기 소득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5.95)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에 개인정보 등이 포함된 통계자료를 사전 제공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했다. 또 한 노동연구원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별 근로소득 불평등 개선’으로 보고·발표하도록 지시했다. 통계청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통계자료 제공 관련 보도 설명 자료 등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발표했다. 감사원 결과가 나온 이후 정치권은 들끓었다. 국민의힘은 ‘국기 문란 범죄’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라고 맞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 모든 실패를 통계 조작으로 감추고 국민의 고통 위에 거짓의 탑만 쌓아 올렸다. 거짓의 탑이 무너지려고 하자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했다”며 “한술 더 떠서 이재명은 감사원을 민주당 자신들이 장악한 국회 아래로 이관해 손아귀에 틀어쥐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표본도, 지수 작성 방식도, 자료 수집 방식도 다른 통계를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이미 전 정권이 돼버린 윤석열정권의 잔당들이 전 정권(문재인정부)의 숨통을 기어이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부른 희대의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한 시기도 지적했다. 한 최고위원은 “윤석열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착수한 감사를 새 정부 수립을 불과 47일 앞둔 때에 마무리한 저의가 대체 무엇인가”라며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저열한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이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북한 GP 파괴 두고도 수사 요청 민주 “해체 준하는 개혁” 반발 감사원은 지난달 24일에도 문정부 당시 군 인사 6명을 수사해달라 요청했다. 이들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북한이 파괴한 북한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대한 우리 측의 불능화 검증을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경두·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이 수사 요청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018년 체결한 9·19 군사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GP 10개씩을 파괴하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시킨 뒤 상호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당시 군 당국은 북한군 GP 1개당 총 7명씩 총 77명으로 검증단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한 뒤 북한군 GP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북한군 GP 지하시설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우리 군 당국이 이 부분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전직 군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지난해 1월 이 내용을 포함한 북한군 GP 불능화 검증 부실 의혹에 대한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그 결과가 이번 감사원의 수사 요청인 셈이다.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와 감사원의 연이은 문정부 ‘공격’에 민주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검찰과 감사원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며 ‘신 관권선거’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5일 국회 소통관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감사원이 북한의 GP 파괴 관련 결과를 내놓은 이후다. 조 수석대변인은 “권력기관이 이제 대통령선거에까지 사실상 개입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마지막까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졸개이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내란 세력이 벌이는 최후의 저항을 국민과 함께 막아내고 내란 세력을 철저히 뿌리 뽑아 국민 주권을 돌려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대세 영향 미칠까? 앞서 민주당은 집값 등 통계 조작 관련 감사원 발표 이후 ‘해체에 준하는 개혁 대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 전 정권 탄압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서 나온 발언이다. 민주당은 “독립 기관이라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 채 내란 옹호 기관이라는 오명을 안은 감사원에 닥칠 결말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문정부 표적 감사, 윤정부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해 최 원장은 직무에 복귀했으나 감사원장이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