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대선주자 검증> ②정치입문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3.27 09:57:53
  • 호수 1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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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vs 흙수저…과연 용수저는?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대선 정국의 막이 올랐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궐위 후 60일 이내 대선 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오는 5월9일을 19대 대선일로 공표했다. 대선일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 <일요시사>는 숨 가쁘게 흘러갈 대선 정국서 후보 검증을 갖는 시간을 준비했다. 그 두 번째 항목은 유력 대선주자들의 정치입문이다.

연일 강공 발언을 쏟아내며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한창인 대선주자들의 정치 초년병 시절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선주자 중 누군가는 금수저로, 누군가는 흙수저로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한 링에서 오직 대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문재인]
노무현 그림자

문 의원은 대학시절 유신반대 투쟁에 앞장섰다 구류에 처했다. 이듬해에는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사법고시 합격통지서를 유치장에서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학생운동 전력으로 인해 판사 임용에 실패했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서 당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의 길에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당시 청와대에 들어갈 때 노 전 대통령에게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 ‘정치하라고 하지 말아 달라’는 두 가지 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돌연 사퇴하고 아내와 함께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떠났다. 히말라야 체류 중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들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탄핵 대리인을 맡아 활동했다. 이후 청와대에 재입성해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재단법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이후 19대 총선,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발을 내디뎠다. 그는 2012년 당시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대선주자로 발돋움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자대결구도를 만들었다.

당시 대선에서는 100만표 차이로 낙선했다. 이후 5년이 흐른 현재 30% 이상의 고공 지지율 행진을 이어가며 ‘문재인 대세론’을 이어나가고 있다.

[안희정]
김덕룡 비서부터

학창시절 학생운동을 위해 자퇴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검정고시 합격 후 1983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4학년때 고려대 내의 운동권 서클 14개를 통합해 애국학생회를 조직했다. 1988년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안기부에 체포돼 10개월 동안 수감됐다. 전과 기록은 취업을 하려던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당시 안 지사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학교 2년 선배 김영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1989년 1월, 안 지사에게 국회의원 비서 자리를 소개해줬다. 안 지사는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실장직을 수행했던 김덕룡 의원의 의원실로 출근했다. 하지만 이듬해 3당 합당이 이뤄지면서 안 지사는 김영삼 총재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꼬마민주당(통일민주당)’서 당직자 생활을 이어나갔다. 1991년에는 사직서를 내고 창원 노동복지회관을 짓는 공사장서 2달간 건설 일용직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1992년 정계를 떠난 뒤 그는 출판사 영업부장으로 일하면서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복학해 학업을 마쳤다.

이후 14대 총선서 낙선한 노 전 대통령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2002년 대선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캠프의 행정팀장, 정무팀장을 맡으면서 참여정부 출범에 공신역할을 했다.


문, 참여정부 황태자…초선부터 잠룡으로
보좌진 출신 안희정, 한때 부침 겪다 성장

하지만 불법대선자금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하면서 그는 부침을 겪었다. 참여정부의 출범에는 일조했지만 공직은 사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안 지사에 대해 “나 대신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다 했다”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안 지사는 2008년 7월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되면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2010년 지방선거서 충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충남 역사상 최초의 민주당 출신 도지사였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서 당시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대선주자로 발돋움했다. 정치권은 굴곡의 시간을 보낸 안 지사가 ‘대망’의 꿈을 이룰지 주목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님 파워

경북 안동 출신의 이재명 성남시장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1976년 성남으로 이사 온 그는 불과 14세의 나이에 상대원 공장의 목걸이 공장에 취업했다. 그는 저서에서 “납과 염산에 얼굴을 묻고 살았다. 납 같은 게 몸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이 시장은 산업재해로 장애 6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공장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한 뒤 사법고시까지 패스했다. 그는 판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이 시장은 저서에서 “주변 동료들에게 인권변호사를 하겠다고 너무 설레발을 쳐놓았던 터라 성적을 떠나 판사도 검사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성남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경기도 이천시와 광주시에서 노동상담소장으로 활동했다. 1994년에는 성남참여연대를 결성했고, 2000년에는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2004년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그는 청원운동을 벌이다 시의회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정치판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은 지 14년 만의 일이다. 성남서 2번의 낙선을 경험한 그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51%의 지지율을 얻고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시장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지방정부 최초로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해 3년 만에 4500억여원의 빚을 갚았다. 청사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무상급식과 ‘기본소득’의 일종인 청년배당을 시행했다.

그의 활동에 성남시의 마음도 움직였다. 지난 2014년 재선에 도전한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해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탄핵정국서 다른 대선 후보와 다르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주목받았다. 또한 선명성을 드러내면서 한때 대선주자 지지율 2위를 꿰차기도 했다. 현재는 지지율 정체 국면인 가운데 당내 경선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안철수]
지난 대선 때 데뷔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부산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는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박사과정을 밟던 중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제작자로 7년여간 이중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안철수연구소(현 안랩)’를 세워 개인에는 백신을 무료로 보급하고, 기업에는 사용료를 받는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했다. 이후 안철수연구소에서 물러난 안 전 대표는 MB(이명박)정권 시절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정치권에 ‘안풍’이 분 것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때였다. 당시 안 전 대표는 지지율 50%가 넘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출마를 망설이던 그는 결국 박원순 변호사에게 자리를 양보했고, 박 변호사는 서울시장에 올랐다.

이듬해 제18대 대선부터 안 전 대표는 대선주자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2012년 9월19일 안 전 대표는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안 전 대표는 박 전 대통령과의 가상 양자대결서 박 전 대통령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대선주자였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과정서 여러 가지 마찰을 빚으면서 2012년 11월23일에 돌연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듬해 노원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서 60.5%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안 전 대표는 본격적으로 ‘자기 정치’를 시작했다.

안철수, 사업가서 정치인으로
유승민, 좋은 집안서 잘 자라


이후 친문(친 문재인)패권주의에 반기를 들고 나온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창당 직후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서 의석 38을 가져오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대선 풍향계’로 통하는 호남을 석권했다. 현재 안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때만큼의 지지율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안 전 대표가 주장하는 대로 결국 ‘문재인-안철수’ 양자대결 구도로 흐른다면 이번 대선은 예측불허의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YS의 권유로

경남 창녕서 태어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대구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고려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울산에 내려가 일당 800원짜리 현대조선소 경비원으로 일하던 아버지를 보고 세상을 바꿀 결심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훗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청주지검을 시작으로 부산지검, 광주지검, 서울지검서 검사로 재직한 홍 지사는 1988년 전두환 측근 비리를 척결했다. 1991년 광주지검 강력부 강력계 검사로 부임하고 나서부터는 조폭들의 저승사자가 됐다.

홍 지사는 지난 2013년 2월 그가 술을 끊게 된 계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1991년 3월부터 여자가 있는 술집은 안 간다”며 “그 당시 광주엔 룸살롱을 거의 건달들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검사가 그런 곳 가서 술 마시고 무절제한 행동을 하면 건달들에게 약점을 잡힌다”고 말했다.

그가 검사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 사건은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이다. 그는 ‘6공의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등 권력 실세들을 구속 기소해 명성을 얻었다. 이 사건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됐고, 그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1995년 10월 정계 진출을 시사하면서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가 됐다.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도 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해 제15대 총선서 금배지를 달았다. 이후 선거법 위반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잃었지만 재보궐 선거를 통해 16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이후 승승장구한 그는 17·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2012년 11월27일 대선 후보로 출마한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후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권영길 후보를 누르고 경남도지사에 당선됐고, 2014년 지방 선거에도 이겨 연임에 성공했다.

도지사로 활동하던 중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터지면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재판이 열린 지난달 16일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곧바로 홍 지사는 자유한국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발돋움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불출마로 인한 반사이익도 얻었다. 현재 홍 지사는 보수진영 단일화에 나서면서 대권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승민]
이회창과 인연

1958년 대구서 출생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초·중·고등학교를 대구서 마쳤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한 유 의원은 위스콘신대학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수석연구위원으로 12년간 일했다.

한국개발연구원서 연구위원 시절 당시 연구원이었던 바른정당 이혜훈 의원과의 인연은 익히 알려졌다. 현재도 두 사람은 정치적 행보를 같이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에 있던 유 의원을 정계로 끌어들인 사람은 2000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였다.

이에 유 의원은 “정치권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법조계 출신 정치인이었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통해서였다”며 “이를 계기로 마흔두 살이던 2000년 2월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캠프에서 정책개발, 메시지 담당, 연설 담당을 맡았다. 그때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이번 대선서 유 의원 지지를 선언했다.

이 전 총재의 낙선 이후 유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났고, 17대 총선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2005년 1월 박근혜 당 대표 비서실장직을 맡았고 같은 해 10월 비례대표직을 던지고 대구 동구을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지역구 의원으로 거듭났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서 박근혜 후보의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저격수로 활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 의원을 대선주자급 정치인으로 만든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근혜정부서 유 의원은 친박서 배제됐다. 지난 2015년 2월 원내대표에 선출된 유 의원은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이후 친박 공천 학살 과정서 유 의원은 탈당, 무소속으로 대구에 출마해 전국구 정치인이 됐다. 특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서 유 의원은 전면에 나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면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탄핵 이후 지지율 정체 국면은 유 의원이 대선 승리를 위해 해결해야 할 최대의 과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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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